내가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초등학생때부터 였다고 생각된다.
벼루에 찬물을 조금 떠다가 부어 놓고 먹으로 한참 동안 먹을 갈았다.
먹물이 진하지 않으면 한지에 물이 배어 나와 글자가 엉망이 된다.
그땐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神位)이란 글자가 무슨 뜻인고도 제대로 모르고서 썼다.
한자대로라면,나타날 현,상고할 고,배울 학,날 생, 곳집 부,임금 군,귀신 신, 자리 위자로
현고(顯考)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考라 하므로 아버님이 나타나십시오 또는 임하소서가 된다.어머니는 비(妣:죽은 어미 비),조부는 조고(祖考),할머니는 조비(祖妣)가 된다.여자는 성이 다르므로 본을 함께 쓴다.현비유인 진양정씨신위 처럼 말이다.
학생(學生)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이지만,생전에 벼슬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명정(銘旌) 등에 쓰는 존칭이기도 하다.
벼슬을 한 사람은 벼슬명을 쓴다.요새도 사무관급 이상의 관직을 쓰고 학교로 치면 교장이라고 쓴다.
부군(府君)은 죽은 아버지나 남자 조상에 대한 존칭이다. 그리고
신위 (神位)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 즉 지방(紙榜)이나 고인의 사진 따위가 된다.
설이나 추석에 지내는 차례는 기제사와 달리 아침에 지내고 촛불을 켜지 않고 축문도 읽지 않는다.
설에는 밥 대신 떡국을 쓰고 국이나 나물류인 소채는 쓰지 않는다.
고조 이상은 시월 시사때에 제사를 지내고 기제사나 명절 제사땐 돌어가신 증조이하의 조상만 모신다.
예전에는 증조부터 한 상 차리고 절하고, 다시 한 상 차리고 절하곤 했으나 요즘은 지방을 한꺼번에 붙여 놓고 한번에 다 모신다.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는 산소에 일일이 성묘를 갔으나 요새는 생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남의 제사에 가서 괜히 예법을 조금 안다고 해서 감놔라 배놔라 했다간 큰 코 다친다.
집안마다 제사 상차림이나 지내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본래는 유교에서 파생되어 대략적인 원칙은 있었을 것이지만 이조때 당파로 갈라지면서
제사지내는법까지도 달리 했다는 설도 있다.
오늘 아침신문에도 제삿상 진설할 때 홍동백서니 어동육서, 조율이시,동두서미라는 말도 본래는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글로벌 시대라서 그런지 수산물도 전세계로부터 들어오고, 과일도 열대과일이 많이 들어온다.
바나나 망고도 올리고 피자나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도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망자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을 올리는 것도 그 분을 기억하는 데 한 몫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가도 많이 오르고 보니 돈을 많이 들여 제수를 마련하는 것보다
간소화 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밥, 국, 잔(술), 탕, 나물 과일 서너가지만 해도 충분하다고 한다.
기독교인도 아니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많다고 한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제사도 없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