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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파라다이스아일랜드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후로 링스턴은 한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았고, 6시에 가까워 지자 해가 떠올랐다. 여명은 그야말로 장관 이었다. 하늘에서 부서진 수천,수만의 불꽃이 바다위로 쏟아지는 듯한 그 광경은 넋을 잃고 바라볼 만 한 것이었지만, 난 아직도 얻어맞은 얼굴과 배가 욱신거렸다, 특히 왼쪽 광대가 부어서 눈이 빡빡한 느낌이 아주 불쾌했다.
링스턴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그의 옆모습은 매우 지치고, 피곤하며 짜증스러워 보였다. 담배가 생각 나는 듯 이따금 주머니에 손을 넣던 그는, 이따금 잔뜩 마뜩찮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후, 다다다다다닥 하는 엄청나게 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거칠게 열렸다.
“장~! 여기 있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건 당연히 아캄이었다. 세상 모르고 퍼자던 이 밝은 성격의 청년은 아침에 눈을 뜨고서야 내가 없어진 걸 알고 화들짝 놀라서 달려온 모양이었다.
나는 박살난 얼굴이 쪽팔려서 고개를 돌렸고, 링스턴은 짜증이 폭발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아캄에게 다가갔다.
“야 브라운 몽키!! 넌 도대체 뭘 한거야!”
링스턴은 마치 새벽에 나를 두들겨 팼을때로 돌아간 듯 했다. 그는 거칠게 소총을 내팽겨치고는 씩씩거리며 아캄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나를 추궁할 때 처럼 들어올리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캄은 괴로워 했다.
“죄,죄송해요~! 잠들어서 몰랐어요! 설마 그 사이에 빠져 나갈줄은~!”
“너 때문에 사람 죽게 생겼다 이 자식아! 미안하다면 다냐! 나치같은 새끼!”
더 이상 쪽팔린다는 이유로 고개 쳐 박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링스턴은 나를 위해(?) 화를 내고 있는 듯 했고, 아캄은 괴로워 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는 조상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했다.
“야야, 링스턴! 일단 그를 내려놔! 내려 놓고 이야기 하자고. 응?”
“...”
“그리고 이제 나 한테도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봐. 아까 하는 말 들어보니 뭔가 일어나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나만 모르는 것 같아. 뭐가 뭔지 알아야 나도 대비를 하던가 하지. 안그래?”
“...X발!”
링스턴은 넌더리가 난다는 투로 내뱉듯이 말하곤 아캄의 멱살을 풀었다.
아캄은 아뜨뜨...하는 표정으로 목을 어루만지다가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 듯 나를 봤다.
그리고 빵 터졌다.
“푸하하하하하하!!!!”
링스턴은 다시 그의 멱살을 잡았다. 이번에는 말리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진정된 다음,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밤을 샌 나와 링스턴은 물론이고, 아캄도 아침을 먹어야 했다. 본래라면 아침 식사 당번은 링스턴 이었지만, 그는 요리 하는걸 거부했고, 잘못한게 있는 아캄이, 또다시 아침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면서 그들은 내가 본 광경에 대해서 물었다.
“정확히 어떤걸 봤는데? 우선 거기부터 시작하자고.”
“음...바람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싱숭생숭해서, 잠을 못 자고 있었어. 시간은 3시 좀 넘어서였고... 심심했지, 등대로 가서 링스턴이랑 잡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때워볼까 하고 숙소에서 나왔어. 그때 아캄은 잘 자고 있었지.(이 대목에서 링스턴은 눈을 부라렸고, 아캄은 히히 웃었다.) 등대 쪽으로 걸어가다가, 그냥 기분이 이상해서 등대 너머 바다쪽을 봤어.
나는 처음에 작은 바위섬이나 난파선이나 뭔가가 있는 줄 알았어. 바다 한가운데 검은 그림자가 솟아올라와 있고, 파도가 거기 부딪혀서 물보라가 이는 모습이 아주 멋지더군, 달빛이 비치니까 흩어지는 물안개가 마치 하얀 비단 같았어. 바위 위에 비단옷을 두르고 앉아있는 처녀 말이야. 하지만 동시에 바위를 감고있는 뱀이나 뭔가 무서운 짐승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 '안개'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어. 잠시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가,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거야. 그리고 등대로 들어갔고, 그 뒤는 링스턴이 알고 있는 그대로지.”
거기까지 말한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링스턴은 두 눈을 굳게 감고 있었고(깊은 빡침을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아캄은 뭔가 곰곰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아니 근데 이 색히들이 듣기만 하고 이야기는 안해?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서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아캄이 가져다 준 얼음 주머니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자니 붓기가 조금씩 가라앉는것 같아 시원했다.
완전히 기습으로 선빵을 맞아버려서 이렇게 됬지만 정말로 싸운다면 이렇게 맥없이 당하진 않았을거야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데, 이윽고 아캄이 생각을 정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가 말할까요?”
“누가 더 많이 알고 있을까”
“모르죠, 비교 할 수가 없으니.”
“그럼 니가 이야기 해라. 난 말 재주가 없어서.”
링스턴은 벌떡 일어났다.
“나는 자러간다. 나중에 봐.”
그리고 그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방 안에 남겨진 나는 아캄을 지긋이 바라보았고. 아캄은 (놀랍게도) 정색을 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장이 본건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라는 거예요.”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순간, 쿠알라룸프르에서 만났던 플라워의 목소리가 귓전을 스쳐지나갔다.
술자리의 농담으로 웃어 넘겼던 이름.
지상에 나타나면 재앙이 기어온다는 간출암.
부엌은 밝고 따스한 아침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나는 온기를 느낄수 없었다. 무언가 서늘한 것이 내 등줄기를 따라 기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아캄은, 남자 치고는 맑고 낭랑한, 그래서 더욱 무감정하고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는, 알 수 없는 무언가예요. 간출암 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움직이니까요'”
“움직인다고?”
“네, 불특정한 주기로,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 다니지요. 그래서 이 등대에서도 매번 관측할 수 있는건 아니예요. 그걸 온 첫날 보게된 장은... 진짜 재수 없는 사람이예요. 복권이나 경품행사 같은거, 한번도 당첨된 적 없죠?”
“내 운세에 대한 이야긴 다음에 하고, 그래서 그 움직이는 무언가가 뭔데?”
“말해줄 수 없어요.”
“뭐?”
장난하나, 진심으로 어처구니 없어하는 나를 바라보며, 아캄은 잔잔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말 해서는 안되는 거죠'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는, 그런 거예요.”
“알아듣게 설명해봐.”
“알았어요...음, 어렵네에...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짝 하고 손뼉을 친 아캄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장은, 이 섬을 떠나면 죽습니다.”
더 없이 진지한 상황에서, 더 없이 말도 안돼는 소식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이를테면, 대학교 홈페이지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던가,
그 동안 주식으로 번 돈을 우량주에 몰빵하고 그날 바로 주가가 하한가를 찍는다거나 하는 경험 말이다.
그런 경우, 절망감 보다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어처구니 없음이다. 현실을 받아들일수 없는 것이다.
그때의 내 심정은 그와 같았다고 본다. 나는 이 놈이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심정이었다. 나는 기가 차서 말했다.
“내가”
“예”
“이 섬을”
“예”
“나가면”
“...”
“죽는다고”
“예.”
“미친거 아니냐??”
“안타깝게도... 나도 제가 미쳐있는 거면 좋겠네요. 이 섬에 10년 동안 갇혀있는 입장으로서는...”
아캄은 훗 하고 웃었다.
“뭐?”
어처구니 없어서 반문하는 나에게, 아캄이 말했다.
“저는 이 섬에, 정확히는 루바 아일렌드에 10년째 갇혀 있습니다. 루바 아일랜드에 산건 22년, 그중 12년은 루바 아일랜드에 '살았고', 남은 10년은 어쩔수 없이 루바 아일랜드에 '갇혀 있어요.' 그 차이를, 이해했으면 합니다.”
“루바 아일랜드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이야?”
“나갈 수는 있어요.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 섬을 떠났죠. 그리고 죽었습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남김 없이요.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를 목격한 사람은 그 후 이상한 현상을 만나게 됩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지상으로 떠오르는 날 마다, 기이한 안개가 그를 찾아오죠. 그것은 일정한 모습이 없습니다. 형태가 없는 안개와 같기도 하고, 눈부신 미녀의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하죠, 추악한 괴물의 모습일 때도 있다고 합니다.그 형상들은 목격자의 목숨을 노리고...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사라집니다. 해가 떠올라도 사라지고요. 우리는 그것을 허깨비(Phantom)이라고 부릅니다. 링스턴 씨가 당신을 습격한 건 그것 때문입니다. 그는 당신을 허깨비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 말을 믿으라는 거야?”
“뭐, 싫어도 믿게 될겁니다 곧..”
어깨를 으쓱하는 그에게 나는 반박했다.
“네 말이 맞다고 치자,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를 볼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없는 바깥으로 도망가면 되는 거 아냐?”
“거기에도 또 문제가 있어요. 그게 바로 제가 이 섬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죠. 아이리쉬인 링스턴이 뜬금없이 이 섬에서 등대지기 같은 걸 하고 있는 이유 이기도 하고요.”
생각지 못했던 부분 이었다. 등대지기는 공무원이다. 항만국에서 관리하는 국가 기능직 공무원. 우리나라에서 그렇다면 외국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왜 이 등대는 나나 링스턴 같은 외국인을 고용해서 쓰고 있다는 말인가?
내가 생각에 잠기건 말건,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링스턴은 섬을 떠난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관광객으로 이 섬에 왔었죠. 그러다가 마을 주민에게 모터 보트를 대여해 밤낚시를 나갔고, 거기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를 목격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언가' 에 놀란 링스턴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고, 다음날 아침 바로 루바 아일랜드를 떠났죠. 그리고 그날 밤 부터, 그는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꿈?”
“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묶여 있는 꿈을요.”
“꿈 속에서 그는 묶여 있고, 사방은 망망 대해 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런 와중에 사방에서 무엇인가가 둘러싸고 다가 옵니다.
그것은 무언가의 떼(Swarm) 입니다. 달리 뭐라고 묘사할 수가 없군요. 루바 아일랜드를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스웜의 꿈을 꿨고, 꿈 속에서 스웜은 그를 둘러싸고 전신을 갉아먹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깼을 때, 그는 놀랍도록 쇄약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
“마침 외출 차 메르싱으로 갔던 저는 술집에서 횡설수설 하고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라는 걸 알자 말자 그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겁니다.”
“...그럼 섬을 떠나 죽었다는 사람들은..”
“쇄약사, 혹은 심신쇄약에 기인한 거식증, 운전중 실수, 낙상사 등등 이었습니다. 아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목숨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저와 링스턴 뿐일겁니다. 이제는 장도 해당 되는 군요.”
“마을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냐?”
“네니오(NES)”
“무슨 소리야.?”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장이 말해줘야 할게 있습니다.”
그리고 아캄은, 내 두 어깨를 잡았다. 불시의 접촉에 깜짝 놀란 내가 그의 두 눈을 바라보자. 이 성격좋은 말레이 청년이 두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장에게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서 저 이전에 말한 사람...누굽니까?”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아캄과 링스턴에게 플라워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구청장에게는 이야기 했지만. 내 이름도 듣지 못했던 아캄을 보면, 구청장이 내가 이 섬에 찾아온 사연까지 구질구질하게 아캄에게 설명했으리라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내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을 목격했다고 철떡같이 믿고 나를 이 섬으로 대려온 것이리라, 그러지 않고서는 낮의 그의 행동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플라워 라는 여자였어... 루바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했지.”
“그런 사람은 이 섬에 없습니다. 난 이 섬에 22년을 살았지만 그런 여자 몰라요.”
아캄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봐 아캄, 나도 하나 물어볼게. 넌 어째서 내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너 이전에 누군가에게 들었을 거라고 확신한 거지?”
“...그게 제가 아까 네니오(NES)라고 대답한 이유 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지요.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라는 무언가가 있고, 루바 아일랜드 부근에서 랜덤하게 출현합니다. 그리고 그 섬을 목격한 자는 루바 아일랜드를 떠나면 사망, 루바 아일랜드에 남아 있다고 해도 허깨비에게 높은 확률로 죽임을 당합니다. 루바 아일랜드는 섬이고, 주민들은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당연히 바다에 많이 들락 거리지요. 또한, 서쪽 리조트는 바다를 이용한 관광객 유치 수단입니다.
“...”
생각지 못한 이야기 였다. 나는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캄은 한숨을 쉬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위의 가설에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는 그 조우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조우하게 되느냐”
자, 이쯤 되면, 루바 아일랜드는 무인도가 되도 이상하지 않지 않습니까 모두다 죽어버리는게 정상 아닐까요?”
머리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알고 있는 사람”
불스 아이(Bull's Eye)
아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가 질문한 이윱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그것과 조우하지 않아요.
말로 듣던, 글로 접하던, 매개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존재를 아는 자는, 루바 아일랜드 주변에서 랜덤한 확률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와 조우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것을 아는 사람은 적은편이 좋겠지요 다른 사람들과 접촉 기회도 가능한 적은 편이 좋을 겁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언급하면, 그 사람도 이 저주의 숙주가 되니까요. 위험한 바이러스를 격리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민주주의 국가고, 죄 없는 저와 링스턴 씨를, 가상의 괴물을 핑계로 죽이려 들 만큼 이 나라의 법관들은 정신나간 사람이 아닙니다. 그 결과가 이겁니다. 구청장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고, 또 목격한 저와 링스턴 씨를 없애버릴수도 없기에, 마을에서 최대한 떨어진 이 외진 등대에 등대지기로 보내버려서, 살려둔체 마을과 격리시키고 있죠. 이해 되십니까?”
“잠깐,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구청장은 알고 있다고?”
“예, 이 현상에 대해 우리가 이만한 지식을 얻을때 까지, 몇명이 죽어나갔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는 이 섬의 관리자 입니다. 대대로 그들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알고 그 정보를 관리해 왔죠.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는 모릅니다.링스턴에게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말해준 사람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물론, 구청장은 바다에 절대 나가지 않습니다. 목격해서는 안되니까요.”
“그 개새끼가~!!!!!!”
순간 눈 앞이 확 하고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던 구청장의 그 두꺼비 같던 낯짝이 떠오르자 분함에 미쳐 버릴것 같았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를 진정시키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써야 했다, 그 새끼는, 모든걸 알고서 나를 여기로 보낸거야? 그런거야?
아캄은 좀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열받는 심정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구청장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이 섬에서, 본인을 포함해서 딱 세명만 아는 비밀을, 왠 관광객이 찾아와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이야기 했다고 생각해 봐요. 일급 격리 대상이죠.”
등대지기 일을 하며, 플라워가 말했던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이야길 했을때, 놈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던 것은 그 때문이었나.
“......계속해.”
“,,,에헴, 그럼 사양않고.”
아캄은 헛기침 후 말을 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 입니다만, 제가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해 장 에게 다 말해 줄수 없는 이유 입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서 많이 알 수록, 허깨비는 더 뚜렷해지고, 스웜은 더 짙어 집니다. 비밀을 많이 아는 사람은 오래 생존할 수가 없지요.”
“...허”
“링스턴이 방을 나간 이유 입니다. 그가 많이 아느냐, 내가 많이 아느냐, 서로 말을 맞춰보지 않고서는 몰라요. 하지만 많이 아는 만큼, 허깨비는 뚜렷한 실상을 가지고 공격하고, 스웜은 더 많이 몰려듭니다. 이 섬에 왔고,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를 목격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에 거기까지만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 하는거죠. 더 깊이 이야기 해 본적은 없습니다. 구청장 이라면 관리자 로서 기록을 갖고 있는게 있을수도 있지만, 오래 살려면 가져서는 안될 지식이죠. 하긴...”
아캄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허깨비를 진.짜. 로 혼동한 시점에서, 그가 보는 허깨비가 얼마나 짙은지. 짐작은 갑니다마는...”
나는 당분간 말을 잃었다. 이 청년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고있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웃음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표현이 모순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웃음은, 불길했다.
“자...일단, 제가 이야기 해 드릴수 있는 건 여기까집니다. 생각나는 건 대충 이야기 한거 같고, 뭔가 질문은 없으신가요?”
“...네 말을 듣고나니 몇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우리는 일급 격리 대상이지, 그런데 일주일에 한번 자유롭게 쿠알라 푸파를 나갈수 있는거야?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에게 소문을 퍼트릴 수도 있는데”
“주민들과의 필요 이상의 접촉은 금지되어 있지만, 어쩔수 없지요. 주민수가 많지 않은 섬 입니다. 우리가 등대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게 이슈 거리가 될 수 있어요. 호기심은 일을 그르치는 법이죠. 차라리 눈에 띄지 않게 왔다갔다 하며 적당히 섞이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전 이 섬의 주민 입니다. 이웃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제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는 걸 아니까 봐주는 거죠. 링스턴 또한, 구청장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섬을 쫓겨나 죽게 됩니다. 닥치는 대로 감염자() 를 늘린다고 본인이 살 수 있는게 아닌 이상. 군말 없이 따르는 수 밖에 없는 거죠.”
“또, 넌 메르싱에서 쇠약해져 가는 링스턴을 만났지. 섬을 벗어난 부작용은 언제 시작되고 사람이 죽기까지는 얼마나 걸리는 거지?”
“ '얼마나 아느냐' 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최단 기록은 하루였죠.”
“최단기록?”
“리따”
아캄은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구청장의 딸이고, 제 친구였습니다.”
그는 애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죽인겁니다.”
“...”
“저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서는 안됐어요. 소꿉친구 였지만. 제가 저주의 희생양이 되고서는 거리를 두어야 했죠., 하지만 저는 그럴수 없었습니다.
그녀를 좋아했거든요... 12살 어린이 였습니다. 전, 철이 없었죠. 결국 제가 그 사실을 인지한건 우리가 18살이 되었을 때 였습니다.
저는 그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그녀는 바뀐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찾아와 저를 설득하려고 했죠. 저는 그런 그녀를 메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리따는 어느날 나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
“저는 경악 했습니다. 하지만 곧 이해했죠. 그녀는 구청장의 딸 입니다. 집안 어딘가 남겨져 였는 기록을 발견한 것 이겠죠. 저는 당장 구청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녀를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죠. 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 였습니다. '너를 고쳐줄 방법을 알아. 내가 너를 고쳐줄게.'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그날 오후, 아버지 몰래 섬을 떠났습니다. 다음날 저녁. 섬에서는 그녀의 장례식이 치뤄졌지요.”
“...”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없었다.
아캄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반곱슬의 밤색 머리칼이 흘러내려 그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숙연한 분위기에 내가 분노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있는데, 이윽고 그는 고개를 내려 나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평소의 햇님같은 웃음이었다.
“아무튼, 잘 부탁 드립니다. 설명은 이만하면 된 것 같군요. 충고 하나 하지요, '이 섬에서 알게되는 모든걸,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호기심이 죽이는 건 고양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부엌을 나갔다. 난...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속이 복잡했다. 솟아오르는 감정은 주로 분노와 후회였고, 그 밖에 이런 저런 감정이 잭크의 콩나물 처럼 머릿속에서 자라올라 꼬여버리는 기분이었다. 관자놀이는 덩쿨이 뚫고 나오려는 것 마냥 지끈 거렸고, 밤을 샌 여파인지 눈은 빠질 것 처럼 따끔거렸다. 그 와중에 나는 플라워의 얼굴을 떠올렸다. 가지런한 하얀 치열이 아름답던 단아한 얼굴, 그녀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나를 이런 섬으로 끌어들인 것인가 아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 대해 알고 있는, 하지만 구청장도 아캄도 모르는 그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고, 나는 결국,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방으로 향했다.
탕
침실의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던 링스턴의 고개가 획 돌아왔다.
그는 참담한 내 표정을 보고서, 예의 삐딱한 얼굴로 말했다.
“다 들었냐?”
“어.”
“그러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었니 새끼야. 후회해도 늦었다.”
“걱정해줘서 X 나게 고맙다 인마.”
“...야, 링스턴.”
“왜 옐로몽키.”
“장이라 불러,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대 인종차별 발언이야.”
“릭(Rick)”
“...”
“릭 이라 불러라, 그럼 나도 널 장이라 불러주지.”
“...그럼 릭.”
“뭐냐 장.”
“너, 여기서 산지 얼마나 됐어”
“...2년 정돈가. 생각하고 싶지 않아.”
“처음엔 어떤 기분이었어”
“지금 너 같은 기분이었지. “
“허깨비들은, 어떻게 상대해야해”
“...아캄한테 들었다며. 알 수록 안좋아.”
“내가 허깨비 한테 공격 받는다면”
“때 되면 알게 될 거다. 너 한국인이지, 군대는 다녀왔냐 총은 쏠줄 알고?”
“명사수는 아니었지만, 소총쓰는 법 배우긴 했지.”
“한국 기본 제식 총이 뭔데, 에쉘라는 다뤄봤냐?”
“아니, K2야.에쉘라는 못 써봤어.”
“권총 사격 경험은?”
“...없어, 한국군 제식 장비도 아니고, 한국은 총기소지 불법이야.”
그는 끌 하고 혀를 차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짤랑짤랑 열쇠소리를 낸 그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따라와, 우리 목숨줄을 보여주지.”
예상대로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등대 1층의 무기 캐비넷 이었다.
그는 자물쇠를 따고서 나에게 그 안에 있는 소총 하나를 꺼내 건냈다.
“총기보관함 관리가 너무 허술한 거 아냐?”
“이 섬에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필요할때 못 꺼내서 뒈지는 건 병신이나 할 짓이야.,”
난 그가 건내준 소총이 그가 말했던 에쉘라 라는걸 알 수 있었다. K2 보다 더 길고 투박한 총신, 중량도 더 묵직하다. 어젯밤, 내 목과 관자놀이, 가슴등을 찔렀던 놈 이었다.
“탄창 교환하는 법 하고, 안전장치 해제하는 법은 알겠지 그게 우리 주 무장이다. 점사, 연사 다 가능하고, 사용할 대는 연사에 놓고 갈기는 걸 추천한다.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장탄수는 1000발이고, 필요하면 아캄을 통해 구청장에게 청구하면 되, 망항 영감탱이, 무슨 연줄이 있는지 무기랑 탄약도 구해다 줘. 하긴 그 덕분에 우리가 목숨 부지하고 지낼 수 있는 거지만.
그리고, 이건 부 무장. 중국산 토카레프야. 장탄수 8발, 싱글액션 방식이다. 관통력은 약하고 7.6미리 짜리라 살상력도 약하지만 저지력이 좋아. 100발 보유 중이고. 안전 장치가 없는 총 이니까 취급엔 주의를. 3정 있으니, 하나 네가 정비해서 쓰면 되겠다.”
“...”
“크로스 보우(석궁)은 알거고... 화살 30발 있어. 장전 1발, 서브 카트리지에 2발 끼워 넣을 수 있고. 총을 쓰지 못할 상황에서라면...필요할 지도 모르지.”
“...”
“그리고 대검 10자루, 총검 2자루, 쿠쿠리( 자 모양의 검, 구르카 용병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 1자루. 이 정도다. 총기류 정비는 개인적으로 하고 있어, 유사시 자기 목숨을 지킬 장비니까. 아 그리고ㅡ 사격 연습 한답시고 쏴 대는건 추천하지 않아. 섬 주민들이 불안해 하니까. 구청장이 무마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발포는 목숨이 걸렸을 때 뿐이야. 오케?”
“...너, 원래 직업은?”
“전직 용병이다, 블랙워터(BLACK WATER INC.) 에서 일했지. 왜.”
과연, 납득된다.
블랙워터는 내가 상선에서 일 할 때도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설 무장집단...용병이다. 상선도 해적 피습의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적피습 고위험 구간인 인도양, 홍해, 마다가스타르나 소말리아 부근을 항해하는 선박은, 용병회사와 계약을 맺고 용병을 승선시키기도 해.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나름 대기업이라, 용병을 승선시키고 있었지.
블랙워터는 육상보안으로는 독보적인 세계 1위, 해상보안으로는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용병회사야. 하지만 실상은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검색해 보길 바라, 블랙워터 용병치고, 제정신 박힌놈은 난 한명도 못봤어.
나는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고, 릭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헤이, 그러는 넌 뭐였냐. 입에 걸레를 문 걸 보니 선생이나 뭐 그런 부류가 아니었던 건 확실한 것 같고, 성깔있고 몸이 다부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직업군인도 아닌거 같은데.”
“항해사 였어(Officer)”
“뭐 ?경찰(Police officer)?”
“아니, 상선 항해사(Merchant ship Officer).”
릭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외네, 영국에서는 아무나 할수 없는 일 이라고. 명문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집안도 좋아야 하지. 사회적인 위상도 좋은 직업이고. 전혀 너랑 안어울리는데.”
“안어울려서 미안하네, 한국에선 기피대상 이거든, 집안좋고 돈 많은 집의 자식치고 뱃놈은 없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취직이 보장된다는 점과 젊은 나이에 비교적 목돈을 모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경기가 어려운 지금은 반짝 평판이 좋아졌지만, 한국인의 해기관련 선입견은 시궁창이라...”
나는 대충 설명하고는 총을 도로 그에게 건냈다. 그는 내가 받은 소총과 꺼낸 토카레프, 도검류를 바닥에 늘어놓더니 캐비넷 안에서 연마봉을 꺼내 쿠크리를 갈기 시작했다. 샤악 샤악, 약간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내며 칼을 가는 그를 잠시 멍하니 보다가 나는 말을 이었다.
“야, 근데 난 아직 솔직히 백프로 믿질 못하겠다. 어제 이상한 현상을 본건 받지만,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니 어쩌니 하는건 너랑 아캄의 이야기 뿐 이었고.”
샤악,샤악,샤악
릭은 대답이 없었다.
“니들이 짜고서 나를 놀린다고 생각도 들어. 기분 나빠하진 마,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 아니야 사실 말이 안돼는 일 이잖아”
샤악,샤악,샤악
“섬을 나간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됐는지 다 알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너희가 봤다는...그것도(허깨비라는 표현은 피했다. 정확한 수위 조절을 알 수 없었다.) 사실 너희들만 본 환상일 수도 있잖아.”
샤악.샤악, 샤-악.
그의 동작이 느려졌다,
“아니...별로 니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우뚝, 그의 동작이 멎었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나를 삐딱하게 노려보다가, 다시 신경질 적인 동작으로 빠르게 칼을 갈기 시작했다. 샥샥샥샥.
“그래서, 나랑 아캄은 정신병자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지마(come on)...내가 여기서 널 도발해서 뭘 하겠냐. 솔직히 니놈이 존나 맘에 안들긴 하는데,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 만들고 싶진 않아. 난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은 거 뿐 이라고. 너도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을 2년전에 느껴봤을 거 아냐 부탁이니까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
샥샥샥샥, 칼을 가는 그의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잠시 그렇게 침묵속에 손을 놀렸고 나는 그런 그를 주시했다. 이윽고 그는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후우...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마치 이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것 처럼 행동하지, 모든걸 알고, 모든걸 마음대로 할 권한이 있는 것 처럼 말야. 그런데 ㅅㅂ 사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조또 몰라. 모르면서 깽판을 치고 있는거야.
지표면에 우리가 아직 탐사하지 못한 면적이 얼만줄 알아 해저는 어떻고, 매년 새롭게 발견되는 곤충이 1000종류가 넘는건 알고 있어 우리는 무지 투성이야.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기 전에 하늘은 날 수 없는 공간이었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에, 지구는 평평했다고. 뭔 소린줄 알아 니가 아는 상식으로 세상을 제단하지 말라는 거야.”
“...”
나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는 여전히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리쉬 특유의 흐릿한 억양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집중했다.
“니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건 전혀 문제가 안돼, 넌 티끌만도 못한 존재라고, 니가 만류인력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다고 해서 중력이 너만 빗겨가냐 니가 납득(make sense)한다는 건, 네가 현상이나 사물을 네 방식으로 알아차릴수 있도록 만든다는 거야(make that sense by your own way) 해가 뜨고 지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고 46억년 전 부터 지구에 아침이 찾아온 것 처럼.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는 네가 납득 하든 안하든 존재해. 그게 초래하는 스웜이나, 밤에 나타나는 염병할 잡것들 또한 마찬가지지. 그것들은 니가 납득하던 말건 조또 신경 안써, 그놈들이 신경쓰는건 네 목숨 뿐이니까.”
“...결론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닥치고 믿으라?”
“닥치고 믿을 수 밖에 없을거다. 정 못 믿겠으면 오늘 섬을 떠나 보던가. 많이 알고 있지 않다면 몇일은 버티겠지. 골골거리는 몰골로 다시 돌아오기만 해봐라 엉덩이를 걷어차 줄 테다.”
그는 쿠쿠리 가는걸 멈추고, 가죽제 칼집에 집어 넣더니, 이번에는 군용 대검을 갈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그래, 니들 말이 맞다면 어차피 나도 몇일 안에 허깨비를 보게 되겠지.
야, 그럼 또 하나 묻자. 등대지기 일이 단순히 우리를 격리시키기 위한 구실 이라면, 우리가 굳이 등대지기 일을 성실히 할 필요가 없지 않냐?”
샥샥샥, 칼 가는 소리가 거슬렸다.
“그건 '알아선 안돼는 일' 이다. 네가 알게 될지도 모르고, 끝내 모르게 될 지도 모르지만... 모르게 되길 바란다. 한가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등대지기 일이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무척 중요한 일 이라는 거지.
그게 촌장이 법망을 피해가면서 우리에게 무기를 대 주고, 우리가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의 말에서, 나는 등대지기 일과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이상현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접 알려 줄 수는 없기에 그는 우회하여 설명한 것이다.
“또 한가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출현한 날, 허깨비가 그 잡것들이(that shits, 그의 표현 그대로다 그는 phantom이라는 단어 대신 이 단어를 고집했다) 나타나는데, 그때 등대지기 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치고, 숙소에서 자는 사람들은-“
“자는 놈은 괜찮아, 이유는 '말해줄 수 없다.' “
“만약 아무도 등대지기를 하지 않고 잠을 잔다면?”
“말해 줄 수 없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알아 듣겠냐' 라는 식으로 눈을 찡긋 했다.
나는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꼭 암호로 대화를 나누는 느낌 이었다.
“그래... 말해줄수 없는, 알아선 안돼는 일 이란 말이지”
“그래.그러니까 오늘부터 정신 바짝 차려라.”
그런 말을 들어도,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 였다. 결국은 내가 경험하기 전 까지는 알 수 없는 일 이었지만, 일단 나는 이 섬에 좀 더 머물러 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말이 끝나자 다음 대검을 갈기 시작했고, 나는 방 중앙의 지도로 향했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는 그의 말에 따르면 교전지 즉,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출현했거나, 혹은...허깨비들과 싸웠던 장로라고 추측이 되었다.
장소는 쿠알라 푸파 등대를 중심으로 북서쪽 해안에 가장 많이 편중되어 있었고, 본섬인 루바 아일랜드 부근에서도 이곳 저곳에 표시 되어 있었다.
나는 어제 부터 신경 쓰이던 사실을 질문했다.
“그럼 이 지도, 여기저기 표시가 되어있는데, 글씨체가 다 달라. 이건 너랑 아캄이 표시 한 거냐?”
“나랑 아캄 '도' 표시한거지, 잘봐 글씨체가 다른게 몇개나 되는지.”
그의 말에 나는 다시 주의깊게 지도를 살폈다.
최소한 5개 정도로 보이는 필적이 있었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말레이어. 말레이어가 가장 많았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스쳤다.
“...릭.”
“왜”
“다른 필적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있냐?”
“어디에도.”
그는 짤막하게 말하곤, 대검을 내려놓으며 나를 돌아봤다.
“호기심 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힌 수인(囚人)은, 우리 셋이 다가 아니라는 거다.”
“…어디에도?”
“어디에도, 없다.”
“다 죽었다고?”
“죽었다고 믿는거지.”
“...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죽었으면 죽은거고, 살았으면 살은거지 하고 물음표를 떠올려 보던 내 머리 위로, 느낌표가 튀어나온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직감을 그대로 내뱉어 버렸다.
“...실종...”
“대가리에 똥만 찬 줄 알았더니, 의외로 굴러가는구나.”
내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다량의 혈흔과 함께 사람이 통째로 사라졌다면, 사망했다고 추정하는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이게 무슨 공포영화냐...”
“영화였다면 팝콘을 스크린에 던져줬을 거다. 이 영화는 연출이 최악이라고.”
“최악이긴 하네, 그리고 니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니들은 최악의 이야기 꾼이야,”
나는 허탈한 기분이 들어서 지도가 놓인 탁자에 걸터앉아 버렸다. 머리가 어지러운건 밤을 샌 여파만이 아닌 모양이다.
“등대 근무는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그건 오늘 저녁, 아캄이 너에게 설명해 줄 거야.”
“알았어.”
피곤이 몰려들었다, 어제밤 부터 긴 시간 깨어있던 머리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복잡했고, 눈은 튀어나올 거 같았다.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없다는 걸 깨닫자 나는 오히려 차분해 지는 것을 느꼈다.
“낮 동안은 안전한 거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출현하지 않은 날은 밤에도 안전해. 왜, 잘려고?”
“그래야 할거 같아서. 넌?”
“난 좀더 있다가. 자라.”
그는 두번째의 대거를 내려 놓고는 캐비넷 안에서 검은천 제질의 길쭉한 두루마기 같은 것을 꺼내들어 바닥에 펼쳤다. 총기 손질용 소재봉과 기름, 헝겊등이 쏟아져 나왔고, 그는 에쉘라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뒤로 하고서 등대 1층을 나왔다. 잠이 몰려왔다.
그런데 등대 1층의 바닥은 상태가 안 좋은데, 좀 치우는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숙소로 돌아갔고, 씻지도 않은채 내 침대 위에 올라가자 말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아침은 아캄이 했고, 새벽조였던 링스턴이 점심은 먹지않고 잠을 잤기 때문에 나는 점심에 식사를 준비했다. 별달리 할줄 아는 것도 없고, 있는 재료로 할수 있는 걸 찾다보니, 결국 아캄과 같은 토스트 정도였다. 아캄은 맛있게 먹었지만, 한국요리는 어떠냐고 계속해서 물어봤다. 다음에 부식을 청구할 때는 쌀을 구해달라고 말했다. 김치를 구하는건...무리겠지
그리고 저녁이 되었는데...나는 아캄이 말한 릭의 영국요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뭐랄까. 일단 원 재료는 소시지와 토마토, 그리고 감자였다.
통통하고 맛있는 소시지와, 과즙이 흘러넘치는 싱싱한 토마토, 감자도 상태가 괜찮았을 거라고 추정하는데. 그는 그것을 철저하게 영국방식으로 요리해 왔다. 아니 그에게 말 하면 아일랜드 식 이라고 말 하겠지만,
똥이나 변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그건, 소시지와 토마토, 감자를 넣어 삶고, 삶고, 또 삶아서, 계속 삶은후의 말로와 같은 '무언가' 였다.
'음식' 이라고 불러주기에는 왠지 내 혀가 용서치 않을 것 같았다.
“와우...링스턴...오늘도 또... 재료에게 미안한 요리로군요.”
아캄은 웃는지 우는지 구분하기 미묘한 표정으로 접시를 받아들었고,
릭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내용물을 담은 다음 나에게 내밀었다.
계속 삶아져서 불어터진 토마토가 접시위에 놓여서 '안녕' 이라고 말을 거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아캄에게 말했다.
“이봐 아캄, 너는 계속 하루에 한두번 이런 요리를 먹고 살아온 거야”
“오기로 먹었죠. 안그러면 제가 세끼 다 해야 하는데 저는 링스턴의 식모가 아니라고요!”
“먹기싫으면 처먹지 마.”
릭은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대로 본인 몫의 접시를 들고 탁자에 앉았다. 식당에는 백열전등이 있었지만, 전구가 빠져 있었고, 그 대신 촛대에 놓인 양초가 넓지 않은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전기불로는 나오지 않는, 은은하면서 따사로운 파스텔 색조의 조명은, 식사 자리의 분위기를 보다 푸근하고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촛불의 마법마져도 릭의 요리를 맛있어 보이게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촛불에 비친 그림자는 불어터진 토마토를 더 맛없게, 뭉그러진 감자를 더 부담스럽게, 육즙이 싹 빠져버린 소시지를 더 빈 껍데기처럼 보이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나는 문득 대학시절 전굥교양과목으로 들은 해양사의 한 단락이 떠올랐다,
세계 지도를 바꾼건, 영국인의 입맛 때문이었다.
음식이 끔찍하게 맛이 없었던 영국인들은 후추나 정향, 계피와 박하 같은 향신료를 찾아 기를 쓰고 동아 항로를 개척했고, 그 결과 대 항해시대의 주역으로 떠올라 해가지지 않는 왕국을 이루었다.
...니들, 그럴 만 했구나.
식사가 끝나고 나서, 아캄은 나를 데리고 등대 3층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아캄은 말했다.
“등대로 올라갈 때는 1층에 들려서 소총이나 다른 무장들을 가지고 가야 해요. 열쇠는 당직자가 가지고 있다가 그 다음 당직자 에게 직접 인계해 주는 것이 원칙이고...낮 동안에도 몸에서 때어놓으면 안됩니다.”
“그럼 낮 동안에 무기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하하, 그럴 일은 없어요”
그는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등대 근무의 원칙은
1. 교대시간 전 까지는 절대로 등대에서 나가지 말 것.
2. 비번은 자기 당직시간까지 절대로 숙소에서 나가지 말 것.
3. 교대 당직자는 시간이 되면, 숙소를 나와 등대로 향하되, 절대로 바다를 보지 말고, 등대까지 일직선으로 향할 것.
4. 당직 교대시, 교대자는 정시까지 등대탑 3층으로 오되, 노크를 반드시 하고, 양 팔을 머리 위에 올린채로, 절대로 전임 당직자를 보지 않고 들어온 다음, 중앙의 의자에 앉을 것.
5. 전임 당직자는 들어온 사람이 후임 당직자 임을 확인 한 후 부무장을 챙겨서 등대탑을 내려올 것.
6. 전임 당직자는 교대후 지하실에서 발전기가 정상 작동중인지, 연료유 게이지는 어떤지 점검 한후, 필요하다면 주유를 한 후 재고 잔량을 기록, 그후 숙소로 돌아올 것.
7. 숙소로 올 때 까지 절대로 바다쪽을 보지 말고, 일직선으로 달릴 것. 무슨 소리가 들려와도 절때 바다를 보지 말 것.
8. 등대 근무중에는 등화를 가리지 않고, 로터가 정상적으로 회전하는 지를 확인할 것, 자주 해면을 확인하고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이하 PI 라고 줄임)가 나타나는지 예의 주시할 것.
9. PI.가 나타나지 않는 밤은, 특이사항 없음.
10.P.I. 가 나타나는 밤은, 정신 바짝 차리고 PI에서 절대 눈을 때지 말것, 눈을 때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반드시 살아남을 것.
11. 무선신호장치는 고장나 있음. 이따금 잡음이 들려오나 무시해도 좋음.
12. PI가 부상한 곳의 위치를 근무 종료후 1층 로비에 있는 해도에 간단히 표기할 것. 발견자를 구분하기 위해 모두 다른 색 팬을 사용할 것을 권고.
발견일시, 위치, 동정 등을 기록바람.
13...아...뭐더라”
거기까지 말했을때, 우리는 1층 로비에 도착했고, 아캄은 먼저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에 도착한 그는 두대의 발전기 중, 오른쪽에 있는 발전기 앞에 서서, 안전핀을 제거 한 다음, 몇개인가의 밸브를 조작했다.
“이거 작동 방법은 간단해요. 옆에 메뉴얼 놓여 있으니 시간나면 보셔도 되고, 귀찮으면 여기...스티커 보이죠? 1,2,3 번호 적혀있는, 이 순서대로 조작하면 되요. 끌때는 역순으로 하면 되고. 참 쉽죠?”
마지막으로 그가, 숫자 4가 적혀있는 고리를 잡고 힘차게 잡아 당기자, 털털털털털! 하는, 마치 경운기 시동거는 소리가 났다. 그가 몇번 그것을 반복하자, 마침내 발전기에서 웅웅거리는 발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가 하는거 봤으니 다음부턴 혼자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하긴, 어차피 초저녁 근무는 저라서, 켜실 일은 없으실 거지만요.”
그리고 우리는 1층 로비로 향했다.
아캄은 캐비넷을 열어 에쉘라 소총과 토카레프 한정, 그리고 쿠쿠리를 꺼냈다. 소총을 몸에 두르고,토카레프와 쿠쿠리를 허리띠에 찬 다음, 그는 앞장서서 3층에 들어갔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던 3층 내부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3층은 사방이 탁 트여있는 공간으로, 두꺼운 통유리 제질의 창문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천정까지 높이는 약 3미터, 공간 중심에는 회칠을 해 놓은 샤프트 축이 있었고, 그 위에는 어른 머리통 보다 더 큰 전구가 있었다.
전구의 뒷 몇은 반사율을 높이기 위해 내부에 수은으로 추정되는 특수도장을 하여 빛을 모아 반대방향으로 반사할수 있는 동그란 밥그릇 같은 구조물이 있었고, 아직까지 불빛은 들어오지 않고, 샤프트도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아캄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기둥의 뒷편, 작은 박스를 열자, 그 안에 두꺼비 집 처럼 보이는 전원장치가 보였고, 거기에는 영어로 ROTOR LIGHT 라고 적혀 있었다.
“이 박스에서 전원을 켜고 끌 수 있어요. 만약 필요하다면, ROTOR의 전원만 끄고...여기 보세요.”
박스 옆에는 사람 트럭 바퀴만큼 커다란 핸들 하나와, 작은 핸들 하나가 있었다.
“이 핸들을 돌려서 로터의 회전방향, 그리고 라이트 빔 발사각을 위 아래로 조절해서 맞출 수 있어요. PI 가 나타났을 때, 오토 회전의 불빛 만으로 PI를 주시할수 없다면, 수동으로 맞춰서 보시는 걸 추천할게요.”
“전혀 배를 위한 등대가 아니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
“호기심이 죽이는건-“
“고양이 뿐만이 아니다. 예의 그 '알아선 안되는 이야기' 로구만.”
내 말에 아캄은 씨익 웃었다.
“장은 말이 잘 통해서 맘에 들어요.”
'알아선 안돼는 이야기' 라, 아캄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릭은 나는 얼마나 더 알게 될까
아직까지는 이들을 100프로 신뢰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엔 묘한 긴장감이 생겨났다, 그건 마치 어린시절 친구들과 놀면서 '서바이벌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참 재미없고 살기 팍팍하다고.
영화와 같은 신비로운 일이나, 낭만, 중2병 환자들이 환장하는 마법같은 일들이 좀 있어줘도 좋을텐데.
왜 이렇게 세상은, 특히 내 주변은 특별한 일이 없고 심심하기만 하지
중고딩시절에는 좋은 대학가야 한다는 부모 등쌀과 사회의 부축임에,
대딩시절에는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에,
그리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모가지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팍팍하고 또 답답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건 꼭 릭의 음식 같았다. 살아가기 위해 먹어야 하지만 일체의 즐거움이 없는 식사.
그런데,나는 지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마치 영화같은 과정을 거쳐서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섬에 도착해, 지금은 그 섬에 있다는 위험한 비밀에 근접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내 마음속에는 이 일이 거짓이길 바라는 열망 속에 아주 조금, 정말로 조금이지만. 이것이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 마치, 픽션인줄 알면서도 공포영화를 보고, 그 후유증으로 몇날 몇일 밤마다 괴로워 하는 사람들 처럼...
“좋아, 그럼 또 나에게 알려줄 건?”
“음~다른건 다 했고~ 잠시, 입구쪽의 벽을 봐 주시겠어요?”
“벽?”
나는 고개를 돌렸다. 등화는 아직 켜지 않아진 상태였지만, 황혼과 어둠의 중간에 있는 지금, 높은 등대탑의 3층에는 아직 붉은 노을이 흘러들어와 사물을 분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문은 문 이었고, 벽은 벽 이었으니까.
그런데 좀 들어다 보다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벽면 여기 저기에 그림자가 있는것 같은...부자연 스러운 느낌, 그래서 나는 벽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이건...”
벽면에 있는 검 회색의 얼룩들, 가까이 가자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얼룩이나 페인트 자국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시멘트 였다.
여기저기 패인 벽면을, 조금씩 페이트로 매꾼 결과. 벽면이 얼룩덜룩한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지금껏 주의깊게 보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틀의 깎여나간 흔적, 시멘트로 때운 입구 주변의 벽과, 중앙의 기둥, 걸음을 옮기다가 뭔가 발에 발혔다. 들어올려 보니, 그것은 소총의 탄피였다.
“안에서 총을 쐈군.”
“많이 쏜 것 같죠? 그게 오늘부터 장도 해야 하는 우리의 '본업' 입니다. 창문이나 문짝을 몇번이나 갈았는지 몰라요. 그래도 가능하면 그쪽은 자재해 주세요.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수틀리면 판자로 문 가리고,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비바람을 맞으며 일 해야 하는 수가 있어요. 아으...싫다.”
옛날 일이 생각난 듯이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 아캄. 나는 탄피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가 물었다.,
“이봐, 여기까지 와서 할 말은 아니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물어봐야 겠다. 그 우리의 '본업' 이라는게 뭐야.?”
“멍청한 질문이네요.”
아캄은 환하게 웃었다.
“생존(Just Survie)”
첫댓글 이제 우리도 저 섬에 가면 안 되겠네
갸아악
갸아아악
갸아아아아악
갸아아아아악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