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추천하는 소설
유현종의 <들불>
강 인 수
유현종의 『들불』은 동학혁명 시절 천민 임여삼의 일대기라 할 수 있다. 서구적 양식에서 벗어난 우리의 양식을 시도한 소설로 천민 내지 민중의 삶을 통해 민중의식의 원류를 모색한 작품이다.
주인공 임여삼은 아버지 임호한이 민란을 일으켜 사또를 살해하고 도망치자, 임여삼은 잡혀 관노가 되고 어머니와 여동생 상녀도 종이 된다. 유순하고 일 잘하는 무식한 官奴 임여삼이 동학혁명의 와중에서 각성되어가는 민중으로 성장해 간다.
여삼의 친구 곽무출은 일본의 앞잡이로 뒷날엔 전도사가 된다. 여삼은 기총이 되어 전주입성에 공을 세운다. 청일전쟁이 일어나려함에 전봉준 녹두장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났다가 가을엔 공주를 점령하기 위해 북접 최시형 교주와 손을 잡고 공주로 진격하지만 관군과 왜군의 합동 작전과 신무기에 패배하여 많은 동학도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살아남은 동학도들은 모두 도망친다.
이 소설의 주제는 작가 유현종이 말했듯이‘민중 의식의 각성’이다. 나는 1979년 단편 「밀물」(월간문학 1979.11월)로 등단하고 나자, 요산 김정한 선생이 여러 번“소설을 쓰려면 방향 설정이 중요해.”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소설가는 어떤 문학사상이나 문학정신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80년 정초 유현종의『들불』 (1972년부터 1974년까지 『현대문학』연재를 걸쳐 1975년 세종출판사에서 간행한 역사소설 376쪽)을 읽게 되었다. 내겐 너무 충격적이고 감명 깊은 소설이었다.‘임여삼 같은 인물의 창조’‘그 시대 민중의 삶을 리얼하게 밝힌 명작’이라 생각되었다. 두 번째는 밑줄을 쳐 가면서 읽었다.
동학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무식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목숨 바쳐 혁명의 대열에 참가하게 했을까? 이런 말들이 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만 3년 동안 나름대로 동학공부에 매진했다. 한문으로 된 경전『동경대전』과 한글가사인『용담유사』는 동학의 창도주 수운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경전이다. 그리고 『전봉준의 생애와 사상』(1982.양영각. 신복룡) 이 세 권을 정말 열심히 노트해 가면서 읽었다. 그리곤 부산의 안관성(원곡학원 이사장, 천도교 도정)선생을 만났고, 천도교 중앙총부의 오익제 교령과 동학의 이론가 표영삼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들을 여러 번 만나 동학(천도교)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나갔다.
부산대학교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동학소설연구」란 제목으로 1989년 학위를 받게 되었다.「동학소설연구」는 1910년~1938년의 개화기 신문화운동기에 [천도교회월보] [신인간] [개벽] 등의 신문과 잡지에 이종린 이광수 오상준 등이 발표한 동학을 소재나 주제로 한 소설 36편을 찾아내어 분석한 논문이다.
또 하나는 1994년 동학 100주년 기념 작품으로 발간한 장편『최보따리』(상하 2권, 서울 풀빛 출판사)다. 『최보따리』는 13년간 동학 연구의 결산 작품이지만, 내용이 너무 무겁고 동학사상은 현세에 부합되지 않는 탓인지 초판 5천권에서 끝나버린 게 너무 아쉬웠다. 동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민중이란? 이런 의문을 가지고, 6년 동안 동학에 대해 연구와 현장 탐방을 했다. 그 사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던 것은 동학 제2세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과 19세기 말의 민중의 삶이었다. 보따리 하나 둘러메고 관의 박해와 지목을 피해 심심산골에 잠적하여 인간지상주의를 실천한 인고의 37년을 생각하면 절로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해월 선생이 메고 다녔던 보따리에는 수운 선생이 손수 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해월선생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나는 3년 동안 배낭을 짊어지고 20여 차례 혼자 여행을 떠났다. 내가 동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장편 『최보따리』를 쓰게 된 동기는 유현종의『들불』을 읽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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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仁秀 약력
1979년 단편 「밀물」(월간문학)로 등단. ROTC 2기생 5사단 근무. 부경대명예교수. 대표저서로는『밀물』(1981. 유림사) 『낙동강』(1992, 남도)『최보따리』(1994, 풀빛) 『아버지 어렸을 적에』(1997, 집사재). 『어부의 노래』(2008, 세종) 『영남알프스』(2023, 세종) 등. 부산광역시문화상(2000.) 한국해양문학상대상(2008). 부산문협회장 역임(2004-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