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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되고 있는 자본주의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 10/21(토) / 동양경제 온라인
이번에는 럭비 월드컵 얘기부터 시작한다.
프랑스 대회도 준결승이 끝나면 10월 29일 결승(일본 시간)만 남았다.
내 인상에 남는 것은 15일 열린 8강전 아일랜드-뉴질랜드. 마지막 10분, 특히 약 5분간의 숨도 쉬지 않는 연속공격의 아일랜드, 계속되는 뉴질랜드의 사투는 대단했다.
■ 왜 '재미없는 일본전'에 국민 다수 감동했나?
한편 일본은 아르헨티나에 져 조별리그 탈락했지만 이것이 재미없는 경기였다. 쌍방 녹온(Knock on) 등 실수의 폭풍이었다. 후반 지친 일본은 뒷심 차이로 완패했다. 모 민영방송의 TV 중계가, 아나운서와 해설자 모두 소란을 피우는 응원을 하는 것을 보고 맥이 빠졌다.
그러나 이처럼 일본전이 재미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나뿐이어서 많은 국민은 감동의 폭풍에 휩싸인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것은, 나는 「럭비 시합을 보고 있었지」만, 일본 국민의 대부분은 「월드컵에 있어서의 일본을 응원하고 싶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즉, 경기 내용 등 둘째, 럭비든 축구든 농구든 뭐든 좋다. 일본 대표가 세계와 싸우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올림픽은 이 상황이 최고로 고조되는 이벤트이다. 인간 육체의 한계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일본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케케묵은 국가에 대한 애착이 사라질 것이고 앞으로는 스포츠 자체를 보는 데만 집중하는 성숙한 엔터테인먼트 소비 활동의 형태가 될 것이다. 라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반대다.
럭비 월드컵은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적인 열기를 높이고 있고 농구 월드컵도 시작됐다. 이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이 우승해 국민들이 감동했던 것이 잊혀질 정도로 매일 스포츠 관람이라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국가대표를 응원하고 즐기려는 소비활동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것 같다.
■ '국가대표가 맞붙는 세계대회'는 훌륭한 비즈니스
왜 그럴까. 물론 주최측과 광고대행사 등 행사장이 노력해 동원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국가대표가 대결하는 세계대회라는 행사는 흥겹고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모든 경기에 일정 수 이상의 관객이 몰리기 때문이다. 즉, 일본전이라면, 일본 소비자는 본다. 프랑스 개최로 프랑스전이라면 스타디움은 초만원이다.
하지만 스포츠만 놓고 보면 일본-칠레전 등으로 결과가 보이는 실력차 경기는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다. 결국 이번 대회에서 즐길 수 있었던 경기는 아일랜드-뉴질랜드전이 전부였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올림픽 유도라면 결승전만 보면 돼. 하지만 그러면 대부분의 경기가 텅 비어버린다. 시청률도 제로가 되고 만다.
반면 일본을 응원하고 열광하고 싶은 사람들은 일본전은 다 본다. 럭비로서는 접전이 아니더라도 응원하는 팀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을 보는 것은 상쾌하다. 그러니까 오히려 다들 보고 만족도도 높다. 달아오르다.
각국 대표마다 각 국민이 있으니 모든 경기가 그렇다. 그러니까 모든 경기에서 돈을 번다. 그리고 결승전은 물론 돈을 번다. 훌륭한 사업이다.
올림픽은 그야말로 훌륭한 발명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상업 올림픽의 원점으로 꼽히지만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등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이사 대부분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공무원이 아니어서 죄가 되지 않아 사직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장대한 부패가 드러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림픽이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형편이 안 좋은 사건은 잊어버리고 올림픽은 여전히 달아오른다. 2030년 동계올림픽은 다시 솔트레이크시티가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즉, 국가라는 것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매우 편리한 것이다. 국민국가란 공동체라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강한 공동체적 의식으로서 비즈니스계의 권력자에 의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있다.
■ 왜 국민국가가 생겼고 지금도 계속 남아 있을까?
그러고 보면 국가, 국민국가라는 것은 우리도 모르게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마르크스적 표현이 되겠지만 우리를 모르게 착취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가.
왜 이런 국민국가라는 것이 생겨나고 영속적이라고 생각될 때까지 계속 남아 있는가. 현대 우리가 볼 때 근대 자본주의가 탄생했을 때 국민국가를 수용해 버린 근대 유럽인들은 어리석지 않은가.
즉, '마을'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중세 유럽에서는 피할 수 없는 굴레로 꽁꽁 묶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중세의 공동체적 사회에서 벗어난 것은 멋진 일인데,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되자 중세까지의 공동체와는 별개의 공동체에 불과한 국민국가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왜 그들은 기꺼이 속했을까.
그러나, 반대로 과거의 「그들」로부터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비판을 받을 것이다.
너희 현대인이야말로 어리석지 않은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국가별 대항 세계선수권대회 축제에 동원되어 돈을 직접적(세금 등) 간접적(CM을 보면서 세뇌됨)으로 착취당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고 흥분하고 있다. 바보가 아닐까.
더구나 21세기 너희는 더 이상 국민국가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근대에 국민국가라는 틀이 없으면 곧바로 인근 국민국가에 포섭되고 만다. 국민국가라는 틀을 넘어선 '제국'에 지배당하고 만다.
국민국가는 자위를 위한 최강 최선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필요성을 바탕으로 국민국가를 받아들인 것이다. 너희는 국민국가라는 것을 잊고 있다. 아니 세금을 내거나 마스크를 쓰도록 강요받거나 귀찮은 일을 강요당하는 방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에 따라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법을 제정하는 의원들도, 그 수장인 총리나 대통령도 믿을 수 없다. 좋아하지 않기는커녕 지지조차 못한다.
불행하게도 19세기나 20세기 전반인 것처럼 착각한 군주(혹은 제국의 황제)가 무력으로 쳐들어오면서 비로소 국민국가의 틀이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없는 나라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과 기업들은 국경은 방해가 되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경제활동을 제약할 뿐인 방해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방해받고 싫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국가라는 것을, 시름없이(그 우울도 국민국가라는 틀에서 왔을지도 모르는데)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 신속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올림픽, 월드컵을 재미있게 사용하고, 그것이 끝나면 총리의 불평을 하고, 나라라는 얽매임이 없어야 하는데, 국적 따위는 방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돌아간다.
■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러나 실제로는 가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이용하는 월드컵 때도 비즈니스 권력을 가진 행사회사나 IOC에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쟁을 위해 국민국가는 필요할 뿐 그 이외의 국면에서는 방해만 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만은 아닌가?
국민국가란 전쟁을 위한 동원수단이라는 것은 고교 세계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에 가까운 상식이니 새삼스럽게 여기서 강조할 일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전쟁 이외의 국가 활동의 의의를 찾지 못하는 국민이 대다수이고, 그들은 가끔 국민의 혜택을 맛보는데, 그때야말로 국가 군주의 전쟁 동원만큼이나 비즈니스 권력자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피해가 심대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강조하듯이 국민국가라는 틀을 이용하여 비즈니스 권력자가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국민'이라고 명명된 시민을 착취한다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의 적어도 하나)인 것이다.
이는 더욱 웅장한 근대 자본주의 구조를 시사한다. 즉, 「국민국가」를 요소의 하나로서 성립하고 있는 근대 자본주의란, 「비즈니스 권력자」, 좀 더 전통적인 말을 사용하면 「자본가」가, 국가를 이용해, 자본을 더욱 증대하는 시스템으로서 이용되어 온 것이다.
국민국가끼리 전쟁을 하면 군대와 무기가 필요하고, 그것들을 조달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공급함으로써 자본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했다. 어느 국가나 자본을 갈망했기 때문에 국가와 자본의 역학관계는 자본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래서 자본은 증대되었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경제성장도 병정을 늘리고 병정이 될 수 있는 국민의 만족도, 현대로 치면 종업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자본은 무기조달이나 용병 같은 가시적인 자본조달을 넘어 국가의 명운을 좌우했다.
■ 근대 자본주의, 국민국가, 민주주의가 기능부전으로
그리고 이는 무력에 의한 전쟁 이외에도 마찬가지로 금융시장이란 바로 자본을 얼마나 끌어들이느냐, 자기 편에 설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돼 왔다. 이것이 모든 면에서 성립되어 왔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라는 것도 깨끗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왕후귀족 옛 영주층으로부터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빼앗기 위해 민중을 국민으로 명명하고 동원한 구조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손에 손을 잡고 같은 시기에 발전해 온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란 시민을 국민국가라는 형태로 군주가 자기 나라를 위해 동원하고 그 국가를 이용해 자본이 증식해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시민은 국가에 착취당하고 국가는 자본에 착취당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소비자는 자본에 직접 착취당하고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근대 자본주의와 국민국가, 이 두 시스템은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더욱이 민주주의도 분명히 기능부전에 빠져 있다.
시스템에는 수명이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이 이용하면서 형성되어 온 것으로 제도 설계가 되어 설치된 것이 아니다. 편의상, 시스템이라고 불러 논의해 왔지만, 그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설계도가 없는, 사실상의 의사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경년열화(経年劣化)로 붕괴해 간다.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대혼란,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카오스(혼돈상태)가 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럭비 월드컵에서 자국 팀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는 국적은 무관하게 뽑을 수 있다. 즉, (1) 그 나라·지역에서 출생, (2) 부모 또는 조부모 중 1명이 그 나라·지역 출생, (3) 직전 5년간 계속 거주(2021년 말까지는 3년간이었다), (4) 통산 10년 거주 중 어느 하나를 충족하면 그 나라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일회성이긴 하지만, 선수는 소속 국가를 변경할 수 있다. 즉, 과거에 A국 대표였던 선수가 B국 대표로서 출전할 수 있고, A국을 쓰러뜨려 B국 국민으로부터 갈채를 받는 것이다. 엉망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 형태의 일본 대표를 기꺼이 응원하는 것이다.
■ 피폐한 자본주의 다음에 오는 것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단, 편리주의적인 장소에서,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공동체를 편리하게 변형해, 차례차례로 갈아타는 것이다. SNS 커뮤니티 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편리한 공동체를 자유자재로 원할 때(대부분 일시적으로만) 이용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다음 사회체제는 유연한 로컬 커뮤니티, 국가는 필요 없지만 로컬에서 유연하게 얽힘과 공감대를 균형 있게 구분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로 구성될 것이다.
국민국가는 필요 없다. 편리한 공동체는 필요하다. 그 결과 편의점 커뮤니티 시스템이라는 사회가 자본주의 다음에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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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회사 사계절보 온라인'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오바타 세키 : 게이오 대학 대학원 교수
https://news.yahoo.co.jp/articles/b7d472e68037148a4b98592e55a7793d732265ac?page=1
崩壊している資本主義の後に来るものは何なのか
10/21(土) 18:32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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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経済オンライン
ラグビーワールドカップのフランス大会で、日本はアルゼンチンに27対39で敗れた。筆者には「つまらない試合」だったが、国民の多くは感動した。それはなぜか(写真:Getty Images)
今回は、ラグビーワールドカップの話から始める。
フランス大会も、準決勝が終われば、あとは10月29日の決勝(日本時間)を残すだけである。
私の印象に残っているのは、15日に行われた準々決勝の「アイルランド対ニュージーランド」。最後の10分、とくに約5分間の息もつかせぬ連続攻撃のアイルランド、しのぎ続けるニュージーランドの死闘はすばらしかった。
■なぜ「つまらない日本戦」に国民の多くが感動したのか
一方、日本はアルゼンチンに負けてグループステージでの敗退となったが、これがつまらない試合だった。双方ノックオンなどミスの嵐だった。後半、疲れた日本は、底力の違いで完敗した。某民放のテレビ中継が、アナウンサーも解説者も騒ぎ立てる応援をしているのを見て、げんなりしてしまった。
しかし、このように日本戦がつまらなかったと言っているのは、日本では私だけで、多くの国民は感動の嵐に包まれたようだ。いったいなぜだろうか。
それは、私は「ラグビーの試合を見ていた」が、日本の国民の多くは「ワールドカップにおける日本を応援したいだけだったから」である。つまり、試合の内容など二の次、ラグビーでもサッカーでもバスケットボールでも何でもいい。日本代表が世界と戦っていればいいのである。
もちろん、オリンピックはこの状況が最高に盛り上がるイベントである。人間の肉体の限界を見たいのではなく、日本の選手が金メダルをとるのを見たいのである。
しかし、今後はこんな古臭い国家への愛着などとっくに消えうせ、これからはスポーツそのものを見ることだけに集中するような、成熟した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消費活動の形になっていくだろう。
と信じたいが、実際はむしろ逆だ。
ラグビーワールドカップは、年を追うごとに世界的な盛り上がりを高めているし、バスケットボールのワールドカップも始まった。もはや、3月にワールドベースボールクラシックで日本が優勝して国民が感動したのが忘れられかけているぐらい、毎日毎日、スポーツ観戦という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分野において、国家代表を応援して楽しむという消費活動がますます盛んになっているようだ。
■「国家代表が対決する世界大会」はすばらしいビジネス
なぜか。もちろん、それは、主催者側と広告代理店などのイベント屋が努力して動員を仕掛けているからである。この「国家代表が対決する世界大会」というイベントは盛り上がるし、何より儲かる。
なぜなら、すべての試合に一定数以上の観客が集まるからである。すなわち、日本戦であれば、日本の消費者は見る。フランス開催でフランス戦なら、スタジアムは超満員である。
しかし、スポーツだけを見るとなると、「日本対チリ戦」などという結果が見えている実力差のある試合など、ほとんど誰も見ない。「結局、今大会で楽しめた試合は『アイルランド対ニュージーランド戦』だけだった」ともなりかねない。
オリンピックの柔道なら、決勝戦だけ見ればいい。しかし、それではほとんどの試合がガラガラになってしまう。視聴率もゼロになってしまう。
一方、日本を応援して熱狂したい人々は、日本戦はすべて見る。ラグビーとしては接戦でなくとも、応援しているチームが圧倒的に勝つのを見るのは爽快である。だから、むしろみんな見るし、満足度も高い。盛り上がる。
各国代表それぞれに各国民がいるから、すべての試合がそうなる。だから、すべての試合で儲かる。そして、決勝戦はもちろん儲かる。すばらしいビジネスである。
オリンピックはまさにすばらしい発明である。1984年のロサンゼルスオリンピックは「商業五輪」の原点と言われるが、2002年のソルトレークシティーオリンピックなどは、IOC(国際オリンピック委員会)の理事のほとんどが賄賂をもらっていることが判明したにもかかわらず、公務員でないため罪にならず、辞職で済んでしまった。
2021年の東京オリンピックでも壮大な汚職が明らかになったが、大半の人々はオリンピックという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を失いたくないから、都合の悪い事件は忘れてしまい、オリンピックは依然盛り上がる。2030年の冬季オリンピックは、再びソルトレークシティーになる可能性もあるようだ。
つまり、国というのは、ビジネスにとって非常に便利なものなのである。国民国家とは、共同体という世界から抜け出すために生み出されたもの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なぜか強い「共同体的な」意識として、ビジネス界の権力者によって都合よく利用できるものとなっている。
■なぜ国民国家が生まれ、今も残り続けているのか
そう考えると、国、国民国家というものはわれわれを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不幸にしているものなのではないか。マルクス的な表現になるが、われわれを気づかないうちに搾取する手段にすぎないのではないか。
なぜ、こんな国民国家というものが生まれ、永続的と思えるまでに残り続けているのか。現代のわれわれから見ると、近代資本主義が誕生したときに、国民国家を受け入れてしまった近代欧州の人々は愚かだったのではないか。
すなわち、「ムラ」という共同体に所属するということは、中世の欧州では逃れられないしがらみでがんじがらめになることだと思われていた。それゆえ、中世の共同体的な社会から抜け出したのはすばらしいことのはずなのに、近代資本主義社会が始まると、中世までの共同体とは別の共同体にすぎない国民国家という新しいシステムに、なぜ「彼ら」は喜んで属してきたのだろうか。
しかし、逆に過去の「彼ら」からも、われわれは以下のような批判を受けるだろう。
君ら現代人こそ愚かではないか。オリンピックやワールドカップで、国別対抗世界選手権の祭りに動員され、金(カネ)を直接的(税金など)、間接的(CMを見ることにより洗脳される)に搾取されているのに、むしろそれを喜び、興奮している。馬鹿ではなかろうか、と。
しかも、21世紀の君たちは、もはや国民国家など必要ないはずだ。近代においては国民国家という枠組みがなければ、すぐに近隣の国民国家に取り込まれてしまう。国民国家という枠組みを超えた「帝国」に支配されてしまう。
国民国家は、自衛のための最強・最善の手段だったのだ。われわれはそういう必要性に基づき、国民国家を受け入れたのだ。君たちは国民国家というものを忘れている。いや、税金を取られたり、マスクをすることを強いられたり、面倒なことを強制される邪魔なものだと思っている。
しかし、法律には服さなければならず、それにもかかわらず、その法律を制定する議員たちも、そのトップの首相や大統領も、信用できない。好きでないどころか、支持すらできない。
不幸にも、19世紀か20世紀前半であるかのように勘違いした君主(あるいは帝国の皇帝)が武力で攻め込んできて、初めて国民国家の枠組みが必要であることを思い出す。しかし、そういう事件のない国の、平和ボケの人々や企業は、国境は邪魔で「なければいいのに」と思っている。国は経済活動を制約するだけの邪魔なものにすぎない。
それにもかかわらず、国民たちは、邪魔でいやなものだと思っている国民国家というものを、憂さ晴らしに(その憂鬱も国民国家という枠組みからきているかもしれないのに)、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の道具として、手っ取り早くストレス発散できる道具として活用している。
オリンピック、ワールドカップを楽しく使って、それが終わったら、首相の文句をいい、国というしがらみなんてなければいいのに、国籍なんて邪魔だという思いに戻る。
■「近代資本主義」の本質とは何か
しかし実際には、たまに役に立つと思って利用しているワールドカップのときも、ビジネス権力を持つイベント会社やIOCに経済的に搾取されているだけなのだ。
こう考えてくると、戦争のために国民国家は必要なだけで、それ以外の局面では邪魔なだけにな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 人々を不幸にしているだけではないのか?
国民国家とは戦争のための動員手段であるというのは、高校の世界史教科書には出てこないが、それに近い常識であるから、今さらここで強調すべきことではない。
今、重要なのは、戦争以外の国家としての活動の意義を見いださない国民が大多数となっており、彼らはたまに国民のメリットを味わうが、そのときこそ国家君主による戦争への動員と同様に、ビジネス権力者によって搾取される被害が甚大になっていることに気づいていない、ということだ。
この事実こそが強調するように、国民国家という枠組みを利用して、ビジネス権力者が消費者かつ労働者である「国民」と名づけられた市民を搾取するというのが、近代資本主義の本質(の少なくとも1つ)なのである。
これは、さらに壮大な近代資本主義の構造を示唆している。すなわち、「国民国家」を要素の1つとして成立している近代資本主義とは、「ビジネス権力者」、もっと伝統的な言葉を使えば「資本家」が、国家を利用して、資本をさらに増大するシステムとして利用されてきたもののことである。
国民国家同士が戦争をすれば、兵隊と武器が必要となり、それらを調達するには金(カネ)が必要となる。そのカネを供給することで、資本家は戦争の勝敗を決定した。どの国家も資本を渇望したから、国家と資本の力関係は資本に圧倒的に有利だった。
だから、資本は増大し、戦争は続いた。経済成長も兵隊を増やし、兵隊となりうる国民の満足度、現代で言えば従業員満足度を上げるための手段であったから、資本は武器調達や傭兵というような目に見える資本調達を超えて、国家の命運を左右した。
■近代資本主義、国民国家、民主主義が機能不全に
そして、これは武力による戦争以外でも同じことで、金融市場とは、まさに資本をどれだけ呼び込めるか、味方につけられるかで勝負は決まってきた。これがすべての面で成立してきた。
さらにいえば、民主主義というものもきれいなものとして人々に教え込まれているが、見方を変えれば、王侯貴族・旧領主層からブルジョワジーが権力を奪うために、民衆を「国民」と名付けて動員した仕組みと捉えられる。だからこそ、資本主義と民主主義は手に手を取って、同時期に発展してきたのである。
近代資本主義とは、市民を国民国家という形で君主が自分の国のために動員し、その国家を利用して資本が増殖していくという現象のことだった。市民は国家に搾取され、国家は資本に搾取された。そして、19世紀には資本家が労働者を搾取していることに悲鳴が上がったが、現代においては消費者は資本に直接搾取されても無自覚になってしまっているのである。
今や、近代資本主義と国民国家、この2つのシステムは同時に崩壊しかかっている。さらに民主主義も、明らかに機能不全に陥っている。
システムには寿命がある。しかも、資本主義は資本家たちが利用する中で形づくられてきたもので、制度設計をされて設置されたものではない。便宜上、システムと呼んで議論してきたが、それはシステムではなく、「設計図のない、事実上の擬似システム」にすぎないのである。だから、自然に経年劣化で崩壊していく。それが今起きているのだろう。
では、そのあとはどうなるのか。大混乱、アナーキズム(無政府主義)、カオス(渾沌状態)となるのだろうか。
私は、違うと思う。
人々は、ラグビーワールドカップで自国チームの選手を応援するのが大好きだ。しかし、国の代表選手は国籍は無関係に選ぶことができる。すなわち、(1)その国・地域で出生、(2)両親または祖父母のうち1人がその国・地域生まれ、(3)直前の5年間継続居住(2021年末までは3年間だった)、(4)通算10年居住――のうち、どれか1つを満たせば、その国の代表選手になれる。
しかも、1回限りではあるが、選手は所属する国を変更できるのである。つまり、過去にA国代表だった選手が、B国代表として出場でき、A国を倒して、B国の国民から喝采を浴びるのである。滅茶苦茶だ。しかし、国民たちは誰もそんなことは気にしない。この形での日本代表を喜んで応援するのである。
■疲弊した資本主義の次に来るもの
これは何を意味するか。人々は、共同体に所属するのが大好きなのである。ただし、ご都合主義のいいとこ取りで、勝手に自由自在に共同体を都合よく変形し、次々と乗り換えるのである。SNSコミュニティーなどを見てもわかるように、便利な共同体を自由自在に好きなときに(大概は一時的にのみ)利用したいのである。
したがって、次の社会体制は、柔軟なローカルコミュニティー、国家は要らないが、ローカルでフレキシブルにしがらみと共感をバランスよく使い分けられる、小さな共同体から構成されるものとなるだろう。
国民国家は要らない。便利な共同体は要る。その結果、「コンビニエンス・コミュニティー・システム」という社会が、資本主義の次に来ることになるだろう。
(当記事は「会社四季報オンライン」にも掲載しています)
小幡 績 :慶應義塾大学大学院教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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