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싸며
이 영 숙
부시시 눈을 뜨니 오늘은 왠지 마음이 설레인다. 오늘 김밥을 싸서 수필반의 여러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맛있게 먹으려고 한다.
김밥에 들어갈 재료들을 사러 시장에 갔다. 내가 생각한 재료 중 그 흔하던 시금치가 있을까? 걱정이 된다. 며칠 전 시금치가 필요하여 둘러보니 없었기 때문이다. 난전에서 한 단, 두 단 쌓아놓고 팔던 시금치가 소매상회에도 없어서 더 큰 도매상회에 가보니 단으로 파는 시금치는 없고 박스 채 파는 것만 있다. 주인 아저씨를 졸라 박스를 풀러 세 단을 겨우 샀다. 지난 번에 살때는 한 단에 천원이었는데 이번엔 한 단에 삼천 오백원이나 주고 샀다. 시금치가 귀한가 보다.
중국산 우엉이 여러 군데 있는 것을 보니 몇 달 전 중국산 우엉을 흙속에 묻었다가 국산으로 둔갑시켜 팔다가 적발된 악덕상인 뉴스 생각이 난다. 육안으로 봐서는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생산지 표시가 없으면 다 같은 우엉으로 보이니까 믿고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단골 가게에 가서 국산 우엉을 샀다. 당근은 깨끗하게 씻겨져 있어 색이 선명하고 예쁘게 보이는 당근을 사지 않고 흙이 묻어 있는 당근을 샀다. 간장 보호에 좋다는 우엉을 평상시는 반찬으로 잘 안해 먹으면서도 김밥 쌀 때는 꼭 넣는다. 아삭아삭 씹히는 우엉 맛이 산뜻하기도 하지만 맛도 좋아 난 우엉이 없을 때는 김밥을 싸지 않는 이상한 고집도 있다. 고실고실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양푼에 푼 후, 훌훌 주걱으로 헤쳐 가며 따끈한 밥을 김밥 싸기 좋게 식힌다. 소금, 식초, 후추를 약간 넣어 간을 맞춘다. 김 위에 밥을 편편하게 펴서 새파란 시금치, 개나리 같은 단무지, 능소화 꽃 같은 당근, 영양가 많은 우엉을 마지막으로 장식하여 또르르 김밥을 굴린다. 콩나물국도 끊였다.
“김밥 아줌마! 오늘은 어디 가지고 갈려구, 김밥 싸유?”,
“당신 점심이유! 냉장고 열었다 닫았다 하지 말고 맛나게 잡수라구유!”
“그렇게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으라구유?”
나는 배시시 웃으며, “수필반에 가지고 갈려고요.”
김밥 모양이 잘된 것, 못 생긴 것, 굵기가 알맞은 것, 밥이 많이 들어가 굵은 것, 옆구리 터진 것도 있다. 솜씨내어 정성껏 말았지만 각양각색이다. 옆구리 터진 김밥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가 만들었어도 솜씨에 맵씨가 없다. 난 웃으면서도 왜 이리 기분이 좋고 행복감을 느끼는지 나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방앗간에 가서 짜온 꼬소한 참기름을 칼에 앞뒤로 발라서 김밥을 썬다. 보름달보다도 더 큰 둥그런 쟁반에 김밥을 예쁘게 옮겨 담는다. 모양이 반듯하게 썰어진 김밥은 쟁반에 담고, 옆구리 터진 김밥은 내가 먹으면서 열심히 칼로 썬다. 고소한 참기름 향내가 방안에 퍼진다. 수필반원들과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만...‘맛나게들 먹을까?’ 은근히 걱정도 된다. 그래도 정성껏 쌌다. ‘간은 잘 맞을까?’, ‘싱겁거나 짠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맛이 없으면 어떡하나?’ 염려도 되지만 그래도 맛나게 먹을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든다.
그이도 김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고 살뜰한 마음으로 점심상을 차려 놓았다. 하얀 색 둥근 접시에 담은 김밥이 깔끔하게 보이는 것이 예쁘고 맛깔스럽게 보인다.
김밥 보따리, 콩나물 국통을 들고 층계를 내려올 땐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힘차게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와서 기분좋게 택시를 타고 달렸다.
첫댓글 정이 듬뿍 들어간 맛있는 김밥 맛을 못 본게 아쉽습니다, 맛갈난 글에서도 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정성들여 만들어 싸오신 김밥을, 수업 시간에 맛있게 먹던 생각이 떠 오릅니다. 고마운 마음을 잘 담아갑니다.
이영숙 선생님이 콤퓨터를 할줄 아시면 더 즐거우시련만...... 글을 노트에 써오셔서 읽는 열정도 또한 대단 하십니다. <사위님께>. 바쁘시지만, 장모님 글일랑 수업시간에 발표하시거든 바로 바로 회원 수필 방에 올려주기를 부탁합니다.
꼬소한 참기름이라는 말이 감칠맛이 납니다. 맛난 김밥 맛있게 먹고 갑니다. 예쁜 마음도 훔쳐 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소서.
우엉이 아삭아삭 씹히는 김밥을 먹은듯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요? 어! 침넘어가는 소리, 넉넉한 마음 배우고 갑니다. 감상 잘 하였습니다.
어머! 이렇게도 사랑이 많으신 선생님과( 비록 같은반은 아니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교수님께 배운다는것이 행복 합니다. 김밥을 싸시려고 시장에 가실때부터 이미 선생님께선 행복과 사랑을 같이 넣어서 싸셨으니 그깁밥을 드신 모든 선생님들께선 얼마나 행복 하셨을까요? 너무 감사 합니다.
네, 임미옥 선생님, 저희 오전반 모두 이선생님이 만드신 '정.사랑표' 김밥 먹으면서 감동먹고 행복했답니다
나직나직하게 소녀처럼 말씀하시는 선생님! 지난번 쑥개떡도 맛나게 잘 먹었어요. 글솜씨도 좋으시고 음식솜씨도 좋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오전반에 가고 싶어요...ㅎㅎ
잔치집 처럼 푸짐하게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들여 맛있게 싸오신 김밥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쑥 개떡도 옛 추억을 생각나게 했구요. 감사 합니다. 수줍음과 애교가 넘치시는 큰 언니! 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