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번역하여 왜곡된 성경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잘못 번역되어 왜곡된 성경의 오류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강성한 나라들 가운데서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엄청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원본 성경이 없는 가운데 사본만 갖고 왈가왈부해야 하는 마당에 속 시원하게 대변할 수 있는 정통성이나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더군다나 한국교회가 기존성경에다 칼질을 해대려고 하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또한 올바른 번역이라고 내놓는다면 수용은 커녕 반발과 항의가 빗발쳐 온다. 성경을 번역했다고 내 놓는 성경을 창세기나 마태복음, 요한복음 첫 머리만 봐도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채 출판되고 있다.
태초라는 단어가 과거에 언급한 바가 있지만 시간적인 개념이 아닌 존재적인 개념인 “그리스도 머리 안에서”창조가 시작된 것이다. 마태복음 1:1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문장 가운데 “비블로스” 성경책이란 단어가 누락된 채 번역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세계의 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단어 하나라도 소홀하게 다루며 번역한다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을 전혀 다르게 아니면 왜곡되게 전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에도 “시작(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께서 뜻하신 섭리가 있었느니라.”는 문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순간이 태초이며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그 순간도 태초라는 의미다. 바로 이것이 교회며 천국이고, 영생이며 구원이라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어느 시간에 하나님께서 존재하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4:2에도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는 구절은 “예수께서 판단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진실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돌 위에 돌이 결단코 놓임을 받지 못할 것이며 또한 그 돌이 무너짐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로 전달해야 한다.
고전 15:45에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는 구절도 이와 같이 기록되어졌으니 첫 사람 아담은 산목숨에 이르게 되었고 최후 아담은 살려주는 영에 이르게 되었다. 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출 20:8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도 “안식일을 거룩케 하기 위하여 기억하라.”는 말씀의 뜻이 전혀 다르게 전달되고 있다.
우리가 자주 기도하는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문장도 죄가 아닌 “주께서 우리의 빚을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빛을 탕감할 수 있는 의무를 하게 하시고”라는 의미로 올바르게 전달되어져야 한다.
산상수훈에 너희는 세상(gh/j게)의 소금이며(마 5:13) 너희는 세상(ko,smou코스무)의 빛이라는 구절에도 한글로는 똑같이 세상이라고 했지만 원문에는 서로 다른 세상을 어떻게 번역하며 처리하고 있는지, 너무나 다른 의미의 세상인데도 동일하게 여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 13:47에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라는 구절에 물고기라는 단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임의적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성경의 단어가 없는데도 문장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전달하려고 없는 단어를 넣었다면 하나님 앞에 가서 뭐라고 변명하려는지 궁금하다.
이 문장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핏줄로 태어난 (존재들)끼리 모여진 천국은 바다와 같은 죄악세상에서 빠져나와 주님과 한 몸으로 존재하는 자들(장성한자)이 모여진 모임과 같다.”는 의미 속에 받아들여져야 한다.
마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라는 구절도 주여! 주여! 나에게 말한다고 하지만 그 하늘들 왕국에 모두 다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늘들 안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그 뜻을 행하는 (지키는)자만이 참여하리라 는 의미로 전달되어져야 한다.
신약성경에 유독이 십일조에 대한 용어가 나오지 않고 마태 23장 23절에 말씀으로 십일조의 당위성을 강조고 있는데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23:2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라는 말씀의 진의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마태복음 19장 24절과 마가복음 10장 25절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는 유명한 성경구절은 사실 잘못 번역된 것이다. 번역자가 아랍어의 원어 'gamta(밧줄)'를 'gamla(낙타)'와 혼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가 되어야 올바른 것이다.
누가복음 5:24에 베데스다 호숫가에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고 한 예수의 말은 오역된 것으로 "일어나 네 지팡이를 가지고 집으로 가라"가 옳은 번역이다. 히브리어에서 지팡이를 뜻하는 'matte'가 침상이라는 뜻의 'mitta'라는 말과 혼동된 것이다.
이렇듯 단어를 올바르게 관찰하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하면 엄청난 오해 속에 성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문장이나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거나 아니면 다른 단어로 번역 해석해 버려 왜곡된 또 번역과정에서 잘못된 것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역대하 22:2에 필사자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42세로 된 성경이 있는 반면 22세로 된 성경이 있는데 22세가 정확하다. 예레미야 27:1에 여호야김으로 된 이름이 예레미야 27:3절과 27:12절에 비추어볼 때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로 수정되어야 한다. 사본에 따라 어떤 것은 여호야김, 또 어떤 것은 시드기야로 되어 있는데 여호야김으로 적혀 있는 것은 역시 필사자의 오류가 반영되어 있는 문장이다.
또한 이사야 14:12에 계명성(힐렐, 빛을 발하는 자)은 아침의 아들과 같은 의미인데 루시퍼로 번역한 성경이 있는데 루시퍼는 라틴어로 된 단어로 성경에 사용된 적이 없다. 이것을 사단과 직결해 버리는 설교가 난무하고 있다. 히브리어 "헬렐"은 금성(Venus)의 별칭이며 새벽별이라는 의미의 번역으로 이사야 14:12의 '계명성'은 문맥상 일차적인 의미로 교만한 바벨론의 통치자를 말한다. 당시의 번역가들이 그들의 신념에 따라 '루시퍼'라 마음대로 의역을 하였지만 루시퍼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사단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한글 성경이 잘못 번역된 것을 인정하고 영어성경이나 다른 외국어 성경보다 원어성경을 접해야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원어성경을 접한다고 해서 전부 다 올바르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어의 해석이나 문장의 뜻을 문법적으로 잘 풀이한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복음의 핵심을 밑바탕을 두고 말씀을 조명해 나가야 한다. 성경의 제일 권위 있는 해석자는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니다. 성경의 제일 좋은 해석자는 주석도 강해서나 설교집, 신학서적이 아니라 성경이 풀어준다. 물론 성령이라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미 성경 안에는 성령이 역사하고 있다. 성경을 읽는 자들이 성령의 감동 없이 읽겠는가? 그러나 자의적인 해석으로 인해 이단이 생기며 사이비가 난무해 지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기도원, 교회, 선교단체 등을 세우고 만드는 데는 너무나 적극적이다. 한국에 있는 기존 성서공회와 성경공회가 있지만 원어성경을 보고 번역을 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코리언 버전이라고 할 정도의 번역은 없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번역을 한 20년 이란 세월을 두고 연구해야 하는데 3~4년 만에 7~8년 만에 나오는 성경의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성경을 잘못 번역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자가 누구인가? 한국교회는 성경을 잘못 번역한 것에 대하여 굵은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뿌리며 통회 자복해야 할 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첫댓글 감사합니다
이제 조금 더 이해가 됩니다.....^^*
이런 성경은 어디서 구입 할 수 있나요?
성경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고견의 말씀! 감사합니다. 한국 기독교회가 공통으로 사용 할수있는 온전한 성경이 속히 나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해가됩니다.성경의 오류를 어떻게해야하나!
인쇄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바른 시각,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겟네요.
근본적인 복음의 핵심을 밑바탕을 두고 말씀을 조명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