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대전시의 실화를 소재로 하여 영화사상 가장 멍청한 임무를 다룬 영화사상 가장 멍청한 전쟁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그 멍청한 정도는 심지어는 그 '멍청하다던' /람보/ 시리즈를 능가할 정도이다. 아니, 이 글을 읽다보면 차라리 /람보/ 시리즈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지도 모르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대전 당시 참전했던 4형제 가운데 3명이 전사하자, 역시 참전중이었던 막내를 찾아내 귀향시키라는 참모총장의 명령을 받은 8명의 부대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대원들은 험난한 여정을 거쳐가면서 천신만고 끝에 '우리 막내(our boy)'인 라이언 일병('private'가 왜 일병인지 모르겠다. 이등병 아닌가?)을 찾아내지만, 전략상 요충지 방어를 위해 끝까지 남겠다는 라이언의 고집에 결국 모두들 남기로 하고 싸우다가 다 죽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라이언은 살아남고.
벌써 이 정도의 설명만 들어도 이 영화가 얼마나 멍청할 거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첫번째, 이 영화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이야기이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8명의 인원이 투입되고, 그 가운데 단 두 명만 살아남는다. 설정 자체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가 어디서 이런 발상이 나왔는가? 그보단 수십명의 전쟁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고, 결국 성공하기까지 하는 /람보 II/의 설정이, 차라리 노골적으로 만화적이라서 솔직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군대가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이지 못한 집단들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멍청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나는 왜 라이언을 구하러 가야 하느냐고 짜증을 내는 부대원들의 입장에 계속해서 동감하면서, 진지에 남아 싸울 것이라고, 왜 나만 가야 하느냐고 투덜대는 라이언을 보면서 삼년 전에 먹은 콩나물국이 식도로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두번째, 이 영화는 솔직하지 못한 영화이다. 관객들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라이언 가의 막내를 구해 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에서, 미국의 육군 참모총장은 링컨 대통령이 전쟁으로 5명의 아들을 모두 잃은 빅스비 부인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한다. 하지만 이 내용은 영화를 위해 날조된 가짜이다. 실제로 빅스비 부인의 아들은 5명이 아니라 2명이 죽었으며, 빅스비 부인이라는 사람 자체가 지독한 평화주의자(혹은 부전론자)였기 때문에 아들들이 군에 징집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한다. 영화의 말 같지도 않은 설정을 위해 역사적인 사실까지 제멋대로 바꿔버린 것이다. 물론, 창작의 자유가 보장된 상황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약간씩 변형하거나 임의로 바꿀 수는 있으며, 가정도 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하지 않은가? 가뜩이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이제는 아예 뻥까지 쳐가면서 관객들에게 믿고 동참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다지 휴머니즘과 관계가 없어보이는 주제의 영화에서 카드보드지 두께만큼의 깊이만으로 만들어진 별 매력없는 등장인물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얼굴을 찌푸려 가면서 전쟁의 비극과 아이러니에 대해 폼을 잡는다. 뭐하는 짓들인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가증스러운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할 거면 차라리 말도 안되게 영화를 풀었어야 할 것을 마치 자신이 심각하게 무거운 주제 - 휴머니즘? 애국심? 전쟁의 비극? - 를 이야기하는 양 똥폼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영화의 맨 앞과 맨 끝에 등장하는 늙은 라이언의 장면들을 보노라면 유치해서 돌아버릴 것만 같다. 80년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유치한 애국심을 강조하던 액션영화들에나 나올만한 장면을 스필버그는 자신의 '에픽'의 앞 뒤에 보란듯이 붙여 놓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주제와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에 있어서의 불일치가 거의 극단을 달리는 정신분열증적인 영화이다. 스필버그는 /태양의제국/이라든가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이렇게 '심각한' 영화들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는데, 이제는 이런 영화들을 못 만들면서도 자꾸만 만들어야 한다는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조금 더 심하게 말해, /쉰들러 리스트/의 구역질 나는 마지막 장면을 3시간으로 늘려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말할 때면, 항상 도입부의 전투장면을 빼놓지 않곤 한다. 사실 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가 얼마나 엿같은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적어도 '호러의 눈'으로 보았을 땐 유쾌할 지도 모르겠다. 까놓고 말하자면, '스플래터 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포탄에 맞아 몸통이 산산조각나고, 배가 갈라져 쏟아져나온 자신의 내장을 움켜쥐고 엄마를 소리치는 다 죽어가는 병사의 모습이 보여지며, 잘려진 자신의 팔을 주워들고 전진하는 병사의 처절한 모습이 나온다. 이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단 한 컷도 잘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공포영화 팬으로서는 경악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구? 이 영화가 무삭제로 통과되었으면,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스크림/도, 모두 무삭제로 통과되었어야 한다. 왜 검열하는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를 단지 '전쟁의 비극을 다룬 휴머니즘에 입각한 영화'이고, '전쟁의 실상을 가감없이 보여주려는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에 통과시켜버리고, 비슷비슷한 장면들이 나오는 공포 영화들은 '신체의 심각한 손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관객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삭제하라고 했을까? 당신은 열 받지 않는가? 왜 공평하지 않느냐는 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야말로 소위 '작품성 있는 영화'임을 가장하였지만 실제로는 위선과 허위에 가득 찬, 관객에게 쇼크를 주고 선정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켜 돈을 벌어들이는 저열한 작품에 다름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르고 있을까? 알려하지 않았던 것일까? 스필버그의 입김이 너무 세서? (다른 누구는 왜 안 그러겠느냐만은, 스필버그가 해외에서 자신의 영화를 삭제하는 것에 대해 과민할 정도로 반응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니면, 정말로 '감동'을 받아서? 웃기지도 않는다. 이른바 제대로 된 공포영화에서 보여지는 고어 장면들이야말로, 솔직하고 아름답다. 어찌하여 보고 나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고어 장면과 유쾌하고 상상력에 가득 찬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고어 장면을 비교할 수 있단말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는, 이 영화를 더 이상 '호러의 눈'으로 좋게 봐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그 실상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정육점에 가서 칼을 휘둘러 고기를 자르는 아줌마를 보는 게 낫다. 그것은 아름다운 생활력이 넘치는 장면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모든장면은 다 거짓말이며, 그것도 아주 사탕발림한 같잖은 거짓말이다. 영화란 것은,모름지기 솔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