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에게 있어서 신화로 여겨질 이야기
예컨대 사찰마다 도처에 여우, 족제비, 뱀, 귀신 등 저급영체가 득실거리는 것을 보았으며, 불상에는 부처의 法身이 전혀 없는 것을 보았다. 이런 무서운 광경은 늘 나를 굉장히 놀라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늘 사부에게 나의 천목을 닫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다급히 "나는 방향을 잘못잡지 않았습니다. 북쪽은 속인들이 가야 할 곳이고 여기야말로 내가 와야 할 곳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지스님은 이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였으며 나와 그는 금방 마음이 통하였고 나중에는 막역지우로 되었다. 이틀 밤을 지낸 후 나는 아미산의 원숭이가 아주 영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주지스님에게 어떻게 원숭이를 불러오는가를 물었다.
주지스님은 네가 산골짜기에 대고 "삼아, 빨리 와서 소식을 먹어라" 라고 고함치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소리가 메아리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여 산골짜기에 대고 소리쳤다. "삼아, 빨리 와서 소식을 먹어라". 그러자 얼마간 지나서 정말 수백 마리의 영성이 있는 원숭이들이 모여 왔다. 원숭이들은 나의 앞에서 기뻐서 곤두박질하고 나의 몸에 매달리면서 반갑다는 표시를 하였다.
가장 늙은 그 원숭이는 와서 나를 끌어안고 나의 얼굴에 줄곧 입을 맞추었으며 침마저 나의 얼굴에 흘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입에서 단(丹)을 뱉어 나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더럽다고 생각한 나는 먹지 않았다. 그러자 주지스님이 하시는 말이 "거사야, 네 마음속은 아직도 비지 못했구나. 이 丹은 그가 수백 년을 수련해서야 수련해낸 것이니라." 라고 말하였다.
이 丹은 그 원숭이가 수백 년 수련해낸 것이라는 것과 이처럼 소중한 것을 왜 나에게 주는지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윽고 원숭이 무리는 산골짜기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자기들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었고(뒤의 원숭이의 손이 앞의 원숭이의 다리를 쥐고 하나씩 이어감), 그 늙은 원숭이는 나를 안고 그 원숭이 다리를 걸어갔는데 나는 너무 놀라 감이 눈을 뜨고 보지도 못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자기들의 분계선을 넘어 나를 다른 무리의 원숭이들한테 보냈다.
주지스님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역사적으로 오로지 소동파(蘇東坡: 중국의 유명한 시인)의 (胡)씨 친구만이 이러한 대우를 받았고 너는 두 번째인데 게다가 너는 그보다 두 가지가 더 많았니라. 하나는 늙은 원숭이가 너한테 丹을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숭이가 너를 분계선을 넘어가게 하였는데 원숭이들은 일반적으로 분계선을 넘어가지 않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수련계에서는 역대로부터 사부가 제자를 찾지 제자가 사부를 찾은 적은 여태껏 없다. 사람들이 그들을 찾는다는 것은 허황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산 중턱에서 위로 올라가면 도를 닦는 사람들이 점차 적어지는데 그들의 도행(道行)도 역시 더욱더 높고 연세도 갈수록 더욱 길었다.
산 정수리에 이르면 불과 몇 사람이 안 되었다. 그들은 모두 2천여 년 수련하였으며 그들의 공기둥은 은하계를 벗어났다. 그 중 어떤 이는 이미 如來의 경지를 훨씬 능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수련하고 있으며 아직도 원만으로 수련성취되지 못하고 있다. 그 속에는 나의 어릴적 사부님도 계셨다.
청성산(靑城山)에는 4천여 년 수련한 도인이 있었다. 그는 나를 제자로 삼겠다고 하였으나 나는 완곡한 말로 나는 이미 사부가 있다고 거절하였다. 나는 몸을 갖고 부처로 수련되는 법문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그가 석가모니, 예수, 노자 등이 언제 탈태해서 전생했는가를 보아왔고, 어떻게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하는가를 보아왔다고 알려주었다.
이홍지 사부님이 설법할 때 말씀하신 적 있다. 사천(四川)에서 서안(西安)으로 북상하는 도중에 산에서 도를 닦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사부님에게 문안을 드리고 나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이 이렇게 빨리 수련할 수 있는가 라고 우리 사부님께 문의하였다.
사부님은 그들에게 "이 제자들이 가장 오래 수련한 사람이 2년이고 가장 짧게 수련한 사람이 2개월인데 당신들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가 이와 비할 사람은 몇이 없습니다" 라고 공손히 대답하였다. 나중에 사부님은 그들이 사부님의 법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속의 한 사람이 바로 이 4천여 년 수련한 도인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장춘(長春) 등 지역으로부터 강장으로 正法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다니며 사찰을 찾았는데 마침 大라마가 설법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자 이 大라마는 친히 우리를 그의 곁에 불러다 놓고 그의 설법을 듣게 하였다. 이는 장밀에서 아주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큰 예의였다.
大라마는 우리에게 어찌하여 강장으로 법을 얻으러 왔는가 라고 물었고, 우리 내륙에는 이미 正法이 없다, 사찰에는 도처에 여우, 족제비, 뱀, 마귀의 귀신 뿐이기 때문에 여기에 正法을 구하러 왔다고 하였다.
大라마는 조용히 생각하고 있다가 머리를 저으면서 말하였다. "그건 맞지 않다. 내륙에 얼마 후에는 만고이래 얻기 힘든 大法이 전하여 질 것이고, 게다가 장춘에서 전해질 터이니 자네들은 돌아가서 기다리거라." 라고 타일렀다.
나는 내륙에서 대법이 전하여진다는 말을 듣자 다급히 하산하였다. 나와 함께 갔던 사람들은 한 가지 약속을 하였다. 누가 먼저 대법을 얻으면 꼭 상대방에게 알려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장춘에서 온 사람은 믿지 않고 계속 강장에 남아 있었다. 만약 그가 장춘으로 돌아갔다면 우리 몇은 일찍이 대법을 얻었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뒤늦어서야 대법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들은 이 모두가 진실이란 것을 알고 있으나 이러한 공능은 함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이러한 아이들을 찾아 그들의 부모에게 왜 아이들의 공능을 함부로 표현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결과 이렇게 보호된 아이들은 나중에 모두 법륜대법을 수련하게 되었지만, 그때 부모들이 데리고 각지에서 공능을 표현하였던 아이들은 나중에 모두 속인사회에 떨어졌고 사회에도 아주 좋지 못한 영향을 갖다 주었다. 왜냐하면 초상(超常)적인 것은 속인사회에서 마음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이른바 특이공능이 있는 사람을 밝히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이용을 당한 소인들이며 고층생명들이 이러한 소인들을 이용하여 속인사회에서 파괴하는 현상을 억제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神을 믿지 않으면 않을수록 神은 神의 조그마한 자취조차 사람들이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神이 허용한다면 머리를 서로 바꾸는 것 역시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인간은 도리어 현재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대단하다고 느낀다. 왜 역사적으로 전 인류, 매 하나의 민족은 모두 유사한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있는가? 그때에는 현대화한 통신공구가 없었고 사람들이 갈수록 더욱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신의 진실한 이야기는 곧 "신화와 같은 이야기"로 되어 버렸다. 그렇게 보호되었던 아이들은 그때에 나보고 "우주의 주장(主將)은 곧 지구를 구원할 것이다." 라고 말하여 실로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 날밤, 가부좌를 할 때 나의 元神(영혼)은 다른 공간에서 날아다녔다. 나의 원신은 한 공간 한 공간씩 찾아다니면서 한 공간, 한 공간씩 물었다."진정한 성명쌍수로서 몸을 갖고 부처로 수련되는 정법이 없습니까?" 매 하나의 공간은 모두 많은 수련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태껏 이렇게 좋은 공법이 있다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오히려 모두 나에게 "당신이 만약 이렇게 좋은 정법을 찾으면 꼭 와서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를 제도하여 달라." 라고 부탁하였다. 나중에 나의 공력은 모자라서 올라갈 수가 없었으나 나의 한 사부가 나에게 선학(仙鶴) 한 마리 주어 선학이 나를 태우고 계속 한 공간, 한 공간씩 찾아 올라갔고 한 공간, 한 공간씩 물었다. 줄곧 우리가 더는 올라가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나 아직도 찾지 못하였다. 매 하나의 공간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이렇게 좋은 정법을 찾으면 그들을 제도할 것을 바랐다.
다음은 한 층 한 층 멀어져 갈수록 작았고 가장 밖의 한 층의 부처는 여래부처였는데 몸도 아주 작았다. 나는 아주 많은 여래부처를 보았다. 그 속에는 노자, 공자 등도 있었는데 아주 신기한 것은 그 속에 예수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기쁨을 금치 못하며 두 손으로 그것을 공손히 받았는데 가장 먼저 받아 쥔 것은 바로 『전법륜』과 『중국법륜공 (수정본)』이었다. 나는 "내가 속인사회에서 어떻게 사부님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였는데 거대한 부처님은 즉시 이홍지 선생님이 『전법륜』책 속에서 양복을 입으신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나는 순식간에 인간의 육체로 돌아왔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 나는 한 눈에 책상 위에 있는 『중국법륜공 (수정본)』을 보았다. 이는 그 거대한 부처님이 나에게 보여준 그 책이 아닌가! 내가 보는 즉시로 바로 이것인 것을 알았으며 즉시 그 책을 가슴에 얼싸 안았다. 그런데 나의 친구는 죽어도 나에게 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 한 책뿐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네가 어디에서 산 것인지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나에게 어느 서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때는 이미 퇴근 시간이 다 되었으나 나는 뛰다시피 그 서점에 도착하였다. 서점은 곧 문을 닫으려고 하였다. 내가 서점주인에게 『중국법륜공 (수정본)』이 없는가고 급히 묻자, 서점주인은 이미 다 팔렸다, 다음에 책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아미산에서부터, 강장에서부터, 이 정법이 속인사회에 전해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 이 정법이 전해지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있었던가!
나는 당장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오늘 이 대법을 얻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서점에 뛰어 들어가 책을 이리 찾고 저리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 나는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왜 이렇게 연분이 없는가! 라고 자신을 한탄했다.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서가의 서랍을 열자 안에는 금빛 찬란한 『중국법륜공(수정본)』이 있었다.
나는 즉시 그 책을 구입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중국법륜공(수정본)』을 단숨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나는 내가 예전에 해명하기 어려웠던 모든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나의 그렇게 많은 사부가 모두 나에게 설법한 그 무슨 대소주천, 현관설위, 천목, 숙명통 등등이 대관절 무엇인지, 어떤 문제는 1년이 넘도록 똑똑히 말하지 못하였었으나 『중국법륜공(수정본)』을 보고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왜 사람들이 대법 경서를 보고 아주 높다고 생각하는가? 왜 사부님의 말씀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가?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수련계에서 모두 비밀 중의 비밀로서 여태껏 그 어느 누가 똑똑히 말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부님은 그것을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밝혀주었으나 오히려 사람의 대뇌가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부 신들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연히 사부님의 말씀이 너무 크다고 한다.
어찌 자신이 처한 층차에서 대법을 가늠할 수 있는가? 나중에 수련생들이 나의 이 뒤 부분의 이야기를 시리즈 그림으로 그려서 사부님에게 보였다. 사부님은 "이것은 미래의 사람들로 놓고 말하면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수련생들이 아미산에서 대법을 전할 때, 산 위에 있던 많은 스님들은 그날 밤 관음보살의 점화를 받아 아침 일찍이 산 아래에서 꿇어앉아 길가에서 『전법륜』을 영접하였다. 그 광경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사부님은 神도 내가 대법을 전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나 다만 인간만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라고 하셨다.
대법은 확실히 사람들이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몇 천년 수련하여도 아직도 원만하지 못한 사람도 그를 얻으려 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얻었다면 그것은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기적적인 인연이다! 사람은 도리어 이렇게 위대한 우주의 대법을 알지 못한다!
1992년 동방건강 박람회에서의 기적 글/ 대륙 수련생
1992년 12월, 베이징 국제무역빌딩에서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10일 동안 ‘동방건강 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 홀은 엄청 컸고, 1미터 정도의 상품 진열장들이 줄줄이 늘어섰는데 기본상 기공이 위주였고 간혹 중의학이 있었다.(중의사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法輪功 부스 앞에서 李洪志 사부님께서 몇몇 초기 제자를 거느리시고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신체를 정화시켜 주고 계셨고, 다른 사람들은 간략한 法輪功(파룬궁) 자료를 나누어 주거나 상담 등록을 하기도 했다. 진열장 앞 TV에서는 사부님의 연공 지도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고, 부스 3면 벽에는 사부님 연공 사진, 사부님께서 사람들의 신체를 정화시켜 주는 사진이 걸려 있었으며 또 법륜 깃발도 걸려 있었다.
어느날 한 중년 부인이 남편의 부축을 받으면서 사부님께 왔다. 이 중년 부인 뱃속에는 종양이 있었는데 복부는 만삭이 된 임신부 배보다도 더 컸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은 건강박람회에 와서 사부님을 찾았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신체를 청리해 주시는 10여분 사이에 사부님의 손이 배로 들어가 잡아당기는 동작을 하는 것이 보이더니, 그녀 배가 단번에 줄어들고 정상으로 회복됐는데, 입고 있던 바지는 그녀 두 명이 들어갈 정도로 헐렁해 졌다.
그 때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목석처럼 굳어져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해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자 우레와 같은 열렬한 박수를 장시간 쳤다. 박수소리는 많은 다른 부스 사람들을 끌어왔는데 그들은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었다. 환자 부부는 격동되어 사부님 앞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렸고, 사부님은 두 손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두 부부는 당시에 감사 편지를 써서 대회 조직위원회에 보냈고, 박람회 총지휘 리루쑹(李如松)씨는 방송에서 이 감사 편지를 읽었다. 아울러 말했다. “박람회에서 받은 첫 번째 표창 편지가 파룬궁을 찬양한 것이고, 표창 편지를 가장 많이 받은 것도 역시 파룬궁입니다.”
박람회 총고문 쟝쉐구이(姜學貴) 교수도 말했다. “저는 李洪志 선생님께서 이번 박람회를 위해 아주 많은 기적을 창조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파룬궁은 이 박람회 중에서 인기공파로 불리기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저는 박람회 총 고문으로서 여러분에게 파룬궁을 추천할 책임이 있습니다.” 파룬궁의 신기한 병치료 효과는 재빨리 전파됐고 아울러 갈수록 널리 전해져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졌다.
어느날 오후 끝날 시간이 다될 무렵, 20대의 건장한 청년이 아주 건장한 부인을 업고 와서 병을 치료해달라고 했다. 등록을 책임진 수련생은 오늘 상담은 이미 끝났고 문 닫을 때가 됐다고 하면서 사부님도 오늘 많은 환자를 치료하셔서 지쳤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설득을 해도 환자는 무조건 떠나려 하지 않았다. 부스 앞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사부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고는 즉시 이 부인에게 치료를 해주셨다.
이 여성은 공공버스에 앉았다가 차가 급정거 하는 바람에 넘어져 하지 마비가 됐고,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 집에서 치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은 박람회장에서 멀지 않았고 역시 파룬궁의 신기한 소문을 듣고 찾아왔던 것이다.
사부님은 부스에서 그녀 몸을 청리해 주셨다. 장소가 비좁고 구경꾼이 많았으며 또 모두 사부님께서 어떻게 치료하는지 똑똑히 보려 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치료 장소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갈수록 좁아졌다. 몇몇 제자는 할 수 없이 여러 사람들에게 밖으로 물러서서 자리를 내 달라고 했다.
이 여성은 여자치고는 키가 크고 건장했으며 뚱뚱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녀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떤 때는 그녀를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자기 등에 업고는 앞으로 몸을 구부렸는데 그녀가 사부님 등에 누운 것처럼 몸이 쭉 펴졌다. 사부님께서는 잠시 후 또 그녀 어깨를 가슴에 대게하고 자기 품에 안은 동시에 사부님은 뒤로 몸을 굽혀 그녀 몸이 쭉 펴지게 했다. 사부님은 또 그녀를 의자에 부축해 앉히고는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줄곧 두드려 주셨다. 사부님 자세는 처음에 섰다가 다음에는 몸을 굽히고 나중에는 꿇어 앉으셨다.
사부님 머리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이를 본 나는 당시에 속으로 끊임없이 어서 빨리 끝내서 사부님께서 얼른 휴식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하루 종일 수고하셨기 때문이다.
약 30분이 지나자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의자에서 일어나라고 하시자 그녀가 일어섰다. 걸으라고 하니 그녀는 마비된 후 첫 걸음을 내디뎠다. 나중에 사부님은 그녀에게 달리라고 하시자 그녀가 달리기 시작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격동되어 박수를 치면서 자기 눈으로 직접 본 파룬궁의 신기한 기적에 대해 끊임없이 말했다. 이 여성은 사부님께서 그녀를 치료하는 과정에 몸이 건강하게 회복됐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은 그녀에게 天目(천안)을 열어주셨다. 격동된 그녀는 사부님 앞에 꿇어 앉아 대성통곡 하다가 목이 메어 땅에다 머리를 쾅쾅 찧으면서 줄곧 감사드렸다. 주위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 이때부터 박람회가 끝날 때까지 이 여성은 날마다 파룬궁 부스 앞에서 상담 온 사람들에게 직접 겪은 신기한 경험을 말해주었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치료 받으러 오거나 어디에 가면 파룬궁을 배울 수 있는지, 어느 때 강의를 하는지 등을 상담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배우고 싶어했다. 마지막에 박람회가 종료되기 전,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베이징 제6회 파룬궁 학습반 통지를 쓰셨다.
그리하여 베이징 제6회 파룬궁 학습반이 1993년 1월 5일 베이징 다베이야오(北京大北窯) 핵계측기 공장 대강당에서 열렸고 이 여성도 수련생이 됐다. 이상은 92년 ‘동방건강박람회’에서의 수많은 기적 중 두가지 사례다. 각종각양의 기적이 날마다 발생했다.
사부님께서는 미혹 속에 있는 일체 중생이 접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있으며, 중생의 본성을 깨우쳐 주고 계신다. 온갖 마음을 다 쓰시고 온갖 걱정을 다하시면서 18년의 세파 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셨다.
나 자신도 수련이란 이 길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단련 속에서 오늘까지 걸어왔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만이 비로소 사부님 은혜에 약간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것이다.
백혈병을 앓았던 내가 되살아난 이야기
아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진실로 아주 신기한 나의 체험담이다.
1996년 당시 18살 이었던 나는 6급 공상(工?)으로 장애인이 된 부친을 대신해 사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학교 문을 나와 공장에 들어간 것은 나로 말하면 새롭고도 낯선 경험이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의 아름다운 인생이 이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출근한지 얼마 안 되어 열이 나고 힘이 없었다. 4교대 작업으로 바람을 맞아 그렇다고 여겨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되지 않아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 계단을 오르기도 몹시 힘들었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지친 나는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그러한 감각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엄마에게 병원에 가자고 스스로 졸랐다.
검사결과 백혈병이라면서 즉시 입원하라고 하였다. 의사는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튿날 시내에 있는 큰 병원 두 곳에 가서 검사한 결과 모두 백혈병이었다. 현미경으로 본 백 개의 세포 중 90여개는 암세포였다.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친척에게 “제가 얼마를 더 살 수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나도 모르겠어.” 하고 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 후 베이징 인민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도 역시 백혈병이라며 즉시 입원을 권했다. 우리는 베이징병원의 비싼 의료비를 낼 수 없었다. 의사는 베이징 부속병원인 덕외병원에 가면 치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며 추천해 주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가니 한 언니가 “네가 걸린 병이 무슨 병인지 알아?”라고 물어 나는 웃으며 “알아요, 허지만 난 믿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 병은 치료하지 못해” 그녀는 나에게 이 병은 죽을 때 어떤 상태이며 화학 치료를 받을 때 몹시 고통스럽다고 알려 주었다. 그녀 말에 나는 차가운 절망감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껴 울었다.
길고긴 치료가 시작되었다. 매 번 화학치료를 마치고 난 뒤 나의 면역력이 몹시 떨어졌다. 나는 정상인이 몸에 지닌 세균에 감염되어 저녁에 열이 나고 기침이 심해 눕지도 못한 채 앉은 채로 밤을 꼬박 새웠다. 24시간 점적 주사와 수혈, 그리고 산소공급을 해 손 등은 온통 주사바늘 자국과 어혈로 얼룩져 있었다.
화학 치료를 받으니 나의 몸은 급속도로 야위었고 구강 궤양이 생겨 구강 벽에는 마치 썩은 물고기 살 같은 게 입안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 말도 할 수 없어서 손시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서 죽을 한 술씩 받아먹었는데 죽을 넘길 때 입 안의 썩은 살도 함께 넘겼다. 구간궤양이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눈이 또 감염돼 전혀 눈을 뜰 수 없었고 햇빛을 볼 수 없었으며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내렸다.
나는 그 곳에서 8달 동안 화학 치료를 받으며 수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 때 나는 늘 왜 내가 이런 병을 얻었을까! 왜 이런 죄를 당해야 하는가! 언제 끝이 보일까! 살아서 무슨 의의가 있는가! 나는 비록 백혈병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줄곧 끊임없이 살 길을 찾고 싶었다.
1996년의 북경에는 각종 기공이 유행하고 있었다. 한 환자의 어머니가 늘 우리에게 『중국 法輪功(수정본)』을 읽어 주었는데 나는 무척 인상 깊게 책 내용을 들었다. 이홍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후부터 마음이 넓어지고 심지어 아픔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저 좋은 감각뿐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지는 말하기 어려웠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은 수련 중의 일로 너무 엄격하여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후에 『전법륜』을 얻었을 때 나는 책을 보기 전 먼저 손을 씻고 보면서 아주 소중하게 여겼고 선생님께서 나를 구해 주기를 바랐다. 97년 1월, 나는 의사의 동의없이 집으로 퇴원을 했다. 설을 쇤 뒤 가족들은 또 돈을 모아 화학치료를 받으려고 했다. 우리 집은 이미 나의 화학 치료비에 6만 위안 넘도록 들어갔고, 또 친척, 친구, 동료들에게 치료비를 빌릴 만 한데는 다 돈을 빌린 상태였다.
직장에서 나를 위해 2만위안을 모금하기까지 했다. 나는 화학치료와 돈, 친인의 원망에 직면해 오래도록 생각해 보고는 화학치료를 포기했다. 나는 그들을 연루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슬픔으로 인해 더는 法輪大法을 배우고 싶지 않을 정도였고, 그저 이렇게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갈수록 몸이 허약해지자 두려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래도 大法을 수련하여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파악되지 않은 게 있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1. 나는 속으로 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2. 자신은 <전법륜>에서 말한 요구대로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의심이 갔다.
나중에 『파룬궁 수련이야기』에서 한 백혈병 환자가 대법 수련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이야기를 보고나서 나는 엄마에게 “그녀가 수련을 잘한 첫 번째 백혈병 환자라면, 나는 꼭 두 번째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
1997년 4월말, 나는 드디어 연공장에 가서 매일 아침 4시 반에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백혈병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날마다 5장 공법을 다 하고나면 마음이 무척 좋았고, 예전보다 힘이 있음을 뚜렷하게 느꼈다.
후에
몇 가지 신기한 일이 발생하였다. 1. 하루는 연공을 마치고 집에 오니 몸이 유별나게 가볍고 사지가 아주 영활한 감을 느꼈는데 마치 환골탈태한 것 같았다. 화학 치료할 때엔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고 날마다 흐리멍덩하였으나 지금은 머리마저 아주 맑았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할 수도 없었으나, 지금은 기쁜 마음이라 그 때부터 자립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었다.
2. 하루는 여러 사람과 함께 정공을 연마하는데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비 방울이 몸과 얼굴을 때려 눈을 떠보니 보도원은 산처럼 끄떡도 없이 움직이지 않고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고 계속 연마하였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찬바람을 조금만 맞아도 추워서 떨었는데 오늘은 비를 맞았는데도 왜 춥지 않고 도리어 몸이 더워나는 거지? 그 일은 나로 하여금 연공은 확실히 나의 신체를 개변시켰다는 것을 믿게 했고, 더는 감기와 감염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3. 사부님께서는 내가 연공장에서 정공을 할 때 사부님께서 넣어주신 체외의 기가 신체의 백맥을 이끌어 운행하는 신기함을 체험하게 하셨는데, 에너지가 상당히 강했고 몸이 더워나는 감을 느꼈다. 이는 나더러 수련의 일은 정말이라는 것을 확고히 믿게 하였다.
1997년 9월, 우리 현지에 법공부 팀이 건립되어 날마다 여럿이 함께 모여 법을 공부하였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불치병을 앓았던 그 고난의 경력을 감감하게 잊어버렸다. 나의 신체는 날마다 좋아졌고 엄중한 정맥염도 사라졌다. 혈관 또한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더는 나무뿌리 같지 않았고, 손등, 팔의 피부도 정상적인 색깔로 회복되었으며 더는 아프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 가서 상세한 검사를 하면서 의사에게 내가 백혈병을 앓은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의사는 나에게 아무 병없이 아주 건강하다고 알려 주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14년 동안 나의 저항력은 강화되어 그 어떤 약물치료도 하지 않았다.
1997년 말, 나는 공장에 복직해 일을 하면서 때때로 내가 수련인임을 명심하고 일체를 잘해 나갔다.
1998년 法輪功 베이징 본부에서 각지에 法輪功을 수련해 심신의 혜택을 받은 수련체험담을 모집했다. 법 공부 팀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불안해 졌다. 대법의 혜택을 직접 받아 나의 생명은 사부님께서 구해 주신 것인데, 나는 줄곧 내가 백혈병을 앓으면서 대법을 수련했던 것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하니, 이는 내가 대법을 실증할 때가 되었음을 인식하고는 필을 들어 대법이 나와 나의 가정에 준 아름다움을 써냈고, 그 해 법회에서 대법을 수련해 백혈병이 다 나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수련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나의 경험을 듣고 신기해 했고, 많은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로움에 감사드렸다. 그 사이 나는 여러 공장을 옮겨 다니며 각 환경에 직면해 시시로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선으로 사람을 대했고, 주동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가 일터를 옮길 때마다 모두 나와 헤어지기 아쉬워하였는데, 나와 접촉한 사람은 모두 나와 아주 큰 연분이 있음을 느꼈다.
백혈병에 걸렸다가 대법을 만나 죽음에서 살아난 나의 이야기를 공장에서 모두 알고,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믿지 않고 백혈병을 오진한 것이라 하였고, 어떤 사람은 병원의 좋은 약으로 치료해 나은 것이라고 여겼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백혈병에 걸렸던 일을 언급하지 말라면서, 장래 좋은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무엇이라고 해도 나는 진상을 알려 줘야만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고, 사부님께서 나를 헛되게 구하신 게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믿고 실천하면 당신은 체득할 수 있고 감수하여 후에는 끝없는 복을 받을 것이지만, 당신이 듣지 않고 믿지 않으면 체득할 수 없고 감수하지 못해 일체의 아름다움을 모두 얻지 못할 것이다.
2007년 직장의 설비노화로 생산을 중단하면서 직원들을 시 구역에 있는 각 직장에 배치하였다. 그런데 나를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재취업센타로 넘겼고, 처장은 지금이라도 수련하지 않겠다고 하면 직장을 배치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공정하지 못한 대우에 직면해 억울하다 못해 눈물이 났다.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줄곧 착실하게 일했고, 잘못한 게 없으니 나는 다른 직원처럼 평등한 권리가 있다. 당신들 이렇게 하는 것은 괄시와 박해다”라고 말하면서 3년 동안 줄곧 나의 자리를 정확하게 배치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나는 강제 퇴직 결정에 불복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봉급을 주지 않았다. 살기위해 나는 작은 장사를 했다. 뜨개질한 옷을 길거리에서 팔았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한 외지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옷값을 물어보더니 나중에 20위안하는 여자 반 팔 옷을 선택하고는 또 나에게 값을 흥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는 낮출 수 없습니다. 싫으면 사지 마세요.” 하고 말했다. 그는 즉시 백원 지폐를 나에게 던지고는 걸려있던 옷을 내렸다. 나는 거스름돈을 세면서 한 편으로 말하였다. “ 여자 친구한테 사 주는가 봐요. 제가 두 벌을 꺼내서 보여 드릴 테니 마음에 드는 한 벌을 고르세요,”
나는 80원과 옷 두 벌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돈과 옷을 거머쥐더니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백원짜리 지폐를 들여다보니 위조지폐였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돌아와요, 돌아와요”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장사를 한다는 사람이 돈 볼 줄도 모르다니, 당신 뭐하는 거요?” “이 돈이 위조지폐인 것도 못 알아 봤어?” “그만해, 괴로워 말아, 다음부터는 주의해.” 나는 옷을 걷어 집에 돌아와서도 괴로워하며 왜 주의하지 않았는가! 하고 끝없이 자책했다.
위조지폐를 받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도 그 돈을 사용하려고 하지 누구도 손해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으로서 절대 남을 해칠 수 없다. 나는 위조지폐에 위조지폐라는 글씨를 쓴 뒤 서랍에 넣어 버렸다. 이튿날 오전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는 옷 7벌을 팔아 어제 손해 봤던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격해진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마음으로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하느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고 있다! 나는 늘 생각한다. 가령 사람마다 모두 진(眞)、선(善)、인(忍)을 마음속에 담는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좋을 것인가!
수련의 과정이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나는 나의 사상경지가 대법 서적을 읽음에 따라 승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원한을 풀었으며 무척 많은 번뇌도 사라졌고 무척 많던 고통스런 집착도 옅어지게 되었으며, 몸 마음이 모두 가벼워졌고, 생명의 의의에 대한 견해도 법 공부를 하기 전보다 철저히 개변되었다. 나는 지금이 예전보다 생활을 더 중히 여기며, 직접 겪은 일 가운데서 대법으로 선과 악,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가늠하게 되었다.
많은 말을 했는데, 사실 시간의 제한으로 나는 아직도 많은 말을 하지 못했지만 여기에서 그치려 한다. 만약 당신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반드시 法輪大法이 우주의 진리이자 귀중한 佛法임을 상세히 이해하시라, 어쩌면 아름다운 일체가 당신이 그 진상을 이해한 그 순간부터 당신에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인에게 남겨줄 몇가지 신화(神話) 같은 이야기
1. 한 세인(世人)이 진술한 이야기
【 2006년 5월 6일】 나는 1996년에 행운으로 법륜대법을 얻은 제자이다. 매번 사부님께서 세간에서 법을 전하고 중생을 구도하실 때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이야기들을 듣거나 볼 때마다 큰 감동을 받곤 한다.
다음은 내가 들은 사부님에 관한 실화이다. 2004년 가을, 내가 문구점을 하는 한 사람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려 했으나 불행히도 그 사람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뒤였다. 새로 온 집 주인은 안마사였는데 그의 아내와 젖먹이 아들이 함께 집에 있었다. 그들은 아주 열정적으로 나를 맞아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내가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파룬궁이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지 말하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마사가 말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을 정말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으로 직접 당신들의 사부님을 뵌 적이 있거든요.” 이어서 자신이 사부님을 만나게 된 경과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아마 당신들 사부님께서 법을 처음 전하기 시작하셨을 때일 겁니다. 한번은 내가 요녕성 철령에 있는 한 친구의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어느 날 당신들 사부님과 식사 약속을 했다면서 나와 함께 갔어요. 당신들 사부님은 체격이 크고 온 얼굴에 온화한 빛을 띠셨는데 말씀하시는 것이 아주 겸손했고 말투도 아주 상냥했습니다. 앉은 자세도 아주 단정하셨고 손은 늘 그렇게 가만히 내려놓으셨죠.
식사할 때 내 친구가 이웃에 사는 한 할머니에게 4명의 아들이 있는데 모두들 효심이 없고 아주 거칠어서 걸핏하면 욕설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당신들 사부님은 그 네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라고 하셨고 그 4사람이 정말로 찾아 왔습니다. 당신들 사부님은 아주 온화하게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들은 모두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에 앉은 채 조용히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 이후 네 아들들은 할머니에게 아주 효성스럽고 순종했는데 아주 좋게 변했습니다.”
당시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안마사에게 말했다. “우리 사부님을 직접 뵈었다니 아우님은 정말 연분이 크네요.”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말했다. “남편은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그런 것들을 한번 보더니 곧장 다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좋으신 분이 어찌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럴 수 있겠느냐면서요.”
나는 비록 직접 사부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진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어 행운으로 느끼며 또 이 역시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2. 사부님께서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사람의 신체를 정화해주신 것을 목격
【 2004년 9월 3일】 1994년 3월 27일 사부님께서 처음 대련(大連)에 오셔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셨다. 이날 설법반이 열린 강당 앞으로 한 대의 차량이 달려왔다. 한 50대 여사가 차에서 내렸으나 혼자서는 보행이 곤란해 남편이 등에 업고 강당에 입장한 후 맨 앞줄에 자신들이 가져 온 긴 의자를 놓고 앉았다. 이들의 특이한 모습은 자연히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알고 보니 이 여인은 원래 과학기술자였으나 1991년 경추 질환으로 큰 수술을 받은 후 2년이 지난 후에야 출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외출했다가 찬바람을 쐰 후 다시 병이 재발해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해 치료해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바로 이때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던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파룬궁을 소개했고 아울러 『중국 법륜공』이란 책을 추천해주었다.
또한 사부님께서 대련 기공협회의 초청을 받아 조만간 대련에서 학습반을 여신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책을 본 후 느낌이 아주 좋았고 일부 법리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에 미리 입장권을 구입해 학습반에 참가할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설법이 시작되기 전 사부님께서는 의자위에 앉은 수련생을 보고는 진행요원들과 대련 기공협회 관계자에게 알려 그녀를 퇴장시키고 표값을 환불해주게 하셨다. (주: 사부님께서 학습반을 꾸리신 2년 동안 후기 학습반에서는 모두 수련을 말씀하시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중병환자들은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수련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사부님의 이 말씀을 전해 듣고는 아주 조급해했다. 그녀의 남편이 무대에 올라와 사부님을 찾아 뵙고 자신들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고 하시자 남편은 “저희는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반달 전부터 당신의 책을 보기 시작했고 당신의 녹음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공을 배우러 온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이 말을 들으신 후 이 수련생은 그래도 오성(悟性)이 좋으니 그럼 가서 보시겠다고 하셨다. 사부님께서 그녀 앞에 오시자 그녀가 일어났다. 사부님께서는 그녀에게 앉아 있으라고 하신 후 그녀의 목 앞에서 손뼉을 두 번 치셨고 머리 위에서도 두 번 손뼉을 치셨다. 또 두 어깨를 청리하신 후에 일어나서 걸어보게 하셨다. 그녀가 무대 중간까지 걸어왔을 때 멈춰 서게 하신 후 두 다리를 정화해주셨다. 그 후 사부님께서 “좋아요, 한번 걸어보세요.”라고 하셨다.
그녀가 무대 앞을 두 바퀴 돌자 현장에 있던 수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이날 설법이 끝났을 때 그녀는 두 다리가 가벼워진 것을 느꼈고 스스로 강당을 걸어나가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강당을 들어오고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계단을 올라갈 수도 있었으며 더는 다른 사람에게 업혀 다니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진수자(眞修者)를 위해 신체를 정화시켜 주시며 펼쳐 보이신 기적이다.
3. 동료가 천병천장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을 보다
【 2004년 9월 7일】 1994년 4월 나는 한 동료가 심각한 혈액질환에 걸려 병원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그녀를 면회하러 갔다. 그녀는 눈 위, 신체피부 등 도처에 황갈색 반점이 나타났는데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뽑아낸 피가 마치 흙탕물처럼 황갈색을 띠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그녀의 혈액을 뽑아 화학치료를 거친 후 깨끗하게 만든 후 다시 수혈했는데 한번 할 때마다 약 1만여 위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이미 연속 3차례나 시술했지만 병원 문만 나서면 다시 병이 재발해 병원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기 때문에 그녀를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안색이 좋아졌다면서 물었다. “지금 몸이 좋아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나는 “파룬궁을 연마해요. 연마한 지 한 1년이 넘었고 지난 1년여 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연공하는 첫날부터 약을 다 버렸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렇게 좋은 공법이 있다니 나도 가르쳐줘요!” “퇴원하면 가르쳐 드릴께요.”
며칠 후 그녀는 정말로 퇴원했고 우리 집을 찾아와 나더러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연공동작을 가르쳐주었고 또 『중국 법륜공』책을 주었다. 그녀는 오성이 좋았기 때문에 단번에 모든 것을 믿었고 1994년 4월부터 지금까지 더는 병이 재발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좋아졌다. 피부도 정상으로 변했다.
1994년 연말 나는 그녀와 함께 광주(廣州)시에서 열리는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 광주로 가는 기차에서 그녀는 사부님의 法身을 뵈었고 또 천병천장(天兵天將)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가 광주에 갈 때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로웠다. 그러나 밖은 아주 혼란했는데 각 왕조(王朝)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말하자면 좀 이상하겠지만 광주에서 설법을 듣던 8일 동안 매일 비가 내렸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러 오가는 중에는 비가 멈췄고 강당에 들어가거나 집에 도착하면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우리는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았다.
4. 내 눈으로 직접 뵌 사부님
【 2004년 8월 31일】 1993년 봄 사부님께서 무한(武漢)에서 법을 전하셨는데 당시 장관급 과학연구단위의 강당에서 학습반이 열렸다. 무한에서는 첫 번째 학습반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알리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북경에서 온 제자들을 데리고 3일 동안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다. 3일 동안 병을 보러 온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특히 3일째 되는 날에는 병을 보러온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한밤중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떠나려하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있었는데 특히 오랫동안 각종 치료를 했음에도 고치지 못했던 난치병 환자들이 많았다. 사부님의 치료를 거친 후 현장에서 기적처럼 좋아졌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알게 되었다.
이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한 가지 실화가 있다. 한 노파가 있었는데 병으로 몸이 마비되어 5-6년간 침대에 누워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다. 이번에 기공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는 남편과 며느리 두 사람의 부축을 받고 왔다. 그녀가 사부님 앞에 와서 의자에 의지해 섰는데 선 자세가 구부정했다. 사부님께서는 단지 그녀를 보기만 하셨고 손을 대지도 않으셨다. 잠시 후 사부님께서는 그녀에게 똑바로 서보라고 하셨다.
그녀는 처음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사부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시자 곧 몸을 똑바로 폈다. 사부님께서 앞으로 걸어보라고 하시자 그녀는 잠시 주=했으나 모두들 격려해주자 마침내 한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뒤이어 자신 있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중에 그녀는 혼자 걸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얼마 후 내가 강당 밖에 가보니 그녀가 혼자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왜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웬일인지 모르겠네요. 늘 걷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오늘 집에 돌아가서 한번 시험 삼아 걸어봤어요. 걷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지난 수년 동안 이렇게 걸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신통해요.”
또 한 가지 사건은 내가 평생 잊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학습반은 1기에 열흘이었고 사부님께서는 매일 1시간 30분 이상 설법하신 후에 다시 연공동작을 가르치셨다.
학습반이 시작된 첫날 약 40대 가량의 비쩍 마른 남자가 학습반 수강증도 없이 막무가내로 들어가고자 했다. 진행요원이 출입을 저지하면서 수강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으나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도리어 큰 소란을 피우면서 “나는 그(사부님을 지칭)와 도술을 부려 싸우러 온 것이다. 우리 사부님은 100살이 넘으셨지만 그는 이렇게 젊지 않은가?” 그러면서 또 듣기 싫은 많은 말들을 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이 일을 아시고는 진행요원에게 그를 들어오게 하셨다. 사부님께서 설법을 끝내신 후 그는 아주 안정된 상태로 떠났다. 특히 진행요원을 찾아가 “더는 시끄럽게 굴지 않겠소.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사부님이오.”하고 말했다.
나는 매번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던 그 즐거운 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속에 늘 사부님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격을 느낀다. 자신이 직접 겪은 한 건 한 건 기적과도 같은 사실들 속에서 나는 사부님의 위대하고 자비하신 구도를 깊이 느낄 수 있으며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신념이 더욱 견정해진다.
5. 이 분은 신선이 아니신가?
【2005년 9월 1일】 1993년 사부님께서 치치하얼에서 법을 전하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수련생들과 함께 계시는데 한 할머니가 등에 두세 살 가량의 아이를 업은 모습이 보였다.
사부님께서 “이 아이는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할머니는 “마비가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그 아이를 내려놓으세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아이가 마비되었다고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다시 아이를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자 할머니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사부님께서 아이를 두 번 정도 흔들자 아이는 곧 똑바로 설 수 있었다. 모두들 둘러싸고 이 광경을 보고는 “일어섰다! 일어섰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격동되어 “이분은 신선이 아니신가! 그분께 감사드려야 겠다.”라고 하면서 머리를 돌려 감사 인사를 하려고 보니 사부님께서는 이미 그곳을 떠나셨다.
6. 사부님께서 내 딸의 전세(前世)의 道家 사부를 구해주셨다 .
이 사건에 관한 글을 이미 어떤 동수가 명혜망에 올렸다. 하지만 층차가 같지 않기 때문에 보아낸 정경도 같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본 정경을 써내어 동수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려 한다.
92년 11월 콴현에서의 사부님의 전공 설법이 끝난 후, 23일 사부님은 북경으로 돌아가시려 하였다. 22일 저녁 나와 딸은 사부님 계시는 곳으로 가서 사부님을 배웅하려 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수련생들이 많이 가있었다. 사부님은 나의 딸에게 사과를 씻어서 여러 사람이 먹게 하였다. 나의 딸은 시키는대로만 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그가 철이 들지 못했다고 말하자 딸이 갑자기 울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인 나의 선생님이 아니예요. 나의 선생님은 빙산 밑에 깔려 있어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내가 18살 때 깔렸는데 18년이 됐어요." 나는 그 아이의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듣고 정신에 이상이 생겼나보다 하고 생각 했다.
이튿날 사부님을 배웅하여 요성에 이르렀을 때 사부님은 왜 따님을 데리고 놀러 안 가는가 하고 물으셨다. 나는 어제 저녁 일을 사부님께 여쭈었다. 듣고 나시더니 사부님이 말씀하셨다. "왜 일찍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일찍 말했더라면 제가 진작 해결해 주었을텐데요." 차가 핑인대교에 이르자 길이 많이 막혔다. 사부님은 차에서 내리시자 동쪽을 향해 한 동작을 하시고 나서 돌아와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당신 따님은 도가(道家)의 사람입니다. 그의 사부는 빙산 밑에 있는것이 아니라 냉궁 안에 있습니다. 제가 그를 구했으니 오늘의 일을 당신께서는 돌아가셔서 그녀에게 말해 보십시오.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이때는 이미 점심 12시가 되었을 때였다.
차에 오른 후 나는 눈을 감고 가부좌하였다. 이때 나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고동색 도포를 입은, 온 몸에 흑백 음양 어(?)도형이고 서쪽을 향해 가부좌 하고 앉아 있으며, 어깨에 먼지털이채를 걸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연공을 마치고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영암사의 고인(高人)이 저를 맞으러 왔습니다. 저는 차에 앉은 사람이 제가 가부좌 중에서 본 사람과 모양이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사부님은 말씀하시기를, "그건 영암사가 아닙니다. 당신이 본 것은 당신 따님의 사부님이고 그가 입은 것은 道家의 도포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딸에게 물었다. "내가 지난에 간 날 점심 때 너에게 무슨 감각이 있더냐?" 이에 딸이 말했다. 12시에 밥을 지어 놓고 빨래가 말랐기에 난 마음이 아주 기뻤어요. 저에겐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기에 전 정말 행운스러워요." 나는 그 아이가 기뻐하는 원인을 알고 있다. 우리의 사부님이 딸이 내려오기 전의 사부님을 냉궁에서 구원해 주셨기에 그애가 이토록 기뻐하는 것이다.
이상은 내가 대법수련에 들어간 후의 또 하나의 사소한 일이며, 내가 몸소 겪었고 직접 본 사실이다. 바로 이렇듯 신기한 일들이 내 신변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나는 더욱 확고하게 사부님과 법을 믿을 수 있었고, 수련의 마음이 종래로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일을 써내어, 나는 아직도 정법 진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동수들께서 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고 어서 빨리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정법 진행을 따라잡고 사부님을 따라 원만하여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11. 사부님 신변에서 직접 본 신비한 일들
92년 11월 12일 사부님께서 산둥 콴현에 오셔서 학습반을 꾸리셨다. 나에게 제일 잊을 수 없는 날은 처음으로 사부님 얼굴을 뵙게 된 날이다. 그날 저녁 식사 후 현 호텔에 가서 사부님을 만났다. 사부님은 내가 天目이 열려서 수련하고 있다면서 나에게 물건이 보이는가라고 물으시기에 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때 사부님은 나의 천목을 향하여 功을 내 보내셨다. 잠시 후에 "보입니까?" 하고 물으시기에 나는 "보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사부님이 물으셨다. "처음에는 흰 구름 같은 것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더니 후에는 뚱뚱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실은 부처의 형상이었는데 당시 몰랐다)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보살을 청해 왔습니다."
이때 하얀 옷을 입은 보살이 날아오면서 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전 듣지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한참 후에 또 물으셨다. 연속 연달아 몇 번을 물으셨으나 당시 나는 悟性이 낮아 시종 "듣지 못했습니다." 라는 말만 하였다.
마지막에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무슨 요구가 있으면 보살에게 말해보세요." 나는 그때 깨우치지 못하고 곧바로 말했다. "우리 집이 평안 무사하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命은 각자 따로 있습니다."
법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 사부님은 먼저 사흘 동안 병 치료를 하여 매우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여 주셨다. 7일 학습반에 150명의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이때로부터 수련자 중에서 무수한 신비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우리가 현장에서 연공 비디오를 켰을 때 숫한 법륜들이 솟아나왔는데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보았으며, 대법의 신비로움을 견증하였다.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설법은 이 자그마한 곳에서 실증을 얻었으며 많고 많은 신비한 일들이 나타났다.
대법수련에 참가한 사람도 아주 많아 마을마다 수련생이 있게 되었고 보도소가 20~30개씩 세워졌다. 많고 많은 신기한 일의 존재와 대법을 배운 기초,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대법제자 그 누구도 동요시킬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장쩌민이 대법을 박해한 후 콴현을 "중점재해구역"이라고 일컬었다.
92년 현 호텔에서는 손님들에게 식권을 발급하였는데 한 끼 식사에 표 한 장씩 주었다. 하루아침, 우리는 사부님과 거리에서 함께 거닐고 있는데 한 수련생이 계란 세 개를 사서 사부님께 드렸더니 사부님은 자애롭고 인자하게 말씀하셨다. "우린 이미 식비를 냈고 매 한 끼마다 표 한 장씩을 주는데 먹지 않으면 표도 되돌려 주지 않습니다. 이건 낭비가 아닙니까?"
이 수련생은 또 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사부님께서 입으신 니트는 구멍이 이렇게 크게 났는데도 새 걸로 사지 않았습니다. 콴현에 온 그날 사부님과 사업 인원들에게 배당된 방은 매일 주숙비 40원을 내야 했는데 사부님께서는 하루만 주숙하시고 12원씩 하는 보통방으로 옮기셨습니다."
11월 23일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은 베이징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기차역으로 사부님을 배웅하러 가는 도중 청칭불묘를 지나게 되어 우리 일행 6명은 그 곳을 참관하기로 하였다. 산으로 올라갈 때 40여세 돼 보이는 부인이 음료수, 생수를 들고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11월의 날씨는 오후 4시가 되자 추워지기 시작하여 산 위에는 이미 사람이라곤 볼 수 없었다.
나와 사부님은 맨 뒤에서 걸어가면서 수련에 대한 일들을 얘기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미신"이라 할 것 같아 그 음료수를 들고 오는 부인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가 말하였다. "날이 곧 어두워지겠는데 우린 당신의 물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산 위에도 물을 사먹을 사람이 없는데 우리를 따라 오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해도 그 부인은 돌아가지 않았다. 길에서 사부님은 그녀의 물 두병을 마셨고 산꼭대기까지 함께 갔다. 우리가 산을 내려올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졌고 그 부인은 물 흐르는 골짜기 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산 뒤에는 길도 마을도 없는데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산허리까지 왔을 때 산꼭대기로부터 60여살 돼 보이는 노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줄로 알았는데 우리와 10여 미터 떨어져 있을 때 갑자기 돌아서서 또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걸으면 그도 걷고 우리가 사진을 찍느라고 멈춰서면 그도 멈춰서면서 우리를 끝까지 절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이 절은 바로 10여 미터 되는 돌 부처였는데 한 칸 방으로서 사람이 살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자 사부님은 우리 매 사람마다 돌부처에게 향을 피우라고 하셨고, 사부님은 돌부처 곁에 서서 사진 한 장을 찍으신 후 곧바로 산을 내려왔다. 이 노인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는데 어디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절을 나설 때,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물으셨다.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만 합니까?" 나는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다. 사부님은 "그 물을 지닌 사람은 토지(土地)입니다."라고 말씀 하시기에 나는 "토지 나으리(土地?) 이십니까?" 하고 물었고 사부님은 "우리는 그를 나으리라 부르지 않고 바로 토지(土地)라고 부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산신(山神)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때에야 나는 한 사람은 사부님 시중을 들고 한 사람은 사부님을 맞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6명 중,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 나는 발에 군살이 있어 길 걷기가 아주 힘들었다. 산을 내려올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웠고 자갈이 가득 깔린 산길을 나는 가장 빨리 걸어갔다. 자갈이 널린 산길은 마치 해면처럼 푹신푹신하였다. 이때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모르시죠? 우린 구름을 타고 왔습니다!"
12. 사부님께서 북경에서 공을 전하실 때의 신기한 일
한번은 내가 사부님을 모시고 학습반에 갈 때였다. 학습반이 비교적 먼 곳에 있었기에 제때에 도착하기 위해 나는 사부님과 함께 앞당겨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시내 중심에 이르렀을 때 차가 막혔다. 번화한 거리에서 차가 막히면 그야말로 번거롭기 그지없다. 특히나 북경에는 각종 승용차가 유난히 많아서 차가 막힐 때면 몇 분 만에 매우 긴 거리에 차량이 길게 늘어서 단번에 교통이 막힌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정말로 조급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조급해 하는 모양을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살펴보십시오.” 나는 곧장 차에서 내려 큰 길에 나가 바라보았다. 아이고! 앞뒤로 차가 꽉 막힌 것이 족히 수백 미터는 되는 것 같았고 얼마나 기다려야 교통이 소통될지 알 수 없었다. 보아하니 학습반까지 제시간에 가기는 다 틀렸다. 나는 급히 차를 세워둔 곳으로 뛰어가 사부님께 보고 드렸다. 아직 차에 오르지도 못하고 단지 한쪽 발만 차 위에 놓고 한쪽 발은 차 아래에 놓은 채 사부님께 보고 드렸다.
“사부님, 잠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주 꽉 막혔는데요.” 이때 사부님께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셨다. “올라오시오! 올라오시오!” 나는 사부님의 목소리에 따라 바라보았다. 누가 알았으랴? 바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이미 차와 함께 학습반 입구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마침 2층 학습반 밖 베란다에 서신 채 내게 미소를 보내시면서 올라와서 학습반에 참가하라는 암시를 주셨다! 마술을 부려도 이렇게 빠를 수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 ‘무술기공’의 한 단락에서 말씀하신 법리가 생각났다. “어떤 사람은 가히 높은 데서 오가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다른 공간에 둔갑해 들어갈 수 있다.” 원래 사부님께서 나를 차와 함께 운반해 오셨던 것이다! 그때 나는 온 몸에 따스한 기류가 흐르는 감각을 느끼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우리 사부님, 우리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일을 말하자면 그야말로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내 눈으로 직접 보았고 내가 직접 겪은 일이기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문장발표 : 2009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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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깨달음의 길 원문보기 글쓴이: 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