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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03
1. 한방병원 / 낮
마스크 쓴 신영과 부기, 접수대에 서 있다.
부기 : 제일 잘하는 선생님한테 받게 해주세요.
간호사 : (챠트에 입력하는) 결혼은 하셨나요?
부기 : 아뇨.
간호사 : 미혼이시고...... 임신중 아니시죠?
부기 : 아마 아닐 겁니다.... 혹시 했냐?
신영 : (지랄! 짜증난다는 듯 다른 데로 확 가버리는)
간호사 : (신영 뒤에 소리치는) 진료실 그 쪽 아니예요.
2. 한방병원 진료실 / 낮
반석, 앉아있다.
간호사 ‘이신영님’ 부르고 신영과 부기, 들어온다.
신영, 반석이 앉아있는 것 보고 잠시 주춤.
신영 : (고개 돌려 부기에게 웅얼)
부기 : 걱정 마, 의료보험 된대.
간호사 : 이리 와 앉으세요.
신영, 반석 앞에 와 앉는다.
반석 : 어디 한번 볼까요. 마스크 좀 벗어보시겠어요?
신영 : ...........(마스크를 벗는다)
반석 : (신영을 보고) 언제부터 이러세요?
부기 : 아침부터요. 밤새고 나보니까 이렇게 돼 있었대요.
반석 : 그동안 과로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으셨나요?
신영 : (고개 끄덕)
반석 : 보통 스트레스나 과로가 제일 큰 이유구요. 찬데서 자거나 과음을 자주해도 안면신경 마비가 옵니다.
부기 : 그 모든 걸 다 한 것 같은데요.
신영 : (웅얼) 술은 안마셨어요.
반석 : 손목 좀 올려보세요.
신영, 책상에 손 올리면 반석 맥을 짚어본다.
반석 : (조용히 맥에 집중하는)............
신영 : ...............
반석 : 소화가 안되거나 손발이 차거나 하시진 않구요?
신영 : (고개 끄덕)
반석 : 아니라구요 맞다구요.
신영 : (엄지검지 손가락으로 O자 만들어 보인다)
반석 : 맞다구요?
신영 : 에에에. (고개 끄덕)
부기 : 통역도 데려올 걸 그랬다.
반석 : 전체적으로 몸의 기혈이 약해지신 것 같네요. 흠..... (맥에 집중)
부기 : 이거 침 몇 대만 맞으면 금방 돌아오죠?
반석 :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경미한 경우엔 사나흘 치료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보통 두 달에서 석 달 잡으셔야 합니다.
부기 : 그렇게나 오래요?
신영 : 흑! (눈물이 핑글)........
반석 : (신영 눈물에 잠시 멈칫) 무엇보다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게 중요해요.
속상하고 맘대로 안 되는 일, 그냥 내려놓고 잊어버리세요.
신영 : .......
신영, 누워 있다. 눈물이 눈에 맺혀있다.
반석, 침을 들고 다가선다.
반석 : 침 살살 놓을 꺼예요. 울지 마세요.
신영 : (눈물 닦고)
반석, 신영의 인중과 승장(아랫입술 아래) 지창(입 꼬리 옆)에 침을 놓기 시작한다.
부기 : .....(안쓰럽게 지켜보는) 쯔쯔쯔..... (하다가 가방에서 디카 꺼내 신영을 찍는다)
간호사, 부기를 제지하며 진료실 밖으로 내쫓는.
부기 : (쫓겨 나가며) 아니.... 나름 진료과정을 기록하는 건데....
반석, 협거(귀 뒤쪽)에도 침을 꽂고.
신영, 눈물이 또 난다.
신영, 손으로 눈물 닦으려다 침을 건드릴 듯.
반석 : 어...조심..... 제가 닦아 드릴께요.
반석, 신영의 눈가에 번져있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준다.
신영 : ........
반석 : 약은 내일 아침에 나올 거예요. 약 잘 드시고 당분간 침 치료는 매일 나오세요.
신영 : (침 꽂은 채 어눌하게, 예.......)
반석, 침을 놓고 침상의 커텐을 쳐주고 간다.
신영, 고요히 누워있는데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린다.
3. 학교 연습실 / 낮
통화중인 민재. 옆엔 음악동아리 친구와 후배들 모여있는데 표정이 어둡다.
민재 : 안녕하세요, 저 하민잽니다. 기자님 수업 듣는.
신영(F) : (어눌) 에....
민재 : 여보세요? 이신영 기자님 아니세요?
신영(F) : 마아. (맞아요)
민재 : 술 드셨어요?
신영(F) : 아이.....
민재 : 후배한테 딱한 사정이 생겨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전화드렸습니다.
같이 음악하는 후밴데요, 저작권 관련해서 억울하게 피해를 본 일이 생겼거든요.......
여보세요? 듣고 계세요?
민재, 핸드폰 본다. 끊겼다.
민재 : 뭐야.... 왜 전화를 끊고 이래...
민재, 다시 버튼을 누르는데 문자 메시지음.
민재 : (읽는) 용건은 문자로 보내줘요. 전화하지 말고.... (기막힌)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4. 한방 병원 / 낮
진동으로 울리는 신영의 핸드폰.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는.
신영 : ..........(어눌...예에)
민재(F) : 지금 장난하세요?
5. 연습실 / 낮
민재 : 저희가 사정이 있어서 전화 드렸다고 했잖아요.
어렵게 전화한 사람 한테 전화 받는 태도가 그게 뭡니까. 듣고 계세요?
6. 한방병원 / 낮
신영, 당황스럽고 화도 난다.
신영 : 여어에여.
민재 : 대낮부터 술이나 드시고 진짜.... 그 날 줄 끊을 때부터 알아 봤어요. 제대로 구닥다리 기자라니까.
신영 : (버럭 소리치는) 이아!
반석, 놀라서 커튼을 열어젖힌다.
반석 : 어디 아프십니까?
신영, 전화를 끊는다.
반석 : 치료 받을 땐 전화도 꺼놓고 좀 편히 계세요. 안 그럼 침 아프게 놓을 겁니다. (전화기 전원 꺼버린다)
7. 연습실 / 낮
핸드폰 들고 있는 민재.
(F) : 전화기가 꺼져있어....
민재 : (열 받아 입바람 후! 앞머리 날리는)
8. 방송국 일각 / 낮
‘방문’ 표찰 달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민재. 기획취재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다.
얘기 중이던 해진과 작가 AD, 민재를 보고.
해진 : 어떻게 오셨습니까?
민재 : 이신영 기자님 좀 만나러 왔는데요.
해진 : 지금 병가내고 일주일 쉬는데요.
민재 : 병가요?
해진 : 그런데 누구시죠?
AD : 혹시 하민재씨 아니세요?
민재 : ..........예.
AD : 어머 저 왕팬이예요. 지난 번 홍대 공연 때 갔었는데....
해진 : (AD보며) ??
AD : 이신영 기자님은 왜 찾으세요? 구안와사로 병가 내셨는데.
민재 : 구안.... 와사요?
9. 회의장 / 낮
<세계 환경과 경제단체 연합>이라 쓰인 플래카드.
연단에선 외국 남자, 발표 중.
외국남자 : (영어로) 지금 세계는....
통역부스에 앉아있는 다정과 남자 동료.
앞에는 커다란 탁상시계 놓여있고 초콜렛과 사탕, 귤, 물, 사전 등등이 놓여있다.
다정, 헤드폰 쓰고 통역중. 미간에 주름이 잡혀 집중해서 얘기한다. 피곤해 보인다.
다정 : (통역하는) 지금 세계는 환경과 복지와 경제가..... 하나의 바퀴 안에 굴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달러보단 나무, 이제 더 이상 달러를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다행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옆 부스에선 같은 말 중국어, 일본어로 통역하고.
헤드폰 꽂은 사람들 진지한 표정으로 듣는.
다정 : 우리는 북유럽, 특히 스웨덴에 포커스를 맞춰.... 복지와 환경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다정 옆의 남자 동료,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고 있다.
다정 : (못 마땅한 듯 힐끗 본다. 시계를 손가락으로 통통 친다) 다행히... 10년 전보단 연구비 지원이 많이 늘었습니다...
동료 : (본 척 만 척 계속 문자만)
다정 : (발로 다리를 걷어차는)
동료 : (보면) ?
다정 : (째려보며 시계를 친다)
동료 : (받아서 통역하는) 여러분, 스톡홀름 대학 경제학과 얀센 교수의 논문 요약분을 보아주시죠.
우리는 앞서 말한대로.......
부스 옆. 음료수 마시는 다정 옆으로 동료 다가온다.
동료 : 오늘 왜 이렇게 예민하냐?
다정 : 넌 어따 그렇게 문자질이야, 교대 시간 신경도 안 쓰고.
동료 : 우리 엄마가 나 몰래 결혼 정보 회사에 등록을 해놨어. 어쩔 수 없이 나가고는 있는데
여자들이 날 너무 맘에 들어하네. 부럽지?
다정 : 나두 오늘 상위 1퍼센트 마담뚜랑 미팅 있어.
동료 : 마담뚜 보단 여기가 낫지.
다정 : 뭐가 나은데?
동료 :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집 딸들이 나와. 병원장 딸, 김치공장 사장 딸,
아까 문자 날린 여자는 아버지가 강원도 땅 부자야.
다정 : 사람을 봐야지 아버지 뭐하시는 게 뭐 중요하니.
동료 : 그게 또 만나보니까 안 그렇더라구.
다정 : 기댈 데가 있는 게 은근 좋다는?
동료 : 많이 좋다는.
10. 카 페 / 낮
마담뚜와 마주 앉아있는 다정.
마담뚜, 상류층의 여인처럼 입성이 곱고 말투도 조곤조곤하다.
마담뚜 : 듣던 대로 미인이시네요. 우아하고 품격있어 보이세요.
다정 : (우아한 미소로) 감사합니다.
마담뚜 : 그리고 그 나이론 안보여요. 이렇게 이쁘신 분을 누가 마흔 둘로 보겠어요.
다정 : (뜨악) !! 서른여섯인데요.
마담뚜 : 아! (수첩 펼쳐보며) 제가 순간 착각을 했군요. 어쩐지 나이에 비해 너무 어려 보이신다 했어요.
다정 : ........남들은 그냥 서른 살쯤으로 보는데......
마담뚜 :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마담 뚜, 백에서 잘생긴 남자의 사진을 하나 꺼내준다.
마담뚜 : 전화로 말씀 드렸었죠. 대국제약 박회장님 차남 되세요. 지금 그 회사 이사를 맡고 있죠.
다정 : (사진을 본다. 마음에 드는) ....인상이 좋으시네요.
마담뚜 : 그 쪽에서도 정다정씨를 맘에 들어하십니다.
다정 : 정말요?
마담뚜 : 머리 좋고 인물 좋고, 똑똑한 며느리 감이라 하셨습니다.
다정 : (미소) 제 인연을 드디어 만난건가요.
마담뚜 : 결혼선물도 엄청나게 준비해 놓으셨어요. 차는 S클래스나 세븐시리즈 중에 고르시면 되구요,
승마용 말 한필, 호텔 스파 회원권.... 뭐 패물세트는 말할 것도 없구요.
다정 : (좋아서 웃음이 터지려는 것 참으며) 훌륭한 가풍이군요.
마담뚜 : 한 가지만 준비해주시면 이 혼인은 바로 성사되는거죠.
다정 : 뭘 준비하면 되죠?
마담뚜 : 모든 게 다 맘에 드는데 나이가 좀 있으신 게... 걸리긴 한가봅니다.
다정 : 건강검진서를 준비하면 되나요?
마담뚜 : 뭐 비슷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낙태나 유산경험이 없다는 소견서를 받아오라는군요.
이 분들이 정해준 산부인과에서요.
다정 : ..........
마담뚜 : 남자 의사도 괜찮으시죠? 시아버님 자리 동생분이 하는 산부인관데,
시간되심 지금 같이 가서 검사를 받으시죠.
다정 : (벌떡 일어서 나가버린다)
마담뚜 : 정다정씨!
다정 :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다)
11. 결혼정보회사 사무실 / 낮
‘성혼율 80% 매니져’ 사진과 홍보문구 붙어있는 책상.
매니져와 마주 앉아있는 다정.
매니져 : 가입이 힘드십니다.
다정 : (의아) 아니.... 동료 통역사가 추천해서 왔는데 가입이 힘들다뇨.
매니져 : 36세 전문직 남자와 여자의 경우는 다르죠. 정다정씨가 원하는 조건의 남자회원님들 중엔
정다정 씨의 조건을 원하는 분이 한분도 안계세요.
서른여섯 살 전문직 여성도 좋다는 분이 없다는 소립니다.
다정 :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매니져 : 솔직히 말하면 딱 두 분 계신데요, 아니 계셨는데요...
한 분은 학력 위조로 탈퇴당하셨고, 한 분은 얼마 전 주가조작으로 구속되셨습니다.
다정 : ..........
12. 신영네 거실 / 밤
철가방에서 예쁜 접시에 담긴 요리를 꺼내는 부기. 철가방 탕탕 치며.
부기 : 빨랑 나와요. 식기 전에 먹자.
다정과 신영,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신영(E) : (어눌) 난 안 먹을래.
다정(E) : 저도 생각 없어요.
부기 : (발끈해 소리치는) 그러니까 둘 다 남자가 없고, 입이 돌아가는 거야.
지들 기분만 기분인가? 당신들 생각해서 요리해 온 사람 생각은 안 해?
그래 그렇게 입 비뚤어지고 남자 없이 죽을 때까지 살아라.
문이 벌컥 열리고 다정, 방에서 나온다.
다정 : 밥 먹을 생각이 없을 수도 있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부기 : 즐겁게 해주려고 철가방까지 준비해왔는데 너무들 하잖아.
다정 : 인생이 즐거운 사람이나 많이 드시죠. (나간다)
부기 : 밥도 안 먹고 어딜가요.
다정 : (말없이 신발 신는)
부기 : 옛날 남자 찾아가서 또 물벼락 맞을 껀가?
다정 : (대꾸 없이 현관으로 나가고)
13. 신영 침실 / 밤
문 열고 들어오는 부기.
신영, 침대에 무릎세우고 오도카니 앉아 있다. 아침보단 얼굴 호전된 상태.
부기 : 오늘 이 집 분위기 왜 이래.
신영 : .........
부기 : 얘, 그 의사 용하다. 아침보단 얼굴 많이 풀렸어.
신영 : 미안해. 혼자 있고 싶어.
부기 : 난 같이 있고 싶어. 나와 밥 먹어.
신영 : (이불을 쓰고 눕는다)
부기 : (이불 걷어내 던지며) 뭐가 걱정이고 뭐가 무섭니?
신영 : 모든 게 다!
부기 : 연극도 막이 바뀔 땐 암전이란 게 있지 않니. 더 멋지고 화려한 다음 막으로 넘어갈 땐
암전시간도 길어, 준비를 해야 하니까.
너두 그런 거야. 찬란한 인생 제 2막으로 넘어가는 암전이야 지금이.
신영 : 억지로 힘내는 것도 이젠 지친다.
부기 : 넌 지금까지 살면서 뭘 잃어봤니.
신영 : 결혼할 수 있었던 기회. 지금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구.
부기 : 결혼할 기회 놓친 건 이혼할 기회까지 없앤 거니까 나쁘지만은 않고.
자신감이야 니가 다시 찾음 되지, 간단하네.
신영 : 너처럼 머리카락이 다 빠져봐야 편하고 자유로워질까?
부기 : 그럼 뽑자. (달려들어 신영의 머리채를 움켜쥔다)
신영 : (고개 꺾어지며) 아.....
14. 청담대교 / 밤
바람맞으며 추운 듯 웅크리고 걷는 다정. 쓸쓸하다.
다정 : 나쁜 놈들......
멈춰 서서 강물을 내려다본다.
다정 : 내가 잘 나가고 나이 먹는데 니들이 보태준 거 있니.
나같이 괜찮은 여자 어디 그렇게 있다구...
잘나가서 미안하다, 잘 벌어서 미안하다 이 못난 놈들아.
멀리서 경찰차 다가온다. 경찰, 창문 내리고 소리치는.
경찰 : 아주머니! 거기서 뭐하십니까.
다정 : 아줌마 아닌데....
경찰 : 신고가 들어왔어요. 얼른 내려가세요.
다정, 아랑곳 안하고 서 있자 경찰 내려서 달려온다.
다정, 그제서야 도망간다.
15. 신영네 거실 / 밤
신영, 부기 식사 중.
신영, 삐뚠 입으로 조심스레 먹고 있다.
부기 : 흐르지 않게 잘 먹어라. 입 돌아올 때까진 남자랑 밥 먹지 마.
신영 : 정다정은?
부기 : 몰라, 옷도 허술하게 입고 그냥 나갔어. 전화해 볼까? (핸드폰 버튼을 누르고 귀에 대는)
신영 : 안 받아?
부기 : 또 어디 가서 술 마시고 길바닥에 붙어있는 거 아니겠....
(받는) 아, 여보세요 정다정씨. 지금 어디서 뭐해요.
다정(E) : (아파하는 이상한 신음소리) 아하... 아.... 잠깐... 아... 전화 좀 받..... 아아악! (끊어지고)
부기 : 이봐요!
신영 : 왜?
부기 : 막 신음 소리를 내더니 끊었어. 숨겨둔 남자 있는 거 아냐?
16. 어두운 방(에스테틱) / 밤
홀딱 벗은 채 누워있는 다정의 타이트 상반신 샷.
몸이 살짝살짝 흔들리며 아픈 신음 내는.
다정 : 아... 아...... 헉. . . .
핸드폰 벨이 다시 울린다.
17. 신영네 거실 / 밤
마스크하고 옷 걸치고 방에서 뛰어나오는 신영.
부기, 핸드폰을 소파에 던지며.
부기 : 나갈 꺼 없어. 통화했어.
신영 : ....?
부기 : 동안경락 받고 있대.
18. 포장마차 / 밤
얼굴이 울긋불긋해져서 앉아있는 다정. 앞엔 소주병과 계란말이.
부기, 들어온다.
부기 : 동안이 아니라 똥안이 됐네요. 벌그죽죽해가지곤.
다정 : 경락받음 원래 이래요. 이신영은 안온대요?
부기 : 내가 쉬라고 했어요. 이모! 여기 소주잔 좀요.
다정 : (얼굴 만지며) 나 어때요? 볼 살이 좀 올라붙은 거 같죠?
부기 : 그냥 뻘건데요.
다정 : 아는 후배가 동안경락 받고 열 살 연하랑 결혼했어요. 나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꺼예요.
부기 :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어요?
다정 : 네!
부기 : 도대체 왜! 결혼이야 대충 마음 비우고 눈만 낮추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당신같은 우리나라 최고 통역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정 : 이 정도면 누릴 꺼 다 누려봤어요. 각국 정상들, 세계적인 부호들....
다 만나보고 엄청난 선물도 받아봤어요.
중동평화회의 땐 아랍 왕자들이 묵는 하룻밤 3만 불짜리 호텔에서도 지내봤고.
책 낼 것도 하나 있고, 강의요청도 계속 들어오고...
이제 일에선 갈증이 없어요. 이 정도면 성공한 것 같아요.
부기 : 꿈이 작네. 그걸로 만족해요?
다정 : 이만큼 성공해도 남자들이 피해 가는데 더 잘나 봐요. 시집을 갈수 있겠나.
부기 : 일에서 성공했는데 결혼 좀 못하면 어때.
다정 : (순간 버럭) 야!
부기 : ........(눈 부라리고 인상 쓰면)
다정 : (눈 내리깔고) 난 이제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구, 유모차 끌고 외출해 보고 싶어요.
더 늙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은 게 잘못 인가? 애들 학교에서 최고령 학부형이 되고 싶지 않아요.
늙게 낳을수록 아이랑 지낼 시간도 줄어드는 거잖아요.
부기 : 정 그렇다면 하셔야죠.
다정 : 부기씨도 발 넓지 않아요? 인맥 풀 장난 아닐 꺼 같은데.
부기 : 소개팅을 원하나요?
다정 : (소줏잔에 술 따르며) 한잔 올릴 랍니다.
19. 헬스클럽 / 아침
앞에 신문 놓고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있는 반석. 옆의 러닝머신으로 민재 올라온다.
민재 : 일찍 왔네.
반석 : 오늘은 학교 안가냐?
민재 : (같이 걸으며) 가지 왜 안가. 다음부턴 계절학기 절대 안 듣는다.
반석 : 널 보면 늘 뿌듯해. 꼴통 문제아를 내가 사람 만들었잖아.
민재 : 과외 선생 잘못 만나서 인생 피곤해졌지.
반석 : 인생 반듯해졌지.
민재 : 형만 아니었음 비욘세한테 곡 만들어주고 있을꺼다.
반석 : 새로 만든 노래 좋더라. 너 확실히 천재성 있는 거 같아.
민재 : 참, 형. 구안와사가 뭐야, 입 돌아가는 거지?
반석 : 응.
민재 : 그거 오면 말도 잘 못해?
반석 : 심한 경우에 그렇지. 정신적 충격도 크고.
민재 : 흠......... 그런 게 오는 이유는?
반석 : 스트레스.
민재 :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어딨어.
반석 : 좀 더 예민한 사람들한테 많이 오지.
민재 : 안 예민해 보이던데......
반석 : 누군데?
민재 : 있어. 겉보기엔 깡패, 완전 무식해.
반석 : 사람 속을 어떻게 아니. 구안와사 환자들 80퍼센트 이상이 스트레스에 맘고생이 원인이야.
예민하고 여린 사람이 많구.
민재 : ......
20. 연습실 / 낮
민재, 구석에서 끊겨진 기타 선을 집어 든다.
플래쉬 백?? 1부 엔딩.
신영 달려들어 민재의 기타줄을 끊는.
민재 : 누가 여리고 예민하다는거야. (줄 집어 던진다)
21. 부기네 거실 / 낮
다정, 샤넬 정장차림 같은 단아한 모습으로 빙 돌아본다.
다정 : 어때요? 청담동 며느리 컨셉으로 스타일링했어요.
부기, 소파에 앉아 책 보다 다정에게.
부기 : 행운을 빌어요. 똑똑하고 착실한 부잣집 아들에 성격도 예술이니까.
다정 : 넉넉한 집 애들이 성격도 사실 더 좋아.
부기 : 새로 산 차 갖고 나온대요.
22. 도 로 / 낮
달리는 차. 차 지붕이 폼나게 열린다.
다정, 표정 굳어 앉아있고 운전석엔 완벽한 대머리 남자 앉아서 운전 중이다.
다정 : 안 시려우세요?
달리는 차. 다시 뚜껑 닫힌다.
23. 부기네 거실 / 밤
다정, 들어와 백을 내던지며 소리친다.
다정 : 1억짜리 컨버터블 카, 있음 뭘하냐고요. 멋지게 휘날릴 머리 카락이 없는데.
부기 :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 탓하지 말아요.
다정 : 머리카락은 좀 있자구요. 머리카락만큼은 좀 있자, 제발.
부기 : 오케이! 다음은 머리숱 많은 애로.
24. 한의원 / 낮
침 맞으며 누워있는 신영.
반석 : 약은 잘 드시고 있죠?
신영 : 네.
반석 : 처음 오셨을 때 보단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거의 정상이세요.
신영 : 선생님 덕분이죠.
반석 : 입 돌아오니까 많이 미인이신데요.
신영 : ....아직 덜 돌아왔는데요.
반석 : 다 돌아오면 병원 사람들 다 쓰러지겠는데요.
신영 : 그러니까요.
신영, 미소. 반석, 마주보며 미소.
25. 수퍼마켓 / 밤
구매할 물건들 메모 체크하며 카트 끌고 있는 부기.
옆 코너에서 나타나 부기의 카트를 거칠게 들이받는 막걸리 여러 병과 족발 포장이 들어있는 카트.
다정의 카트다.
부기 : 머리 숱 많았을텐데?
다정 : (분노) 여동생 다섯이란 말 왜 안했어요.
부기 : 그래두 장남은 아니잖아요.
다정 : 장남은 출가해서 불국사에 있다는데.
부기 : 그 집이 독실한 불교예요. 해탈의 마음으로 시누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보세요.
다정 : 술, 고기, 남자가 있는 속세에서 살고 싶어요. 시누이 없는 남자로 다시 부탁해요.
26. 신영네 거실 / 밤
정성스레 한약을 먹는 신영. 한 팩을 단숨에 다 마셔버린다.
거울 보고 얼굴을 잡는.
신영 : 다 돌아왔다.... 다 돌아왔어....
27. 레스토랑 / 밤
작업복 차림으로 사다리에 올라가 카메라로 홀을 찍고 있는 부기.
식식거리며 성질내며 다정이 들어온다. 들어오며 쓰레기통 뻥 걷어차는 다정.
부기도 열 받는.
부기 : 이번엔 또 뭐예요. 시누이 없는 부잣집 차남에 켈로그 스쿨까지 다 맞춰 줬구만.
다정 : 어떻게 나보다 10센치가 작은 사람을 해줘요. 하반신을 땅에 심고 다니잖아요.
부기 : 그 사람의 내면은 팔등신이예요.
다정 : 키 높이 깔창으로도 한계가 있지. 이 조건 그대로 키 180인 사람 없어요?
부기 : 어떻게 사람이 모든 걸 다 갖춰. 이젠 내가 해주나 봐라.
다정 : (사다리 흔들며) 그런 게 어딨어요. 될 때까지 해준데 놓고!
부기 : 어머.... 어..... 어........
사다리 쓰러지며 부기, 떨어진다.
28. 한의원 / 낮
신영의 배를 눌러보는 반석.
반석 : 배의 긴장도 풀리고 많이 좋아지셨는데요.
신영 : 그럼 이제 매일 안와도 되는거죠?
반석 : .....바쁘신가봐요.
신영 : 네.
반석 : .......(서운) ...그럼 이제 이틀에 한번씩 오세요.
과로하시거나 술 많이 드시면 다시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구요.
신영 : 네.
29. 보도국 복도 / 낮
신영, 걸어온다.
해진, 자판기 커피 들고 오다가.
해진 : 와.... 신영씨.... 말짱해졌네.
신영 : 신 작가랑 우리팀 좀 소집해봐.
해진 : 우리팀...이 어딨어. 자기 병가내고 다 흩어졌지. 파일럿 준비팀도 공중분해 됐어.
신영 : ................
해진 : 나도 그래서 다른 프로 맡았는데.
신영 : (돌아서 씩씩하게 걷기 시작한다)
해진 : 어디 가?
신영 : 국장님 만나러. 자긴 회의실 가 있어.
해진 : 나 지금 그 프로 더빙가야 돼.
신영 : 연기하고 가 있어. 무조건 가 있어!
신영, 투사처럼 걸어간다.
30. 기획취재팀 사무실 / 낮
해진, 작가, 카메라 후배, AD 앉아있다.
신영, 결연한 표정으로.
신영 : 다들 모른 척 해 준거 알아. 보도국에서 명퇴요망 베스트 쓰리에 내가 든다는 거.
처자식 딸린 가장도 아니고, 고시 공부하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퇴직금 받아 나가서 꽃가게라도 차림 좋잖아 생각할꺼야.
작가 : 꽃가게는 공연장 옆이 좋아.
해진 : (작가와 마주보며 고개 끄덕)
신영 : 언젠간 UBN을 떠나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 이렇게 나가면 난 어딜 가서도 이만큼이야.
꽃가게를 해도 애엄마로 살아도 어려운 어느 순간이 닥치면 대충하고 도망칠꺼야.
해진 : 나 시간 없어. 결론이 뭐야.
신영 : 나 결혼도 못했고, 회사에서도 그저 그래. 얼굴까지 돌아갔고 옛 남친은 내일 결혼해.
이보다 더 초라할 순 없어, 그래도 난 꿈틀거릴꺼야.
국장한테 준비 계속하겠다고 했어. 내가 이 기획, 팀장이야.
정규편성 못 따면, 만약 따도 시청률 밑바닥이면 명퇴하겠다고 했어.
일동 : !!
신영 : 이번 껀 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준비야. 초라한 굼벵이가 어떻게 꿈틀대는지 보고 싶은 사람은 같이 있어줘.
해진 : 미안한데 난 못해. 모처럼 MC자리 들어왔어. 그거 할꺼야.
신영 : 너무한거 아냐.
해진 : 너만 힘드니? 나도 힘들어. 나도 어렵게 입사했는데 좋은 프로 맡고 뉴스 앵커맡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구.
내가 악착같이 해볼려고하면 넌 남편도 있잖아, 시댁이 부자잖아. 난 제껴놓더라.
나도 같이 경쟁하고 일하고 싶은데 왜 지금껏...
신영 : (말 끊어) 남편있고 시댁부자인 사람은 그럼 빠져. 우리끼리 가자.
해진 : (대본 던지며) 야!
31. 결혼식장 / 낮
웨딩드레스 아름다운 신부, 로비로 걸어 들어온다.
옆에서 드레스 잡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신부대기실로 들어간다.
한 건물의 또 다른 결혼식 홀. 썰렁하다.
홀 앞에 <오늘 윤상우, 박은정 결혼식은 취소 되었습니다> 알림판 붙어있다.
텅 빈 연회장엔 상우, 혼자 앉아있다. 핸드폰 만지작 거린다.
상우, 핸드폰을 켜면 바탕화면에 신영의 웃는 모습 뜬다.
상우, 심호흡하고 연습해본다.
상우 : 신영아.... 나 사실은 결혼 깼어. 내가 정말 사랑하고 돌아갈 사람은 너라는 걸 알았어. 날 용서해주라.
상우, 핸드폰 버튼 누르다 다시 놓는다. 못하겠는.
상우 : (머리 감싸며) 아후......
32. 기획취재 방 / 낮
옛날(80년대) 신문 복사본 정리하고 체크하는 신영, 옆엔 해진과 AD.
해진 : 참, 지난 주에 하민재라는 사람 찾아왔었어.
신영 : ...... 걔가 왜?
해진 : 물어 볼 게 있다면서 왔었는데 어떤 사이야?
신영 : 사이는 무슨...... 김선배 대신 특강나가는 데 학생이야.
해진 : 걔 매력있더라. 인디밴드 계에선 알아주는 애래.
AD : 우리 프로 음악 하민재한테 맡기면 어때요?
신영 : 버릇없는 애야 싫어.
AD : 프로답지 못하네요 선배님.
해진 : 너야말로 프로답지 못하다. 사적인 관심으로 쓰자는 거잖아.
신영 : 도대체 걜 왜 좋아하지?
33. 캠퍼스 일각 / 낮
민재, 시계 보며 바쁘게 걸어간다. 여고생 서너 명 달려와 꽃다발과 초콜렛을 준다.
여고생1 : 오빠아......
여고생2 : 주말 공연 때 갈게요.
여고생3 : 오빠 완전 멋있다.
민재 : 여기 오지 말고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안녕! (간다)
여고생1,2,3 : 아.... 멋있어.
34. 학교 강의실 / 낮
신영, 교탁 앞에 서 있다.
신영 : 오늘까진 조별 기획안 제출 다 해주셔야 돼요. 그래야 뉴스센터 실습이 와 닿으실 겁니다.
민재, 꽃다발을 들고 들어온다. 교탁에 갖다놓는다.
학생들 ‘오.... ’‘ 와.....’ 하는.
신영 : 이 꽃은 뭐지?
민재 : 그 날 전화 그렇게 한 거 죄송하다구요.
신영 : 그걸 왜 이제 사과해.
민재 : 입 돌아온 거 보고 할려구요. (자리에 가서 앉는)
신영 : !
민재 :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요. (윙크)
신영 : ............
학생들 ‘뭐야 뭐...’ ‘와....’ 하며 웅성웅성.
35. 보도국 일각 / 낮
학생들 데리고 오는 신영. 보도국의 바쁜 모습들.
민재,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신영 : 취재처에서 돌아온 기자들은 기사를 쓰고, 촬영한 그림을 편집하고,
데스크의 최종확인을 거쳐서 뉴스에 나가요.
36. 뉴스 부조 / 낮
정오 뉴스 진행 중. 학생들에게 설명중인 신영.
신영 : 뉴스에도 피디가 있어요. 여기서 스튜디오 카메라에 사인을 주고 기자들이 취재한 테잎을 틉니다.
중앙에 있는 모니터가 TV로 나가는 화면이죠. 여기 기술 감독님이 하시는 거 조용히 한 번 보세요.
남자 후배 한 사람, 들어온다.
후배 : 선배 한참 찾았네.
신영 : 망치 왠일이냐.
후배 : 선배, 예전에 도끼파 특종한 적 있죠? 그 때 어떻게 접근 하신 거예요?
신영 : 취재원을 잘 써야지. 그 때 보스한테 배신당한 부두목이 내 정보원이었어.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걸 내가 업고 응급차를 불렀거든.
민재 : ...................
후배 : 어떤 미끼를 던졌는데요?
신영 : 칼을 찾아다 주겠다고 했어. 널 찌른 보스의 칼을 내가 찾아주겠다,
대신 여왕봉 단란주점 살인사건에 대해 얘기해 달라.
야산에서 사흘 밤 새면서 칼 찾아왔잖아. 그 정도 근성은 있어야지. 특종이 날로 되냐.
또 취재원은 철저하게 보호해주고 신의를 지켜야해.
민재 : .......(신영을 보며...조금 새롭게 보이는....).......
37. 스튜디오 / 낮
뉴스 진행 스튜디오에서 학생들과 신영.
신영 : 프롬프터는 보조일 뿐이고, 앵커들은 기사를 다 파악하고 거의 외운 채로 생방송을 진행하죠.
누구 앵커석에 앉아볼 사람? 이 중에 제일 인물되는 사람 누구지.
민재 : 그렇게 콕 저를 찍어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신영 : 거기 이은진씨, 앉아볼래요?
민재 벌쭘.
여학생, 앵커석에 앉는다.
신영 : 보통 고정 카메라 2대가 앵커를 비추고 앞에서 사인을 보내는 FD가 있어요.
PD한 사람, 달려온다.
PD : 하민재씨!
신영과 민재, 학생들 돌아본다.
PD : 저 기억하시죠? 홍대 공연 때 만났던.... 유선희 PD입니다.
민재 : 아, 예.... 안녕하세요.
PD : 이 선배, 미안... 잠깐 얘기 좀 할게요.
신영 : (어리둥... 고개 끄덕)
PD : 민재씨, 우리 프로 출연섭외 하러 온 겁니다.
민재 : 저 그런 거 관심 없는데요.
PD :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정말 참신한 프로를 하나 만들었어요.
첫 방송에 한번 나와 주시면 좋겠는데요.
민재 : 싫은데요.
PD : 그럼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은 써도 됩니까.
민재 : 지금 수업중이니까 나중에 얘기하시죠.
PD : 하민재씨야 맘만 먹으면 루시드 폴이나 장기하처럼 금새 뜨고 인정받겠지만 같은 팀을 생각해보세요.
한번 공중파 나와주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민재 : 생각해 보겠습니다.
PD : 그래요, 연습실로 한번 찾아갈께요. 이 선배, 이 친구 설득 좀 부탁해.
신영 : .......
38. 기획팀 사무실 / 낮
인터넷으로 민재네 공연 동영상 보고 있는 신영.
신영 : ....
AD : 너무 멋지죠?
신영 : 인디밴드 쪽에선 유명한 앤가봐?
AD : 천재 작곡가예요. 가사도 너무 잘 쓰구. 잘생기고 학교도 서울대. 공중파로만 나오면 돈 방석 일껄요.
신영 : 이거 다 얘가 작곡한 건가? 의외다....
AD : 매주 홍대에서 공연해요. 가서 직접 보실래요?
신영 : 됐어.
AD : 새로 만든 곡 제목 진짜 웃긴데.... 내 기타 줄 끊은 여자.
신영 : !?
39. 홍대 카페 / 밤
AD와 신영, 들어선다.
홀을 가득 메우고 서 있는 사람들. 열기 뜨겁다.
민재 : 겨울동안 에너지를 모아서 정말 괜찮은 곡을 하나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뛰어 들어와서 내 기타 줄을 끊고 사라져 버렸어요.
팬들 : 에......
민재 : 아니 진짜! 진짜라니까. 세상에 그렇게 이상한 여자도 있더라니까요.
그 때 영감을 받아서 곡을 만들었는데 아주 빈티지하면서 험블합니다. 들어볼래요?
팬들 : 네에..........
민재와 팀들 연주 시작. 싱어, 노래한다.
민재 : (노래) 너만 아니었음 난 뜰 수 있었어. 너만 아니었음 빛날 수 있었어. 이번에는 진짜야 이번에는 다 됐어.
행복했어 좋았어 니가 오기 전까지.
민재, 옆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기타연주.
민재 : (노래) 해맑은 얼굴 그 여자 나타나 내 기타줄을 끊고 달아나 버렸어.
어떻게 이래 나한테 이래.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말아요....예 예....
팬들 : (와....함성으로 박수)
민재 : (노래) 꿈에 그녀 나타났어. 널 위해 그랬어.
너무 많은 걸 가지면 넌 소중한 걸 모를꺼야. 길을 떠나지 않을꺼야.
사랑이 그립지 않을 꺼야. 널 위해 그랬어.
신영, 노래 들으며 연습실에서 민재 기타줄 끊고 달아나던 모습 떠올리는.
민재 : (같이 노래) 난 이미 슬픈 게 많아요. 넘어진 적도 많아요. 그대여 제발 다신 내 기타 줄을 끊지 말아요...
당신이 안 그래도 난 너무 다쳤어, 당신이 안 그래도 난 너무 겸손해.... 예 예....
신영(E) : 그 일로 이 곡을 만들었단 건가... 얘 정말 천재 맞나봐.
신영 : 야, 이 노래가 뭐가 좋니.
AD : 선배, 감 떨어졌다. 늙어 가시나봐요.
노래 끝나고 모두 환호하며 열광의 도가니.
신영, 슬그머니 나온다.
40. 거리 / 밤
신영, 걸어가다 휙 돌아선다.
신영 : .......(그냥 가기는 뭔가 아쉬운 호기심에.....)
41. 거 리 / 밤
건물에서 기타매고 나오는 민재.
신영, 입구에 서 있다 마주친다.
신영 : 내 기타줄 끊은 여자.... 잘 들었어요.
민재 : ....공연 왔었어요?
신영 : 우연히 지나다 봤어요.
민재 : 나 멋있었죠?
신영 : 그 노래, 내 덕분에 작곡했나 보던데... 맞아요?
민재 : 그래서 커피라도 한잔 사라고 지금까지 기다린건가.
신영 : (기막힌 듯 웃으며) 아니 난 그냥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가)....
민재 : (말 끊어) 알았어 알았어 이리 와요. 커피 사주면 되잖아.
민재, 신영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고 간다.
42. 커피숍 / 밤
커피마시며 앉아있는 두 사람.
신영 : 기타줄 끊어줘서 내심 고맙겠네.
민재 : 정확히 말하면 기타줄은 아니죠. 기자가 너무 무식하시네 계속 기타줄이래.
신영 : (발끈) 아니 자기가 노래를 그 따위로 지어놓고 무슨 소리야.
민재 : 기자님이 끊은 건 55잭(오십오 잭), 오십오 케이블이라고 부르는 선이예요.
기타 줄은 손끝으로 튕기는 스트링이죠.
신영 : 어쨌거나! 케이블이건 스트링이건 그날 내가 끊는 바람에 작곡한 거 맞죠?
민재 : 역시 기자라 호기심이 많구나....
신영 : 가사는 바로 떠오른 거예요 아님 나중에 따로 생각했어요?
민재 : 아님 나한테 관심 있는건가....
신영 : (버럭) 야!
민재 : 그렇게 욱 하는 성질이니까 입이 돌아갔다 오지.
신영 : .......(열 받는 듯 일어나 훅훅 콧김 팍팍)
민재 : (웃으며) 맞아요. 기자님이 케이블을 끊고 간 날 떠오른 노래예요.
제목이랑 가사는 알아듣기 쉽게 그냥 기타줄로 했고. 듣는 사람은 스트링이라고 상상하겠지.
신영 : 그럼 그렇다고 바로 말하면 되지 뭘 그렇게 잘난 척을 해요.
민재 : 그래야 좀 더 오래 얼굴 보면서 얘기할 수 있잖아요. 기자님도 그걸 은근히 바란 거 아니예요?
신영 : ............
민재 : 커피 맛있죠?
신영 : (커피 뚜껑 연다) 내 얼굴에 커피 쏟은 여자 한번 작곡해 볼래요?
민재 : (버럭) 그러기만 해봐. 확 키스해 버릴테니까.
신영 : !!
민재 : 원하면 한번 부어봐요. 기대된다 나도.
신영 : ........ (컵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민재 :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신영, 컵을 확 붓는데....
민재, 눈을 감는데..... 빈 컵이다.
민재 : 아.... 이게 뭐야. 기대했는데.
신영 : 진지하게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신영, 빈 컵 내던지고 간다.
민재, 신영 등 뒤에 소리치는.
민재 : 수업시간에 뵈요....
신영 : (뒤도 안돌아보고 가며) 닥치고 수업에 나오지 마!
민재 : ..... (혼자 빙글 웃는)
43. 한의원 / 낮
컴퓨터로 신영의 기록 보는 반석.
반석 : 이신영님은 계속 안 오시네... 치료 더 받으셔야 할텐데...
간호사 : 바쁘신가 부죠.
반석 : .........
44. 공항 / 낮
걸어나오는 상우네 비행팀.
유니폼 차림의 기장과 상우, 승무원들.
기장 : 이따 테니스 대회 갈꺼야?
상우 :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45. 도시의 야경 몽타주 / 밤
불 켜진 빌딩들. 밀려선 차들의 불빛. 백화점의 화려한 네온 싸인.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여자들이 앞에 멈춰서 있는 쇼 윈도우.
횡단보도 파란 불에 건너는 여자들의 하이힐.
인파속에 멋지게 차려입고 걸어가는 신영과 다정.
46. 레스토랑 / 밤
‘Private Party Tonight' 쓰여진 레스토랑.
리뉴얼 오픈 파티중이다. 젊은 남녀 손님들 가득하고.
신영과 다정, 들어선다.
까만 드레스 멋지게 차려입은 부기, 사교적 제스처로 다가오며.
부기 : 어머..... 이신영 기자님, 정다정 통역사님... 어서오세요.
신영 : 다 꾸며 놓으니까 엄청 멋지다.
다정 : 성격은 안 좋아도 재능은 있으시네.
부기 : (샴페인 두 잔 건네주며) 나 내일 현승 그룹 박청자 회장 만나.
신영.다정 : 왜?
부기 : 요즘 대기업들 외식사업 많이 하잖아. 현승에서도 아주 근사한 레스토랑을 만들 건가봐.
다정 : 그 집에 아들 없어요?
부기 : 왜 없겠어요.
다정 : 잡고 싶네요.
부기 : 잘난 집 딸들이랑 벌써 결혼했죠. 재벌가는 꿈꾸지 말아요.
정다정씨 미모에 능력 하나 챙긴 거지 집안은 딸리잖아요.
신영 : 재벌은 재벌이랑 결혼해. 우리는 아냐.
다정 : 애들이 그냥 꿈들이 작아요.
부기 : 오늘 물 좋아요. 한번 건져 보든지. (신영에게) 넌 술 마시지 마. 또 돌아간다.
부기, 사람들과 인사하고 악수하고...
신영, 다정도 사람들과 인사 하고 명함주고 받고 즐거운 사교의 밤.
한 쪽에 서서 쥬스 마시는 신영에게 다정 후다닥 다가온다.
다정 : 나가자.
신영 : 왜? 신나게 노는 것 같더니.
다정 : 맘에 드는 애가 있어서 작업 걸었는데 88년생이야.
신영 : 뭐 어때.
다정 : 85라고 속였단 말야.
신영 : 끝까지 속여 그럼.
다정 : 같이 온 걔네 이모가 통역대학원 후배야.
신영과 다정, 살그머니 빠져나가는데
뒤에서 ‘이모’ 하는 남자 목소리, ‘다정 선배님’ 하는 여자 목소리.
다정, 후다닥 달아난다.
47. 거 리 / 밤
걷고 있는 신영과 다정.
다정 : 우리 점 보러 가자. 정말 기막힌 집 있대.
신영 : 됐다.
다정 : 언제쯤 이 저주가 풀릴 지 궁금하지 않아?
신영 : 난 지금 만족해.
다정 : 억지로 자신을 속이면 홧병 돼. 너 입 또 돌아간다.
신영 : 너나 가. 온몸에 부적을 붙여서라도 결혼해라 제발.
다정 : 니 남친은 신혼여행 어디로 갔을까.
신영 : (발끈) 걔 얘긴 또 왜 꺼내.
다정 : 너 아직 맘 아프지, 못 잊고 있지?
신영 : 인연이 아니었지 뭐.
다정 : 우린 왜 인연이 아닌 데만 가서 헛발질일까.
신영 : 나중에 만날 사람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그런거겠지 뭐.
다정 : 뭐가 나와야 소중하든지 말든지 하지.
신영 : 으 추워.... 좀 출출하지 않냐?
다정 : 아까 88년생 땜에 하나도 못 먹었어.
신영 : 떡볶이 어때.
다정 : 난 족발. 각자 싸가지고 집에서 먹자.
48. 포장마차 / 밤
떡볶이를 포장 그릇에 담는 장사.
신영 : 국물 좀 많이 넣어 주시구요. 순대는 간만 조금 섞어서 1인분 주세요.
그리고 오징어 튀김 1인분하구요.
49. 아파트 앞 / 밤
간식거리 가득 담긴 까만 비닐봉지 들고 가며 붕어빵 먹는 신영.
상우(E) : 떡볶이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신영 : .....(멈춰 선다)
상우, 신영 앞으로 다가온다.
상우 : 야, 좀 좋은 거 먹어. 내가 통닭 사줄까? 우리 맨날 가던 그 집 아직도..
신영 : (떡볶이를 땅에 떨구고 상우의 가슴에 두 주먹을 내지른다)
상우 : 내가 왜 지금 여깄는지 궁금하지 않아? 나 결혼 깼어.
너한테 청첩장도 일부러 보낸 거야. 와서, 결혼 취소된 거 보라구.
신영 : 보면 뭐가 달라지는데.
상우 : 날 용서하고 다시 받아줘.
신영 : 나는 니가 싫다고 가면 보내고, 다시 오면 받아주는 사람이야?
상우 : 내 인생 최대의 실수가 뭔지 알아? 너 연수 떠날 때 반대한 거.
넌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착각한 거.
신영 : 내 인생 최대 실수는 뭔지 알아? 너 같은 남자를 사랑한 거.
내 인생의 짝이라고 착각한 거.
상우 : 실수가 아니었단 걸 보여줄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줘.
신영 : 결혼할 남자있어.
상우 : 헤어져. 나도 헤어졌잖아.
신영 : (때리고 걷어차며) 꺼져! 이 나쁜 새끼야.
상우 : 남자 없는 거 알아. 넌 거짓말하면 다 보여.
신영 : 평생 독신으로 살아도 너랑은 안 살아.
상우 : .........기다릴게. 평생 기다릴꺼야.
신영 :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달려간다)
상우 : .........(신영 멀어지는 것 보다가) 신영아! 떡볶이! 너 떡볶이 안 가져가?.... 순대도 있는데.
신영 : (멀어지고)
50. 신영네 거실 / 밤
막걸리 병과 함께 접시에 족발 담아놓고 책보며 먹고 있는 다정.
현관에서 신영 들어온다.
다정 : 넌 뭐하다 이제 와. 에? 왜 빈손이야. 떡볶이는?
신영, 막걸리를 병째로 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다정 : 야, 야. 너 왜 이래.
신영 : 나쁜 놈 나쁜 놈.....
다정 : 이신영.....
신영 : 그 자식이 날 찾아왔어. 결혼 깨졌대.
다정 : 정말? 와서 뭐래?
신영 : 용서해 달래. 다시 돌아오겠대. 내 가슴 찢어놓고 가선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다정 : 잘됐네. 다시 만나.
신영 : 내가 가서 빌 때는 본 척도 안하드니,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고 잔인하게 말하드니 왜 이제 와서 이래.
다정 : 욱하는 감정에 이러지 마. 너 그 사람 다시 만나고 괜찮은 친구있음 소개팅 해줘.
신영 : (다정 등짝 때리며) 너까지 왜 이래 너까지. (하다가) 아.... 아...악.
신영, 얼굴이 다시 돌아간다.
다정 : 이신영!
51. 단아한 한옥 / 낮
색동옷을 입고 앉아있는 도사. 모든 걸 다 알고 있단 눈빛으로 신영과 다정을 바라보고 있다.
신영, 입 돌아간 채 울적한 표정.
도사 : .....(한참 바라보다가) 그래... 어쩐 일로 왔는고.
다정 : 저희가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거든요. 왜 아직 남자가 없는지...
도사 : (신영보며) 넌 거울 보면 알테고.
신영 : .............
다정 : 그럼 저는요?
도사 : 나이가 많으니까 남자들이 싫어하지. 뭐 그런 걸 여기까지 와서 물어 봐?
신영 : 나가자. (일어서는데)
다정 : (신영 눌러 앉히며) 저희보다 더 나이 많은 여자들도 심지어 이혼녀들도 잘난 총각이랑 결혼하는데
우리는 왜 이러구 있는데요?
도사 : 굿을 해야겠어.
다정 : 예에?
도사 : 요즘은 굿도 심플하게 해. 나한테 굿하고 일 풀리고 결혼한 사람들이 지금 팬 카페도 하나 열었어.
다정 : .....그래도 굿은 좀 거부감이 오는데요.
도사 : .......둘 다 남자가 보여.
다정 : 정말요?
도사 : 둘 다 어릴 때 크게 아팠던 적 있지?
다정.신영 : (마주보며 갸우뚱) 없는데요....
도사 : 그래, 그래. 있었음 큰 일 날뻔 했다는 말을 하는거야. 있었음 남자고 뭐고 없어.
다정 : 네에....
도사 : 괜찮은 남자는 니들한테 관심없고, 꼭 만나기 싫은 애들이 연락하고 그랬지?
다정 : 네, 네. 맞아요.
신영 : 그딴 건 저도 할 수 있는 말인데요.
도사 : 말하는 싸가지! 입은 엇나간 채로.
다정 : (신영 쿡 찌르며) 도사님, 이 친구 옛날 남자가 돌아오고 싶어 하는데 다시 만나도 괜찮을까요.
도사 : 헌 놈을 왜 만나, 새 것이 오는데.
신영 : 언제쯤 오는데요?
도사 : 길을 터주면 당장 와. 니들한테 남자가 오려면 굿으로 길을 터줘야 해.
오는 길이 막혀있어... 막혀있어.
다정 : (울상) 안되는데.....
52. 한방 병원 / 낮
신영 얼굴에 침 맞고 있다.
반석, 야단치면서도 얼굴에 미소 가득.
반석 : 완치될 때까진 계속 오셔야죠. 치료가 뜸하니까 이렇잖아요.
신영 : ......그래도 약은 열심히 먹었어요.
(시간경과)
신영, 일어나 거울을 본다. 얼굴, 정상으로 돌아와 있다.
신영 : 선생님 정말 명의신가봐요....
반석 : (좋아서) 명의는요...
신영 :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반석 : 제가 다음 주에 잠깐 외국엘 가니까요, 이번 주는 매일 오시는 게 좋겠어요.
신영 : 네.
53. 민재네 거실 / 밤
민재, 작곡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내 기타줄 끊은 여자’ 흐르는 곡 들으며 박자 맞추는.
옆에 반석은 맥주병 들고 앉아 꿈꾸는 표정.
민재 : 어때? 후배가 다시 편곡했는데 재밌지?
반석 : ..........
민재 : 형!
반석 : (퍼뜩) 응.
민재 : 뭐야 지금.... 노래 들었어 안들었어.
반석 : 민재야. 나 이상해....
민재 : 왜?
반석 : .......아후.....
민재 : 아 왜애?
반석 : 내가..... 어떤 환자한테 마음이 가. 나 돌았나봐.
민재 : 이뻐?
반석 : 이뻐.
민재 : 그 사람도 형한테 관심있는 거 같아?
반석 : 싫어하진 않는 것 같아. (좋아서 헤벌쭉) 나더러 명의래.
민재 : 남자친구 없어?
반석 : 모르겠어.
민재 : 맘에 들면 있어도 뺏어야지.
반석 : 아냐 이럼 안 돼. 환자한테 어떻게 이래.
민재 : 옛날에 허준도 예진아씨랑 사귀지 않았어?
반석 : 그냥 마음 비울래. 환자를 여자로 보다니... 있을 수 없어.
민재 : 그렇게 고지식하니까그 나이까지 연애 한번 못해본거야.
반석 : 그 사람 볼 때마다 설레고 좋아. 침놓을 때 내 손이 떨리더라구.
민재 : 그러다 침 잘못 놔서 입이라도 돌아감 어떡해.
반석 : 입 돌아가서 온 사람인데 뭘.
민재 : (웃으며) 진짜? 그 환자 이름 이신영은 아니지?
반석 : 어!! 너 그걸 어떻게 알아.
민재 : 뭐!! 진짜야?
54. 시골 동네 일각 / 아침
빨간 옷을 차려입은 신영 다정 부기 걸어간다. 빨간 머플러, 장갑, 모자 등등.....
신영과 부기 표정 시큰둥 하고 다정은 들떠 있다.
다정 : 이신영, 넌 취재하러 가는 거야. 부기씨는 땅 보러 가는 거구.
우리 셋, 모두 완벽한 주말이야.
빨간 세 여자 걸어가는 위로..
신영(E) :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플래쉬 백 ???
55. 신영네 거실 / 밤
모여 앉은 셋.
신영과 부기는 놀란 얼굴로.
다정 : 한번 끝까지 가보면 뭔가 터질 것 같아, 뭔가 열릴 것 같아.
신영 : 혼자 가. 난 싫어.
다정 : 너 기자 아냐? 좋은 취재꺼리잖아. 마음을 열고 따라 와.
부기씨도 가요. 그 쪽 땅도 보실 겸.
부기 : 이래서 친구 잘 만나야 한다는 거야. 정다정이랑 엮인 후부터 이상한 일들 연속이잖아.
다정 : 그러니까요. 얼른 날 시집 보내버리세요. 같이 가요, 네? 신영아, 취재 취재.
신영 : 마이크 달고 갈테니까 그리 알아.
다정 : 좋아좋아. 그런 자세 훌륭해. 대신 다들 빨강색 옷을 입고 오래. 그래야 신빨이 잘 오른대.
신영 : 굿에도 드레스 코드가 있어?
56. 인근 야산 / 낮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옆에는 장구와 북 꽹과리 아저씨 앉아있다.
빨간 옷과 장갑, 머플러의 세 여자 도사 앞에 서 있다.
도사 : 이쁘게들 차려 입고 왔구나. 마마님이 기뻐하시겠다.
다정 :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나를 넘어서는 이런 용기가 저한테 운명을 터줄꺼라 믿습니다 도사님.
도사 : 그래 그래. 넌 처음부터 나랑 코드가 맞았어. 자, 그럼 시작하자. 일단 친구들 이리 와.
신영. 부기 : ........??
도사 : (나뭇가지 묶은 것 들며) 복숭아나무 가지로 니들 나이만큼 맞고 시작해.
부기 : 어머! 우리가 왜 매를 맞아요, 우린 그냥 구경왔어요.
도사 : 같이 온 사람도 부정 탄 걸 씻어야해.
부기 : 싫어요, 우린 구경만 할꺼예요. (신영 잡아끌며) 가자.
다정 : 도사님, 죄송해요. 쟤들이 워낙 개성이 강해서. 대신 제가 잘 할게요.
도사 : (맘에 안 드는 듯 친구들 째려보는) 시작하자.
북, 장구, 꽹과리 연주 시작한다. 둥둥 둥기둥.....
도사 버선발 움찔움찔하며 살살 리듬을 타는데
신영 부기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서 군시렁.
신영 : 엇박자야. 리듬도 안 맞구.
부기 : 세션도 너무 약해. 저렇게 셋만 연주하는 거 맞아?
도사 : 마마님 마마님.... 오늘 우리 불쌍한 중생 하나 자기 짝을 찾아달라고 예까지 와서 비옵니다.
부디 불쌍히 여겨주시어 좋은 짝을 보내주소서. 길을 터주소서 워이훠이.
도사, 두 발로 펄펄 뛰기 시작한다.
다정은 앞에 서서 두 손 빌고 있다.
도사 : 마마님 어서 납시어 그 남자가 오도록 길을 터주십시오.
다정 : 비옵니다 비옵니다.
도사 : 남자가 보입니다. 남자가 보입니다.
57. 한방 병원 / 낮
가운 차림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나반석. 환자들에게 밝게 인사.
58. 연습실 / 낮
기타 연습 하고 있는 민재.
59. 비행기 조종석 / 낮
기장 옆 조종석에 앉아 샤프한 표정으로 기계를 만지는 윤상우.
60. 인근 야산 / 낮
신영, 부기 앉아있는 쪽으로 다정 달려온다.
다정 : 얘들아, 잠깐 와봐.
신영 : 또 뭔데?
다정 : 같이 복을 빌어주는 순서래. 도사님이 뭐뭐하거라.... 하면 그냥 예예 하면 되는거야.
신영 : (가슴속에 손을 넣으며) 마이크 켜야지.
세 여자 기도하듯 손 모으고 서 있다.
도사, 장단에 맞춰 뛰며 강복하는.
도사 : (뛰면서) 마마님께 비옵니다. 어서어서 길을 터서 좋은 인연 주시옵고...
세 여자 : 예예....
도사 : (뛰면서 숨이 차 발음이 뭉개진다) 물렀거라 물렀거라 운 막는 ....는 .......하시고.
신영.부기 : (되묻는) 예에?
도사 : (뛰는) 조상님들....조상님들 .......에 ...... 하시고
신영 : 예? 뭐라시는 거예요?
도사 : (스톱. 장단 커트시키고) 장난 할래?
신영 :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예예하죠. 발음이 불분명하세요.
부기 : 자꾸만 의문이 드는데 정말 무당 맞으세요?
도사 : 니들이 왜 시집을 못가는 지 알겠다. 니들 둘 당장 사라져! 훠이!
신영, 부기 간다.
다정 : 죄송해요.
도사 : (다시 뛰어보려는데 잘 안된다) 마마님이 노하셨어. 내 발을 가두시려고 하네.
땅에서 안 떨어져. 이것 봐, 이것 봐.
다정 : 어떡해요 그럼.
도사 : 부정 탄 걸 씻어야지.
야산 일각. 신영과 부기, 쭈그려 앉아 손을 비비고 있다.
신영 :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정다정 같은 애가 굿을 하다니.
부기 :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거야.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잖아.
신영 : 그냥 느낌인데.... 정다정은 올해 꼭 결혼할 것 같아.
도사, 회초리 여러 개를 묶어 들고 살금살금 뒤에서 걸어와 두 여자를 사정없이 때린다.
두 여자 화들짝.
신영 : 으악!
부기 : 아 따거! 악!
신영 : 부기야, 이 사람 좀 막아봐.
부기 : 아, 나 회초리에 눈 찔렸어.
신영 : 아 따거, 아 아퍼. 당신 미쳤어 미쳤어!
다정 : (달려와) 제발 조용히 서른여섯대만 맞아 줘.
부기 : 정다정, 너 이따 죽었어.
때리는 도사와 막는 신영 부기. 세 사람의 싸움 난장판이고 다정은 옆에서 발 동동하는데
어디선가 카메라 여러 대가 뛰어온다.
‘MBS' 찍힌 방송사의 ENG카메라 한 대와 16미리 카메라를 든 VJ 3명이 숲속에서 뛰어나와 이 광경을 찍는다.
도사 : 니들 뭐야. 이거 뭐야.
신영 : 어머 이거 뭐야. MBS에서 왜 나온거야.
다정 : 도망쳐.
도사와 연주자들, 다른 쪽으로 튀고.
세 여자, 놀라 달아난다.
부기 : (얼른 선글래스를 꺼내 쓴다) 얼굴 가려, 말하지 마. 목소리 내지 마.
도망가는 사람들 향해 카메라 악착같이 달라붙고, 기자가 묻는다.
기자 : 방금 폭행당하셨죠?
신영, 다정 얼굴 가리고 카메라를 향해 손을 휘휘 내젓는다.
다정 : 가요, 가!
신영 : 말하지 말라니까. 얼굴 가려.
부기 : 빨리 차 있는 데로 뛰어. 시동 걸어 놓을게.
부기, 무협녀 답게 날듯이 뛰어간다.
신영, 손으로 얼굴 가리고 다정은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아 도망가는데 앞이 안보여 서로 부딪힌다.
윽! 두 여자 훌러덩 넘어지는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