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시 모음]
목련 이력서
이해리
개봉되자 버려진 이력서처럼
피자마자 봄이 간다.
올해도 마지막처럼
가지 끝에 부풀어
뽀얀 주먹 두 개를 푸른 하늘에
내밀고 있다.
스무 해 서른 해
온힘 다해 밀어 넣어도
한번도 꼼꼼히 읽히지 않은
목련꽃의 이력이 저 주먹 안에 있겠다.
아무 배경 없이도 순결한 심성만 있다면
이 세상 화사한 꿈에 닿을 수 있다 믿는
어느 처녀 가장
4월 하늘이
흰불꽃 회오리 그 주먹 안에
허공 두 줌을 쥐어 주고 있다.
~~~~~
목련
홍수희
내 어릴 적
어머니
분 냄새 난다.
고운 입술은
항상
말이 없으시고도
눈과 눈을
마주치면
애련히
미소 지으시던
빛나는 치아와
곱게 빗어 올린
윤나는 머릿결이,
세월이
너무 흘러
무정하게도
어머니 머리에는
눈꽃이 수북히
피어났어도
추운 겨울 지나고
봄볕 내리는
뜨락에
젖빛으로
피어 앉은
네 모습에선
언제나
하얀
분 냄새 난다.
~~~~~
목련꽃 피는 봄날에
용혜원
봄 햇살에 간지럼 타 웃음보가 터진 듯
피어나는 목련꽃 앞에 그대가 서면
금방이라도 얼굴이 더 맑아질 것만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행복한 모습 그대로
피어나는 이 꽃을
그대에게 한 아름 선물할 수 없지만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봄날에는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아름답기에
꽃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활짝 피어나는 목련꽃들이 그대 마음에
웃음 보따리를 한 아름 선물합니다.
목련꽃 피어나는 거리를
그대와 함께 걸으면 행복합니다.
우리의 사랑도
함께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
저녁
정일근
아침에 반가사유하던 저 목련,
저녁에 꽃문을 연다.
봄날 햇살은 고양이 목덜미 털처럼 따뜻했고
바람은 고양이 목을 쓰다듬는 착한 손길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한낮에 나무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가는
져녁에는 꽃 그늘에서 빛나는 시집을 읽는다.
스스로 꽃문을 열어 빛나는 나무의 연꽃들
그 빛에 젖어 함께 부활하는 행간의 아름다운 침묵을
무당벌레 한 마리가 제 꽃등을 지고 돌아온다.
세상의 어느 손과 어떤 주술이 꽃문을 열수 있으랴
꽃의 닫힌 문을 연 봄날 하루는 위대하였으니
하루가 경건한 느낌표로 남아 묵상하는 이 저녁
땅에는 목련꽃이 하늘에는 별이 불을 밝힐 것이다.
머지않아 밤 휘파람새가 우듬지로 날아와 노래할 것이다.
~~~~~
백목련꽃
위선환
그걸 알아보라고 했다. 꽃이 피기는 필 것인지를,
꽃 피는 날은 날이 개이고
하늘이 훨씬 가까울 것인지를,
그런 하늘에서라야 꼭 꽃이 피는 지를,
장지에 눌린 창호지가 툭툭 뚫리듯
머리 위 여기저기서 하늘이 뚫린다.
불쑥불쑥 꽃봉오리들이 목을 빼 들이민다.
가득하게 한 입씩 햇살을 베어 문다.
이를테면 지금 백목련꽃이 피었다.
하늘은 파랗고 저렇게 꽃이 희다.
~~~~~
목련
류시화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 전에
습관처럼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 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 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
목련꽃 브라자
복효근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할까
고 가시네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
대책 없는 봄
임영조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에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처음 발설한 건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락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 없이 멋대로 발랑까진 십대들
냉이 꽃다지 제비꽃이 환하더군요.
몰래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 없는 봄날입니다.
~~~~~
목련
정환웅 詩
그대
내 손 보이시나요?
내 손가락 끝마다
피어난 꽃 한 송이
그대
볼 수 있나요?
하늘 그리워
가지 끝에 맺힌
하얀 사연
그대
읽을 수 있나요?
봉오리마다
고결함과 간절함을 담아
그대에게
오롯이 보냅니다.
그대의 답장
언제쯤
받아볼 수 있나요?
간절한 기다림
그대
내 마음 보이시나요?
2015. 04. 07
眺覽盈月軒 (보름달을 멀리 바라보는 집) 에서
마로니에
from Cafe 마로니에 그늘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