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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온산 제단(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한 논리로 완전해독) 원문보기 글쓴이: 티끌
그렇다면 예수께서 네가 닭 울기전에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뜻은
무엇이었는가? 밤에 동트는 새벽을 알리는 닭이 울었다는 것은
지난 어두운 밤을 지나
새벽별이신 재림주의 진리의 음성이 들려오게 되었다는 신호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재림하신다고 약속된 분이므로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다는 것은 오늘의 재림주를 세번 부인하게 됨을 뜻한다.
그러므로 닭 울기 전에 세번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오늘의 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이 들려오기 전, 지난 어두운 밤시대에
재림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세대가 예수님(재림주)을 어디 어디서 세번이나 부인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겠는가? 성서를 믿는 그 많은 기독계열 중에
오늘의 재림주가 없다고 부인하게 되는 일은 아래와 같다.
첫째, 구약성경만을 믿는 유대인들의 구약제단에는 오늘의 재림주가 없음을
단호히 부인해야 한다.
둘째, 신구약성경을 모두 믿는 기성교단에도 오늘의 재림주가 없음을
단호히 부인해야 한다.
셋째, 신흥교단 자칭재림주(적그리스도) 교단에도 오늘의 재림주가 없음을
단호히 부인해야 한다.
이렇게 세번을 거듭해서 부인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어디서든 처음에 발을 들여놓은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인간의 탐욕으로 이미 구원받았다고 자부하고 꼼짝달짝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재림주도 없고 구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있다고
합리화해서 믿어버리는 게 인간의 탐욕이 아니던가?
그러나 마음이 정직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탐욕을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그런자들은 성도의 인내가 요구됨을 깨닫고 끝까지 굶주림을 참고
참 진리를 찾아서 개나리 봇짐을 둘러매고 문전걸식을 하는 나그네로 살아간다.
그 누가 그런 나그네의 설움을 알기나 할까?
하지만 끝까지 성도의 인내로 참고 참아온 사람들에겐 새벽닭이 소리치는
오늘의 재림주의 진리의 새말씀을 만나게 되는 것을 누가 막으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예수께서 말씀해 주셨던대로 천국을 차지하게 될것이다.
그런데 만일 베드로가 불행하게도
구약성경만을 믿는 유대인들의 구약제단에 구원주 예수님(하나님)이 계신다고
인정했다면, 그리고 신구약을 믿는 기성교단에 구원주 예수님(하나님)이
계신다고 인정했다면, 또 그리고 신흥교단 자칭 재림주(적그리스도) 교단에
구원주 예수님(하나님)이 계신다고 인정했다면, 가장 마지막 때에
새 하늘 새 땅 태초의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로 오신 오늘의 재림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버림받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수제자 답게 지난 그 어두운 밤시대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기 때문에 마지막을 구원으로 장식하는 오늘의 재림주의 음성을 듣고
구원받게 되는 행운아였던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이와 같은 이치와 논리를 그 당시 사람들이 깨닫도록
주신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성경기록시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무대의 배우역활만 했을 뿐이고, 성경 비기록시대인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 때 그분에 의해 성경이 해독됨에 따라서 우리세대 사람들이
깨닫고 구원받도록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성경은 옛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오늘 우리세대 사람들을 구원시키기
위한 기록이 되기 때문에, 성경은 예언서라고 하는 것이며 비유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