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표(史記 表), 고조공신후자연표 중 일부1
*子孫驕溢, 忘其先, 淫嬖, 至太初百年之閒, 見侯五, 餘皆坐法隕命亡國, 耗矣, 罔亦少密焉, 然皆身無兢兢於當世之禁云, 居今之世, 志古之道, 所以自鏡也(자손교일, 망기선, 음폐, 지태초백년지간, 견후오, 여개좌법운명망국, 모의, 망역소밀언, 연개신무긍긍어당세지금운, 거금지세, 지고지도, 소이자경야).
그러나 그 자손들은 오히려 교만하고 사치스러워져 조상이 작위를 얻었을 당시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음란하고, 사악한 짓에 골몰하게 되었다.
태초(太初) 연간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 작위를 보존한 자는 겨우 다섯 명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법을 어겨 목숨을 잃거나 나라를 패망케 만들었다.
이는 법망이 촘촘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제후들 자신이 금령(禁令)에 주의를 기울이며 행동을 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 부분은 사마천의 사기 표(史記 表)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候者年表) 중 사마천(태사공)의 평 일부를 발췌해 본 것입니다.
*사기 표(史記 表)는 사기의 내용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 놓은 것으로 흔히 십표(十表)로 불리고, 표는 크게 세계를 기록한 세표(世表)와 연대기 형식의 연표(年表), 월 단위의 월표(月表) 등 세가 유형으로 대별되며, 한서의 저자 반고는 ‘표’를 높이 평가하였으나, 이후의 사가들은 ‘표’를 군더더기로 보고 ‘본기’와 ‘열전’만으로도 이전 왕조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候者年表)는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손에 넣을 때 도움을 준 143명의 공신에 관한 연표로 제후에 봉해진 뒤 봉지가 폐지될 때까지의 역사를 간략히 기록해 놓은 것으로 한고조 때 제후에 봉해진 개국공신의 후예가 한무제 때 대거 몰락하였습니다.
위 글은 과거의 어려움을 잊고 언행이나 생활을 삼가지 않으면 패망하게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사마천(司馬遷, 자는 子長, 기원전 145년~86년, 한경제의 치세인 기원전 145년 전후에 사관으로 재직한 사마담의 아들)의 필생의 역작 사기(史記)(太史公記, 또는 太史公書로 불리기도 함)는 오제부터 한무제까지 제왕의 역사를 기록한 본기(本紀), 역대 제왕과 제후의 연표를 기록한 표(表), 고대 중국의 역법, 치수, 경제를 기록한 서(書), 역대 제후와 공신들의 연대기인 세가(世家), 정치가, 학자, 군인, 자객, 해학가 등 각종 인물의 흥망사를 기록한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사마천은 한무제 때 천문역법을 관장하는 태사령이 된 후 49세 때 황제를 무고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부친의 유한과 사마천 개인의 통한을 승화시킨 작품인 사기를 작성하기 위해 당시 죽음만도 못한 것으로 여긴 굴욕적인 궁형(宮刑, 거세형)을 자청해 죽음을 면한 후 세기의 역작 사기를 저술하여 후대에 역사를 거울로 삼아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이치를 깨닫는 사감(史鑑)의 전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사기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대의멸친(大義滅親)으로, 치국평천하의 대의를 위해 친인척으로 상징되는 소의(小義)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마천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극도로 싫어하는 호리오해(好利惡害)를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했고, 사기 중 열전은 사기 총 130편 중 70편에 달하는 것으로 사기의 꽃에 해당한다고 하고(열전을 읽지 않으면 사기를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열전만 따로 번역한 책이 많이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