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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그때까지 쥐죽은 듯 잠자코 듣고만 있던 우아영이 오진숙의 등 뒤에서 나타나며 불쑥 내뱉었다.
“왜들이래요? 앞으로 일주일 뒤 도치오빠 싱글된다는데?”
“뭣? 씽그을?”
놀란 오진숙이 입을 벌리고 눈동자를 팽창했다.
이감독도 오진숙 만큼 놀랐다.
“뭐야? 싱글은 아무나 하나? 결혼이 무슨 골픈 줄 아나? 골프야 박인비처럼 노력하면 되겠지만 유부남이 무슨 수로 독신 되나? 착각은 자유롭게 하되 꿈은 깨쇼.”
이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목소리도 커져 있었다. 단단히 흥분했다는 증거다.
싱글. 싱글은 뭐야?
호텔침대 사용해 본 사람은 금방 알아 차렸겠지만, 모텔만 전문적으로 드나 든 사람은 모를 수 있는 말이다.
유스호텔을 제외한 모든 호텔이나 리조트엔 싱글침대와 더블침대가 있다. 이 침대를 비견해서 독신이나 솔로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주로 싱글이란 용어를 더 상용하는데, 싱글이란 말을 알아들은 이감독은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실망했다.
자신은 싱글이 분명하지만 도치씨가 싱글 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즉, 다시말해 도치씨가 독신된다면 도치씨와 우아영의 사이를 적당하게 이간질해서라도 우아영을 반품 받아 보려했던 모든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확률이 커졌기 때문이다.
너무 놀란 이감독은 한숨도 쉬지 못했다.
도치씨가 솔로 된다는 우아영의 말이 이감독에겐 치명적이었다. 우아영을 ‘긴자꾸’라고 생각했던 이감독은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온 것이라 찰떡같이 믿었는데 이 무슨 해괴한 소리냐? 밀물이 빠져나간 갯바위처럼 이감독의 마음은 울퉁불퉁 거칠어졌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긴자꾸를 그 20분의 1인 백세시대 44%를 살아 온 자신의 코앞에 있다고 생각한 이감독의 정신은 정상상태가 아니었다.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냐.
왔을 때 확실히 해!
골대 앞에서 민기적거리다 골대 맞히면 골 되나?
이감독은 밤잠 설치며 봤던 지난 리우올림픽축구의 망한 장면을 떠 올리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이감독은 우선 우아영의 말을 뒤집어야 할 무결함이론을 찾아 머리를 굴렸다. 허지만 얼른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땐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것이 최선이다.
이감독이 우아영의 말을 부정하기 위해 우아영의 말을 덮어 씌웠다.
“왜 말이 없어?”
“도치오빠 싱글된다는데 무슨 말요?”
“박인비 봐! 모든 사람들이 이제 골프 끝났다고 손가락질했잖아?”
“그래서요?”
“역시 박인비는 골프 퀸이야. 삼대가 골프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골프 그만 두냐? 말도 안 되지.”
“여기서 박인비는 왜 끼어드요? 이감독의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헤엥?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박인비가 금메달 먹은 게 우연이오? 필연이지. 박인비가 뱃속에서 나오면서 골프 배워 나왔소? 살다 골프했지. 그게 팔자 아니고 뭐야?”
“도대체 무슨 말씀하시려는 거에요?”
오진숙이 짜증스럽게 이감독을 땡벌처럼 쏘았다.
“몰라서 그러냐?”
“뭘요?”
“딱 잘라 말할께비.”
“자르던지 부러트리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쪼아! 마누라 있는 놈이 어떻게 싱글 되냐? 이 말이다. 도장 찍고 한번 개통하면 평생 마누라지. 죽으나 사나 마누라하고 살아야 하는 겨. 그래야 나중에 금메달 받지.”
“누구한테 금메달 받아요? 마누라가 올림픽 종목이에요?”
“흐흐흐. 그 말 나올 줄 알았다.”
“네에?”
“인간이 결혼해서 25년 되면 뭐라 그려?”
두 여자는 네 눈만 멀뚱멀뚱 묵묵부답이고 도치씨가 말했다.
“은혼 아냐?”
“은혼? 어떻게 알지? 그럼 그 이벤트도 알겠네?”
“은혼식!”
“옳거니 맞네. 그럼 50년은 뭐야?”
오진숙이 아는 체 나섰다.
“금혼식이겠네요.”
“맞아 우리 미스오 백점이다. 바로 그게 금메달인겨. 박인비 금메달보다 더 고귀한거여. 모두들 이제 학습했는가? 그러니께, 죽으나 사나 골프해서 금메달 얻은 박인비처럼 되려면 도치씨도 죽으나 사나 마누라하고 50년은 살아야 되는겨. 금메달 안 받고 싶남? 금메달이 앞집 애 이름이야?”
이감독은 제풀에 스스로 흥분했다.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감독의 입에서 튄 침을 뺨에서 손가락 끝으로 닦아내면서 오진숙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럼 동메달은요? 감독님 같은 분이에요? 요절한 아내보다 염치없이 더 오래 사는 사람 말이에요.”
오진숙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이감독이 의미심장하게 우아영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인생에 동메달은 없는 법이여. 기껏 동메달타려고 사자부활전 나가냐? 결승전뿐인 게 인생이여. 금 아니면 은이재. 그렁께 나는 은메달은 확보한 셈이여. 알았써? 이제 나도 인생의 금메달 따보려고 슬슬 준비중이유. 근디 고것이 말씀이야.”
이감독은 우아영을 또 한 번 흘깃 쳐다봤다.
공교롭게 우아영과 두 눈이 딱 마주쳤다.
첫댓글 우아영이 지금도 도치 편인가 봅니다.
그럼 도치 작업이 헛되지는 안았나 보군요.
이감독 크일났네 눈을 불아려 봤지만 모든게 끝난것 아닐까?~ㅎㅎ
난리라도 나는줄 알았더니 당돌한 우아영의 솔로라는 말한마디
일주일후면 도치가 그렇게 되면 결혼 한다는 건지
남의일에 상관 마라는 뜻으로 듣자.
이감독은 눈깔이 뒤집히는것 같군요. 아영이를 이감독이 사모했나비여~~ㅎㅎㅎ
ㅋㅋㅋ남자들 마음은 종잡을수 없네요
ㅋㅋㅋㅋ
그럴리가요? 저를 보세요..일편단심 민들레 아닙니까?...ㅋㅋ
우아영이 도치에게 마음이 있고 이를 질투하는 감독님 상황이 흥미있네요 ^^
ㅎ
그러게요..계속지켜 봐주세요..
고운 밤되시구요
남자도 질투를 많이 하네요..
이감독 눈알이 튀어나오 도록요
ㅎ
그래서 더웠나봅니다
그런데 기상청이 약속을지키네요....ㅋㅋㅋ...어 춥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