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527]임제록(臨濟錄)
道流야
約山僧見處인댄 與釋迦不別이라
今日多般用處가 欠少什麽오
六道神光이 未曾間歇이니
若能如是見得하면 祇是一生無事人이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산승의 견해에 의지한다면
그대들도 석가와 더불어 다름이 없다.
오늘 여러 가지로 작용하는 것에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섯갈래(안,이,비,설,신,의)의 신령스런 빛이
잠시도 쉰 적이 없다.
만약 이와같이 이해한다면
다만 한평생 일 없는 사람일 뿐이다.
임제록(臨濟錄)
1장 解題
참사람[眞人]
중국불교 역사에 있어서
혜능스님의 계통(系統)이
중국 조사선을 일으켜서 선종을 형성하였다.
혜능스님은
견성(見性)을 역설하여서
성자(性字)를 많이 사용했다.
혜능스님은
**열반경** 불성론(佛性論)의 영향이 많은 듯하다.
신회스님과 종밀스님이
지지일지중요지문(知之一字衆妙之門)
이라고 해서 지자(知字)를 말한 것은
성자(性字)보다 동태성(動態性)이 있다 하겠다.
마조스님에 와서는
‘즉심즉불(卽心卽佛),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고 말해서
성(性)보다
작용(作用)의 뜻이 있는
심자(心字)를 많이 사용했다.
마조스님부터
할(喝) 또는 방(棒)을 쓰고
손으로 때린다든가 발로 찬다든가 하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백장 황벽까지는
심자(心字)를 많이 사용했다.
임제스님에 이르러서
인자(人字)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으니
인자(人字)는
성(性)과 지(知)와 심(心)보다는
구체적이고 행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제(臨濟)스님은
인(人)을
무위진인(無位眞人), 무의도인(無依道人),
무사인(無事人), 청법저인(聽法底人),
승경저인(乘境底人)이라고 말하여
보통으로 말하는 인간과는 다른 것이다.
보통으로 말하는 인간은
이성에 의해서 감성을 극복해 가는
이성적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성적 인간은
순수한 생(生)을 바라지만
그 생은 사(死)를 반드시 수반하므로
그 생을 수순수한 생이라고 할 수 없고
생사적 인간이라고 하겠다.
이 생사적 인간의 근본적 구조가
절대적으로 이율배반이므로
‘절대적 이율배반’이라고 하겠다.
이성적 인간의 이성은
반드시 반이성을 수반하므로
이성적 인간 자체의 근본구조가
절대적으로 이율배반이므로
절대적 이율배반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사의 절대적 이율배반과
이성적으로 절대적 이율배반은
구체적으로는 하나로 되어 있다.
이성적 인간이 부정되고
무위진인으로 전환하는 데에
돈오돈수가 있는 것이다.
이 무위진인은
본래 이성적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 인간은
무위진인이 이성적 인간상(人間上)에
출현하고 있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위진인이 자각하면
감성, 이성은 바로 참사람의 출현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임제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빨간 몸덩어리 위에
한 차별 없는 사람이 있어서
항상 여러분의
눈, 귀, 코, 입 등을 통해서 출입한다.
아직 똑똑히 보지 못한 사람은
보아라, 보아라.
(赤肉團上 有一無位眞人
常從汝等諸人 面門出入
未證據者 看看)”
“산승(山僧)이 보는 바로 말하면
석가부처님과 다르지 아니하다.
오늘 여러 가지 작용(作用)하는 곳에
모자라는 것이 무엇이냐?
여섯 가지
신령스러운 빛이 잠깐도 쉰 일이 없다.
만일 이와 같이 볼 수가 있다면
참으로 이것이 일생 무사한 사람이다.
(約山僧見處 與釋迦 不別
今日多般用處 欠少十麽
六道神光 未會間歇
若能如是 見得 祇是一生無事人)”
<임제록(臨濟錄)>은 <마조어록(馬祖語錄)>, <백장어록(百丈語錄)>,
<황벽어록(黃壁語錄)과 나란히 4가어록(四家語錄)의 하나이며 대표적인 선어록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임제록>을 ‘선어록의 백미’라고 불렸다.
때문에 선(禪) 수행자에게 더없는 필독서이다.
<임제록>의 원제는 <진주임제혜조선사어록(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이다.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의 가르침인 법어와 언행을 그가 입적한 후
제자인 삼성 혜연(三聖慧然)이 편집한 것으로서,
현존하는 것은 임제 선사가 입적한 후 254년이 지난 1120년(북송의 선화 2년)에
원각 종연(圓覺宗演)이 중각(重刻), 인본(印本)한 것이다.
임제(臨濟) 선사는 당나라 말기에 살았던 위대한 선승으로 영원한 자유인이고,
무애(無礙)의 달인이자 파격의 멋스러움을 지녔던 분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우 준엄한 선풍을 지닌 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임제종의 시조가 됐다. 따라서 임제 선사의 가르침은
군더더기 없고 직설적이며, 그의 문장은 매우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리하여 <임제록>은 예로부터 ‘선어록(禪語錄)의 왕’이라고 존중을 받은 어록으로서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을 명백히 밝히고 자유자재로 행동하는 차별 없는 참사람을
설파해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소중한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중국 선의 절정기에 조사선(祖師禪)의 경지를 완벽하게 드러낸 선어록이다. 올바른 견해, 반야지혜, 정안, 정법안을 갖출 것에 초점을 맞추어
‘진정견해(眞正見解)’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다.
즉, 참으로 바른 견해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안(正眼)을 갖추지 못한다면
선수행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제록>을 읽지 않고는
선어록의 진수를 맛봤다고 할 수가 없다.
조선 후기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 스님은 선종 오가에 대해
각 종파 및 교의 등을 정리한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를 저술해
오종 각각에 대한 종지를 평가했다. 그 가운데 임제 종지에 대해서는
기(機)와 용(用)을 해명하는 것이라 말하고, “맨손에 단도를 들고
살불살조(殺佛殺祖)하며, 현(玄)과 요(要)에서 고금을 분별해 내고,
주(主)와 빈(賓)에서 용과 뱀을 골라내며, 금강보검을 쥐고서 대나무에 붙은
정령을 쓸어버리며, 사자의 위용을 떨치고 이리의 심장과 쓸개를 찢어버린다.”고
평가했다.
인도의 선불교(禪佛敎)는 중국에 전래된 후 육조 혜능(慧能, 638~713) 대사에 의해
중국화 되는 과정을 겪는데, 이렇게 해 중국화 된 선불교를 조사선(祖師禪)이라고 한다.
조사선은 8-9세기에 걸쳐서 그 화려한 꽃을 활짝 피우니,
이것이 이른바 오가칠종(五家七宗)의 선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번성하고 가장 오래 그리고 널리 전파된 것이 임제종(臨濟宗)이다.
임제종은 12세기가 되면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의한
간화선(看話禪) 개발을 통해 재도약을 하게 되는데,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의 불교를 지배하고 있는 간화선은 바로 이 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임제종(臨濟宗)의 종조(宗祖)인 임제 선사의 위치가 9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불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의 철학자인 이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박사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의 귀중한 서적이 모두 불타 없어져도 임제 선사의 어록인 <임제록>만 타지 않고
남으면 만족하겠다고 했다. 그만큼 일본에서도 존중 받은 세계적 명저이다.
육조 혜능 대사의 법을 이은 남악 회양(南岳懷讓, 677∼744) 선사의 제자로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로 유명한 마조(馬祖道一, 709∼788) 선사가 있다.
또 마조 선사의 제자로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중국 선종의 전통을 세운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선사가 있다.
이런 백장 스님의 제자가 황벽(黃檗希運, ?~850) 선사이고
황벽 선사의 제자가 바로 <임제록>의 주인공 임제 선사이다.
임제 선사는 조사선 불교가 찬란하게 꽃을 피웠던 시기에 임제종을 열고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선종의 역사에서 임제종은
그 맥을 이은 조계종의 시작이기도 하다. 임제 선사의 칼날 같은 호령과 가르침에는
한 순간도 번뇌를 일으킬 수 없는 긴장감이 있지만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 밖에서 따로 구하지 말라’는 간절하고 친절한 가르침이 있다.
임제 스님은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마라’며 절대적 관념이나
대상의 권위를 타파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는
무위진인(無位眞人, 참사람)의 삶을 강조했다. 임제 스님의 ‘할(喝)’은
덕산 스님의 ‘방(棒)’과 더불어 조사선의 주요한 가르침이며
이것은 여전히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殺父殺祖]’ 하는
유명한 문구 역시 <임제록>에 실린 말이다.
입을 열고 말을 하는 순간 진리로부터 멀어진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활발발한 가르침에는 빈틈이 없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는 사자후는 1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에게
생생한 가르침으로 전달되고 있다.
임제 선사 문하에 유수한 승려가 많이 배출됐다.
그리하여 한국의 조계종에도 그의 법맥이 닿아있다.
고려 말기의 국사였던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년~1382년) 화상이
중국 원나라에 유학해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에 속하는
석옥 청공(石屋淸珙, 1273~1352) 선사의 선맥을 수입해 왔다.
그것이 조선시대 선불교에 큰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 법맥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선사들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할 때 ‘할(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스스로 임제 법손임을 드러내는 말이 된다.
<임제록>은 선종(禪宗)의 일파인 임제종(臨濟宗)의 기본이 되는 책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선(禪)의 진수를 설파한 책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견성(見性)을 향한 수행방편에 대한 해설서로서 예로부터 선(禪)을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애독했다.
그리고 <임제록> 중에는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공안(公案)이 많다.
[출처] 임제록(臨濟錄)>|작성자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