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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단련하소서
시편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양심을 단련하소서
1.하나님께 자기를 시험하고 살피고 연단해달라는 다윗의 기도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6:2 말씀을 보면, 시편의 저자 다윗이 하나님께 자기를 살피시고 시험하시어 자기 뜻과 양심을 단련해달라고 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시험해보시라는 이러한 간청을 드리는 것은 다윗의 기도문 중에 종종 나오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23,24절 말씀에서도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보통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펴보시고 시험해보시고 자기를 연단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극히 크고 지존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시고 시험하시고 연단하신다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마저 더럽게 여기시며 흰 눈마저 더럽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 정결하신 눈으로 우리를 살펴보실진대 우리가 조금인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순결하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욥기 25:4 이하의 말씀에,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욥기 4~6)
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이렇게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자기를 살펴보시고 시험해보시고 단련해달라는 간구를 드리는 것은 보통 마음 가지고는 하기가 쉽지 않은 기도인 것이 분명합니다.
2.하나님은 사람을 살파시고 시험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실상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자기를 시험해달라고 기도하든 하지 않든간에 하나님은 벌써부터 이미 인간의 마음을 살피시고 시험하시고 연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시편 7:9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1:2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0:12 말씀에서도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도하여 이르기를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의인이나 불신자나 신자나 간에 모든 사람을 다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사람의 외모만 볼 수 있습니다. 그 깊은 흉중 속의 생각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그보다 더 깊은 속까지도 보고 알아보시고 다루십니다. 사무엘상 16:7 말씀에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늘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속을 어느 정도까지 살피실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 17:9~10 말씀에 이르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이르기를,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속을 다 들여다 보십니다. 어느 정도냐면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핀다”라고 하였습니다. 심장 곧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또한 “폐부를 시험한다”고 하였는데, “폐부”는 히브리어 원어로 “콩팥”입니다. 콩팥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킬리야”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화목제나 속죄제 제사를 드릴 때 번제단에 올리는 소와 양의 고기와 기름 중에 늘 빼놓지 않는 것이 소와 양의 콩팥입니다. 왜 콩팥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느냐 하면, 그 콩팥이 사람의 내장 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말할 때에 욥기 16:13 말씀에서,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 나오게 하시는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적 사고에서는 콩팥이 사람의 생명의 마지막 깊은 곳이기에 콩팥에 화살을 맞고서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욥 자신의 콩팥을 겨냥하여 화살을 사정없이 쏘아 자기를 죽이고 계시다고 욥은 자기가 받은 시련의 혹독함을 그렇게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콩팥은 마치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영혼과 같이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속 사람을 가르킵니다. 그래서 콩팥이라는 이 히브리어 단어 ‘킬리야’는 성경에 자주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 명칭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심장 혹은 폐부 혹은 오늘 시편 26편에서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콩팥 곧 사람의 가장 깊은 곳까지도 다 들여다 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실 뿐 아니라 시험도 하신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기록하였습니다.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라는 문장에서 이 ‘시험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사’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을 때에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 계신가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던 ‘맛사’라는 장소 이름도 이 ‘나사’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실 때에도 이 단어가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으로 부르시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시험한다는 단어 ‘나사’를 쓰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신앙을 시험하시려고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사용하시고, 거짓 선지자들을 허락하시기도 하신다 하셨을 때 이 단어 ‘나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깊은 속 사람의 진심을 헤아리시기 위하여 친히 시험하십니다. 잠언 26:23 말씀에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고 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은 그릇인데, 그것을 좀 긁어보면 곧 그 속은 흙으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듯이, 온유한 입술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을 연신 말한다 해도 그 사람을 시험하여 분노와 질투와 미움을 불러 일으켜보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온유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금바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 거짓인지, 지조가 있는 신앙인지 아니면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것인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인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두 마음 신앙인지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우리를 흔들어 보시어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종종 깊은 곳까지도 시험해보고 그 진정성, 그 순결성, 그 견고함을 알아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살피실 뿐 아니라 시험해보실 뿐 아니라 나아가서 단련하기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양심을 단련하소서”
여기서 ‘단련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쌰라프”로서 용광로에 쇠와 은금의 원광석을 넣고 끓여서 걸러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내 뜻과 양심을 단련하소서”라는 문장을 달리 표현해보면, “내 가장 깊은 속 사람과 내 마음을 용광로에 넣고 펄펄 끓여서 순수하게 제련하소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대장장이가 은과 금을 풀무불에 집어 넣고 끓여서 그 찌꺼기를 걸러버리고 순은과 순금을 건져내듯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과 자기의 영혼을 시련의 도가니에 넣고 불로 연단하여 순수하고 단단하고 온전한 것으로 빚어달라고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더 온전하게 빚으시려고 이렇게 시련의 용광로에 자기 백성을 집어넣고 단련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3.인간은 시험이 필요한 부패한 존재이다.
사실 모든 인간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살펴보시고 시험해보실 뿐 아니라 연단해주셔야 비로소 쓸만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너무나 망가진 존재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우리 인간은 죄의 쓴 뿌리로부터 나온 온갖 부패의 독소들이 우리의 속에 다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들으신 바대로 예레미야 17:9~10 말씀에서 이르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더럽고 냄새나고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했다가 길바닥에 토해놓은 음식물들, 살처분한 돼지들의 대량 매물 처리장, 그러합니다. 또 어렸을 때 매일 들렀던 푸세식 변기 속에는 늘 악취가 올라오며 파리떼가 날아들어 알을 까서 그 속에는 구더기가 늘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의 그런 더러운 것들보다 더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무엇이냐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7:20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르시기를,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손을 깨끗이 씻으며 날마다 음식 그릇은 부지런히 깨끗히 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속 마음은 더러운 채 놔두고 씻지 않으면서도 그들 자신은 깨끗한 척, 의로운 척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씻어야 할 것은 손과 발과 그릇이 아니라 너희 마음 속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부패하여 냄새나고 악한 자기의 내면을 모든 것을 보시고 시험하시고 단련하시는 하나님께서 다루시도록 맡겨야 마땅합니다.
다윗은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속이 심히 더럽고 악한 것들이 너무 깊이 너무 많이 있음을 발견하고서 자기로서는 어떻게 고칠 수 없기에 하나님께 간절하게 자기를 살펴보시고 시험해주시고 단련해주시기를 간청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참으로 부패한 존재입니다. 절대로 우리 스스로는 바꿀 수 없습니다. 표범이 그 반점을 지울 수 없듯이, 흑인이 그 검은 피부를 바꿀 수 없듯이,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본성적인 악을 벗어내고 선을 스스로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기도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을 환히 비춰주시어 우리의 더러움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깊은 속을 이리 저리 시험해주시기를 간청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 같은 용광로에 집어 넣어 단련해주시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을 들여다 보시고 우리 속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선하고 깨끗하고 착하고 양심적이고 의롭고 순결하고 자비롭고, 제법 쓸 만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것이 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펴주시고 시험해주시고 우리를 연단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바꿔질 수 없고 완전히 착각하여 자신에게 속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우리의 본색을 드러내주셔야 우리가 형편없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시험해주시고 연단해주셔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짐승의 모습을 벗고 사람이 조금 되어지고 천국 백성 모습을 조금이나라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4.하나님의 시험은 어떠한 모습으로 오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시험하고 단련하십니까? 재물을 통하여 시험하고 연단하기도 합니다. 명예를 통하여 시험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심과 야망을 달아보십니다. 진정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가장 큰 야망과 명예로 아는지 아닌지도 달아보시고, 하나님을 가장 큰 재산으로 아는지, 아닌지도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을 가장 큰 명예, 가장 큰 자산으로 아는 자는 존귀한 자리에 처하든 무명한 자리에 있든지, 부요하게 되든지, 가난하게 되든지 상관없이 늘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하나님만을 자랑합니다. 이렇듯 재물과 명예, 세상 지위와 권력과 사람들의 인기를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고들, 삶의 실패의 경험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고 단련하기도 합니다. 갑작스런 질병이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가오는 쇠약함 등도 우리를 시험하시고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깊은 속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처분, 하나님의 섭리에 우리가 순종하는가 아닌가를 하나님은 달아보십니다. 이러한 일을 겪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감사 대신에 원망과 짜증을 부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통치와 그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살지 아니함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잠잠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의 은혜를 구하며 자족하며 순종하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되면, 우리 마음이 속으로 영글어가며 성품이 견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연단하시는 도구 중에서 가장 좋은 도구요 우리가 마땅히 늘 사용해야 할 가장 좋은 도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과 연단의 도구로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나 읽을 때에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 속 사람을 다루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감추인 욕망들을 들춰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높아진 마음을 쿡 하니 내리누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속에 잠자던 양심을 일깨워 우리 자신을 책망합니다. 자신을 볼 때에 양심껏 살아왔다고 자부해오며 다른 사람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을 늘 경멸하며 비판해왔지만, 어느날 성경을 읽거나 강단의 말씀을 들을 때에 어느 날 어느 순간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훅하니 들어와서 우리 양심을 깨웁니다. 그러면 우리 양심이 우리를 향하여 양날 가진 비수처럼 쿡 찌르듯 말을 건넵니다.
“남 함부로 비판하지말아라. 너도 똑 같아! 너나 잘하렴!”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하였기 때문에 그 말씀은 읽거나 듣거나 묵상할 때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부끄럽게 해주시고 돌이켜 회개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 생각이 그리스도께 복종할 수 있도록 다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살피고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를 연단하는 하나님의 가장 귀한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가장 귀한 우리의 스승으로 알고, 그 앞에 자주 마음의 무릎을 꿇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려는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큰 고난과 불 같은 연단 없이도 차츰 차츰 우리 속 사람이 주님의 뜻대로 변화되어 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사모하는 자가 됩시다.
물론 우리가 늘 그렇게 지혜로운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다윗조차 그렇지 못하여 늘그막에도 교만해져서 넘어지고 호된 시련을 당했거늘, 우리가 어찌 지혜로와서 오직 하나님 말씀만으로 온전해질 수 있겠습니까? 넘어지고 쓰러지는 실패와 주님의 채찍과 막대기를 맞고 괴로워하며 배워가곤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삶 속에서 겪는 각종 사고들, 질병들, 사람들의 배신 등의 쓰라림을 통하여 우리 속 사람이 낮아지고 깨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주님의 사람으로 연단되어 가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을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 간절하게 우리 영혼과 삶이 잘되고 성숙하게 잘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심을 기억하고서, 비록 용광로 같은 시련을 통과할지라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그 시험과 연단 과정을 잘 받아야 하겠습니다.
6.하나님의 시험은 유익하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시고 시험하시고 연단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큰 고통이고 슬프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유익을 줍니다. 만약 시험과 연단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속에 못난 것들, 세상에 속한 것들, 육신에 속한 것들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우리 영혼에 큰 피해와 손해를 가져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어 할 것 알지만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실하게 우리를 살피시고 부지런히 시험하시고 매우 조심스럽게 연단하시기를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탐욕, 정욕, 교만, 질투, 자기 자랑, 고집, 우월심, 세상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우리 내면이 늘 불안정하고 참된 평화가 없고 주님과의 교제가 없고 늘 헛된 욕망을 추구하며 정처없이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다루심으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자족을 누리게 되고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다루시고 훈련시켜주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경건에 이를 수 있게 되어서 점점 주님을 따르는 것이 힘들지 않고 점점 즐거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결심했다고 금방 무너지곤 하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시어 우리를 살피시고 시험해보시고 연단하시면 점점 경건의 연습이 이루어져서 한걸음씩 주님을 가까이 따라가는 것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은 이처럼 유익합니다.
6.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지만 우리를 적극 도우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그 점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려고 하지 않고 오늘 본문 말씀처럼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양심을 단련하소서”라고 하나님께 자기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를 자주 드렸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시편 139편 13절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장’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킬리야’ 곧 ‘콩팥’이라는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몸의 가장 깊은 곳인 콩팥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자기 마음 속에 가장 깊은 곳 은밀한 곳, 자기 영혼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가장 깊은 마음 속, 은밀한 속 사람도 만드신 하나님이시라면 자기 속에 있는 문제점도 잘 아실 것이고 그 문제점을 가장 잘 고치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몸과 속도 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깊은 곳에 있는 문제점도 가장 잘 아실 뿐 아니라 그 문제점도 가장 잘 고칠 수 있는 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하나님께 자기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자기의 가장 깊은 내면 세계를 단련하여 온전하게 고쳐주시기를 구함이 지혜로운 태도인 것입니다.
미국의 최초 자동차 회사 설립자인 헨리 포드에 얽힌 일화입니다. 한 도로에 차가 가다가 멈춰버려서 운전자가 본넷을 열어놓고 고민 고민하며 이것 저것 해도 차가 꿈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들 지나가는 차 중에 어떤 차가 멈춰서더니 노신사가 다가와서 “차가 고장났느냐?”고 묻고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그 차주인이 신통치 않아서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 노신사가 이곳 저곳 잠시 살펴보고 손한번 만지더니, 그 차 주인에게 시동을 한번 걸어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었던 그 차 주인이 아무런 기대감 없이 자리에 앉아 키를 돌렸는데, 곧장 부릉 하고 차가 시동이 걸리더랍니다. 너무나 놀라서 그 차주인이 일어나서 누구시냐고 물으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내가 차 만든 사람이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 사람이 바로 최초의 자동차 회사를 창립한 헨리 포드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에 문제가 있음을 잘 알고 그 문제를 가장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 삶의 길을 다 알고 그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문제를 가지고 우리 혼자 씨름하고 고민하지 말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깁시다. 그에게 우리를 다뤄주시기를 구합시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우리를 시험하시고 연단하시지만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가장 열렬하게 가장 잘 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7.적용- .자신의 부족함과 죄성을 깊이 인식하라, .시험해달라고 기도하라 .시험당함을 깨달을 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고 감사함으로 받으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라.
영국의 목회자 스펄젼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도 그가 먼저 시험당하기 전에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판단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3:1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시험을 받은 것만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시험당함 없이는 누구도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연단받지 않은 사람은 남의 고난과 시련을 진정으로 도울 수 없습니다. 눈물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고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그가 우리를 온전히 다루시도록, 그가 어떠한 풀무불에 우리를 연단하실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가장 유익되게 하심을 믿고 기꺼이 우리 자신을 내어드립시다. 그러한 훈련 과정과 연단의 시련이 힘이 들지라도 기뻐함으로 그 연단을 받읍시다.
로마서 5:3,4 말씀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리거 하였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우리를 만드시고 가장 지혜롭게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에 우리를 맡기고 감사하면서 즐거이 순종하며 시험 중에 인내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온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인격은 정금같이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주님 앞에 갔을 때에 귀한 상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7 말씀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불로 연단된 금보다 더 귀한 것이 주님의 시험과 연단을 거친 주의 백성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은 훗날 지극히 큰 영광의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윗이 즐겨 드렸던 이 기도들을 주님께 수시로 올려 드립시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양심을 단련하소서”(시편 26:2)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편 139: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