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653>손장난얼?
11. 강쇠의 전성시대 <33>
느닷없이 지게작대기로 후려패는 통에 말문이 틔여 속사정을 알게 된 사내였고, 유난히 사내를 밝히는 인월주모가 떠올라 무심코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권해본 것 뿐이었다.
강쇠 놈이 젊어 청춘, 어쩌고 흥얼거리며 느릿느릿 양반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사내가 이보게, 함꼐 가세, 하고 쫓아왔다.
강쇠 놈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사이에 사내가 무명바지저고릴 망정 깨끗한 걸로 갈아입고 숨이 턱에 닿게 달려오고 있었다.
“자네가 간직허소. 한냥 반이네.”
사내가 엽전꾸러미를 소매춤에서 꺼내어 건네 주었다.
“먼 돈이다요?”
“묵고 죽을래도 내 집에넌 그것 밖에 없네.”
“돈언 필요없당깨요.”
“내가 자네헌테 배운것도 많은디, 술꺼정 신세럴 져서야 되겄능가? 받아두소.”
사내가 기어코 강쇠 놈의 손에 엽전꾸러미를 쥐어 주었다.
그걸 사내에게 돌려주며 강쇠 놈이 말했다.
“아니구만요. 술과 밥언 어뜨케던 공짜로 묵게헐 것인깨요. 이것언 아자씨가 간직허씨요. 주모가 그럴 사람언 아니제만, 술값 밥 값얼 돌라고 허면 이놈이 내지요.”
“흐참, 보기보담 자네가 사람이 좋구만. 동네 사내덜이 자네럴 쎄려쥑인다고덜 허든디, 맞아죽어야헐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구만.”
“그리 생각해주시니 고맙구만요. 마누래의 감청소리가 커서 글제, 이놈이 어찌 동네사람덜헌테 폐럴 끼치겄소. 앞으로넌 방사럴 헐 때넌 마누래의 입부텀 막아야겄구만요.”
“그러소. 자네가 방사럴 허는지 어쩌는지, 동네 여펜네덜이 모른다면 남정네덜이 자네헌테 해꼬지헐 일도 없을거구만.”
“조심허제요.”
강쇠 놈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늘을 향해 흐 웃었다.
“헌디, 말이여. 살방애럴 찜서 천천히 찧는 방법도 있능가? 마누래가 숨이 꼴까닥 넘어갈 때꺼정 헐 수도 있능가?”
“하먼요. 사내가 허기 나름이지라.”
“나넌 그것이 안 되드란 말이시. 마누래의 살집에 살몽둥이를 넣자마자 싸뿌린당깨.”
“허면 손장난얼 한번허고 나서 아짐씨럴 안아보시씨요.”
“손장난얼?”
사내가 모르겠다는 낯빛을 지었다.
가루지기 <654>오널 실컷 묵어보십시다
11. 강쇠의 전성시대 <34>
“에이, 사람도 참. 아무리 이물어졌다고 해도 별 소리럴 다허능구만.”
“아니랑깨요. 이놈이 보기에 아짐씨가 바가지럴 긁는 것언 아자씨가 퇴?이처럼 빨리 방사를 했기 땜인디, 그런 아짐씨의 입얼 막는 방법언 시간얼 길게 끄는 수 백이 없당깨요. 용두질로 한번 방사럴 허고 나면 두번째넌 시간얼 끌 것이 아니요?”
“자네 말이 옳기넌 허네만, 그 아깐 것얼 손바닥에 싸부린단 말인가?”
사내가 입맛을 쩝 다셨다.
“안 그러면 살방애럴 찜서 엉뚱한 다른 생각얼 한번 해보씨요.”
“다른 생각얼?“
“근당깨요. 무거운 나무짐얼 지고 오르막얼 올라가는 생각얼 헌다든지, 찬물에 멱얼 감는 생각얼 허시든지요, 아니면 아부님이나 어무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해도 괜찮고요. 그런 생각덜얼 허다보면 살방애럴 오래오래 찔 수 있을 것이구만요.”
“허허, 자네넌 아는것도 참 많구만.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찌 그리 잘 안당가?”
“잡놈으로 떠돌다본깨, 저절로 알아집디다.”
“그런가? 암튼지 고맙구만. 자네 말대로 해서 마누래가 앙탈얼 안 부리면 내가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서 술 한 잔 대접함세.”
“고맙구만요. 동네 다른 남자분들헌테도 말씸 좀 잘 해주시씨요. 이놈이 쬐껴나지나 않그로요.”
“누가 자네럴 내쫓는단 말인가? 내가 나서서 말릴텐깨 당최 걱정허덜 말게.”
둘이 그런 얘기를 도란거리며 인월천을 건넜을 때는 해가 서산에 뉘엇뉘엇 넘어가고 있었다.
“딱 맞게 왔구만요. 나넌 해가 질녁에 술맛이 젤로 납디다.”
“해가 쨍쨍헌 대낮보담언 술맛이 나제.”
사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아자씨도 술 좋아허신갑소이?”
“좋아허제. 묵고 싶을때마동 못 묵어서 그렇제.”
“오널 실컷 묵어보십시다.”
“난 동상만 믿네.”
사내가 웃음 띤 얼굴로 돌아보았다. 사내의 동상이라는 말에 강쇠 놈이 동상, 동상, 하고 두어번 중얼거려 보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철들고 나서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형님이나 동생을 불러 본 일이 없었다. 혼자 떠돌며 잡놈으로 살아 온 강쇠 놈에게 육친의 이름을 불러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엇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잊고 살 때에는 몰랐는데, 사내의 입에서 동상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정말 사내가 친형님이라도 되는 듯이 정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