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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패배는 했으나 잠시 우리 국민 모두를 흥분과 감격에 물들게 해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기대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떠난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조마조마하게 하며 16강을 넘어 8강을 지나 4강까지 올라갔습니다. 와 - 이런 일이! 다시금 우리의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겠다 싶습니다. 지기는 했어도 신나는 주말입니다. 이리 치고 저리 받고 미친 듯 우왕좌왕하는 그들에게 양보해준 셈이지요. 월요일 마음 편하게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세계를 놀라게 만든 팀과 3,4위전입니다. 우리는 이미 할 만큼 했으니 다치는 일 없이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하도 짜증나게 하는 일만 생기는 것 같아 내 주먹을 날릴 수는 없어 다른 주먹으로라도 한 방 먹이고 싶은 심정으로 가지 않나 싶습니다. 정치판을 마약판으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그냥 있는 힘 다해서 한 방 쎄게 먹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 들여가며 뻔한 이야기지만 흠뻑 빠져보고 나옵니다. 그렇게 그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 뒤집어버릴 거야 하는 심정으로 말이지요. 안 그런가요? 아무튼 그 때까지는 이렇거든 저렇게든 굴러갈 것입니다. 이 놈이 먹든 저 놈이 먹든, 어차피 내가 먹을 건 아니니 도리가 없습니다. 칼자루 쥘 때까지는 참고 기다려야지요. ㅋㅋ
여름이 시작되었는데 아직은 그럴싸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살 만한 날씨 속에 좋은 주말입니다. 행복한 시간을 만들기 바랍니다. ^)^
2023년 6월 10일 김종우 목사 드림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무엘상 24 : 13)
<범죄도시 3>
농담(유머)을 제삼자가 들으면 잠시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다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그러자고 한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 놓인 당사자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심각합니다.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제삼자는 그 상황까지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적들이 노리는 물건을 가지고 그 적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소위 미끼가 되는 겁니다.
‘혼자요?’
‘응, 혼자.’
‘총을 쏘면 어쩌죠?’
‘피하면 돼.’
말이야 그렇지만 총을 피할 수 있습니까? 피식 웃으며 지나갑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의 입장을 말입니다. 힘이 없고 약점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맡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겠습니까? 말 그대로 부들부들 떨리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위기 속에서도 유머로 희석하여 용기를 북돋아줄 수도 있기는 합니다.
경찰은 민중의 몽둥이 아냐? 기막힌 재활용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민중의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나 몽둥이나 쓰기 나름이지 그게 그거 아냐? 하면 그만입니다. 조금은 해학적이면서도 실력과 능력이 있는 경찰, 우리 일반 시민들이 바라는 경찰입니다. 옛날 ‘수사반장’에서 만나던 수사관들 이야기도 있지만 요즘 많이 보던 비리경찰이나 힘없이 뒷수습이나 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실망한 적도 많습니다. 물론 근간 선행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는 경찰관들도 있습니다. 하도 쉽지 않아서 뉴스가 되고 알려지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히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본업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일들이 꾸준히 우리 곁을 맴도니 뉴스가 됩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사회의 안녕을 지켜야 하는 것이 경찰의 중요 임무입니다.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서 세운 제도이고 조직입니다. 세기가 바뀌고는 더욱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온 세대 사람들은 일제시대 ‘순사’ 또는 ‘순경’이나 군사독재 시대 ‘경찰’에 대한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이 있기에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계속 개선되고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들을 챙겨왔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대단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너무 약한 모습이나 엉뚱한 곳으로 삐져나가는 듯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민중의 지팡이냐, 권력의 지팡이냐 하는 의문을 갖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리경찰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레옹’입니다. 레옹만큼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스탠스’형사입니다. 마약쟁이에 마약업자, 그런데 형사반장입니다. 세상에! 이 미친놈이 살인을 장난한 듯 하며 애 어른 할 것 없이 마구 쏘아댑니다. 오로지 자기 것을 찾으려고. 이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는커녕 민중의 악독 중에서도 악독입니다. 그의 끝은 시원하기는 해도 영 맘이 시원하지를 않습니다. 순직이라고? 경찰로 현장에서 죽었으니 순직이랍니다. 이게 세상이지요. 미친 세상 말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 형사 ‘마석도’는 시민들에게는 아주 착하고 성실하지만 악당들에게는 그야말로 주먹이 먼저입니다. 아주 시원하게.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사건이 일어나도 당사자가 어떻게든 살아나오고 경찰은 그 뒤에 나타나서 뒷수습이나 하는 모습을 봅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짜증도 납니다. 아니면 사회 속에 치밀하게 조직된 체계로 인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을 찾아내기가 어렵게 됩니다. 유능하다고 자부하는 형사조차 여기저기 부딪치다 그만 주저앉고 맙니다. 그렇게도 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하기야 사회조직이 일단 형성이 되면 사람보다는 그 체계가 움직여나가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사건은 있는데 그 사건의 책임자를 지정하기 어려운 때가 생깁니다. 어쩌지요? 아니면 다 해먹고 나 몰라라, 배 째라는 식으로 나자빠집니다. 어쩌지요? 피해자는 있는데 보상할 길이 없게 됩니다. 황당한 세상입니다.
그런 답답한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야말로 선물입니다. 현실 속에서 정말 있거나 말거나 일단 마음이 시원하고 후련해집니다. 그러니 안 볼 수가 없습니다. 돈 만원 가지고 십만 원의 박카스 효과를 본다면 마다하겠습니까? 그 많은 외화들처럼 총질이나 하며 자동차 경주나 하는 볼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실제 몸으로 부딪치며 가격하는 맛이 있습니다. 한 주먹 맞고 핵주먹으로 날려버리는 쾌감이라는 것 말이지요. 3편까지 왔는데 처음과 달리 조금 국제적으로 발전합니다. 소위 범위를 확장하는 거죠. 그러나 공간으로는 국내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래도 재미가 어디 갑니까? 악당들은 사람보다 가지려는 물건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이번 이야기에 초점입니다. 영화 ‘범죄도시 3’(THE ROUNDUP : NO WAY OUT)을 보았습니다.
천국을 보고 싶으세요?
참 오래 전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 있었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보이는 듯한 꿈을 주었지요. 저자는 직접 천국을 보고 왔다고 하여 기행문처럼 책을 썼습니다. 읽는 우리는 마치 내가 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정말 신나는 여행이지요.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기분이 이럴까요? 그렇게 먼 우주를 여행하여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천국을 향합니다. 지구에서 아마도 수억 광년은 떨어진 곳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여행 자체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천국은 지구와 같은 별입니다. 지구보다는 엄청나게 큰 별이지요. 지구보다 더 살기 좋은 낙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하기는 그래야 천국이겠지요. 그곳에 예수님이 처소를 예비하고 우리를 불러서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모습과 그곳에서의 견학한 것을 기록하여 알려줍니다. 얼마나 그럴듯한지 우리 성도들이 성경보다 더 이 책에 심취했었습니다.
다시 오랜 후에 교계에서 이 책의 내용이 얼마나 허구에 찼는지 성도들에게 설명해주느라 애썼습니다. 더구나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저자 자신이 가짜 박사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그리고 정말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밝혀지고는 이 책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우리들의 이야기 거리에서도 멀어져 갔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오직 우리 대한민국 신자들을 목표로 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히트를 쳤다고 들었습니다. 정작 미국이나 기타 아무 나라에서도 팔린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보기를 원하고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하기야 우리 신자들의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 자체야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천국을 가장 잘 보여주고 설명하는 곳은 성경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래서 알고는 싶은데 성경은 어렵고 마침 보았다는 사람의 간증이 나왔으니 읽어보자 했을 것입니다. 결국 가짜라고 하니 좀 허무해지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여전히 천국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성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천국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천국을 사모하고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하늘 저 어딘가에 천국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가지만 우리의 영은 놀라운 속도로 그곳을 향할 것입니다. 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별들 중 어딘가에 이 지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아름답고 쾌적한 천국이 건설되어 있으리라 하는 소망을 품고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우리가 여기서 생을 끝내면 그곳으로 순식간에 날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천국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그곳에는 열두 진주문이 있고 길바닥은 모두 황금으로 깔려 있습니다. 생명나무가 거리에 가로수처럼 즐비하고 나무마다 다달이 새로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맘껏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꿈꾸고 있지 않은가요? 그런 하나님 나라 천국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을 잘 모른다고 해도 이 정도는 꿈꾸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통하여 진짜 천국을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습니까? 아주 사실적으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셨나요? 마 13 :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사실 천국 자체가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예수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부 드러내놓고 말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방해를 받아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천국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적으로 또는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질문했던 것처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10절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그러므로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천국은 우리 모두가 가고자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떤 곳인지 알고 있습니까? 사실 잘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초청하시면서 천국에 대하여 알려주신 것이 없습니까? 세상에서도 어느 집에 이사를 가려고 해도 그 집이 어떠한지 먼저 알아봅니다. 어느 지방을 여행하려고 해도 무작정 가지는 않습니다. 외국으로 여행한다고 해도 사전에 그곳에 대하여 조금은 알아봅니다. 어디가 좋고 어디가 볼만하고 무엇이 유명한지 가능한 한 알아보고 여행하지요. 하물며 우리가 영원히 살 곳입니다.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그냥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도 우리에게 초청만 했을 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농담이라고 했지만, 천국은 매일 찬양이나 하고 할 일이 없어 심심하겠다고 지옥이 낫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런 말을 들으시면 불편해하실 것입니다. 똑바로 알아야 하고 똑바로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왜 천국을 가고자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바란다는 것도 우습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운데 천국에 관한 내용이 꽤나 됩니다. 문제는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풀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천국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곳은 마 13장과 25장입니다. 그 가운데 13장을 보려고 합니다. 3 - 9절까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묻지요. 10절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아니 좀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시지,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11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자 우선 천국이 비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씨 뿌리는 비유’도 사실은 천국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유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자대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뭐라고 말씀하는지 봅니다. 3 - 8절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우리가 천국을 말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볼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볼 수 있는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죽어서나 본다고요? 글쎄요. 말씀을 따라가보도록 합니다. 아무튼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지요? 말씀해주시니 압니다. 그리고 말씀해주시는 만큼만 압니다. 말씀해주시는 것으로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천국이 예수님으로 오셨기 때문이지요. 예수님 앞서 세례 요한도, 예수님 본인도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사역을 시작하며 첫 마디가 그것이었습니다. 마 3 : 1 - 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 4 :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천국이었고 예수님 계신 곳이 천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찬송도 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
어떻게 사람이 천국이냐? 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이 사람을 천국으로 말씀하십니다. 마 13 :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그렇지요? 또 있습니다. 45절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천국이 장사 곧 상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역시 사람이지요. 물론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값진 진주나 보화와 같기도 하답니다. 이것이 비유인데 그러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이 영으로 계신 하나님 나라 곧 천국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천국이고 예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기 때문에 그 전반적인 천국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으로 있을 천국만을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셨던 이곳을 천국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을 바라보며 천국을 그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상상이 안 되지요. 여기가 천국이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아프고 슬프고 억울하고 짜증나고 등등, 그런 여기가 천국? 기가 찰 일이지요. 정말 찜질방 생각하며 차라리 지옥에 가서 땀을 빼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는 사람도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눅 17 : 20 - 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 ‘안’이 무슨 안이냐 하는 것에 대한 의견도 분분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의 세계를 말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너희 안에’의 너희가 오늘 우리를 뜻하는 것이니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말씀합니다. 흔히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디 있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합니까?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신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이 천국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는 문제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천국을 이루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즉 이름만 하나님의 백성일 뿐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천국이라 할 수 없겠지요. 나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는데 정작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지도 그렇게 받아주지도 않으신다면 어쩌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요? 있었지요. 예수님 오셨을 때 그랬습니다. 유대인 그 가운데서도 영적 지도자라 하던 사람들을 예수님은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기들이야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고 당연히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확신하였겠지요. 그 대화를 들어보겠습니다. 요 8 : 41 - 44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렇지요. 그들의 아비를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연 나를 당신의 자녀라고 인정해주실까요? 자신 있습니까? 그 확신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사실 당시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지금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송하게도 성경을 알고 있는 구절이나 암송하고 있는 구절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땠을까요? 우리와 비교하는 자체를 치욕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행 13 :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그렇습니다. 외운다 해도 알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외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않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식이라고 인정해주시겠습니까? 희망사항입니다. 희망이 믿음은 아니지요.
마 13장에는 천국이 7 부분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다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만 가지고 천국은 이것이다, 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 하나하나가 모두 비유이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하지요. 누가 해석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함을 주심으로 기록한 말씀이기에 역시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목자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마 11 :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들 곧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비밀로 하신 천국을 알 턱도 없겠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엡 1 : 16 - 17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사도 바울이 위해서 기도하는 이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입니까?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에나 오늘에나 그리스도인들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모릅니까? 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냥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하고 ‘계시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한다면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영적이라고 자처한다면 ‘성령 충만’을 기도하고 구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뭘 하겠다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것일까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방언을 한다고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고요? 그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믿게 하려는 수단일 뿐이지요. 정작 성령이 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요 14 :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성경을 알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왜 다닙니까? 모두 비슷한 질문인 줄 압니다. 딤후 3 :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과 영생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고 천국에 들어가리라 믿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가야 합니까, 천국이 우리에게 온다고 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마 4 :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마지막 때는 어떤가요? 계 21 :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래도 가겠다고 하면 가라지요.
여태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랬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마지막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앞에서 본 대로 천국이 온 것입니다. 어찌 보면 미완성의 천국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마 6 :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무슨 나라가 임하여 오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세상의 좋은 나라입니까? 그게 아니지요. 당연히 우리 성도들이 모두 기다리고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천국이 오기를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는 하면서 실제로는 여태 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뜻과는 반대로 해온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헛기침을 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것과 다른 짓들을 하고 있지? 그러지 않으셨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우리네 신앙이 그런 식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눅 12 : 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그만큼 시대를 분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때를 따른 양식’을 주어야 하고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에 맞는 양식을 주는 종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5 : 45 - 46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지막 때에 맞는 양식, 예수님이 오셔서 주신 구약 예언(약속)이 성취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시 오셔서 신약 예언(약속)이 성취된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그 양식을 먹어야 구원의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천국’이라는 설교는 초림 때 먹은 양식입니다. 2천 년을 먹어 왔습니다. 그렇게 지구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마 24 :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마지막 때임을 짐작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을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잖아요. 요 16 : 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렇습니다. 비유가 풀리니 여태 감추어져 있던 것이 밝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때는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오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 찾는 자가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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