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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중국의 미인과 여걸 이야기-뮬란(木蘭)
뮬란은 월트디즈니사의 36번째 작품 <뮬란(Mulan)>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이름이다. <뮬란>은 중국에 전해오는 역사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월트디즈니사에서 제작한 만화영화이지만, 실제로 중국역사상 "뮬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은 없다.
2001년 4월 28일 우리나라 전국 개봉관에서 개봉된 송해성 감독의 영화 <파이란>(주연: 장백지, 최민식)은 극중 주인공의 한 사람인 중국여인 파이란(장백지 역)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실제로는 "파이란"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은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실제 이름은 "하얀 난초처럼 맑고 순수하다"는 의미를 가진 "백란(白蘭)"이고, "백란"의 중국음은 "바이란(Bai lan)"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을 정할 때 우리말의 어감상 "바이란" 보다는 "파이란"이 훨씬 더 중국적인 인상이 강하다는 제작진의 판단에 따라 원래의 이름인 "바이란"을 "파이란"으로 바꾸었다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에서 영화제목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뮬란의 실제 이름은 목란(木蘭)이고, 목란의 중국음은 "무란(Mu lan)"이다. 영화 <뮬란>의 영문 제목은 <Mulan>인데, 여기에서 영문표기처럼 보이는 "Mu lan"은 사실상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의 발음부호(라틴어)인 한어병음자모이다. 따라서 중국인이나 중국어를 배운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무란"이라고 읽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것을 영어로 인식하고 "museum"이나 "music"을 "뮤지엄" "뮤직"이라 하듯이 "뮬란"으로 읽을 가능성이 크다.
<뮬란>을 수입하면서 제목의 우리음 표기를 선정할 때 <파이란>과 같은 과정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만약 흥행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제목을 "무란"에서 "뮬란"으로 바꾸었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파이란"과 같은 가공의 인물이 아닌 "뮬란"은 중국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뮬란>은 중국에서도 <화무란(花木蘭)>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되어 많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월트디즈니사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데 대하여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러한 중국인들에게 만약 "뮬란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더욱이 <뮬란>에서는 뮬란에 대해서 소개할 때 "파(영문 원본에는 'Fa'라 되어 있음)"씨 집안의 딸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뮬란의 성은 "파"씨가 아니라 "화(花 : Hua)"씨이다. 다시한번 정확하게 말한다면 뮬란의 본명은 "파뮬란"이 아니라 "화무란"인 것이다.
여기에서 뮬란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한 까닭은 그것의 오류를 지적하여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자는 것일 뿐,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와 있는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굳이 더 어색하게 만들 의도는 전혀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역사 속의 실제 인물을 말할 때는 "목란" 또는 "화목란"이라 표기하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나 영화 속의 인물을 말할 때는 "뮬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화목란에 관한 이야기는 1천여년 동안 중국인들의 입을 통해서 폭넓게 전해져 왔지만, 정작 그녀의 성씨와 고향, 출생연대 등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
먼저 목란의 성씨에 관해서는 주씨(朱氏) 또는 위씨(魏氏)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란(木蘭)" 자체를 성씨로 보기도 한다. 명대(明代)의 유명한 희곡학자 서위(徐渭)는 <사성원전기(四聲猿傳奇)>에서 그녀의 성을 화(花), 이름을 목란(木蘭)이라 한 다음, 그녀의 가족으로 예비역 장교 출신인 아버지 화호(花弧)와 어머니 원씨(袁氏), 언니 화목련(花木蓮), 어린 남동생 화웅(花雄)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설이다.
목란의 출생연대에 관해서 요영(姚瑩)은 <강유기행(康輶紀行)>에서 그녀를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 467~499, 재위 29년)에서 선무제(宣武帝: 483~515, 재위 16년) 때의 사람이라 하였고, 송상봉(宋翔鳳)은 <과정록(過庭祿)>에서 수(隋) 공제(恭帝: 605~619, 재위 6개월) 때의 사람이라 하였으며, 정대모(程大冒)는 <연번로(演繁露)>에서 당대(唐代) 초기의 사람이라 하였다. 이 중에서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북위 말기의 인물이라는 설이 비교적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목란의 고향에 관해서 요영은 양주(凉州)라 하였고, 하북성(河北省) <완현지(完縣志)>에서는 완현(完縣)이라 하였다.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서는 영주(潁州) 초군(초郡, 초=言+焦) 동위촌(東魏村)이라 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송주(宋州) 혹은 황주(黃州)라 하기도 하였다. 하남성(河南省) <상구현지(商丘縣志)>에서는 목란의 고향을 구화송촌(丘花宋村)이라 하였는데, 대체로 이 <상구현지>의 설이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말하든 이러한 근거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고증하려 드는 것은 사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화목란이 중국 북방의 영웅적인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면 족할 뿐이다.(劉大杰 <中國文學發展史>)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 화목란에 관한 이야기는 대체로 <목란시(木蘭詩)>(또는 '목란사<木蘭辭>', '목란가<木蘭歌>'라고도 함)라는 민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유명한 민가 <목란시>는 중국문학사상 남방지역을 대표하는 장편 서사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북방지역의 대표적인 장편 서사시이다. 그 내용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화목란이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남장을 하고 종군한 이야기이다.
5~6세기 남북조시대 북조는 열악한 자연환경과 북방 이민족의 잦은 침입 탓으로 남조의 가볍고 서정적인 시에 비하여 호방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중 하나가 목란시(木蘭詩)이다.
木蘭辭(목란사)
즉즉復즉즉(즉즉부즉즉)아이고, 아이고
木蘭當戶織(목란당호직)목란이 문가에서 베를 짠다.
不聞機저聲(불문기저성) 그러나 베 짜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唯聞女歎息(유문녀탄식) 다만 아가씨의 한숨만 들린다.
問女何所思(문녀하소사) 무슨 생각을 하는가?
問女何所憶(문녀하소억)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하고 아가씨에게 물어 보았더니
女亦無所思(녀역무소사) 별로 생각하는 바는 없어요,
女亦無所憶(녀역무소억) 무슨 생각도 하지 않아요.
昨夜見軍帖(작야견군첩) 어젯밤에 징병 명단을 보았는데
可汗大點兵(가한대점병) 임금님이 병을 많이 징발하시더군요.
軍書十二卷(군서십이권) 명단은 열두 권이나 되고
卷卷有爺名(권권유야명) 권마다 다 우리 아버지 이름이 있더라고요.
阿爺無大兒(아야무대아) 아빠에겐 큰 자식이 없고
木蘭無長兄(목란무장형) 저, 목란에겐 큰 오빠가 없습니다.
願爲市鞍馬(원위시안마) 그래서 안장과 말을 사서
從此替爺征(종차체야정) 군을 따라가 아빠 대신 원정을 가고 싶습니다"
東市買駿馬(동시매준마) 동쪽 시장에서 빠른 말을 사고
西市買鞍[革薦](서시매안[혁천])서쪽 시장에서 안장과 언치를 사고
南市買비頭(南市買비두) 남쪽 시장에서 고삐를 사고
北市買長鞭(북시매장편) 북쪽 시장에서 채찍을 사서
旦辭爺孃去(단사야양거) 아침에 부모님 곁을 떠나
暮宿黃河邊(모숙황하변) 저녁에 황하가에서 잠들었다.
不聞爺孃喚女聲(불문야양환녀성)부모가 딸을 부르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고
但聞黃河流水鳴(단문황하류수명)다만 황하가 물결치고 흐르는 소리가 들릴 뿐.
且辭黃河去(차사황하거)또 황하를 떠나서
暮至黑山頭(모지흑산두) 저녁에 흑산 기슭에 왔다.
不聞爺孃喚女聲(불문야양환녀성)부모가 딸을 부르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고
但聞燕山胡騎鳴(단문연산호기명)다만 연산 오랑캐 말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릴 뿐
萬里赴戎機(만리부융기)만리 먼 땅, 정쟁터에 와서
關山度苦飛(관산도고비) 관소가 있는 산을 어렵게 넘어갔다.
朔氣傳金[木斥](삭기전김[목척])북방의 냉기는 징소리를 울리게 하며
寒光照鐵衣(한광조철의)차가운 달빛은 갑옷을 비춘다.
將軍百戰死(장군백전사) 장군은 백 번 싸움 끝에 죽고
壯士十年歸(장사십년귀) 장사 아까시는 10년 만에 돌아간다.
歸來見天子(귀내견천자) 돌아와서 황제를 만나뵈니
天子坐明堂(천자좌명당) 황제는 명당에서 앉아
策勳十二轉(책훈십이전) 열두 계급 특진의 훈장을 주시고
賞賜百千彊(상사백천강) 몇천금의 상금을 주셨다.
可汗問所欲(가한문소욕) 임금님이 무엇을 바라는지 물어 보시니
木蘭不用尙書郞(목란불용상서랑)목란은 높은 벼스자리를 원하지 않고
願馳千里足(원치천리족)천리 가는 다리로 달려서
送兒還故鄕(송아환고향) 이 아이를 고향에 돌아가도록 내보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爺孃聞女來(야양문녀내) 부모는 딸이 돌아왔다고 듣고
出郭相扶將(출곽상부장) 성 밖으로 나가 서로 부축하면서 기다렸다.
阿姉聞妹來(아자문매내) 언니는 동생이 돌아왔다고 듣고
當戶理紅粧(당호리홍장) 문가에서 화장을 했다.
小弟聞姉來(소제문자내) 작은 동생은 누나가 돌아왔다고 듣고
磨刀곽곽向猪羊(마도곽곽향저양)칼을 갈아 기꺼이 돼지와 양 앞에 섰다.
開我東閣門(개아동각문)자기 집 동쪽 건물의 문을 열고
坐我西閣牀(좌아서각상) 자기 집 서쪽 건물의 침대에 앉고
脫我戰時袍(탈아전시포) 자기가 전쟁 때 입은 옷을 벗고
著我舊時裳(저아구시상) 자기가 옛날에 입었던 옷을 다시 입는다.
當窓理雲빈(당창리운빈) 창가에서 머리를 가다듬고
對鏡帖花黃(대경첩화황) 거울을 보고 화장가루를 바른다.
出門看火伴(출문간화반) 문 밖으로 나가 전우들을 만나니
火伴皆驚忙(화반개경망) 전우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同行十二年(동행십이년) 12년간 같이 행동했는데
不知木蘭是女郞(불지목란시녀랑)목란이 여자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雄兎脚撲朔(웅토각박삭)수토끼는 다리가 앞으로 가지 않고
雌兎眼迷離(자토안미리) 암토끼는 눈빛이 멍하다.
兩兎傍地走(량토방지주) 양쪽 다 땅을 기어 뛰는데
安能辯我是雄雌(안능변아시웅자)어찌 자기가 숫놈인지 암놈인지를 가릴 수 있으리오?
총 62구 333자로 이루어진 <목란시>는 남북조 시기 북방 소수민족의 대표적인 민가로, 진(陳) 광대(光大) 2년(568)에 승려 지장(智匠)이 편찬한 <고금악록(古今樂錄)>에 최초로 수록되어 있으며(여기에서 이 작품이 북위 말기에 창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송대(宋代) 곽무천(郭茂倩)이 편찬한 <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 「횡취곡사(橫吹曲辭)」"양고각횡취곡(梁鼓角橫吹曲)"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전래되는 과정에서 후대 문인들이 가공한 흔적(중간에 당대의 제도나 어투가 보임)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민가적 특색이 충만하다. 이 시에서 천자를 "칸(可汗)"이라 한 것을 보면 당시 전쟁이 일어났던 지역이 중국의 북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황하(黃河)는 말할 것도 없고, 흑산(黑山)은 지금의 하북성 창평현(昌平縣)에 있는 천수산(天水山)이고, 연산(燕山)은 지금의 계북(蓟北)에서 동으로 요서(遼西)까지 뻗어있는 연산산맥(燕山山脈)이다. 따라서 목란이 참가했던 전쟁은 북위(北魏)와 유연(柔然) 사이에 발생했던 전쟁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위는 선비족 척발부(拓跋部)가 세운 나라인데, 서진(西晋) 말기에 대왕(代王)에 봉해졌다가 그 후 부견(符堅)에게 멸망당하였다. 부견이 비수(淝水)의 전쟁에서 대패한 후 척발씨는 다시 나라를 되찾고 국호를 "위(魏)"라 하였다. 위나라는 50~60년간의 전쟁을 거쳐서 "오호십국(五胡十國)"의 혼란시대를 마감하고 황하 유역을 통일하였다. 북위 효문제에 이르기까지 86년간 5명의 황제가 재위하였다. 효문제는 중원의 한족문화를 숭상하여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다음 한화(漢化) 정책을 시행하였다. 오늘날의 "원(元)"씨 성은 대부분 북위 황실의 후손이다. 이 무렵 황하 유역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었으며, 특히 효문제가 즉위한 후에는 균전령(均田令) 등의 민생안정 정책의 시행을 통하여 사회적 경제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화목란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때 건국한지 158년이 지난 북방 유목민족 국가 유연(柔然)이 끊임없이 남침을 기도하였다. 이에 북위 정권은 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여러 차례 유연과 접전을 벌여야만 했다. 전쟁은 영웅을 탄생시킨다. 용맹한 남자 영웅이 없다면 뛰어난 여자 영웅이 있을 수도 있다. 바로 북위와 유연의 전쟁에서 두드러진 남자 영웅이 없었던 대신 뛰어난 여자 영웅 화목란이 있었던 것이다.
목란은 원래 시골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베를 짜며 생활하던 평범한 소녀였다. 그러던 어느날 목란의 신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즉 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칸(천자)이 동원령을 반포하고 열두 차례나 징집영장을 발부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목란의 아버지도 이 동원령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목란의 아버지는 전쟁에 참가하기에 너무 노쇠하였으며, 그렇다고 풍전등화에 처한 조국의 위기를 방관한 채 천자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남자라곤 연로한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뿐인 목란의 집에서는 달리 방도를 찾을 길이 없었던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목란은 여자의 몸으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출정하겠다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게 되니, 이는 조국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동시에 표출한 것이다.
목란은 출정하기에 앞서 준마와 안장ㆍ고삐ㆍ채찍을 마련한 다음, 이른 아침에 서둘러서 부모님께 작별을 고하고 황하 유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였든지 그녀는 잠시도 지체할 틈이 없이 황하 유역에서 다시 흑산(黑山)으로 달려가 곧바로 전쟁에 투입되었다. 그로부터 12년간 전장을 누비면서 많은 장군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도 당당히 살아남아 개선한다. 전장에서 돌아온 목란은 천자를 알현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많은 상금과 함께 작위를 받았지만, 그녀는 어떠한 작위도 사양하고 오로지 고향에 계신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기를 청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귀공명을 멀리하고 가족과 함께 고향에서 평범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순박한 목란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목란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연로한 부모님은 물론 언니와 남동생까지도 모두 그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고향으로 돌아온 목란이 그때까지 입고 있던 전투복을 벗고 원래의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후 옛 전우들을 만나자 그들은 목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12년간 전장에서 갖은 고초를 함께 겪었지만 동료들은 목란이 여자인 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실로 전장에서 그녀의 활약이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목란시>에서는 "목란종군(木蘭從軍)" 고사를 통하여 부지런하고 용감하며 의연하고 명리를 탐하지 않는 목란의 영웅적인 형상을 창조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북조시대의 병역부담이 엄중했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목란은 현실을 바탕으로 이상화 된 뛰어난 여성 형상이다. 이것은 또 "여자가 남자 보다 못하다"는 당시의 봉건적인 전통관념을 타파하였다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소박하게 묘사되어 있으면서 민가적 색채가 풍부하다. 완전한 5언이 아닌 장단구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싯구의 반복영탄<"東市買駿馬(동시매준마)" 4구>이나 해학적인 비유<"雄兎脚撲朔(웅토각박삭)" 4구> 등에서 그러한 특징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시는 스토리의 구성면에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작자는 여주인공 형상의 특징을 덮어둔 상태에서 묘사의 중점을 징집에 응하기 전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 위에 두고서 남장하여 출정하는 목란의 극적 스토리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다년간 험난한 일정 속에서 보냈을 전장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극히 간단하게 묘사하였다.
<목란시>는 민간에서 폭넓게 전승된 이후 한대(漢代)의 악부 민가인 <공작동남비>와 더불어 장편 서사시의 쌍벽을 이룬다는 호평을 받아왔다. 명대(明代)의 호응린(胡應麟)은 <시수(詩藪)>에서, "5언시의 경지는 <초중경처(焦仲卿妻: 공작동남비의 다른 이름)>에서 다하였고, 잡언시의 경지는 <목란시>에서 다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목란시>에 대한 아주 적절한 평가라 할 수 있겠다.
<목란시> 이후에도 역대로 이러한 목란의 영웅적인 행위를 칭송한 시사(詩詞)는 많이 나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당대(唐代) 위원보(韋元甫)의 <목란가(木蘭歌)>, 두목(杜牧)의 <목란묘(木蘭廟)>, 백거이(白居易)의 <희제목란화(戱題木蘭花)>, 명대(明代) 하출광(何出光)의 <목란사새신곡(木蘭祠賽神曲)>, 오요규(吳姚奎)의 <목란가(木蘭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