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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er : 맥주 스타일 사전
독일 맥주 순수령
맥주 순수령
맥주 하면 떠오르는 나라, 맥주의 정통파로 여겨지는 국가가 독일이 된 원동력은 아무래도 독일 맥주 순수령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봅니다. 독일어로는 ‘Reinheitsgebot’, 영어로는 ‘German Purity Law’라고 불리는 독일 맥주 순수령은 맥주는 오로지 보리, 물, 홉으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효모(Yeast) 또한 발효주 맥주에 있어서는 핵심적인 재료이지만 16세기에는 효모라는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밝혀지기 전까지 말이죠.
1516년 공표한 법으로 바이에른의 공작이 맥주 순수령을 반포하게 된 까닭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 번째는 보리 맥아 이외에 맥주의 당원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밀(Wheat)과 호밀(Rye) 등을 식량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입니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유럽 식문화에서 빵의 주 원료인 밀과 호밀이 맥주의 재료로 사용되면 그만큼 빵 생산에 필요한 재료들이 맥주에 투입돼 빵의 가격의 상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맥주의 재료를 빵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보리에 국한시키면서 식량에 필요한 밀과 호밀의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바이에른 공작이 맥주 순수령을 반포한 목적들 중 하나로 설득력 있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홉이 맥주의 주 재료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검증되지 않은 야생 허브 사용에 따른 부작용 등을 방지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맥주부터 맥주 순수령이 공포되기 이전 시기인 중세 유럽까지 맥주는 체계화된 양조라기보다는 우연에 기대는 양조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정원에서 자생하는 야생 허브를 이용해 맥주를 만들고, 농장에서 구할 수 있는 곡식들을 사용하여 맥주를 만드는 수준이었습니다. 몇몇 야생 허브는 맥주에 사용되었을 경우 독성 물질이나 환각 등의 부작용을 야기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야생 허브가 아닌 홉을 사용한 맥주가 맛과 풍미에 있어서 탁월하면서도 홉 자체에 방부 효능까지 있어서 오래 보관하기 용이했으며,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것이 검증되자 홉이 들어간 맥주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위한 목적이 깃들어서 맥주 순수령에서 홉을 주재료에 포함시켰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야생 허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 말고도, 위생에 관한 개념이 사람들에게 심어지지 않은 중세 맥주 양조에서는 저급의 맥주들 때문에 사건사고가 적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때문에 질 나쁜 맥주를 판매한 양조가는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몸을 묶은 채로 강에 떨어뜨려 익사시키는 형벌이 가해졌습니다. 양조 위생을 개선시키거나 적절한 환경에서 효모를 다루는 방법을 그 당시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이렇게 가혹한 형벌이 내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맥주 순수령은 표면적으로는 더 이상 질 나쁜 맥주가 양조가들에 의해 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증된 재료들로 맥주를 만드려는 의도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 맥주 순수령의 영어식 표기는 ‘German Purity Law’라고 되어있는데, ‘Purity’ 즉 ‘순수’라는 말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불결한 맥주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성을 띠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1516년 독일 맥주 순수령이 제정되었지만 온 독일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순수령을 제정한 인물이 당시 독일의 지배자였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닌 고작 연방국이었던 바이에른 주의 공작이었기 때문에, 맥주 순수령은 그의 권역인 바이에른 주에만 적용되었습니다. 맥주 순수령이 반포된지 3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맥주 순수령은 독일 동남부의 바이에른주 일대에만 영향을 끼쳤고, 벨기에와 네덜란드와 인접한 북서부 독일이나 베를린을 중심으로 성장한 북동부의 프로이센의 맥주 양조가들과는 무관한 맥주 순수령이었습니다. 바이에른 주 이외의 맥주들은 여전히 순수령에서 금하는 과일이나 향신료들을 맥주에 넣었습니다.
독일 맥주 순수령이 전 독일에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기는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에 의해 독일이 통일된 1871년 이후입니다. 당시 독일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1871년 이전 독일은 이미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북독일 연맹이 공고한 상태였고 오스트리아와 남독일 연맹은 통일 독일에 가담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1860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대독일 통일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자 남독일 연맹의 국가들이 통일 독일에 가담하게 됩니다. 당시 남독일 연맹에는 바이에른이 포함되었고, 통일 독일에 바이에른에 가담하는 전제 조건들 중 하나가 각종 재료가 난립하던 북독일의 맥주들로부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바이에른의 맥주 순수령을 전 독일에 적용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통일 독일 연방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서 북독일의 맥주 양조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 독일에 맥주 순수령을 적용시켰습니다. 때 마침 독일과 체코에서 번성한 필스너 라거의 전파로 북독일의 양조가들은 대세였던 필스너로 기민하게 맥주 양조 노선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1871년 이후 독일의 맥주 순수령은 전 독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통일 독일 이후의 독일 양조가들에게는 불가침의 영역으로서 맥주 순수령이 깊이 자리잡게 됩니다.
또한 독일식 맥주들이 이후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등에 생기는 신규 양조장들에게 본보기가 되며 자연스럽게 맥주 순수령 또한 독일 맥주를 전수받은 양조가들에게 율법과 같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맥주 순수령은 보리 맥아가 아닌 싼값의 옥수수나 쌀 등 다른 재료로 원가 절감을 노리는 다국적 대기업형 라이트 라거들과 대비되어 맥주의 정수를 지키고 잡다한 재료를 넣지 않는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맥주의 정통파 독일이라는 이미지와 정체성을 심어주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한 맥주 순수령에 입각한 철저한 재료 관리로 완성된 독일 맥주의 정제된 특성은 독일 맥주의 품질을 높여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500년 전부터 맥주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반포된 독일의 맥주 순수령은 대기업형 맥주들과는 차원이 다른 꼼수를 부리지 않는 정통 맥주를 지향하는 독일 맥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여기에 뮌헨이나 베를린 등의 저명한 대학이나 맥주 양조 아카데미들에서 경험을 쌓고 수학한 전 세계 각지의 양조가들이 신망하는 독일 맥주의 품질, 그리고 맥주 순수령에 깊은 영감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와 정통 독일식으로 맥주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관한 자부심 등이 독일 맥주 순수령을 더욱더 빛나게 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을 맥주 때문에 독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 맥주 순수령은 성역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독일과 그 영향을 받은 국가에서 적용되는 법이며, 맥주 순수령에 위배되는 맥주를 만든다고 해서 그 맥주가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매우 위험한 사고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인접 국가인 벨기에는 자체적인 맥주 문화를 꽃피운 국가로 예로 부터 맥주 순수령의 권역 밖에 놓여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향신료나 시럽 등을 첨가하여 제조한 맥주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맥주가 호가든(Hoegaarden)으로 대표되는 벨지안 화이트(Belgian White) 스타일의 맥주로, 코리엔더(고수) 씨앗과 큐라소, 오렌지 껍질 등이 첨가되어 독특한 풍미를 자아냅니다.
독일 맥주 순수령의 잣대로만 판단해서 벨기에의 호가든을 순수하지 않은 맥주라고 여겨버리면 독일을 제외한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 각 국가마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오랜 기간 만들어 온 맥주들은 독일 맥주 순수령에 어긋나는 정통에 입각한 맥주가 아니게 됩니다.
독일 맥주는 전 세계 맥주들 가운데서 영향력 있는 맥주 국가이고 유구한 맥주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건 사실이지만 독일의 맥주 법이 전 세계의 중심이 되는 법은 아닙니다.
마치 옛 중국인이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며, 색목인이나 주변 국가들을 오랑캐 취급을 한 것처럼, 독일에서 맥주 순수령이 가지는 파워는 여전히 대단합니다. 독일 양조가들에게 맥주 순수령을 어기는 일이란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이 노약자 석에 앉았을 때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 이상입니다.
독일에서 맥주 순수령에 어긋난 맥주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맥주라고 부르지는 못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90년대에 벌어진 일명 ‘브란덴부르크 맥주 전쟁’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1993년 ‘노이첼러 클로스터 브로이(Neuzeller Kloster=독일어로 수도원)’를 인수하여 운영하던 헬무트 프릿슈(Helmut Fritsche)라는 양조가는 독일 연방 정부로부터 그가 생산하는 슈바르츠비어(Schwarzbier)에 설탕 시럽을 첨가하는 행위는 맥주 순수령에 어긋나기에 맥주(Bier)라고 불릴 수 없으니 설탕을 넣지 말던가, 맥주라고 칭하지 말도록 권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헬무트 프릿슈(Helmut Fritsche)는 노이첼러 클로스터 브로이(Neuzeller Kloster)의 근본인 수도원이 이미 16세기부터 슈바르츠비어에 설탕을 첨가하였기에 옛 레시피를 따른 것일 뿐이라며 바꿀 수 없다고 항소하였습니다. 10년간의 법정 공방을 통해 내려진 결과는 헬무트 프릿슈(Helmut Fritsche)에게 독일 연방 정부가 20,000유로의 벌금을 배상할 것을 판결 내렸으며, 그의 슈바르츠비어가 ‘맥주’로서 불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10년간의 법정 공방 기간에는 맥주(Bier)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헬무트(Helmut)의 맥주는 슈바르처 압트(Schwarzer Abt)라는 이름을 대신 사용하였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맥주(Bier)라는 문구를 라벨에 삽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의 양조장의 사례에서 미루어 볼 때, 독일 맥주 순수령은 독일 맥주의 정체성 확보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재료의 제한으로 인해 맥주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입니다.주
1871년 독일의 통일로 맥주 순수령이 온 독일에 적용되기 이전 시기 맥주 순수령과 무관했던 북독일의 맥주들은, 벨기에가 맥주의 다양성을 갖춘 맥주들로 찬사를 받는 것처럼 북독일 지역 토속 재료에 기반하거나 오랜 양조 전통에 입각한 특이한 맥주들이 많았습니다. 코리엔더(고수)나 라즈베리, 레몬 등의 과일 등을 첨가하기도 하고, 홉이 아닌 야생 허브를 사용한 맥주들이 북독일 각지에 널리 생산되었습니다.
그러나 1871년 이후 북독일 지역 특산 맥주들은 맥주 순수령과 라거/필스너의 급속한 전파로 인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현재 북독일 지역을 대표하는 독특한 지역 맥주는 쾰른의 쾰쉬(Kölsch)나 뒤셀도르프의 알트(Alt) 이외에는 현재는 사실상 멸종되었습니다.
다만 아담 비어(Adambier)나 브로이한(Broyhan) 등의 맥주는 꼭 맥주 순수령 때문에 멸종되었기보다는 라거/필스너가 더 양조장 운영과 재정 확보에 적합하다고 독일 양조가들이 판단하도록 만든 시장 논리 때문인 것이 더 큽니다. 현재 독일에 판매되는 맥주들을 살펴보면 라우흐비어(Smoke Beer)나 고제(Gose),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 등의 지역 맥주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필스너-둔켈(다크 라거)-바이스비어(Weissbier) 등의 대중성을 인정받은 맥주들에 머뭅니다. 즉 독일의 대형 마트나 맥주 전문 마트에 들어가면 브랜드는 참 많지만 맥주 스타일 측면에선 다양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라면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라면 브랜드는 50가지가 넘지만 50가지 중 절대 다수가 김치라면, 육개장 맛 라면인 것과 같은 광경입니다.
독일 맥주 시장에 필스너-둔켈-바이스비어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에 크다 보니 다른 스타일의 맥주가 소개될 공산이 크지 않고, 이미 독일 국민들이 독일 맥주 스타일과 특유의 저렴한 가격에 익숙해진 터라 새로운 맥주가 나와도 경쟁력이 없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맥주를 만드는 크래프트(Craft) 맥주 산업도 독일을 제외한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등에 이미 자리잡았지만 보수적인 독일 맥주 시장은 아직 새로운 맥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에서도 크래프트 맥주가 젊은 양조가들 위주로 시작되고 있지만, 이미 독일 내에서 인지도 있는 필스너 맥주들에 비해 그들이 만든 크래프트 맥주가 가격적으로 마케팅적으로 경쟁력이 없어 독일의 크래프트 맥주는 소비층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워낙 보수적인 독일 맥주 시장인데다가 맥주 재료에까지 제한을 두는 맥주 순수령은 독일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맥주가 나올만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벽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맥주 순수령이 항상 옳고 순기능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독일 맥주 순수령이 맥주 역사에 있어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은 확실합니다. 독일 내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독일 맥주를 정통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맥주 순수령의 순기능을 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문제 없이 이전처럼 많은 관광객들을 맥주라는 문화 컨텐츠로 독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겁니다. 독일 맥주 순수령에는 매우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기능이 공존합니다. 따라서 중용의 눈으로 맥주 순수령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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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맥주는 호가든 같은거 없이 업체마다 맛이다 고만고만한 이유
첫댓글 순수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