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등마루 수리부엉이가 부엉부엉 울면 범이 따라온다---
제보자: 한상기(韓相起)
나이: 73세
조사일: 2019년 1월 3일
다음에 쓰는 내용도 객지 춘천(春川)으로 가기전 잠시 시간을 내어 이웃마을 한상기 아저씨를 찾아뵙고 녹취한 내용중 요점만 간추린 것입니다.
민마루는 한자로 민동(民洞)으로 쓰지만 보통 부르길 민마루라고 합니다. 민마루는 내고향 마을과 이웃하고 가까워서 지금도 한마을 사람처럼 지냅니다. 그래서 봉골민마루라고 붙여 부릅니다. 텃골마을보다 가깝습니다. 예전 조무라기 시절 친구들과 동생들이 그립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굵었고 소식도 없이 타지로 뿔뿔히 흩어져 삽니다. 한마디로 헛헛합니다. 지금 민마루는 전체 오십여호 되지만 토박이는 다 떠나고 여섯, 일곱집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2021년 8월 26일 한중섭 아저씨를
길에서 잠시 뵙고 보충한 부분도 포함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데 대부분 말씀해 주신 한상기 아저씨는 오래 통장일을 보았고 귀찮게 묻는 질문에 친절하고 상세히 답해 주었습니다. 하마터면 진귀한 이야기를 영원히 놓쳐 버릴 뻔했습니다. 늘 상기아재라고 불렀는데 아재어머님이 우리 할아버지하고 십촌간이라고 합니다. 시골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예전부터 여러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말씀들을 기록으로 남겨보려 했는데 모두들 돌아가신지 오래입니다.
웃말 지명은 이봉표 형님이 도움말을 주셨습니다.
1)민마루: 아름말(아랫말)에 마룻들이란 큰 들이 있었고 종민동에서 강하류쪽으로 아래가 되는 마을이라서 마룻들의 마루를 합쳐서 민마루가 되었다. 이외에 미루나무가 강가에 많아서 민마루가 되었다. 백성 민자 민동(民洞)이 된 것은 사방팔방에서 많은 백성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될 것을 예견했기 때문에 민마루가 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민마루는 종민동에서 하종마을처럼 근래 가장 발전한 마을이다. 전원주택도 많이 들어서고 조만간 충원교도 새로 놓인다고 하니 앞으로 더 변할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토박이들이 하나둘 줄어드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2)마룻들: 마릿들, 아름말 앞 넓은 들을 말하며 마루처럼 평평하여 마룻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논과 밭이 많았다. 지금은 지형이 변해서 가늠하기 힘들다.
마룻들 혹은 마릿들은 전국에 흔하고 종민동에도 여럿 보인다. 마루의 방언은 이 지방에서는 <말래>이다. 마릿들의 원형은 <말(斗)의 들>로 보고자 한다. 한마지기는 한 말(斗) 씨앗을 뿌릴 수 있는 평수를 말한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밭 300평, 논 200평을 말한다. 마릿들을 여러 마지기 논이 있다고 마지기들이라고도 한다.
3)쇠등강: 쇠등갱이, 아름말등갱이 아래 낮은 산등성이를 말한다. 그 뜻은 소(牛)의 등처럼 생겼기 때문에 유래한 것 같다. 아름말등갱이와 연결된 등성이다.
금속 쇠(金)와는 관련 없어 보인다.
다른 해석은 작은 등강이라고 해서 <소(小)등강>이 훗날 변한 말일 수 있다. 이곳을 넘으면 봉골 <부석케>로 쉽게 갈 수 있다.
4)아름말등갱이: 아름말 앞산 등갱이로 한때 청주한씨 말림으로 묘를 많이 썼으나 충주댐 여수로 공사로 모두 이장하였다. 예전 국민학교때 이곳으로 소풍을 많이 왔었다.
5)신배나무: 봉골 버던에 있는 돌배나무를 가리킨다.
6)위(爲)하는 나무: 봉골 산제당 나무를 말한다.
7)숯돌메기번던: 숯돌메기, 여우박골도랑에서 잔디봉 아래 민마루 연산나무 가기전까지를 말한다. 돌이 숯처럼 검다고 이름 지었다. 계명산은 편마암이 많이 보이고 쇠성분이 많다. 따라서 검은색 돌이 유독 많다. 예전 사람들도 숯돌이 쇳돌의 일종임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숯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므로 숯검댕이돌을 숯돌이라 부른것 같다. 번던은 버던과 같은 말로 돌서렁이 있는 곳이나 잡목이 우거진 곳을 말한다.
8)숯돌메기: 한때 권씨 아저씨가 부치던 과수원 위 숲 일대를 말한다. 이 부근에도 바위들이 많고 논다랭이가 있었다.
봉골 사람들이 버던이라고 부르는 곳 아래가 된다.
9)여우박골도랑: 유박골도랑, 여우굴이 있어 여우박골도랑이라 불렀다 한다. 아름말 앞을 흐르는 도랑도 여우박골도랑이라고 한다.
10)잿마당: 웃말 전나무가 있는 부근을 말한다. 지금은 부근에 전원주택들이 들어섰다.
11)전나무: 잿마당 부근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한씨 집안 할아버지가 손수 심었다고 전해진다.
12)멧재: 웃말에서 봉골로 가는 예전 산길 등강을 말하며 근처에 묘(墓)가 있어 유래하였다. 하종에는 묘(墓)가 있는 골짜기라고 메골이 있다.
13)잔디봉: 웃말 동네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고 봉우리가 동그랗다. 작은 봉우리라고 잔디봉이라 했고 아이들이 놀곤했다. 잔디봉아래 종댕이 문씨집안 묘가 있다고 한다. 어떤분은 송전탑이 서 있는 봉우리를 잔디봉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것 같다.
14)연산나무구렁:연산나무가 있던 골짜기를 말한다. 잔디봉뒤가 된다.
15)연산나무: 예전에 위(爲)하는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아주 큰 아름드리나무로 봉골 <영산나무께>와 연관된다. 둘다 오래전 이 땅에 살던 분들이 위(爲)하는 나무이며 오래된 땅이름이 된다. 연산나무는 영산(靈山)나무일 것이고 영산나무가 있었던 부근이 <영산나무께>가 된다.
16)방대낭골구렁: 웃말 산쪽에 있는 큰구렁을 말한다.
17)방대낭골: 방대나무가 있던 골을 말하며 달리 방대낭골구렁이라 한다. 방대나무(방때나무)는 무슨 나무인지 불분명하다. 잃어버린 말이 된다. <낭골>은 나무골을 줄인 말이다. 동량면 화암리에 낭골이 있다. 주머니낭(囊)자를 써서 주머니처럼 생긴 골짜기라고 해석하는데 <나무골>의 준말 <낭골>이다. 나무는 방언으로 <낭구>이다. <구>자가 생략되면 <낭>자만 남는다.
18)방대낭골도랑: 방대낭골에서 흘러내리는 도랑으로 수량이 풍부하다. 이 도랑이 웃말을 흘러내려 아름말에서 여우박골도랑과 합친다.
19)벼락바우구렁:벼락바위가 있는 구렁을 말하며 방대낭골구렁 옆이 된다.
20)벼락바우: 벼락방구, 벼락을 맞은듯 바위가 잘라졌기에 이름 지었고 지금도 있다고 한다. 벼락바우는 텃골에도 있었다. 벼락에 맞은듯 반듯하게 잘라진 바위란 뜻이다.
21)꽃등마루: 사방이 트여 경치가 좋고 봄이 되면 참꽃(진달래)이 만발하여 유래하였다. 지금 송전탑이 있는 부근을 말하며 사래실과 경계가 된다. 마루는 편편한 산등성이를 말한다. <꽃등말래>, <꽃등말랑>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사방이 트이지는 않았다.
22)삼박골: 웃말 산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산쪽에 가까운 곳에 밭이 있어 유래한 것 같다.
23)삼박골등갱이: 삼박골에서 용탄동으로 넘어다니던 고개를 말한다.
24)윗삼박골: 삼박골 위 계명산쪽 구렁을 말한다.
25)큰재: 큰재등갱이, 삼박골재 아래 고개로 지금 농로포장된 길을 따라가면 있는 고개를 말하며 예전에 이곳을 따라 시내로 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26)작은재: 큰재 아래에 있는 재를 말하며 웃말에서 사래실로 넘는 소로길에 있다.
27)참나무밭: 꽃등마루 아래 민마루쪽 참나무숲을 말한다. 숲이 울창해서 해마다 도토리가 많이 열린다.
28)버던들: 마릿들 위 바위가 많은 곳을 말하며 현재 과수원이 있고 예전에는 논다랭이도 드문드문 있었다. 이곳은 숲이 우거졌었는데 바위가 많고 돌서렁이었다. 과수원을 부치고 있고 아래쪽에 집이 들어섰다.
29)아름말: 도로를 경계로 민마루 아랫동네를 말한다. 민마루에서 나중에 생긴 마을이라고 한다.
30)웃말: 도로를 경계로 민마루 윗동네를 말한다. 민마루의 원동네라고 한다.
31)박샘: 세군데 있었으나 현재는 매몰되고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박샘은 바가지샘이란 뜻이다.
32)봄데미: 봄데미는 충주댐 진입로 확장공사로 파괴되었는데 큰바위로 되어 아래로는 강과 접했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서면 현기증이 났고 강바람이 시원하였던 기억이 난다. 봄데미란 지명은 앙성면에도 있는데 그 정확한 뜻은 다가오지 않는다. 범과 관련 있을것 같은데 전설을 소개하면서 줄이기로 한다.
<꽃등마루 수리부엉이가 먹이를 찾아 봄데이 바위 위로 날아 내려오면서 부엉부엉 울면 범이 뒤를 따른다고 한다>
33)봄데미 앞강: 물이 줄면 물속에 삐죽삐죽 바위가 보이는데 오랜 옛날 마고할머니가 다리를 놓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바위들은 이 고장에서 흔한 석회석이며 흔히 차돌이라고 부르는 돌이다.
34)옻샘: 옻물, 봄데미 아래 악수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잡석에 묻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옻이 올랐을 때 이 물을 마시면 낫았다고 전한다.
35)사근이: 봄데미에서 사래실 가든 가기전 길이 좁고 험한 걸 가리켜 <사근이 나간다>고 했다 한다.
사근이는 험한 돌길을 말하는데 <토끼벼루>와 같은 뜻으로 생각된다.
36)덤바우: 덤바우통, 봄데미에서 하류로 내려가면 보이는강가에 불쑥불쑥 솟은 바위들을 말한다.
37)작은강: 봉골과 민마루 사이 강가에 있었고 물이 얕고 모래가 쌓여 아이들이 여름철 즐겨 찾았던 곳이라 한다. 남한강 본류는 큰강이라 하였고 충주댐 건설후 흔적없이 사라졌다.
38)모래강변: 민마루 마릿들 아래 강가 충원교 조금 위쪽이 된다. 고운 모래톱이 있었고 아이들이 놀던 곳이다. 이곳에 배가 닿았다고 한다.
39)자갈밭: 충원교 하류 동량면 양지말가든 앞이 되며 큰자갈밭이 있었으며 예전에 배가 닿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도 충주댐 공사후 지형이 크게 바뀌어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
40)개차구렁: 동량면 충원교가 있는 골짜기를 가깝다(개찹다)고 개차구렁이라고 불렀다. 개차구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장소를 말하는데 이는 좀더 살펴볼 문제이다. 강반대편 마을에서 맞바로 보이는 골짜기를 가깝다고 개차구렁이라 불렀다면 문제가 없는데 특정 지역을 부른 이름이라면 사람들이 혼동하거나 지명이 옮아온 경우가 된다.
충주댐과 가장 가까운 갈모실에서 내려오는 도랑을 개차구렁, 개차골이라고 부른다. 건잣마을에 살았던 어떤 분에게 물으니 <개차구렁, 개천구렁, 개천이구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41)앞도랑: 아름말 마을 앞을 지나는 도랑을 앞도랑이라고 불렀다.
42)양지땀: 양지말, 웃말 햇볕이 잘 드는 곳을 말한다. 도랑을 기준으로 큰재쪽을 말한다.
43)음지땀: 음지말, 웃말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을 말한다.
겨울철 눈이 쉽게 녹지 않는다고 한다.
44)성황당: 민마루에도 한 때 성황당이 있었다. 지금 충원교 위 집을 새로 많이 지은 곳은 예전에 산등성이가 있었고 성황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릿들 입구 도랑 근처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느티나무가 성황당이었다고 한다. 정월초에 금줄을 치고 치성을 드리고 풍물을 놀았다고 한다. 산제(山祭)는 봉골에 와서 지냈다고 한다.
45)치마벼루: 치마벼루는 물건너 충원교에서 충주댐 가기전 지등산 자락이 마치 여인네 치마를 펼친듯하다 해서 불린 이름이다. 치메벼루라고도 한다.
46)오막집: 마릿들 위 버던들 여우박골도랑 근처에 있던 집을 말한다. 술을 팔곤 했다고 한다.
47)서마지기배미: 봉골 버던에 있는 큰 논배미를 말한다.
48)텃논, 집앞논: 가까운데 있는 논은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49)텃골 한씨말림: 오래전 종민동에 첫 터전을 잡은 분들은 한씨, 임씨, 유씨 세 성을 가진 분들이라고 전한다. 워낙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다보니 서로 혼인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최근래 몇몇이 혼인하였다고 한다. 너무 가까워 핏줄이 섞일까봐 꺼린 것으로 보인다. 민마루 청주한씨 집안이 텃골 뒷산에도 말림이 있는 것은 이러한 내력이 있기 때문이다.
<민마루의 최근 모습, 사진은 아름말임.
아래사진 멀리 보이는 산능선이 쇠등강이다>
<이 사진들은 오래되었고 국민학교때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다. 멀리 충원교가 놓이고 있다. 강건너 백운석광산 모습이 보인다, 성남초등학교 소장>
<웃말 전나무, 2014년 촬영>
<웃말 산쪽 모습, 2014년 촬영>
<웃말사진, 오래전 사진이다>
<큰재에서 내려다 본 웃말 모습, 2014년 촬영>
<이번 추석때 텃골마을에서 찍은 사진, 민마루 청주한씨 입향조 한가기(韓可箕) 할아버지 문인석(文人石).
비석은 최근에 새로 세웠고 상석(床石)과 문인석은 오래되었다.
인조 17년, 1639년 생(生), 1714년 졸(卒)인 분이다.
2021년 9월 20일 사진>
첫댓글 웃말 지명은 제대로 조사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웃말에 지금도 살고 있는 토박이는 단 한 집입니다. 진작에 서둘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제법 살았을때는 북적였는데 아름말로 이사가거나 외지로 이사나갔습니다.
아름말엔 몇가구 토박이들이 살고 있지만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이 드셨습니다. 이 글에 쓴 내용도 아득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