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seoul_life-09202024104626.html
추석 때 불러내지 않고 그냥 집에서 온전히 연휴 내내 쉬기만 해도 감지덕지겠지만, 이럴 때 꼭 ‘백공두삽’이 나타나죠.
“자 여러분,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우리가 어찌 쉬겠습니까” 이러면서 쉬는 날에도 일하는 척 생색내는 간부를 말하는 겁니다. 그럼 아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나가야죠.
여러분이 사는 동네엔 이런 인간이 없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추석엔 그냥 동해 바다로 놀려갔었습니다. 해외는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이달 초 일본 도쿄에 놀려갔다 왔죠.
그런데 도쿄에 가서 저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를 하나 풀었는데, 그냥 우연히 깨닫게 됐습니다.
도쿄 인근에 태평양 바다를 끼고 달리는 ‘에노시마’란 전철 노선이 있는데, 여러 역 중에 ‘가라쿠마고코마에’란 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니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군요. 일본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미국 등 다양한 인종이 다 여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왜 그런지 보려고 따라 내렸죠. 젊은이 무리는 역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철도 건널목 앞에 몰려가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더군요.
여기가 어딘지 몰라 물어보니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가장 유명한 배경지”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슬램덩크’가 뭔지 몰라서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한숨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안 됐던 퍼즐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너였구나. 그때 나를 포함한 북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원흉이 바로 너였구나” 이런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죠.
https://v.daum.net/v/20240909231032976
96년경 김정일의 지시가 하달됐다. “농구는 키가 크는 운동이니 전국적으로 장려하시오.” 이후 체육시간이면 북한 학교에선 농구만 시켰다.
내가 다녔던 김일성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전에 90분 강의가 3개 있었는데, 중간수업이 체육이면 그날은 혀를 빼물어야 했다. 당시 우리 학급 교실은 김일성대 2호 청사 22층이었다. 층고가 높아 아파트로 치면 40층 높이에 해당하는 고층이었다.
늘 정전이라 엘리베이터 이용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오전 8시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이후 체육수업이면 1층까지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90분 내내 뛰어다니며 농구공과 씨름을 한 뒤 다시 22층까지 올라가 수업 하나를 더 들었다.
이어 점심을 먹기 위해 내려왔다가 오후 정치학습에 참가하려면 또다시 한참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야 했다.
당시는 숱한 사람들이 굶어죽던 때였다. 대학에서도 밥을 세 숟가락 정도만 주었다. 배고파 걷기도 힘든 학생들에게 농구는 최악의 고문이었다. “키 크는 운동이면 키 작은 너나 할 것이지 왜 온 나라를 갑자기 들볶냐”는 원망이 치솟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고난의 행군이 정점으로 치닫던 1998년엔 ‘가족롱구선수단’이란 영화까지 나와 사람들의 염장을 질렀다.
느닷없던 농구 바람의 원인이 김정일의 두 철부지 아들들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은이 농구에 빠진 것은 12, 13세 무렵. 한국에서 슬램덩크 열풍이 불던 시기와 일치한다. 김정은은 형 김정철과 함께 매일 초대소 직원이나 군인들과 농구를 했다. 잘 때도 농구공을 안고 잤다. 심지어 모친 고용희의 만류에도 식사가 끝나자마자 농구장으로 뛰어나가기 일쑤였다.
스위스 유학 시절에도 김정은은 공부는 내팽개치고 농구에 푹 빠졌다. 그의 방은 미국 농구팀 시카고 불스의 기념품들로 가득 찼다. 김정은이 권력을 잡자마자 데니스 로드먼을 다섯 번이나 북한으로 초대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슬램덩크를 만화로 봤는지 애니메이션으로 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 젊은이들이 농구 열풍에 휩싸였을 때 북한에선 김정일의 두 어린 아들만 농구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그게 기특했던지 전국에 농구 열풍을 일으키라고 지시했다. 인민이 굶어 죽어 나갔지만 안중에도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김정은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각종 악법을 쏟아내며 외부 문물을 접한 10대 청소년들을 마구 감옥에 잡아넣고 있다. 외부 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에 대한 공포도 누구보다 크지 않을까 싶다.
어느덧 김정은도 40대에 접어들었다. 그의 딸 주애는 올해 11세로, 이제 막 사춘기 초입에 들어설 나이다. 김정은의 맹목적인 딸 사랑과 사춘기 딸의 변덕이 결합해 인민을 또 다른 방식으로 대를 이어 괴롭히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김정은이 슬램덩크 광팬이라 슬램덩크 주인공 모티브로 했다는 데니스 로드먼 평양에 초대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