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아가씨 / 이원형
서해의 등짝 저리 붉은 건 꽃게 때문이다
바다의 갈빗살을 가위질하다 붙들려 온
꽃게의 가위질을 전수받은 아가씨
갈비 한 판을 여러 필지로 나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공평한 가위질은 주문을 부른다
- 여기 2인분 추가요
지글지글 게거품 물며 익어가는
갈빗살 연신 실어나르는 바닷가 갈빗집은 만선이다
한 번 물면 피를 볼 때까지 놓지 않는 가위손
노을 얇게 저며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갈빗집
'시집못간돼지'의 꽃등심 같은 날
불안개 자욱한 홀을 유영하며 불에 익은 얼굴로 가위춤을 추는 꽃게
그녀는 가위를 놓지 않는다
갈빗집 흥성한 홀이 이토록 붉은 건
시집 못 간 그녀 집게발 때문이다
한 번 물면 놓질 않는다
피 흘리는 노을
-- 시집 『이별하는 중입니다』 (지혜, 2021)
* 이원형 시인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사이버) 중
2021년 계간 {애지} 등단
시집 『이별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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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는 십각목 꽃게과의 갑각류이며, 다른 게들과는 달리 헤엄을 잘 친다고 한다. 수십 2~30m의 바닷가 모래바닥에 서식하며, 야행성으로 낮에는 보통 모래펄 속에서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먹이활동을 한다. 육식성으로서 바다 속의 모래나 진흙을 파고 숨어 있다가 먹이가 다가오면 재빨리 집게발을 들어 작은 물고기 등을 공격한다. 맛은 6월의 암게를 최고로 치며, 찜, 탕, 게장 등으로 요리를 하고, 7~8월의 금어기에는 냉동꽃게를 유통한다.
이원형 시인의 [꽃게 아가씨]는 값싼 임금과 값비싼 생활비와 피곤하고 지친 육체로 살아가는 소위 흙수저 아가씨이며, 이 생활고에 지친 한이 서해 바다의 핏빛 노을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서해의 등짝 저리 붉은 건 꽃게 때문이다”라는 시구는 서해의 노을이 삶은 꽃게와도 같다는 것을 뜻하고, “바다의 갈빗살을 가위질하다 붙들려 온/ 꽃게의 가위질을 전수받은 아가씨”는 꽃게의 집게발과 같은 가위질로 손님들의 갈비살을 잘라주는 아가씨를 뜻한다. 꽃게와 꽃게 아가씨는 이중-삼중적으로 그 생활의 습성과 운명이 일치한다고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꽃게와 꽃게 아가씨의 가위질 솜씨가 비슷한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아름답고 탁월한 가위질 솜씨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권력에 붙잡힌 채 무한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시집 못간 운명으로 한번 물면 놓지 않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그들의 삶의 욕망이 서해 바다의 붉디 붉은 노을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음악의 곡조는 알아도 자기 자신의 마음의 곡조는 알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타인들의 언행의 불일치는 곧잘 비판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언행의 불일치는 모르는 사람이 있다. 꽃게는 ‘바다의 갈빗살’은 잘 가위질 해도 자기 자신의 운명은 잘 가위질 할 수 없었던 것이고, 꽃게 아가씨 역시도 타인들의 갈비 한 판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공평한 가위질”로 주문을 부르지만, “‘시집못간돼지'의 꽃등심 같은” 운명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모순, 이 불합리, 이 조화 속의 부조화가 어쩌면 ‘꽃게 아가씨’, 아니, 우리 인간들의 일생일는지도 모르며, 따라서 삼류 유행가 가사의 주인공 같은 [꽃게 아가씨]가 그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어는 시인의 붉디 붉은 피이고, 한 줄의 시구는 그의 실핏줄이며, 시구와 시구들은 대동맥이며, 한 편, 한 편의 시는 시인의 심장과도 같다. 붉디 붉은 피와 실핏줄과 대동맥과 너무나도 역동적인 심장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한 편, 한 편의 아름다운 시구는 더없이 맑고 순수한 언어로 살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원형 시인의 [꽃게 아가씨]의 언어는 그의 붉디 붉은 피이며, 그의 아름다운 시구들, 즉, “서해의 등짝 저리 붉은 건 꽃게 때문이다/ 바다의 갈빗살을 가위질하다 붙들려 온/ 꽃게의 가위질을 전수받은 아가씨/ 갈비 한 판을 여러 필지로 나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공평한 가위질은 주문을 부른다/ - 여기 2인분 추가요/ 지글지글 게거품 물며 익어가는/ 갈빗살 연신 실어나르는 바닷가 갈빗집은 만선이다”, “한 번 물면 피를 볼 때까지 놓지 않는 가위손/ 노을 얇게 저며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갈빗집/ ‘시집못간돼지’의 꽃등심 같은 날/ 불안개 자욱한 홀을 유영하며 불에 익은 얼굴로 가위춤을 추는 꽃게/ 그녀는 가위를 놓지 않는다”, “갈빗집 흥성한 홀이 이토록 붉은 건/ 시집 못 간 그녀 집게발 때문이다/ 한 번 물면 놓질 않는다/ 피 흘리는 노을” 등은 꽃게와 꽃게 아가씨와 시인의 삼원일치의 세계를 선사해준다.
풍자와 해학,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련하고 슬픈 가락과 “지글지글 게거품 물며 익어가는/ 갈빗살 연신 실어나르는 바닷가 갈빗집은 만선이다”, “한 번 물면 피를 볼 때까지 놓지 않는 가위손/ 노을 얇게 저며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갈빗집” 등의 시인의 붉디 붉은 피와 혼이 담긴 문체,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답고 가련하고 슬픈 이야기 끝에, “갈빗집 흥성한 홀이 이토록 붉은 건/ 시집 못 간 그녀 집게발 때문이다/ 한 번 물면 놓질 않는다/ 피 흘리는 노을” 이라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힘은 시를 쓰고 끝맺는 법을 아는 제일급 대가의 솜씨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하늘을 감동시킬 것이고, 반경환 명시감상은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고 할 수가 있다. “언어는 시인의 붉디 붉은 피이고, 한 줄의 시구는 그의 실핏줄이며, 시구와 시구들은 대동맥이며, 한 편, 한 편의 시는 시인의 심장과도 같다. 붉디 붉은 피와 실핏줄과 대동맥과 너무나도 역동적인 심장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한 편, 한 편의 아름다운 시구는 더없이 맑고 순수한 언어로 살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
- 반경환(시인,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