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비에서 정치의 시대 시리즈로 4권의 책을 냈다.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다. 성인 기준으로 3~4시간이면 한 권 독파가 가능할 정도로 내용 전개가 쉽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들도 기초 지식이 없더라도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한홍구, 최강욱, 은수미, 진중권 저자들이 자신의 전공 파트인 현대사, 법, 노동, 정치에 관하여 독자들에게 강연하듯 기술되어 있다. 2016-2017 촛불 시민혁명을 떠올리며 복기하듯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저자 최강욱님은 변호사이자 방송심의위원이기도 하며 법 관련 강연자로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이번에도 '법은 과연 정치를 심판할 수 있느냐?'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다가왔다. 시원스럽게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결론을 단정지어 말한다. 절대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고.
"주권자가 법을 심판한다!"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저자는 대한민국 사법부와 검찰 조직을 파헤치며 괴물과도 같은 조직으로 변하여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현재와 같은 조직체로는 절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정치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깨어있는 주권자, 시민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미 대한민국 법 조직은 서열이 명확하여 독자적인 사법기관이라고 하는 검사 조차도 정의롭게 사건을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윗선의 눈치를 봐야 하고 앞으로 더 나은 자리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사건을 처리해야하기 때문이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대법관들이 행정부의 장관급 자리로 이동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가진 대법관들이 행정부의 감사원장, 국민권익위원장, 국무총리까지 자리를 넘나들며 옮겨다니니 과연 누가 정의의 잣대로 법을 집행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법조계에서는 자랑스런 법조인 선배로 기억하고 있는 분이 있다. 조영래 변호사다. 그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법조계에 몸을 담기 시작했을 때 했던 말들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내가 지키려고 하는 첫 번째는 피의자 또는 참고인 가족들에게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어떤 경우에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135)
검찰이 괴물이 된 과정을 저자는 제헌의회에서 찾고 있다. 다음과 같다.
"제헌의회에서 헌법을 논의하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 대다수가 경찰한테 권한을 주면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제헌헌법을 만들던 분들이 대개 독립운동을 했는데,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경찰에 의해 큰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경찰한테 권한을 주면, 경찰은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으러 할 거라 여겼습니다. 그에 배해 검사는 그래도 더 배웠고 고시도 통과했으니까 그들에게 권한을 줘서 경찰이 고문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나쁜 짓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검찰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51)
독일이 선진적인 검찰 조직을 운영하는 것에는 과거의 적폐 청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치가 패망하고 나서 독일은 판사들을 모두 잡아들여 처벌을 했습니다. 그들의 죄목은 법이라는 도구를 내세워서 국민을 탄압하는 선봉에 섰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판사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97)
이제 우리는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스스로 생각하며 건전한 토론을 하는 시민을 키워내야 한다. 생각하지 못하는 죄는 사회를 타락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