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어머니상 탤런트 김혜자 권사
제가 어렸을 때 다닌 교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방석에 앉아서 예배 보는 교회였어요. 우리 남대문교회도요. 그런데 만날 예배를 보고 나오면 좋은 신발이 없어지고 헌 신발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른들이 도둑을 잡아야 된다고 했어요. 신발 사이즈가 열 살 미만 애들 것이 없어지니 누군가가 와서 바꿔 신고 가겠지요. 전도사님이 이러셨어요. “놔둬라. 도둑질하다 하나님 만난다. 잡지 마라.”고 했어요. 저는 그게 굉장히 어렸을 때인데도 평생 잊어지지가 않아요.
모태신앙인 사람들의 좀 안 좋은 점이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니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에요. 어떤 때는 습관적으로 갈 때도 있고, 엄마 아빠가 다니시던 교회니까 그냥 가서 졸더라도 교회 가서 졸지하며 앉아서 졸 때도 있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월드비전 일을 하면서 하나님이 내가 모태교인인데도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정말 희미하게 하나님께 가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저에게 확실하게 일을 맡기신 것 같아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그런데 거기에 꼭 크리스천들이 와서 봉사를 해요. 잘 사는 나라 의사들이나 자원봉사자 너무 잘 생긴 청년들이 얘들을 껴안고. 얘들이 얼마나 말랐는지요. 그 마른 팔에 주사를 맞는데 제 눈에는 주사바늘이 얘들 팔뚝보다 더 큰 것 같아요. 거의 비틀어진 것 같이 거의 뼈만 남은 얘들은 울지도 않아요. 기운이 없으니까. 안고 있는 엄마만 눈물이 고여서 애들을 바라보고 있어요. 엄마마음은 얼굴색이 어떻든 다 똑같은 것인데….
이별이란 슬픈 거잖아요. 병실에서 남편과 둘이 있을 때 자기가 암이라니까 우리 남편이 가만있더라고요. ‘그렇지, 나도 암에 걸릴 수 있지’ 그러더군요. 모르겠어요. 죽으면 하나님에게 가는 건데 그런게 많이 힘이 됐겠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면서 내가 죽으면 자기가 힘들어서 어떡하나 그랬어요. 그러고 한 달 반 만에 갔으니 너무나 꿈 같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이…. 그래도 세례도 받고 성찬식도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했으니 그게 큰 위로가 됐고요. 죽음이라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모태교인이니까 그건 알잖아요. 저는 꼭 힘들 때가 아니더라도 ‘하나님, 난 몰라요. 하나님이 해 줘야지 난 몰라요.’
평상시에도 하나님과 중얼중얼 대화해 월드비전 일은 하나님이 맡긴 나의 일
조건 없는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해줘
시편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우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저는 이 시편 23편 중에서 특히 3절을 참 좋아해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로 인도하신다”는 말씀. 저의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시고 약한 부분은 강하게 해 주시고. 제가 잘못하면 하나님 이름에 먹칠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언제나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리라 믿어요. 저를 허탄한 길로 빠지지 않고 언제나 좋은 길로 저의 손잡고 가 주시리라 저는 굳게 믿어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랑은 하나님과의 사랑 밖에는 없어요. 사람끼리는 내가 준만큼 그 사람도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슬프고 그런데요. 사랑에는 하나님과의 사랑 말고 우리 인간끼리 사랑은 어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참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시가 있어요. “나무들은 저렇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쳐다보느라고 얼마나 애를 쓸까. 그렇지만 그 밑을 보면 뿌리들이 엉켜있다”는. 그리고 이런 시도 있어요. “우리 때로는 가까이 있음을 못 견뎌하고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저는 그게 사랑에 대해 참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과의 사랑은 그런 게 없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바라시지 않으시니까요.
우리 딸이 미국에 있어서 편지를 쓰고, 또 어떤 때는 편지를 빨리 보내고 싶어서 우표를 제일 빨리 가게 하기 위해서는 편지 한 장 썼는데 1만 5천 원이 들 때도 있어요. 누군가에게 대개 비싸다 그렇게 얘기했더니 인터넷으로 주고받으면 되는 건데 왜 그러냐고 말했어요. 나는 인터넷을 할 줄 모르지만 편지함을 열어볼 때 편지가 와있으면 그 기쁨이 저는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물론 즉각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그런 것이 대단히 편리하겠지만. 편리함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대단히 구식 같지만 구식이었을 때 우리는 감정이 굉장히 풍부했어요. 오래 생각해야 되고. 그런데 이제는 생각을 금방 행동으로 옮겨도 될 만큼 빠른 시대기 때문에 나는 점점 사랑이 없어져가는 것 같아요. 생각하는 게 없어져 간다고 생각해요. 즉각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 좀 느리지만 편지도 쓰고 좀 비싸지만 우표도 사서 붙이고….
못 사는 나라는 거의 가봤어요. 그들 나라의 아이들 눈을 보면 복잡한 게 없어요. 먹을 것, 아프지만 않으면 그러니까 굉장히 심플해요. 저도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머리 굴리지 않고 정말 간단한 생각만 하며 살고 싶은데 그 아이들을 보면서 그걸 배워요. 걔네들은 먹을 것만 주면 행복해 해요.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대가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은 걔네들을 돕는 것도 되지만 내 자신에게 어떤 커다란 즐거움이 있어요. 내 마음이 굉장히 행복해요. 나는 그게 사랑을 조건 없이 주는 게 바로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다 계실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어요. 거기의 엄마들은 얘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가진 게 없으니까. 어떤 여자가 ‘하나님은 왜 이렇게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이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항의했다고 해요. 하나님이 ‘그러니까 너희들을 보냈지 않니.’ 물론 얘기지만. 너희들을 보냈다는 것이 바로 우리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걔네들을 돕지 않으면요. 저는 그런 나라를 다니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걔네들을 한 명씩만 책임져 주면, 책임이라는 것이 한 달에 2만 원이에요. 그렇게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저의 애인처럼 느껴져요”
1941년 10월 25일 서울에서 출생한 김혜자 권사는 1962년 KBS 공채1기로 데뷔했다.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88년 mbs방송연기대상, 92년 방송대상, 2011년 영화《마더》로 미국 LA영화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95년에는 최장수전속광고모델로 선정됐다. 1991년 월드비전 친선홍보대사로 임명되었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