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베스트셀러는 공공도서관에서 여러 권을 구매하여 소장한다. 도서관에서 여러 권 구매했다 해도 베스트셀러는 늘 대출중이고, 예약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수요가 높다보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이들은 서점으로 향할 것이다. 온라인 서점마다 다른 책들과 몇십배 차이가 나는 판매 지수를 보며 얼른 읽고 싶은 마음과 함께 역시, 베스트셀러다, 혹은 역시 이 작가는 대단해~ 이런 말을 하게 되겠지.
그런데, 최근 출간된 베스트셀러인 책과 관련하여 커뮤에서 이상한 글을 보았다. 어떤 도서관에서 그 책이 구매 거절당했다는 내용이다. 도서관마다 일정한 예산을 마련해두고 예산이 소진되기 전까지 매달 이용자들이 신청한 도서를 구매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아마도 이러한 서비스에서 신청 거절된 듯한데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은 대체로 기술서나 학습서, 절판된 책, 출판된 지 5년 이전 도서는 구매되지 않는다고 공지하고 있다. 다른 도서관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 그래서 구매 거절 사유를 보자.
“중립성 확보가 필요한 공공도서관 장서로 신청이 불가”
공공도서관이 중립성 확보가 필요한가? 중립이란 뭐지? 중립의 기준은 뭐지? 그나마 좀 화를 삭여 보려고 이런 물음이라도 떠올린 것일 뿐, 이 글을 보자마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고 올라왔다.
이 나라의 운명이 어쩌다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지, 내게 복종하지 않으면, 나를 받들지 않으면, 배척하고 배제한다. 무리지어 그렇게 하기도 하고, 직급을 들먹이거나 등에 업고 그렇게 하기도 한다. 내가 너희들보다 직급이 높잖아? 복종, 어디서 그따위 예의를 가지고 있지, 알아서 기어, 알아서 받들어… 귄위의식에 찌든, 직급이 높으면 타인에 대한 지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에게, 사람을 ‘급’과 ‘종’(여기서 종은 직군)으로 나누는 이는 생각보다 많다 혹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 사실. 정말이지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이러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아무튼, 책으로 돌아와 ‘중립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로 읽힐 수도 있는 이 사태를 전해 듣는다면 유시민 작가는 뭐라고 말할까.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속 “윤석열과 국힘당에 불리한 사실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보도하는” 국내 언론과 같은 기관, 단체가 이토록 수두룩하다는 사실, 우습게도 무엇이 편파이고 중립인지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들 인식조차 없는 것인가.
시간을 거슬러 올해 봄, 난리가 났던 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고 짜증이 나서 말을 하기가 싫었는데, 어떠한 말도 할 수 없고 뭐라 말할 수 없고, 이거 결국 같은 패턴이구나. 정말이지 너무 기가 찬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일일이 그 행동을 지적하고 싶지도 않고 입을 닫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늘, 급과 종에 집착하는 무리 중에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늘 타인 탓으로 잘못을 돌리며… 그런 인식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세상은 정말이지 XXXX.
또 이야기가 딴 데로 흘러간다. 얘기하고픈 사건은 이거다. 기사 제목으로 보자면 이렇다.
“거제시 공공도서관 일부 아동도서 ‘음란물 수준’…김선민 시의원 지적”
(https://v.daum.net/v/20240320052157273)
음란물이니 유해도서니 하며 자극적인 단어가 여러 책들을 규정하며 찍어 내린다. 성교육 유해 도서로 분류된 책들에는 성인들이 보기에도 불편한 내용이 가득하단다. 그건 과연 어떤 ‘성인’의 성에 대한 인식인가.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이들은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전 세계에서 성평등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사는 해보았을까?
페미니즘은 ‘불온’함을 담고 있는 사상이고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그렇기에 특정한 누군가의 ‘책’ 또한 유해도서가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책 <줄리의 그림자>는 왜 폐기되어야 하는 책으로 선정되었는지 선명하게 이야기해 줄리? 이런 식으로 수많은 책에 유해도서와 음란물 딱지를 붙인 의원과 기타 여타한 단체로 인해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보자.
“‘성교육 도서’는 ‘유해 도서’, 학교 도서관에서 없애라고요?”(https://v.daum.net/v/20240401170810207)
"성교육 도서 폐기 논란, 경남서 되풀이하면 안 돼"(https://v.daum.net/v/Hd89Juxp7w)
“학교에서 사라지는 성교육·페미니즘 도서... 왜?”(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2414290003351)
”'줄리의 그림자' 등 어린이 책 2528권, 학교는 왜 폐기했나“(https://v.daum.net/v/20240509070000449)
도서관으로부터 퇴출되었다. 그중 많은 책들이 우수도서이자 교사들이 추천한 추천도서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여러 상을 받은 책들 또한 많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가. 기사를 잘 보면 반가운 책 하나가 나온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 부부 가족 독서 운동가 김정은 작가가 번역한 소냐 르네 테일러의 <소녀들을 위한 내 몸 안내서>
이 책은 소녀들의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감정과 친구 관계 등을 8개 주제로 나눠 핵심을 소개하는 책으로 ”출간 직후, 사춘기가 시작되는 소녀들은 물론, 딸의 적나라한 물음에 쉽사리 대답해줄 수 없었던 부모, 교육관계자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2020년 책씨앗 최고의 책(청소년교양 부문)으로 선정되었다. 어린이, 사서, 교사, 독서 활동가 1만 4천 명이 후보 도서부터 최종 선정까지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전·현직 교사들이 3개월 이상 검토 후 만장일치로 추천하는 책만 선정하는 ‘책따세’, 국내 유일의 독서 문화 플랫폼 ‘책씨앗’이 추천도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책이고 좋은 책이라 외치고 도움을 받은 책이라 말하고 있음에도 ‘어떤 인식을 가진’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으로 어떤 ‘권위’있는 이의 지적질에 책이 있어야 할 자리인 도서관에서는 퇴출된 도서다. 왜? 도서에 사춘기 소녀의 몸, 삽화가 자세히 나오기 때문인가? 성교육 도서 중 이처럼 생식기가 그려진 책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성교육’을 하면서 기본 신체를 자세히 다루지 않고, 얘기가 될 수 있는 건가. 소년과 소녀 몸과 마음에 대한 안내서로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그러면 사춘기 소년의 몸에 관한 안내서도 유해도서로 지정되어야 하지 않나, 마음과 관련한 내용은 왜 유해도서로 선정되지 않는가.
2017년 OECD 조사에서 한국인의 한달 평균 독서량은 0.8권, 미국인은 6.6권이라는 기사에서 보듯이 한국인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SNS에서 감성 글귀가 많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처럼 그런 글귀만 뽑아 쓰는 형태의 독서만 진행되고 있다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문해력은 한없이 낮은 우리나라의 현실은 기계적 중립에 몰두한 언론 때문일까, 그나마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기계적 중립 또한 확보하지 못하는 이들 때문이려나.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유해’하다며 배제시키고 철퇴시키는 오랜 군사독재 문화의 영향 때문이려나.
유연하고 폭넓은 사고, 창의적인 사고를 부르짖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적 토대를 전혀 만들어가지 못하는 이 나라의 대안없음과 막무가내식 체계는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책 하나도 마음대로 편하게 읽을 수 없는 나라라니. 내가 쓴 글은 아니더라도 내가 번역한 책이 특정인과 특정 집단으로부터 ‘유해’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김정은(앨리스) 작가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물론 어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은 사람들마다 다르고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다르다. 인생책으로 꼽으며 삶의 굴곡마다 법전처럼, 길잡이처럼 보게 되는 책이 있고 딱히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책일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하고 객관적인 비판이 아니라 내 이익을 위해, 내 권위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그저 특정 상황으로 이용하기 위해 책에 딱지를 붙이는 건, 쉬이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으려나… 가끔 이런 무력과 패배적 사고가 나를 드리울 때마다 다짐하곤 한다. 좀더 열심히 반발해야지라고...
그래서 생각한다. 좀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내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출간되는 책의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이겨내 보고 내 인생책도 더 열심히 찾아보고 사고도 좀더 넓혀 보자고.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이렇다. 8월부터는 1권의 책에 대해 감상을 기록한 마음편지, <책과 함께>를 <책 VS 책>으로 바꾸어 비슷한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책들을 뽑아서 책소개와 더불어 특정 주제 중심으로 무해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