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를 풍기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고약한 시궁창 냄새를 풍기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느낌을 주고, 그래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면 만날수록 나쁜 느낌을 주고, 그래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前者)와 같은 사람을 만나길 원합니다. 좋은 느낌을 주고, 위로를 주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사람을 만나길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어떤 향기를 풍기며 살고 있는 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사도들의 업무가 막중해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처음으로 일곱 집사를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어디에서든 사람을 뽑는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집사를 선출하는 조건으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 이었습니다. 매우 현명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화 교동 지석교회에서 목회 할 때였습니다. 이웃교회 후배 목사를 주일 오후에 만나서 가볍게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배 목사가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형님, 한턱 쓰셔야 하겠습니다."
다짜고짜 한턱을 쓰라니?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인데 그러냐고 물었지요. 후배 목사는 내게 한턱을 쓰라는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며칠 전, 금요 연합 속회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후배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답니다. 공과에 있는 말씀을 전하고 '생각나눔'이라는 코너에 나와 있는 질문을 교우들에게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저 사람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큼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보자."
후배 목사의 질문에 신도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모양,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잠시 신도들이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신도 한 분이 손을 번쩍 들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손을 든 사람에게 쏠리게 된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과연 자타가 인정할 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모두가 궁금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서순종 장로님, 지석교회 서순종 장로님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 교동에서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 합니다."
그러자 모든 신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공감했다는 것입니다. 후배 목사는 그 이야기를 저에게 전해주면서 "형님은 좋은 교인을 섬기고 있어서 행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후배 목사에게 전해 들으면서 참 흐뭇했었습니다.
서순종 장로, 그 분은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는 분입니다. 교인들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지 않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습니다. '서순종 장로 같이 예수를 믿을 거 같으면 한번 믿어볼 만하지'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괜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이 아닙니다.
서 장로님은 동네에서 온갖 굳은 일에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섭니다. 독거 노인들의 장을 봐다 주기도 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지나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괜한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 만우절 날, 거짓말로 남을 적당하게 골탕 먹여도 크게 욕먹지 않는 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동네 어느 젊은이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거짓말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제목은 "서순종 장로가 다음날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1990년 초반으로 한창 이농 현상이 심화되었을 때였습니다. 거짓말치고는 그럴 듯해서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갔었지요.
"아이고, 이제 어쩌면 좋겠시까. 서 장로님이 떠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시까."
"왜 갑자기 서 장로님이 이사를 간단 말이오. 그러면 안 되지요."
집집마다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장로를 붙잡아야 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 갈 수 없다고, 그 분이 이사를 가면 누굴 믿고 사냐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만우절 날 잠깐 동안의 해프닝이었지만 서순종 장로가 어떤 분인지 그 분의 신앙이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날 저녁, 교회 교육관에서 젊은 집사가 녹화해 온 비디오를 틀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어떤 할아버지는 탄식을 하며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당장이라도 서 장로에게 물어보아야겠다는 장면이 아무 여과 없이 TV화면에 그대로 나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만우절 날 거짓말 인터뷰에 깜박 속아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며 깔깔 웃었습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의 인터뷰를 다 보고 난 사람들은 웃지 않았습니다. '정말 서 장로가 우리교회를, 우리 동네를 떠나가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꾸몄던 얘기가 진짜로 둔갑하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가 방금 전까지 재미있다고 박장대소를 하던 교인들 마음속에 물결처럼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한 번은 새벽기도회에 서 장로가 안 나왔습니다. 평소에 잘 안 나오던 사람이 나오던가, 평소에 잘 나오던 사람이 안 나오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회를 한참 인도하고 있는데 교회마당에 자동차 불빛이 어른거립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기도회를 인도하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서 장로와 부인이었습니다. 서 장로가 차를 몰고 왔는데 옆구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다급해 119를 불렀습니다. 새벽 이른 시간이라 교동 섬에서 강화로 가는 배가 없었습니다. 강화에서 위급한 환자나 행정업무 때 이용하는 행정선이 선착장으로 왔고, 그걸 타고 바다를 건너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나는 서 장로의 옆구리에 손을 얹고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검사를 했는데 담당의사로부터 담석증이라는 판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파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시던 통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도 받지 않고 그 다음날 멀쩡히 퇴원을 했습니다. 서 장로는 가끔 내게 이렇게 말씀하곤 했습니다.
"목사님, 그때 옆구리가 얼마나 아픈지 금방 죽을 것만 같더라고요. 행정선이 와서 그걸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그때 목사님이 제 옆구리에 손을 얹으셨지요. 그런데 제 옆구리가 따뜻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감쪽같이 나앗시다."
언제인가 서순종 장로께 육지로 이사 갈 의향이 있냐고 묻자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살아야지. 농사꾼이 논밭을 버리고 나가서 살수 있겠신꺄?"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순종 장로는 만나면 만날수록 아름다운 향기를 품기는 사람입니다.
첫댓글 교단홈피에서 정말 오랫만에 하나 건져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