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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파라다이스아일랜드
**이 글은 예전에 홍콩방에 올라왔었는데 모두 삭제되서 다시 찾아온 글입니다.
원문은 스레딕이었는데 이미 다 삭제되서 최근에 뒤지다가 자료 공유 받은 것 + 펌글을 순서대로 정리해서 쓰는 거구요.
원글에 맞춤법 틀린 것도 많지만 너무 길어서 안고치고 따옴표나 물음표 빠진 것만 수정했습니다.
암튼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음. **
** 스레주는 본인이 겪은 일을 소설적으로 각색했다고 했으니 말머리는 일단 소설로 갑니다 **
내가 겪은 기묘한 이야기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약간의 소설적인 각색을 더해서 써 보려고 해.
괴담 이라기 보다는 제목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가 될 거고...사람에 따라서는
괴담이라고 받아 들일수도 있겠네.
일단 보는 사람 있던 말던 나 혼자 이야기 하는 페이스로 써 볼테니...보는 사람 있다면 간간히 레스 해줘. 큰 힘이 될거야.
나는 외항상선을 타는 항해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 동남아, 중동, 중국, 일본 등지를 다니며 돈을 벌었지. 생각보다 항해사의 연봉은 세지 않아. 육상에도 그 이상의 돈을 버는 직장은 널려있지,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은 대부분이야. 가족과 떨어져, 사회와 격리되, 풍랑과 싸우며 젊음을 망망 대해에 내 던지고 나서 받는 대가로서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게 사실이었어. 나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의 주택 담보 대출과 철없는 여동생의 유학비용을 충당해야 했기에... 실질적으로 내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와도 같았다.
그렇게 배를 타다보니...어느덧 위기 의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주로 일과가 끝나고, 당직 갑판수와 함께 당직을 서고 있을 때나, 방에서 홀로 문서작업을 할때면. 그 생각은 언제나 의식 밑에 숨어있다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그림자 와도 같았어.
'도대체 내 인생은 무엇인가. 그 좋은 20대 청춘을 왜 난 이런 곳에서 보내고 있나.'
한달에 한번, 한국에 들어갈 때 마다, 확인하는 동생의 카톡에는 외국의 캠퍼스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을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고 있는거다. 그런 못난 생각.
못난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오빠고, 절반쯤음 가장이며, 아들이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상대적인 박탈감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나도 독립해야 하는데, 언젠가는 짝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마다 거울속의 나는 냉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를 만나야 결혼을 하지, 그리고 집에 다 퍼줘 버리면, 무슨 돈으로 결혼을 하냐 요즘 여자들 얼마나 영악한 줄 알지 모아 놓은 돈도 없는 뱃놈에게 누가 시집이나 오려고 하겠냐 정신차려 이 새꺄.'
충혈된 눈으로 거울을 노려보다가 샤워기로 거울에 물을 뿌리면, 냉소하던 내 모습은 흐려져서 수채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허나, 내 마음에는, 그 물길이 닿을 리 없었다.
그렇게 일하다가 일하다가, 나는 내 마음을 크게 흔들만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2012년의 겨울, 남중국해를 항해하던 도중 강력한 계절풍을 만났던 것이다.
사전 정보는 충분했다. 동중국해, 남중국해의 겨울 계절풍은 매년 있는 일 이고, 기상도를 통해서 이미 일어날 일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 하고 있었다.
나는 선장에게 해당 사실을 사전에 보고했고, 그 개차반 선장도 그때 만큼은 내 가족관게에 관한 드립을 칠 생각없이 신의 ASSOLLE 이 얼마나 더러운지 욕했다. 인공위성 전화를 통해 본사에게 전화를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온갖 점잖고 지적인, 마치 외교 언어와도 같은 통화 내용속에 들어있는 한마디는 까라면 까 였다. 언미에 조건이 후술됨은 물론이었다. 모가지 보전하고 싶으면
선장은 굽신거리며 전화를 끓은후, 전화기를 내 얼굴에 집어 던졌다.
불그락 푸르락 하는 얼굴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결국 배는, 악천후가 예상되는 항로로 향해야 했다. 본사와 연락해 도착일정을 조정하지 못한 이상. 선박은 무조건 ETA(Estimate Time of Arrival)을 준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이틀후 새벽. 배는 악천후와 조우했다.
흔히들 일엽편주라고 말을하지, 낚싯배나 유람선을 타본 사람들은 많을 지 모른다. 하지만,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항해해 본 경험을 가진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큰 배가, 종이 배 처럼 그렇게 비틀거리고,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것 처럼 삐걱 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천후중, 본선에 2대가 있던 자이로 콤파스중 한대가 고장났다.
다른 한대는 회사에서 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파츠 교환을 해 주지 않아
불안정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일이 터진 것이다. 마그네틱 콤퍼스가 있어서
간신히 항로는 잃지 않았지만, 자동항법장치와 연동되지 않았기에, 조타수와 나는 악몽같은 당직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간신히 천후를 빠져 나오고 나서 선장은 씩씩 거리며 화풀이를 했다. 노고에 대한 치하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장비의 고장에 대해 나에게 시말서를 제출할 것을 명했다.
시말서. 업무상 과실에 대하여 쓰는 반성문.
이 간단한 말의 의미가 기억이나지 않을 정도로-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이로콤파스의 파츠 불량은 내가 전부터 회사에 보고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가는 경비 실적을 높이기 위한 선장과 기관장의 수작으로 지금껏 수리 받지 못했던 것.
선장은 자신이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 그 동안 보수를 미루어 왔던 장비의 고장을, 내가 정비를 게을리 하여 일어난 사고로 호도해 버리고, 그것을 내 과실로 미루고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 이었다.
나는 항변했다. 그 동안 쌓여왔던 분노를 모두 터트렸다.
그러나 먹혀들지 않았고, 그는 도리어 격분하며 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
하겠노라 협박했다.
나는 시말서 대신에 사직서를 오른 주먹과 함께 그의 면상에 쳐박아 주었다.
기나긴 인내의, 끝을 고하는 한방이었다.
선장은 회사에 급히 연락했고, 그날 저녁, 곧바로 나의 교대가 결정 되었다.
징계위원회도 열리지 않은 일반적인 하선조치.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했던가. 악덕 선장 밑에서 같이 고통받던 다른 항해사들과 기관사. 부원들 까지도 나를 찾아와 나를 달래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설득했지만.
내 마음은 확고했다.
더 이상 이 짓에 내 청춘을 버릴순 없다.
내 가족도 좋지만,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늙고 포악한 돼지의 뒷구녕이나 핥으며 나이를 먹을순 없다.
내일부터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 하나를 하선 시키기 위해서 항로를 변경하는건 있을 수 없는 일 이었기에, 나의 하선은 3일 후 싱가폴에서 이루어 지게 되었다.
그 3일은 정말 편했다. 아예 막 나가기로 결심했기에 선장 들으라고 쌍욕도 하고, 초과 근무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내 후임으로 올 사람에게 인수인계 할 사항만 잘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네, 배가 싱가폴 해협을 통과하고 급유차 정박지에 닻을 내리고 나서, 나는 지긋지긋한 감옥 같았던 배를 떠날 수 있었다.
승선 생활을 시작한지는 5년, 그 배에 올라간지는 4개월 만의 일 이었다.
통선을 타고 싱가폴에 들어가 입국 심사를 통과한 나는 즉시 회사의 대리점으로 부터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나의 하선이 내 자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선원법상 명시된 나의
송환비용을 일절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직을 해야 배를 내릴 수 있으니 사직서를 썼는데, 사직서를 내가 썼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비행기 값과 호텔비를 일절 지불 받을수 없다는 그 사실에 나는 분노를 넘어 허탈했다. 이놈의 회사, 끝까지 뒤통수를 치는구나. 그 생각에 치가 떨렸다.
그래도 분노는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감옥같은 배에서 벗어났다는 청량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나는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느긋하게 관광이나 하다가 가자고 마음을 먹기로 했다. 내 수중에는 1200만원 정도가 있었다. 퇴직금은 아직 정산되기 전 이었지만, 그전 몇개월치 월급을 집에서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VISA 카드로 사용하는게 가능했다. 그 정도면
몇주. 아니 몇달 정도는 쓸수 있으리라.
관광 비자로는 3달 정도 체류가 가능했다. 나는 먼저 싱가폴을 구경하고,
유명한 머메라이온(사자인어)상도 구경하고, 레이플즈 호텔의 유명한 칵테일도 마셨다.
집에서 국제전화로 연락이 왔지만, 국제 전화로 내 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고. 그냥 좀 재 충전이 필요하다. 너무 걱정 마시라고 부모님을 달랬다.
그 와중에 다음학기 등록금 걱정을 하는 여동생이 가증스러웠다.
그러다가 인접한 국가인 말레이지아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의 일 이었다.
말레이지아는 싱가폴과 접해있어서 자동차로도 국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영사관에 들러서 간단한 절차를 밞은 후 나는 말레이지아로 넘어가 그 곳에서 멋진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도중 나는 쿠알라룸프루의 한 바에서 한 매력적인 아가씨를 만났다.
자신을 '플라워' 라고 불러주길 바랬던 아가씨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듯 했다. 전형적인 말레이 계 여성은 아니었고, 말레이에 많이 진출한 한족과의 혼혈인듯, 적당히 가무잡잡한 피부에 분홍 이브닝 드레스, 그리고 미소 지을때마다 슬쩍 드러나는 하얀 치열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상당히 많은 화재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항해사라고 하자 굉장히 흥미를 보이며 내가 여행했던 나라들에 대해서 물어왔다. 나는 그나마도 비슷한 항로만을 다녔기에 견문이 비교적 적은 편 이었지만 워낙 재밌는 듯이 들어주는 그녀의 리액션에 취해 밤 늦게까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의 끝자락에 그녀가 말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서 아세요?'
그녀의 두 눈은 별 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나는 유감스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메르싱 에서 배로 7시간 거리에 있는 RUWA ISLAND에는 한가지 전설이 있다고 한다. 바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이름은 아일랜드지만 사실은 간출암(조고가 낮아지면 간신히 해수면 밖으로 꼭대기가 나오는 바위. 암초의 일종) 인데, 그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지상에 나타나면 큰 재앙이 기어온다고(Crawl) 하는 것이었다.
재앙이 기어온다니, 나는 그녀가 단어의 선택을 잘못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딱히 정정할 생각이 없었다.
내 마음속을 가득 메운 것은, 그녀가 묘사한 RUWA ISLAND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섬 이라는 말에 나는 그곳을 방문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다.
그러자 그녀는 뜻밖의 제안을 하나 했다.
RUWA ISLAND에서 지금, 좋은 일자리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
RUWA ISLAND의 한 등대를 지키는 일 인데, 지원자가 없어서 아마도 아직 자리가 비어 있을것 이라는 말과 함께... 본인도 그 섬 출신이라며 귀띔해 주었다. 그리고 그 섬에 가면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는 것도.
나에게는 괜찮은 제안이었다. 등대지기라면 그다지 고된 일과도 없을 것 같고, 숲속의 등대에서 아름다운 동남아의 바다를 바라보며, 복잡한 내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꼭 그 섬을 방문해 볼 것이라 말하고, 그녀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쉽게도, 그녀로 부터 호텔 방문 키를 받는, 외국 영화와 같은 로맨스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메르싱 행 비행기를 탔다. 취업비자가 없었기에 취직이 가능할런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지만, 뭐 꼭 취업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흥미 반 장난 반 의 가벼운 마음이었기에. 그냥 관광지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도 충분했다. 뭐 용돈벌이도 할수 있다면 금상첨화 였고.
메르싱에 도착해서 배편을 통해 다시 RUWA ISLAND에 도착한 나는 섬의 아름다운 풍광에 아주 감탄했다.
동남아의 바다가 항상 그렇듯이, 속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밝은 에메랄드 빛의 바다. 하얀 구름이 조각배 처럼 맑은 하늘을 미끄러져 가는 모습은, 관광지로 유명한 쿠알라룸프르 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더 때묻지 않은, 원초의 자연이 나를 반겨주는 느낌에, 나는 나도 몰래 행복한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루바 아일랜드는 크게 동 서로 나눌 수 있었다. 서쪽은 아름다운 백색 해변을 중심으로 몇개의 리조트가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사업으로 수입을 올리는 곳 이었고, 동쪽은 지역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서 작은 포구 형식의 어촌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주민도 두가지 부류였는데, 동쪽 포구지역에 사는 가난한 말레이 사람들, 그리고 서쪽 리조트 지역에 사는 부유한 화교들 이었다.
나는 우선 리조트 중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서 거기에 짐을 풀고 주민들에게 등대지기 일을 하고싶어서 찾아왔다고 이야기 하고 물어물어, 우리나라의 구청장 쯤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갔다.
말레이 주민들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웃음이 많고 즐거워 보였고, 바디랭귀지를 동원해서 나를 데려가 주었다.
반면에 화교쪽 사람들은 영어를 자유롭게 하지만 나를 경계하는 듯이 느껴졌다.
구청장은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등대에 필요한 사람이 한명 있는건 사실 이지만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나는 플라워라는 여자의 소개를 받았다며 아마도 익명이리라 생각된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그런 이름은 들어본적이 없다고 어깨를 으쓱 하고는,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도록 했다.
본래 취업비자가 아닌 나는 직업을 가질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것은 세금 신고가 들어가지 않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 이었고, 그 대신 나는 일을 하고서도 한푼도 돈을 받지 못할 상황이 될 수도 있는 노릇 이었다.
고용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이에 대한 권리를 누릴수 없을 지 모르는 상황 이었지만, 의외로 계약 조건은 심플하고 나쁘지 않았다.
루바 아일랜드 북동쪽 끝에있는 등대- 쿠알로 푸파 등대에서 등대지기로 일할 것.
항해사였던 나는, 등대의 발광신호, 무선전신 신호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유사시에는 선박과 직접 교신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참 좋은 인력이었으리라.
구청장은 나를 돌려 보내고, 다음날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날 리조트 들이 있는 서쪽 관광지에서 멋진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발효주에 유독 약한데, 야자주, 현지의 토디가 입에 맞아서 그만 과음해 버렸던 것이다. 방문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마치 내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것 같이 느껴져서 나는 잠시 귀를 틀어막고 저항하다가 이내 단념하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Hi~!! what a nice day mr~!”
지나치게 기운찬 목소리가 내 고막을 후드려깠다.
머리가 핑 돌아서 나도 모르게 문지방을 짚고 앞을 봤다.
촛점이 잘 맞지 않는 눈을 최대한 부라려 앞을 보니, 20대 초반,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말레이계의 청년이 햇살같은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어...hello...”
“곤니찌와~!!”
내가 떨떠름하게 인사하자 다시한번 웃으며 인사하는 그,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저패니즈가 아니라고 말하자 곧바로 '니하오' 하고 반문할 정도의 능글맞음은 성격을 가진 그의 이름은 아캄. 구청장의 심부름으로 왔고, 등대지기들의 업무에 필요한 일을 서포트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계바늘은 무정히도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대충 씻고 사람의 몰골을 갖춘 다음 짐을 챙겨들고 그의 지프에 몸을 실었다.
등대지기의 장점은, 등대에 숙식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요즘엔 한국은 기계식 자동화 등대가 대부분 이지만 일부 사람이 관리하는 등대가 있는데, 쿠알로 푸파 등대는 사람이 관리해 주어야 하는 유인등대 였다.
마을에서 차로 1시간 , 섬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최남단의 마을부터 최 북단의 섬 까지, 서쪽의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그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아캄에 대해서 꽤나 많은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꽤나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성격이었다. 싹싹하고 구김살 없는 성격에 웃음이 많은 그는 꽤 호감을 주는 청년이었지만, 숙취로 고생하는 나에게 그 이상의 나쁜 동행인은 없었고, 결국 나는 도중에 아캄의 지프 밖으로 무지개를 뿜어내야 했다. 서부 리조트를 벗어나 북쪽에 가까워 질 수록 거칠어지는 도로에 덜컹거리는 자동차와, let it be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아캄의 운전 방식은 내 속을 뒤집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 광란의 질주 끝에 도착한 북쪽 끝의 포구에는 작은 모터 보트가 매어져 있었고, 트럭 2대 정도가 주차할 수 있는 선착장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아캄은 능숙하게 모터 보트에 시동을 걸었고, 나는 눈에 보이는 쿠알라 푸파 등대를 바라보며 그에게 들었던 사실을 정리하려 애썼다.
첫째, 식량 배급은 1주일에 한번, 단 원한다면 낮 동안의 외출은 자유이며 주 1회의 급유 외에 추가 급유가 없으므로 평일에 외출한 사람은 지프와 보트의 기름을 자비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점.( 원래는 비용 지불 되야 되는 부분인데 아무래도 구청장이 먹는 것 같다고 아캄은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깠다. 이 놈 앞에서 책 잡힐 짓을 하면 안될거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둘째, 등대 근무원은 3명. 나, 아캄, 그리고 링스턴 이라고 하는 외국인이다.
링스턴은 완전한 서양식 이름이기에 내가 의아해 하자 아캄은 역시 싱글싱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fucking bad ass 같은 사람 이예요!'
이 새끼, 이쯤 되면 성격이 밝은건지 속이 검은건지 의심스러워 진다.
셋째. 내가 담당해야 할 일은 자정부터 새벽 4시 까지의 등대 담당, 그리고 그 동안 공석이었던 무선통신 담당 이었다.
‘근데 무선통신, 없어도 잘 돌아가던데요 배 들도 두어번 불러보고 연락 없으면 무시 하나봐요 하하하하!’ 두통이 몰려왔다.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이, 포구에서 15분 거리의 또 다른 작은 섬. 쿠알라 푸파에 도착했다.
처음 내가 그를 보았을때, 나는 그가 포구에 놓여있는 부서진 테트라포트(방파제에 놓여있는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 파도를 막아준다)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포구에 거의 닿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삐딱한 시선으로 나와 아캄을 바라보았다.
뭔가 굉장히 마뜩찮은 표정, 가뜩이나 숙취중이라 기분이 바닥이었던 나는 똑같이 삐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봐 주었고, 아캄은 그런 우리 사이의 분위기 따위 물말아 먹은듯이 모른척 하고는 보트의 로프를 육상 비트에 묶어 배를 달아매었다.
나는 지금 내 앞에서 온몸으로 띠꺼움을 방출하고 있는 이 양키청년이 아캄이 말한 'fucking bad ass 라는 사실을 알고, 또 그에 동의할수 있었다.
내가 10분 전 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가 링스턴에 대해 묘사 할 때에 예능 리액션을 선사해도 아깝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의 시선은 삐딱했다.
잠시의 대치 후 그가 말했다.
“Jap or kimchi?”
“뭐래 쓰발놈아”
초대면에 사람의 뚜껑을 이렇게 쉽게 딸수 있다는 것도 어찌보면 재능이리라, 나는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말했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chink”
“N U must be mㅐther fucker, pussy.”
열 받은김에 막 질렀다. 놈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제부턴 한글로 쓰겠음.)
“입에 걸렐 문 동양인 새끼. 잽을 치니 스트레이트로 갚네. 목숨을 여러개 가지고 다니냐?”
“너만 하겠냐, 병신아.”
그렇게 훈훈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 우릴 향해. 배를 다 달아맨 아캄이 와서 햇님 웃음을 지었다.
“오, 벌써 친해졌군요”
“...”
“...”
장담하건데, 그 순간만큼은 나와 양놈 새끼의 속마음이 하나였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양키는, 여전히 삐딱한 얼굴로 배 위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고, 그는 나를 거의 넘어뜨릴 기세로 잡아당겨 포구 위로 끌어올려 주었다. 내가 넘어지지 않자 그는 짧게 혀를 찼다.
이 새끼, 진성 개 베이비다. 난 그렇게 내 마음속에 그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조심해, 포구가 높아서, 옐로 몽키의 짧은 다리로는 X구멍이 찟어질수도 있으니까.”
“X 구멍이 여러번 찢어져 본 모양인가봐 응”
그렇게 사이좋게 으르렁 거리는 우리를 잠시 바라보던 아캄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자자자, 해 지기 전 까지 시간이 얼마 없어요~! 인사는 나중에 하고, 우선 아저씨 짐 정리를....”
거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아캄은 우뚝, 하고 서더니 돌아보며 말했다.
“참! 미스터, 이름이 뭐예요”
참 빨리도 물어본다. 나는 묻지 않기에 구청장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잠시 생각했지만 짧은 외도와 같은 일이고, 이 자식들하고도 좋은 관계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수 있었기 때문에 내 진짜 이름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장동건. 편하게 장 이라고 불러.”
...저질러 버렸다. 왜, 뭐, 한번쯤 저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왜, 어쩌라고,
그렇게, 내가 대한민국 남자 여자 모두에게 욕 들을만한 가명을 대고나서(싸이나 이병헌 이라고 했으면 알았겠지) 나는 아캄에게 끌려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등대탑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지하실과 다락방이 딸린 이층 건물과 작은 창고가 붙어있는 형태였다.
지하는 식료품을 저장하는 창고였고, 1층에는 화장실과 숙소, 그리고 세탁장과 샤워장이 있었다.
숙소는 10평 남짓한 공간에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옷장과 수납장이 있었다. 그리고 창틀과 침대 한켠에는 이리저리 벗어놓은 팬티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2층 중 한곳 아무곳이나 골라 쓰면 되고, 수납장도 남는거 대충 쓰면 되요. 1층 침대는 나랑 링스턴이 쓰고 있어요.”
“알았어.”
“일단 짐을 좀 풀고 계세요. 그 다음에 제가 다른 곳을 안내 할게요.”
“땡큐”
그리고 나는 대충 짐을 정리했다. 어차피 몇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링스턴의(것으로 추정되는) 팬티들을 일부러 꾹꾹 눌려밟으며 내 짐을 푼 나는 아캄의 안내에 따라 내가 앞으로 생활해야 할 공간을 둘러보았다.
비자 만료시기는 앞으로 2달 하고 조금 더, 내가 여기서 일하게 될 기간이 그 정도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생활해야 하는 곳이니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대충 일이 끝나고 나니 시간이 어느새 오후 5시.
아캄이 저녁 시간을 알려왔다.
“식사 준비는 누가하지?”
“돌아가면서 준비해요, 한동안 저랑 링스턴 씨 둘이 했는데 이제 새로운 맛이 하나 추가 되겠군요! 한국요리 맛있어요?”
“한국요리가 아니라 내 요리솜씨를 먼저 물어야 하는거 아니냐?”
참고로 난 표준적인 대한민국 남자다. 간단한 요리 정도야 할수 있지만, 제대로 된걸 기대하는 건 욕심이란 말이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아캄은 겁나게 상큼한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괜찮아요! 링스턴 씨 보단 낫겠죠. 링스턴 씨는 영국인 이거든요.”
영국...요리를 먹어야 하는건가...(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길)
“난 아이리쉬(아일랜드 인) 이다, 멍청아.”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싶더니 통로 바깥에서 링스턴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특유의 띠꺼움으로 가득한 그 표정에는 짜증스러움이 가득차 있었다.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냐, 네 머리통은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는거야 필름 기억력이라서 햇빛 밭으면 지워지는 거냐?”
“아~ 별로 안 중요한 거라서 자꾸 까먹네요, 미안합니다 하하하하. 근데 그게 그거 아닌가요”
(혹시 모르는 스레더 들을 위해 정리, 우리는 뭉뜽그려서 영국 이라고 칭하지만, 영국도 과거 주변 국가들과 섬의 나라들을 전쟁을 정복하고 통일한 나라여서 지역별로 사이가 안좋아, 특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출신들은 영국인(British) 라고 하면 무척 싫어해.)
아캄의 악의없는 표정과 웃음에 링스턴은 얼굴을 확 찡그렸다가 이내 창자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디이입~ 한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 너 브라운 몽키한테 뭘 바라겠냐. 저녁 오늘은 누가해. 너냐, 김치냐.”
“저 shake it은 정말로 사람 성질 긁는데 타고난 자질이 있는 놈 이구나.”
그렇게 말하며 슬슬 올라가는 뇌내 온도를 억누르고 있는데, 브라운 몽키라는 비속어를 듣고도 한귀로 흘린(이쯤 되면 욕 이라는 개념을 이해 못하는게 아닌가 의심스럽기 까지 하다) 아캄은 이를 드러내며 박수를 쳤다.
“나! 장은 이제 온지 얼마 안되서 그럴 정신 없을 거예요. 내일 저녁을 부탁하도록 하죠. 장은 나를 따라와요. 부엌 위치랑 사용법을 알려줄게요.”
가명으로 댄 이름이라 순간 장 이라는 이름에 반응을 못했지만, 나는 곧 그를 따라갔다. 부엌은 좁고, 더러웠지만 그래도 두눈 뜨고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고, 사실, 내 대학 친구들이 자취하던 자취방의 부엌과 별반 다를바가 없을 정도였다. 다만 정면의 방충창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어서, 거기로 파리나 다른 벌래가 드나드는 모습은 좀 기분 나빴지만 아캄은 신경 안쓰고, 링스턴은 귀찮아서 방치해 둔 모양이었다.
가스가 아닌 전기를 이용한 핫 플레이트, 아마도 등대의 발전기로 부터 전력을 끌어오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아래쪽에는 각종 냄비와 프라이밴, 보울, 식칼과 숫가락, 포크, 나이프 들이 들어있는 식기창 이었고, 위쪽 찬장에는 소금, 후추, 바질(허브의 한 종류)와 그 밖에 종류를 알 수 없는 향신료들이 즐비했다. 부엌 안켠에는 작고 낡은 냉장고가 있었는데, 거기는 치즈나 올리브, 식빵등이 들어 있었다.
수도관은 있었지만, 펌프가 고장났는지 사용할수 없었고, 꼭지를 돌리자 푸쉬쉬 하는 바람새는 소리만 났다. 부엌 한쪽에 놓여있던 커다란 고무 대야와 물은 이 때문인가.
그 물 위로 죽은 메뚜기 같은 벌래가 한마리 떠 있는걸 보고, 난 그날 저녁에 국물요리가 나온다면 절대로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캄이 식사를 준비 하는 동안 나는 등대로 향했다. 본래라면 일해야 하는 장소인 이곳의 소개를 먼저 받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늟 밤 부터 일 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등대의 입구로 들어섰다.
등대는 나선형의 탑 구조로 되어 있었다.
1층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텅 빈 공간에 어지럽게 깔려있는 부서진 타일 바닥과 그 중앙에 놓여있는 하나의 큰 원탁, 그리고 그 원탁 위에 놓여있는 한장의 지도였다.
나는 그 원탁에 흥미가 갔지만 우선은 그 공간을 더 돌아보고 싶었고, 구석에 놓여있는 책장과 그 옆의 금속 케비넷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접근했다.
책장은 1미터 50cm 정도 높이에 90cm정도의 폭을 가진, 공산품이 아닌 수제품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목제 책장이었다. 4단으로 되어있었고, 거기에는 말레이어와 영어, 중국어로 되어있는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다. 가장 두껍고 낡아 보이는 책을 꺼내어 표면의 먼지를 닦아보자 Manual For Operating and Reparing Light house 이라고 하는, 아마도 등대지기 업무에 관한 업무 절차로 생각되는 내용 이었다. 그 옆에는 각각, 그 하위문서인 업무 절차서(Procedure)와 지침서(Instruction)이 있었다. 적어도 몇년은 들여다 보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녀석들은 그 내용을 숙지 하고 있기는 한 걸까?
그런 생각과 함께 나머지 책들을 보니 선박과 항해술에 관한 전공서적, 건물 화제시 진화및 대피 요령에 관한 책자, 그리고 장부로 보이는 말레이어 서류들을 포함한 과거 책들이 나왔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금속 캐비넷을 바라보자 자물쇠가 체워져 있었다.
그러나 먼지가 뿌옇게 쌓여있는 책자와는 달리 캐비넷의 상태는 비교적 깨끗했고, 특히나 경첩 부위에 녹이 슬어있지 않은 것을 보아 최근에도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열쇠를 찾아보려고 여기 저기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고, 나는 다시 처음에 보았던 탁자 쪽으로 돌아왔다.
“...”
탁자위에 놓인 지도는 선박에서 사용하는 해도였다. UKHO(영국 수로국)에서 제작했고, 1997년도 해도였다. 개정이나 소개정 이력은 없었다,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기는 한 건지... 해도는 길이 15cm 정도의 나이프로 탁자에 박혀 있었는데, 해안선을 따라 여러가지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와 문자들의 나열이었다.
붉은색, 푸른색, 그리고 칙칙한 적갈색의 동그라미들은 각각 섬의 해안선을 따라 불규칙 적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동그라미에 마치 주석을 달 듯이 화살표로 이어진 여백에는 말레이어로 뭔가 적혀 있었다. 나는 말레이어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 중에는 아주 급박하게 적어놓은 문자열도 보였다. 그리고...
“이건 뭐지?”
지도의 오른쪽 상단, 반쯤 짖어진 구석에는 기분나쁜 무늬가 찍혀 있었다.
프린팅 되게 아니라, 누가 후에 찍은 문양. 그 색깔은 짙은 적갈색으로, 해도상에 일부 적혀있는 문자와도 같은 것 이었다.
별다른 궁리 없이도, 나는 그 무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손도장 이었다. 낡은 해도에 찍혀있는, 어린아이의 손 도장. 그리고 그 색깔은...
말라붙은 피, 누군가가 이 해도에 말라붙은 피로 글을 적고, 그림을 그리고, 어린아이의 손 도장을 찍은 것이다.
알 수 없는 섬뜩함에 그 손 도장으로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hey! assole!”
느닷없이 배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움찔 하며 몸을 돌렸다.
예의없는 방문자는 당연히 링스턴, 나는 그의 수작에 순간이나마 놀랐다는 사실에 기분이 매우 저조해 졌고, 그는 내가 움찔해 하는 모습에 흡족한 듯 보였다.
“여기서 뭐하냐. 병신아.”
등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부러 시비 걸러 온거냐
“내가 오고싶은데로 온 곳에 니가 있었던 것 뿐이다, bitch”
그는 군화발로 바닥의 타일을 밟아 부수며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내가 보고 있던 해도가 놓인 탁자 위에 엉덩이를 툭 걸치고 앉으며 말했다.
“보물 지도를 발견했구만. 어때, 쫄아서 질질 쌀뻔했냐?”
“경험 있나보네, 내 수도꼭지는(cock, 그것을 가르키는 은어) 튼튼해서 괜찮은데.”
놈은 피식 웃었다.
“너, 영어 어디서 배웠냐. KFC에서는 영어를 그런 식으로 가르키냐?”
“KFC가 뭔데.”
“Korean Fucking Children care center”
“그리고 넌 IRISH 에서 영어를 배웠구나.”
“뭐??”
“International Robbery ,Idiot and Sucks High school”
“WTH....”
놈이 아일랜드 출신 영국인(IRISH)라는 점을 이용한 말장난 이었다.
배 타는 동안 성질 많이 죽이고 살았지만 난 기본적으로 지고는 못 사는 성격에, 힘든 성장 배경 때문에 성격이 좀, 아주 많이 더럽다. 사사건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이 자식이 마음에 안 들었고, 솔직히 싸움이 일어난다면 피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처럼 사고가 단락적이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아캄과는 달리 정상적인() 나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계속해서 WTH만 중얼거리던 그는 피식 웃으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내 영어는 원래 이러니까 신경 꺼라. 그럼 나도 니 영어에 신경 끄지. 어때 딜?”
“딜. 그나저나, 이 '보물지도' 말인데, 이건 대체 뭐냐?”
“앙? 너 아무 것도 못 듣고 온거냐? 이야기를 대충이라도 듣고 왔으면 감이 딱 안오냐?”
“뭔 소리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봐 좀.”
내 말에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킥킥 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넌 여기 그냥 등대를 지키러 왔다~ 이 말이냐?”
“사람 바보 취급하지 말고 빨리 말해봐, 이게 뭔데?”
“보다시피 지도다. '교전지' 의 지도지.”
“교전지(battlefileds) 누구와의?”
“글쎄.”
링스턴은 어깨를 으쓱 했다. 또 나를 놀리나 싶어 내가 얼굴 표정을 일그러뜨리려는 찰나, 그는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면, 아캄한테 이야기 해. 이 섬을 나가. 그게 너를 위한 길이야.”
“무슨 일 인지 알고서나 생각을 해 보자.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데.”
“헤이, 난 솔직히 니 놈 시키 겁나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이건 아냐. 난 지금 너한테 악의가 없다고. 이 순간만큼은 말야. 이건 '말해선 안 되는' 일 이야. 니가 '알고서 들어온' 게 아니라면. 구청장 그 fucking chikky는 해선 안되는 일을 한 거야.”
“그게 뭔데”
“아~!! 몰라 묻지마, 모르면 됬어. 니 일이나 해.”
내가 포기하지 않고 캐묻자, 그는 머리를 흔들더니 방을 나가버리려고 했다.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야~! 그럼 저건 뭐냐, 저 케비넷. 그것도 기밀이냐?”
“케비넷... 그건 총기 보관함이야.”
그는 그 말을 남기고 1층을 나가버렸다.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처구니 없는 기분으로 1층을 나왔다. 나중에 아캄에게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1층을 나와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길지 않았고, 어두운 바닥에서 부터 우우우웅- 하는 기분나쁜 소리가 울려왔다.
괴물 같은 것이 있을 리도 만무 했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
지하실은 1층과 비슷한 면적의 공간으로, 노란색 백열등으로 밝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우우웅- 하는 정체 불명의 소리는 지하에 있는 자가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내 업무 내용에는 저 자가 발전기의 관리도 포함 되어있었다. 관리라고 해봐야 본격적인 메인터넌스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오퍼레이팅에 해당하는 이야기 지만...
한쪽에는 발전기에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드럼통들이 줄을 지어 놓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몇개의 덤밸과 밴치 프레스용 다이, 그리고 공구 상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특별히 더 있을 이유가 없어서 밖으로 나오자, 1층으로 들어서던 아캄과 마주쳤다,
“앗~! 여기 있었군요. 저녁 먹으러 와요.”
“아캄. 물어볼게 있는데.”
“먹으면서 이야기 해요.”
그는 씩씩하게 말하고 척척 걸어가 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캄은 썩 괜찮은 요리사였다.
저녁은 버터발라 구운 식빵 사이에 얇게 자른 토마토와 두툼한 햄, 달걀 프라이와 잼을 넣은 토스트와 치즈, 그리고 라임주스였다.
요리 자체는 간단했지만 맛없기 힘든 구성이었고, 다소 목마를 수 있는 메뉴지만 토스트에 든 토마토가 촉촉해서 생각보다 괜찮았다 링스턴은 이상하게 말이 없고, 아캄은 혼자서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이런저런 말을 떠벌떠벌 해 대고 있는 식사시간, 그 기묘한 일방통행의 흐름을 깨고, 내려놓은 쥬스잔 과 함께 링스턴이 툭 하고 내던지듯이 말했다.
“야, 아캄. 장은 모르고 왔대.”
“...APA(말레이어, What)”
“모른다고, 저 멍청이. 암것도 몰라. 내 보내야 하는거 아니냐? 인간적으로.”
벙찐 얼굴로 나랑 링스턴을 번갈아 바라보는 아캄, 짧은 시간 봤을 뿐이지만, 무한 긍정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듯한 그의 평상시와는 너무 갭이 있는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허, 하고 웃었다.
“간신히 궁금했던 이야기를 해 줄 모양이로구만.,”
사실,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뜸을 들이나 궁금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면 한대 갈겨주고 싶을 정도로.
“야, 아캄, 링스턴은 아까전 부터 저렇게 이상한 말만 하는데, 뭐가 어떻게 되는 거냐? 설명좀 해봐.”
“엄... 아무것도 몰라요? 진짜 하나도?”
“그 아무것도가 뭔데.”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는 아캄. 그는 허공을 올려다 보며 말레이어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좋은 의미는 아닐 것 이라는 확인이 들었다.
“이야기 할 필요 없어요. 장, 장은 여기서 일 하면 안되요. 오늘 밤은 그냥 자고, 내일 아침에 내가 데려다 줄게요. 구청장 개새...어흠, 구청장 님 한테는 내가 말 해놓데니 조합에 들리지 말고 그대로 메르싱으로 가요. 그러고 잊어버려요. 그게 최선이예요. 오키?”
“그러니까 영문이나 좀 알자고. 도대체 뭔데 이렇게들 호들갑인데, 이 섬에서는 부기맨 이라도 나오는 거야?”
“부기맨 이라면 다행이지. 나 라면 그 색히 쏴죽이는데 콤마 일초도 필요 없을거야. 콜로라도 샷으로,”
허공에 대고 권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링스턴, 그런 그를 향해 아캄이 화제를 돌리려는 듯이 기운차게 말했다.
“콜로라도 샷 그게 뭔데요?”
“머리, 가슴, 비장, 이렇게 세곳 쏘는걸 말하는 거야.”
“세 번 쏘는데 콤마 1초는 말도 안되요.”
“그럼 콤마 3초로 하지.”
나는 둘이서 짜고 나를 놀린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계속해서 말을 걸어도 둘은 같은 반응을 보일 뿐 이었고, 저녁 식사후, 나는 숙소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아캄의 신신당부를 들으며 나는 숙소로 향해 침대에 몸을 누였다.
해는 거의 6시가 되자 완전히 떨어졌고, 저녁 부터는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열대기후인 말레이시아는 스콜이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 날은 그저 습한 바람만이 계속해서 불어올 뿐 이었다. 금이 간 유리창이 창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는 상당히 거슬렸고, 그것은 밝은 달빛과 함께 나의 안면을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 이었다.
불편한 이층 침대에 누워 뒹굴면서 나는 아캄과 링스턴의 대화, 그리고 등대탑 1층에서 링스턴과 나누었던 대화를 곰씹으며 이리저리 뒤척였다.
좀처럼 잠이 오지도 않고, 말똥 말똥한. 그런 밤 이었다.
아래층에서 아캄은 아주 무사태평한 모습으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본래라면 3교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지만, 오늘은 내가 근무하지 않으므로, 결원이 난 대로 일몰 후 부터 자정까지는 아캄이, 자정부터 일출 까지는 링스턴이 근무하도록 되어 있었다.
시간은 새벽 3시, 배에서 했던 근무 역시 3교대였고, 새벽 이 시간즈음이 정말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힘든 시간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링스턴 녀석은 싫지만, 잠도 통 오지 않고, 등대탑에 올라가 시비나 걸면서 시간이나 때울 까 싶기도 했고, 솔직히 이놈들이 왜 나를 쫓아내려고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해보면 알겠지만 2교대는 힘들다. 이들 입장에서는 내가 가겠다고 하더라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려야 할 터였다.
이들에게 등 떠밀려 나가는 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며, 나갈때 나가더라도 이유는 알고 나가고 싶은... 인간 본연의 '호기심' 이 나를 계속해서 건드리고 있었다. 마치 잠이 들기 직전 귓가를 맴도는 모기의 날개소리 처럼, 별것 아니지만 불쾌함과 찝찝함에 잠들 수 없는... 결국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버리고 말았다.
갈데없는 바람소리가 마치 안개처럼 섬을 휘감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잔가지들이 바람개비와 같은 소리를 내고, 파도는 땅으로 기어오르다 산산조각나 물거품이 되어 흩날렸다. 구름은 그 파도와 같았다,
허연 거품과 함께 끊임없이 밀려오고 부서지는 파도처럼, 하늘의 구름은 강풍에 산산히 찢겨지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들어난 달 빛은 너무나 밝아서, 나는 별 다른 조명이 없는 섬에서도 사물의 윤곽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정한 주기로 돌아가는 등대의 등화를 제외한다면 말 이지만.
아캄이 코를 골며 자는 것을 확인한 나는 등대탑으로 향했다.
사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거기까지 와서 나는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링스턴은 껄끄러운 상대였고, 나는 그를 화나게 하거나, 내가 화를 내게 될 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관계 없지만 지금은 피해야 할 일 이었다.
그렇게 등대탑 까지의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 본섬인 루바 아일랜드와는 반대 방향에는 또 다른 섬이 있었다. 그 섬의 북서쪽에는 구알 아일랜드라는, 루바 아일랜드보다
큰 섬이 있었는데, 그 섬과 이 섬 사이. 낯 동안에는 아무것도 없던 해면에, 무엇인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암초 같기도 하고, 난파선 같기도 한 그 모습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았으나,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 때문에 자세히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등대의 등화는, 마치 빔과도 같은 불빛을 어두운 밤하늘로 쏘아 보내며, 이따금 '그것'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다.
환한 달빛 아래서 부서진 파도가 '그것'을 때리며 휘감겨 오르는 모습은 마치 오로라 같기도 하고, 또아리를 튼 커다란 구렁이 같기도 했다. 더 없이 아름다운 자연현상 같아 보이면서도, 위험한 맹수와 같은 그 모습에, 나는 잠시동안 매료되고 말았다. 아름다웟고, 신비로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서 습도 높은 바람을 계속 맞았던 나는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애초의 목적대로, 링스턴을 구슬려 비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등대탑을 올랐다.
낮에는 오지 못했던 등대탑의 3층, 계단은 좁고 가팔랐지으며, 등화 이외의 빛이 빠져나가게 하기 않기 위함인지 별도의 조명장치가 없어서 어둡기 까지 했지만, 난간이 있어서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가서, 3층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무엇인가가 얼굴을 강타했다.
퍽, 하는, 뇌리를 울리는 둔탁음과 함께 내 머리는 핀볼처럼 오른쪽으로 튕겨나갔고, 나는 풍선인형처럼 꼴사납게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나가떨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쳐 파악하기 전에 다시 한번 무언가 터무니 없이 무겁고 단단한 것이 내 복부에 틀어박혔고, 나는 그대로 폐 전부가 쪼그라드는 통증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커----억!!”
나를 공격한 무엇인가는 씩씩거리며 내 배 위에 말 타듯이 올라탔고, 그대로 무엇인가 차갑고 딱딱한 것을 내 관자놀이어 찍어 누른채로 외쳤다.
“누구야!!!”
“으....”
“누구야!! 대답해 이 xxxxxxxxxxxxxxxxxx(알아들을 수 없었다.)”
“쿨럭...쿨럭...”
고통은 끔찍했고, 내 왼쪽 얼굴과 복부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팔다리가 움찔움찔 경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개새끼가 나를 쳤어.
그래, 내가 문을 열자 말자 내 면상을 후려치고, 땅에 나 뒹구는 배를 걷어차고, 지금 내 머리통에 소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은 링스턴, 이 개새끼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팠고, 무서웠다. 낮 동안 그와 말 싸움 할 때의 독기따윈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다. 방아쇠에 걸려있는 그의 손가락이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죽고싶지 않았다.
“말해! 누구야~! 넌 누구야~!!”
“...으으...”
극도로 흥분한채 소리치는 링스턴의 절규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총구를 내 목, 가슴, 어깨등에 찔러댔고, 나는 그때마다 고통에 신음했다.
“으...링스턴...그만...”
“...장 장이냐”
“살려줘...”
자존심이고 뭐고 팽겨치고, 싹싹 빌었다. 상대는 소총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에게 죽빵 맞고, 발길질에 까이고, 지금 그의 가랑이 사이에 깔려있는 처지이다. 나는 영웅이 아니었고, 목숨을 구걸한다는 행위 자체에 비굴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걸 느끼기에는 내 목을 파고드는 총구의 감촉이 너무나도 아프고 차가웠다.
그는 한동안 나를 깔아뭉갠체 나를 주시했다. 그러면서도 힐끔 힐끔, 어딘가를 주시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흠칫 놀란 듯 몸을 떨더니 내 위에서 비켜섰다.
“장, 너 진짜 장이구나.”
“...”
낮이었다면 눈알은 장식이냐는 식으로 쏘아붙여 줬을텐데. 하지만 그 순간 내 입술은 공포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덜덜 떨며 이빨을 딱딱 부딫히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결국 나와 링스턴이 진정한 건, 얼마정도 시간이 지난 후 였다.
나는 완전히 기가 죽어서는 링스턴이 내어준 의자에 앉아있었고, 링스턴은
연거푸 줄담배를 태웠다. 이윽고, 그는 소총을 내려놓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x발, 쳐 자라니까 왜 나와서 돌아다니고 지랄이야. 놀라 뒈지는 줄 알았잖아,”
“...”
“맞은데는 괜찮냐?”
“...어.”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살려고 그런거야. 네 잘못도 있으니까 용서해.”
“내 잘못?”
사람은 간사한 동물 이라고 했던가, 기가 죽어있는 상황에서도, 그가 더 이상 나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기미를 보이자 내 안의 부아가 슬슬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뭘 어떤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후드려깠냐? 총까지 들이대고 한번 말해봐.”
“...새끼, 좀 얌전해져 있나 했더니 이제 좀 살만해 진 모양이네.”
어이없음 반, 안심 반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조금 누그러진 표정의 링스턴은 물통에 있던 물을 손수건에 적셔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부어오르기 시작한 내 왼쪽 광대뼈에 대었다.
그는 다시 담배 하나에 불을 붙이고는 긴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알 거 없다...어차피 너는 아침이 오면 떠나야 하잖냐, 세상에는 알아서는 안 될 일도 있는거야.”
“너 엄청 무서워 하고 있었지, 내가 들어오자 말자 확인도 제대로 안하고 후드려 깔 정도로, 그리고 내가 누군지 몰라볼 정도로. 왜 그렇게 쫄았었냐, 누구한테 쫓기고 있냐?”
“닥치고 모른척 꺼지라고 하잖냐...”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갑자기 흠칫 놀라더니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내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야, 너, 방에서 나오자 말자 바로 등대로 온 거냐?”
“야, 이거 놔.”
“대답해 이 새꺄, 바로 등대로 온 거냐 설마 바다가 쪽으로 갔다 온 건 아니겠지?”
“이거 놔!”
“대답해!”
“켁...!”
나는 거의 목을 졸리다 시피 했다. 내 키는 174, 큰 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작은 키도 아닌데, 링스턴은 키가 190 가까이 되는 거구였다. 깡마른 몸에, 구부정한 자세로 키가 작아 보였던 그가 내 멱살을 잡고, 믿어지지 않는 힘으로 들어올렸다. 내 발이 공중에 떠 있는걸 느꼈고, 나는 고통스러워 입을 열 수 없었다.
“바다로 갔어 안갔어?”
“아...안갔어...안갔...다고...”
털썩, 그의 억센 두 손이 풀리자 나는 다시 의자 위로 떨어졌다. 머리가 핑 돌고 숨이 막혔다. 나는 한참을 콜록 거리다가 그를 올려다 봤다.
“깡패새끼...”
운 좋은줄 알아라... 바다 쪽에 갔었으면 넌 지금쯤 이렇게 태평하게 헛소리나 늘어놓고 있지도 못했어. 아무것도 못봤으면 됐다ㅡ,얌전히 방에 가서 잠이나 마저 자. 때린건 아무튼 미안했다.
“바다 쪽...”
그 순간, 내 머리속에는, 등대로 올라가기 전에 보았던 신비한 광경이 떠 올랐다. 나는 소총을 돌아보았다. 그가 혹시나 또 발작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나는 조심스럽게 소총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소총과 그 사이를 막아선 다음 나는 입을 열었다.
“사실, 바다쪽엔 안 갔지만, 등대 근처에서 바다를 보긴 했어.”
링스턴의 표정 변화는, 그야말로 기묘했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 한 표정, 곧이어 그 표정은 내가 다시 움찔 할 정도로 극심한 분노로 바뀌었고, 잠시후에는 허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다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는, 아직 반도 태우지 못한 담배를 밟고 있었다. 아까 나와 실랑이 할때 떨어뜨린 모양이다.
담배갑으로 손을 뻗은 그는 담배값이 텅 빈걸 알고는 그걸 신경질 적으로 집어던져 버렸다. 탁, 하는 마른 소리.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나에게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래 바닷가에 갔어? 뭘 봤는데?”
“이상한 바위 같은거. 낮에 섬에 들어올 때는 안 보였던게 나와 있었어. 파도 치는 모습이 환상적이라서 잠시 멍 때리고 봤는데, 그거 뿐이야,”
“그래 잘됐군, 잘됐어, 아주 잘됐네, 대가리에 똥만 찬 옐로 몽키, 너같은 색히는 아프칸 부대로 파병이나 보내야 해.”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코웃음을 친 그는, 탁한 녹색 눈동자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취직 축하한다. 새끼야 넌 이제 아무데도 못가.”
ㅡㅡㅡㅡㅡ
시작..!
첫댓글 헐~~~~ 나 이거 완전 읽고 싶었어~~~ ㅠㅠㅠ 잘 읽을 게~~~~~!!!!! 고마워~!!!!!!
헐 이거 보고싶어서 엄청 찾아보고 혹시나 홍콩에 올라올까봐 기다렸는데 너무 고마워 ㅜㅜ
너무 재밌다!!!! 편수도 많네 월루 하면서 볼게 고마워~~!
헐 ㅠㅠㅠㅠㅠㅠ 이거 진짜 읽고 싶었었는데!!!! 정독 갈기러 갑니다ㅠㅠㅠㅠ
와...저 말레샤 사는데 너무 무섭고요...? 저 섬 진짜로 있어서 이차로 소름 돋았네
잘볼게
고마워
와 고마워..완전 집중하면서봤우
와 이거 진짜 오랜만에 본다
고마워 여시
존잼... 잘볼게 고마워
허걱스... 옛날에 홍콩방에 올렸다가 글정리하면서 삭제해가지구 내가 보고싶어도 못보는 글이었는뎈ㅋㅋ 너무 반갑다... 오랜만에 정주행해야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