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코른골트
(1897. 5. 2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브륀 ~ 1957. 11. 29. 미국)
1. 생애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륀(현재 체코 공화국, 브르노)에서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율리우스 코른골트는 음악 평론가이다. 코른골트는 알렉산더 폰 젬린스키와 로버트 휴츠 밑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말러는 어린 에리히를 만난 후 그를 "음악 천재"라 불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어린 코른골트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유럽에서 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1920년)로 성공을 거뒀다. 코른골트는 1934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그는 수많은 영화 음악을 작곡했고, 영화 음악가로 인식되어 왔다.
코른골트는 나머지 생애 동안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하여, 풍부하고 화음이 풍부한 후기 낭만주의 양식의 콘서트용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1943년 코른골트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195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 그의 업적과 음악 대중에게서 상당량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코른골트는 수년간 긍정적인 비평적인 주목을 얻지 못했고, 상당히 평가 절하되었다. 1990년대 그에 대한 두 개의 전기가 거의 동시에 발간되었다. 하나는 제시카 던첸이 저술한 "Erich Wolfgang Korngold" (Phaidon Press, 20th Century 작곡가 series, 1996년 발간). 다른 하나는 브렌던 G. 캐롤이 쓴 "Erich Korngold: The Last Prodigy" (Amadeus Press, 1997)이 있다. 캐롤은 세계 코른골트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코른골트는 영화음악과 오페라〈죽은 도시 Die tote Stadt〉로 잘 알려져 있다. 신동이었던 그는 11세 때 발레곡〈눈사람 Der Schneemann〉을 작곡했는데 1910년 빈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파란을 일으켰다. 코른골트가 10대일 때인 1916년 그의 오페라 〈폴리크라테스의 반지 Der Ring des Polykrates〉·〈비올란타 Violanta〉가 뮌헨에서 공연되었다. 20세기 최고의 성공적인 오페라 가운데 하나인 〈죽은 도시〉(1920, 함부르크 공연)는 코른골트에게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1934년 영화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 〈Anthony Adverse〉(1936)와 〈로빈 후드의 모험 The Adventures of Robin Hood〉(1938)의 주제 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1975년 〈죽은 도시〉가 뉴욕 시에서 성공리에 재공연되었다. 에리히 코른골트는 멘델스존 이후 최고의 신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빈에서 자란 그는 열 살 때 말러 앞에서 연주했고 말러는 그를 천재라고 극찬했다. 그가 13세가 되었을 때 그의 작품들은 이미 빈 호포퍼(Vienna Hofoper, 빈의 궁정 가극장)에서 연주되었다. 그는 극적 효과와 분위기를 만드는 데 타고난 재능을 소유했고 오페라 작곡에 매우 뛰어났다.
그리하여 그는 유명세를 탔고, 나치의 통치를 피해 국외로 망명하여 할리우드에 정착했다. 거기서 워너 브라더스 영화를 위해 음악을 썼다.《로빈후드의 모험》이나 《씨 호크》가 그 예이다.《죽음의 도시 [Die tote Stadt]》는 그의 5개의 오페라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전쟁 중에도 유럽 전역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후에 잊혀졌고,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사람들에게 다시 기억되었다. 벨기에 작가 조르주 로덴바흐의 심리학 걸작 『죽음의 부르제』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아내 마리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홀아비 폴에 관한 것으로 그는 아내가 생기발랄하고 쾌활한 댄서 마리에타로 부활했다고 믿게 된다.
이 작품의 음악에서는 푸치니, 말러, 표현주의와 빈의 경가극의 영향이 느껴진다. 코른골트는 이 작품에 고난의 시기에 존재한 시대정신을 담아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사라진 세계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다. 이 난해하고 강렬한 작품을 담은 음반 중 에리히 라인스도르프의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폴과 마리에타 배역에는 극도의 지구력과 조절, 힘과 동시에 배우의 탁월한 연기 실력이 요구된다. 르네 콜로와 캐롤 네블렛은 흠 잡을 곳 없이 뛰어나다. 피에로로 등장하는 조연 배역 프리츠를 맡은 헤르만 프레이는 <피에로 춤곡>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서정적이고 인상 깊은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수십 년 동안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는 것은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아마도 이것은 1940년대 후반 선율과 화성을 쓰는 작곡법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선전 포고한 20세기 음악 이상의 기벽 때문이거나 할리우드 영화 음악을 쓰는 작곡가라는 이유로 그를 얕잡아 본 때문일 것이다.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을 ‘할리우드 협주곡’이라고 말하며 조롱했다. 다행히도 후세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했다. 코른골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나치의 1938년 오스트리아 점령 사건으로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
더구나 그의 가족은 미국 망명이 불가피했고, 그러한 상황 때문에 그는 필요에 의해 ‘할리우드 작곡가’가 됨으로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는 그 평론가가 맞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곡<바이올린 협주곡 [Violin Concerto]>이 코른골트가 만든 영화 음악에서 따온 음악 소재들을 재활용했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코른골트는 영화에 쓰이는 음악의 잠재성을 자랑했고 자신의 영화 음악들을 일컬어 ‘노래가 없는 오페라’라고 했다. 그러나 극장에서 영화의 상영이 막을 내릴 때마다 그의 음악도 함께 그 모습을 감추곤 했다.
코른골트는 이렇듯 잊혀져 가는 자신의 음악 중에서 최상의 소재들을 뽑아 재구성함으로써 그들을 무관심에서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에롤 플린이 출연한 영화 <또 다른 새벽>의 주제 선율로 시작된다. 영화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제 선율만큼은 충분히 구제할 가치가 있었다. 또한 마지막 악장의 주요 주제 또한 눈에 띄는데 이것은 <왕자와 거지>에서 가져온 것이며 여러 형태로 발랄하게 변주되었다. 야사 하이페츠는 1947년 이 작품을 초연했다. 그의 연주는 너무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선율이 돋보인다.
에리히 코른골트는 빈에서 A.쳄린스키와 그레데너 등에게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우고 1910년 빈궁정오페라극장에서 《눈사람 Der Schneemann》으로 데뷔했다. 이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관현악단에서 A.니키슈의 지휘로 《서곡》이 초연되어 눈길을 끌고, 또《신포니에타》가 빈필하모니에서 F.바인가르트너의 지휘로 공연되어 각광을 받았다. 그 뒤 오페라에도 관심을 쏟아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작곡활동을 해왔으나 1934년 나치스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때부터 영화음악에도 손을 대고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대표작에 오페라《폴류크라테스의 반지》(1916)《비올란타》(1916)《죽음의 도시》(1920)《헬리아네의 기적》(1927)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바이올린협주곡을 비롯한 많은 기악곡과 영화음악이 있다.
2. 주요작품
《폴류크라테스의 반지》(1916)
《비올란타》(1916)
《죽음의 도시》(1920)
《헬리아네의 기적》(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