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향인 완도에서 성실하시고 열정이 넘치는 부모님 밑에서 딱히 속을 썩이는 일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믿음의 배경이 전무한 가문에 시집오신 어머니는 많은 어려움속에서도 굳게 믿음을 지키면서 사셨고 그런 어머니 영향을 받아서 저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진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명절 때 제사를 지내면 할아버지 집에 모여서 아버지와 저 그리고 동생은 할아버지와 함께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는 한자가 가득한 병풍과 음식을 앞에 두고 절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정확지는 않지만 제사 때 절을 하는 것이 꺼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절 저녁만 되면 할아버지 집을 떠나 혼자 하염없이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추웠지만 한참을 그렇게 동네를 방황하다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면 여지없이 할아버지의 호통이 날아왔습니다. 어머니도 걱정스럽게 ‘어딜 그렇게 오래 갔다 왔냐’며 걱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매년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저의 짧은 가출을 보시고 어머니도 눈치를 채시고, “OO아, 이제 안그래도 돼, 엄마가 애기할게, 너 절 안하겠다고.” 얘기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애기를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싫어하실 것 같았고 저의 명절 가출은 매년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고등학교를 타지로 진학하면서 명절 제사에 참석할 일도 줄어 들었습니다.
고향인 완도를 떠나 순천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교회는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 보셨고, 저는 잘 다니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책감을 해소하고자 혼자 시편, 잠언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저는 말씀을 읽다가 보면 하나님의 징계, 심판 같은 무서운 내용이 나오면 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바빴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식을 좀 찾아 보고자 읽은 성경은 점차 마음 속에 “교회를 안가면 지옥가나?” 하는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난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교회를 안 나가고 있지만 난 하나님을 믿고 있고 또 하나님을 계속 믿고 싶은데 교회를 안 나가서 지옥에 가야 한다면.. 이건 너무 불공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불안하고 고된 고등학교 시절 끝에 저는 서울 한남동의 단국대학교 전자과에 입학했습니다.
전자과 OT 출발을 위해 체육관에 모여 있었고 저는 약간은 삐딱한 태도로 벽에 기대어서 팔짱을 끼고 무리들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감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것 같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한 형이 다가와 웃으면서 이런저런 것을 보여주며 말을 걸었습니다.
당시 그 형이 하나님을 믿냐고 물었고 저는 믿는다고 대답 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지를 계속 설명해 주는걸 보며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 왜 자꾸 뭘 설명하지?”, “이런 대화가 서울에서는 당연한 것들인 건가?”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형이 하는 말을 잘 듣지 않고 있었고 형이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자, ‘아, 번호를 주면 가려나 보다’ 생각하며 번호를 주었습니다.
OT가 끝나고 형과 학교 앞 치킨 집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이 해주는 이런 저런 애기를 듣고 있자니.. 불쑥 ”이 형이 성경은 많이 아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형한테 물어보기에 딱이겠다 생각하며 “교회에 안나가면 지옥가요?” 하고 물어봤습니다.
혹시나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했던 제 걱정과는 다르게 형은 제 질문을 듣더니 씩- 웃으며 성경을 펴서 저에게 읽어보라고 했고 그러기를 몇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1:18)”
질문에 성경으로 대답해주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답이 명쾌해서 좋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의 모임이지 건축물이 아니다. 알게 되고, 몇 년 동안 끈질기게 저를 괴롭혔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저는 형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형에게 바로 어느 교회를 나가는지 물었고 형이 다니는 교회를 따라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형과 개인 교제, 전체 모임과 2부 성경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Campus 기간은 하나님이 제게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 주신 기간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형제들 속에서, 저도 믿음이 자라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이 자라갔습니다.
저희 과는 4학년 때, 졸업 작품을 제출하는데 대부분 돈 주고 사와서 제출하지만 저는 거의 유일하게 직접 작품 제작을 했습니다. 왜 우리 팀만 이렇게 사서 고생하느냐는 분위기도 있었기에 제가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했고, 고생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자로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간의 준비 끝에 완성한 졸업 작품이었는데 난감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전시회 당일 새벽, 잘 동작하던 작품이 고장이 났고 낙제점을 받을 위기 속에서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원인을 잘 모르겠는데 빨리 해결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 해주셔서 기적같이 고쳐지게 해주셨고 그해 졸업작품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지금 저의 직장생활은 시작조차 불가능 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Campus 기간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수많은 은혜의 홍수 속에서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달았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기간이 되었습니다. 취직하면 인생이 평안해 질 것이다 생각하며 어서 서른살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직장생활 중 어떤 때도 그저 평안 하다 생각 할만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교육기간 없이 신입사원으로 일을 해야 해서 매일 꾸중과 호통속에 조마조마 하며 다녔던 첫 회사, 작은 스타트업이라서 인력 채용부터 Hw, SW 개발 총괄책임까지 제가 담당해야 했던 두번째 회사, 1년 가까이 주말 없이 새벽 1시나 2시 까지 일해야 했던 세번째 회사, 회사는 바뀌어도 직장생활은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고 편안한 직장생활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주님과의 교제는 저에게 위로와 안정감, 그리고 평안을 주었습니다. 주님과의 교제, 주님과의 동행이 아니었으면 저는 첫 번째 회사에서 멈추었을 것 같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동기와 비교해도 많이 부족했던 제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많이 배우며 성장 할 수 있었고 이직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 새로운 회사에 가도 다시 오고 싶으면 다시 오렴. " 하는 격려와 호의 속에 이직을 했습니다.
특히 세번째 회사에서 맡은 삼O프로젝트때는 새벽 퇴근하고, 잠깐 눈 붙이고, 아침 출근하는 일상을 거의 1년간 하면서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싶은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하루하루 해결할수 없는 문제들이 쏟아지는 날들 속에서 순간순간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신 아이디어로 문제가 해결되게 해주셨습니다. 고비 고비마다 열정과 재능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것들이 간절함과, 기도로 해결되면서 그때 만든 칩이 내장된 핸드폰이 4,000만대 이상 판매되는 기염을 토하며 회사 매출을 이끌 수 있게 되었고 그 해 그 회사는 세계에서 Touch IC를 가장 많이 판매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 때의 실적을 인정받아서 지금의 회사로 좋은 조건에 이직을 제안 받아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캠퍼스 시절 예수님과 말씀의 은혜 속에서 성장하고,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을 훈련하지 않았더라면, 허겁지겁 살고 걱정에 걱정만 더하는 인생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도전들이 있다고 해도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해 갈 때 베풀어 주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 것이 기대가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말씀처럼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구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변화된 인생이 너무 놀랍습니다.
주님의 배워가는 삶에 하나님께서 더하신 축복이 정말 놀랍네요!!
아멘!!
놀라워용
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놀라워요!
오호~~ 놀라워요!!
와 너무 은혜로워요
은혜로워요
은혜롭습니다
오 놀라워요
은혜롭네요
다시봐도.. 참 은혜롭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요
은혜롭네용
오 정말 놀랍고 은혜롭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베스트네요
귀한간증나눔 감사드립니다!!
믿음의 격려가 되어요^^
와 은혜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