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살린 '노비첸코' 다리 ◈
1946년 평양역 광장에서 김일성이 3·1절 기념사를 하고 있는데
수류탄이 날아들었어요
소련군 경비병 야코프 노비첸코 소위가 몸을 날려
수류탄을 집어 던지는 순간 폭발했지요
노비첸코는 한쪽 팔과 눈을 잃었지만 김일성은 무사했어요
1984년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노비첸코를 평양으로 초청했고
최고 영웅 칭호를 주며 고마워했지요
이듬해 북·소는 노비첸코를 소재로 한 영화
‘영원한 전우’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노비첸코를 모르는 북한 주민은 없다고 하지요
해방 직후 38선 이북에는 3개 정치 세력이 있었어요
조만식 선생의 민족주의 계열,
현준혁이 이끈 국내파 공산주의 계열,
소련군이 밀던 김일성 계열 등이지요
해방군이라던 소련군은 약탈과 부녀자 겁탈을 일삼았어요
그러자 북한 내 반공 진영이 가만 있지 않았지요
그러나 1945년 9월 공산주의 대표 현준혁이 암살됐어요
반공 결사 조직인 ‘대동단’이 배후라는 연구가 많았지요
그해 11월 신의주 학생 수천 명이 반공·반소 시위를 벌였어요
그러자 소련군과 공산당은 총을 앞세워 학생 수십 명을 학살했지요
대동단 일부가 서울로 내려가 ‘백의사’를 조직했어요
백의사는 공산당 지도부 제거 작전으로
김일성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지요
평양 출신 청년들이 서울에서 수류탄과 기관총 등을 준비해
평양으로 잠입했다고 하지요
김일성 공격 직후 6·25 때 북한군 총사령관이던
최용건과 전선사령관 김책도 습격했지만 암살에는 실패했어요
김일성 친척 집을 공격해 가족과 경비원을 죽인 적도 있지요
김일성에게 수류탄을 던진 청년은 소련군에 붙잡혀
시베리아로 끌려가 처형됐다고 하지요
해방 정국에서 백의사는 평양뿐 아니라
서울의 정치인 암살에도 개입해 논란이 됐어요
김일성과 소련군은 암살 미수 사건을 반대파 제거의 명분으로 삼았지요
‘북한 혁명을 방해하는 반공·반소 세력을 청소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었어요
이미 연금 상태였던 조만식 선생의 민족주의 계열부터 숙청했지요
소련 군정과 김일성 집권을 견제하던 세력은 점점 사라졌고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은 남침 준비를 서둘렀어요
그런데 북한과 러시아가 두만강에 새 다리를 준공하며
‘야코프 노비첸코’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김일성을 살렸던 그 소련군 이름이지요
양측 총리가 화상으로 준공식에 참석해 노비첸코 다리를
북·러 동맹의 상징으로 떠받들었어요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노비첸코가 수류탄을 막지 않았다면
한반도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우리에겐 민족의 원흉(元兇)이 ‘노비첸코’이지요
6·25와 분단을 만든 유령이 아직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一松) *-
▲ ‘노비첸코’ 다리 개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