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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65강 – 3 – c
법화경에 보면 부루나존자가 어떻습니까?
법화경 500제자 수기품에 보면, 500제자라 해놓고 500제자한테 수기를
주는 것이 아니고, 대표자 누구 줍니까?
부루나존자에게 줍니다. 부루나! “수기” 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법을
전해 받아서 미래에 부처가 된다는 것이 잖아요?
부루나존자한테 주는 이유는 뭡니까?
부루나존자가 스루나국에 가면서,
“인연이 있어서 거기 가야겠습니다.” 했더니,
“거기 사람들 되게 못됐고 악독한데, 니 거기가서,
니말 안 들을 텐데,”
“뭐, 말 안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침이나 안 뱉으면 되죠.”
“하~~이고 침 뱉으면 니 우짤래?”
부처님이 그러시니까,
“침 뭐 닦으면 되지요.”
“뺨 때리면 어떻할래?”
“맞으면 되지요.”
“하~~이고 욕하면 우짤래?”
“욕들으면 되지요.”
“그러다가 몽둥이로 때리면 어떻할래?”
“하~~이고 불법 전하다가 몇 대 맞으면 어떻습니까?
맞을 랍니다.”
법화경에 의도적으로 부루나존자를 딱 앞에 500제자 수기품에 세워놨
지요. 500이라고, 500제자가 아니고 50000모든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녹야원에서 최초 설법 들었던 교진여가 수기를 받잖아
요. 그렇지요?
“그러다가 칼에 찔리면 우짤래?”
“아~~이고 좀, 찔려 주지요.
법을 전하다가 찔리는 것 예사지요.” ←이 대목도 제가 보니까
화엄경이 법화경하고 똑같습니다.
부루나는 성문제자가 아닌 보살심을 가졌던 부처님의 10제자 더라고요.
“죽으면 어떻할래?”
“아~~이고 법을 좀 전하다가 죽으면 어때요?
죽으면 되지요.”
부루나존자는 용감하게 결국 죽었잖아요.
결국은 “不惜身命(불석신명)이라.”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법을 전하다가 장렬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한 둘이 아니지요?
“或以刀杖瓦石(혹이도장와석)으로,
而加損害(이가손해)라도 終不以此境界로
捨菩薩心어라.” ←이 대목을 읽으면, 막 써놓은 것 같아도, 아이고 실화
입니다. 막대기로 때리고 막 욕하고 이런 것 있잖아요?
부루나존자가 그렇게 비참하게, 사람 취급도 못 받고 불법을 전하다가
두두려 맞잖아요.
그래서 그 뒤에 보면 또 교진여가 등장해서 합니다.
‘왜? 부루나존자를 법화경할 때 이렇게 해놨을까?’ 제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부처님한테 수기를 받고...
저희들 같으면 강맥 전강을 받고, ←이렇게 하잖아요?
그것은 사람이 잘나고 그래서 받는 것이 아니고, ‘법을 전하라.’고 하는
메세지지요. 앞으로 나아가야 될 사명감 있잖아요.
사명의 횃불을 우리에게 쥐어준 겁니다.
사람이 깨달아서 수기 받는 ←이것은 두 번째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전하기 위해서 부루나존자
를 대동시키고, 교진여를 대동시키고, 녹양5비구. 이르자면 이렇습니다.
부루나존자가 다음 생에, 92억 겁 뒤에 성불한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억수로 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래가 됩니다. 여래가 되면 불명이 뭐겠습니까?
설법을 잘 했습니다. “법명여래!” 그렇지요. 정확하게 잘 아시네요.
“법명여래!” ‘설법을 잘해서 분명하게 알았다.’
법명여래가 부루나존자에게 나중에 주어진 불명입니다.
교진여가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부처님의 제자를 대표해서 다음에 수기
를 받고, 후대에 부처님이 된다고 수기를 받잖아요. 그렇지요?
교진여 외에 모든 제자들은 나중에 받으면 불명이 뭡니까?
가섭이 받든지ㆍ사리불이 받든지ㆍ누가 받든지ㆍ어떤 사람이 받든지ㆍ
여기 우리가 받아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회장 스님이 받든지 우리는 전부 법명이 넓을 普자 “보명”입니다.
우리가 보광명전에서 보편타당한 그런 법명을, 동일불성이라는 겁니다.
법화경에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대목을 가만히 읽다 보면 ‘야~~ 우리는 전부 수기를 받은 사람이고,
우리가 전부 법명은 동명동호 아미타불이고,’
우리가 전부 법명은 보명 여래고요. 우리는 보명 여래입니다.
시간에 관계되지 않고 공간에 관계되지 않고 신분에 관계되지 않고 싹 다
보명 여래고, 싹 다 아미타불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렇게 보니까 하~~~!!!!!!
‘우리는 다행히 원력을 가진 종장을 스승으로 모신 것이 참 다행스럽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요. 그리고 우리가 또...
독불장군처럼 스님 혼자 하실수 있나요? 여러분과 같이, 그렇지요?
부처님도 마찬가지지요. 우리 빼버리면 당신도 힘 못쓰시잖아요.
자~~ 그 다음 보세요.
但忍辱하고 柔和(단인욕유화)하고,
화엄행자는 다만 참고 부드럽게, 스님으로 살 때는
“보들 스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깨치면 “보명 여래” 아~~~이고 참...
專修佛法(전수불법)이라. 오로지 불법을 닦으며,
住最勝道하야, 가장 좋은 도에 머물러서
入離生位하나니, 생멸법을 다 떠나버린 그 자리에,
불생불멸의 자리에 들어간다. 심체에, 체에 들어가서 “불생불멸이라”
하지요. 다른 말로는 “離生이라.” 그러고요.
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규봉 종밀대사가 대총산 같은데 판단하면서 “이념인”이라고 하는 과정
이 있습니다. 잡념이 있고, 잡념의 뗏구정물이 떨어지면, 생각이 엔간히
꺾어지면, 생각으로 분리되면 “이념”이라 합니다.
이념 다음 단계는 “무념”이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離生” 다음에 올라간다면, “無生”이 되겠습니다. 무생.
분리한다는 것은 아직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이고, 완전히 분리돼 버리면,
無生이지요. 그래서 기신론 같은데는
“마음의 본체는 불생불멸”
반야심경에는 더 구체적으로
“不垢不淨 不增不減(불구부정부증불감)” ←이것은 마음의 心體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심체.
작용은 어떻게 하느냐? 작용은?
“그런 고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 ←이렇게 얘기하지요.
그런 고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
是爲第二印이요. 이것이 두 번째 인이니라.
그 다음에
3. 菩薩摩訶薩이
聞說與一切智相應甚深佛法하고,
聞 = 듣는다. 일체 지혜와 서로 상응하는 매우 깊은 부처님의 법을
듣고는, 어떻게 합니까?
能以自智로, 능히 스스로의 지혜로,
우리가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수보살이 나중에 선재가 힘이
다... 올라와서 미륵보살 만나고, 선재동자가 더 이상 선지식 안 만나도
지혼자 공부가 다 끝나 자립이 됐잖아요. 그렇지요? 그때,
어떻게 합니까? 문수보살이 선재동자를 자기가 머물던,
문수보살이 머물던 그 자리에 “自所住處하야” 자소주처라고 나오잖아
요. 그러니까 화엄경 같은 것은 굉장히 치밀하게 완전한 깨달음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수보살이 “自所住處라.”
당신이 머물던 그 자리에 선재를 놔두고, 還攝不現(환섭불현)이라.
還攝不現 = 거두어 가지고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문수보살이 어디 가버리고 안 계시니까,
선재동자는 ‘야~~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야 되는데, 둘레둘레 살피니까
“시방 법계의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들을 다 친견 할 수 있었다.”
하잖아요. 그렇지요? ↑이런 대목도 나오고 6000비구도 어떻습니까?
6000비구.
선주 누각에서 시험 떨어져서 재수하면서 문수보살을 따라나섰던
비구들 있잖아요? 문수보살한테 끌려가서 저~~쯤 가다가 용들 법문 듣기
전에 법문 듣고 해탈하는데요. 그때 구절이 어떻습니까?
“不離文殊師利足下(불리문수사리족하)하고,”
문수사리보살의 足下 = 발밑을 不離 = 떠나지 아니하고,
“시방 일체 제불을 다 친견하고,
승사 공양하고 다 견성오도해 버렸다.”
6000비구가 ↑이렇게 나오지요.
지남도 같은데는
“象王回處에 落花紅(상왕회처낙화홍)이라.
문수보살 돌아보는 그 자리에 꽃이 붉게 지더라.”
이렇게 불국선사가 멋지게 시를 지어 놓은 것이 있지요.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능히 스스로의 지혜로 深信忍可라.
제발 스스로 자기를 믿어라. 깊이 믿고 분명히 알아서
解了趣入하나니, 이해하고 나아가 들어가나니,
해료취입 ←이 대목은 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마지막 문수보살을 만나
는 자리에서 “해료취입” ←이런 것을 치밀하게 해놓습니다.
“이해하고 나아가 들어가나니”
그러니까 “근본지다ㆍ후덕지다.” 이런 것을 설명하면서 해놓습니다.
이것을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시간이 끝도 없으니까...
是爲第三印이요. 이것이 세 번째 인이니라.
네 번째.
네 번째는 결정적으로 성불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얘기를 합니다.
4.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또한 이런 생각을 짓되,
我發深心하야, 내가 깊은 심오한 마음을 내어서
求一切智하며, 일체지 = 부처님과 같은 근본 지혜를 구해서,
我當成佛이라. 내 마땅히 성불해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아뇩다라3먁3보리를 증득할 것이며,
一切衆生이
流轉五趣하야, 다섯 길로 윤회를 돌고 돌면서
受無量苦라.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을
亦當令其發菩提心하야, 그들로 하여금 마땅히 보리심을 내게 해서
深信歡喜라. 깊이 믿고 기뻐하게 해서,
勤修精進하야 堅固不退라하나니,
부지런히 정진하게 해서 견고해서 물러나지 않도록,
견고불퇴하게 하리라 하니
是爲第四印이요. 이것이 네 번째 인이다.
다섯 번째.
‘결정적으로 부처님의 지혜는 광대무변한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지요.
5. 菩薩摩訶薩이
知 = 안다. 무엇을요? 如來智가 無有邊際라.
여래의 지혜가, 부처님의 지혜가 가이없음을 알고,
不以齊限(불이제한)으로 測如來智(측여래지)니,
제한된 마음으로는ㆍ안목으로는 측여래지가 不以라. 측량할 수 없다.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 無能盡說佛功德
(천상천하무여불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무능진설불공덕)이라”
菩薩이
曾於無量佛所에, 일찍이 무량한 부처님 처소에서
聞如來智가 無有邊際라.
여래의 지혜가 무량무변함을 듣고는, 변제가 없음을 듣고는,
故能不以齊限測度이며,
그러므로 능히 不以. 제한된 마음으로써 측량하지 않으며,
一切世間文字所說은,
일체 세상에 있는 글자와 문자로써 하는 말은,
皆有齊限이라. 실컷 써봐라. 한문에 화엄경 담기겠나?
한글에 담기겠나? 영어에 담기겠나? 그렇지요?
‘화엄경은 글로 실을 수 없다.’ 이러는 겁니다.
悉不能知如來智慧하나니, 여래의 지혜를 알지 못함이니,
是爲第五印이요. 이것이 다섯 번째 인이다.
‘궁여지책으로 번역도 보고ㆍ한문도 보고 하지만, 그것은 화엄경이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6. 菩薩摩訶薩이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得最勝欲과, 여기서 의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의욕. 부처님 결과물에 대한ㆍ깨달음에 대한 것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 아뇩다라3먁3보리에 대해서 가장 最勝欲과ㆍ甚深欲과ㆍ廣欲과ㆍ
아주 커다란 大欲과 = 큰의욕과ㆍ種種欲과, 가지가지의 의욕과
無能勝欲과, 이길 이 없는 의욕과
無上欲과, 위없는 의욕과
堅固欲과, 견고한 의욕과
衆魔外道(중마외도)와 幷其眷屬(병기권속)이
無能壞欲(무능괴욕)이라. 여러 마구니와 외도와 권속들이 파괴할 수
없는 희망ㆍ의지ㆍ욕망 ←이것으로써,
求一切智不退轉欲이라.
온갖 지혜를 구하여 물러가지 않는 의욕을 얻었으며,
菩薩이 住如是等欲일새. 보살이 이와 같은 등의 의욕에 머물러서 하고자
하는 힘. 아주 강력한 발원욕ㆍ원력을 가지고,
於無上菩提에 畢竟不退하나니 是爲第六印이요
위없는 보리에 끝까지 물러나지 않나니 이것이 여섯 번째 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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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습니다♬♪♩ 환희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수성찬입니다♬♪♩ 감미롭습니다♬♪♩ 꿀맛입니다♬♪♩
대♩ 방♩ 광♩ 불♩ 화♩~~ 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