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7일 주일 연중 제24주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21-35
A. 들어가면서
1. 용서받기 위해 먼저 용서하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는 언제나 기도의 시작이며 마침입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의 일용할 양식,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하느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대부분은 하느님께서 자비롭게
하실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우리의 행동이 선행되어야 할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타인에 대한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저희 죄를 용서하시듯,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게 하소서’ 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뜻은 ‘용서받기 위해 먼저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할 때마다 ‘저희가 용서하오니’ 구절이 마음 한 구석에서 걸리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는
깊은 상처와 거부하는 고집과 너도 당해보라는 보복 심리와 나는 잘했다는 자신감 등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주님의 기도 중에 유독 용서만이 우리의 행동을 먼저 요구하고 있음을
상기하며 오늘의 말씀을 들읍시다.
B. 복음공부
1. 21~22 루까복음 17:3-4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해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마태오복음 18장 21-22절을 루까복음에 비추어 접근하면 해석이 많이 달라진다.
루까복음의 교환에서 예수님은 신자의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 간의 용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며,
충만과 완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숫자를 사용하여 일곱 번 용서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아마도 성 베드로는 랍비들이 세 번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설명을 찾고 있기 때문에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23~33 비유에서 두 종은 자비를 구했습니다. 첫 번째 종은 (죄의) 막대한 빚 때문에 왕에게 자비를 구합니다.
두 번째 종은 왕이 자비와 용서를 베푼 첫 번째 종에게 동료 종에게 빚진 것에 대해 같은 동정심을 가지고 묻습니다.
첫 번째 종이 거절했을 때 왕/주인의 분노는 그가 첫 번째 죄인에게 풍성한 용서를 베풀었기 때문에 정당했습니다.
왕의 자비는 그 종에게 마땅한 것보다 더 컸지만 첫 번째 종은 주인에게서 받은 용서의 작은 부분도
그의 형제 종에게 기꺼이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왕/주인은 용서를 거부한 종을 가혹하게 심판합니다.
그의 용서의 부족은 그를 왕의 용서에서 차단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인 교회에 대한 우화이며 각 요소는 상징적임을 명심하십시오.
왕/주인은 하느님이다. 왕에게 깊은 빚을 지고 있는 종은 하느님께 회개하고 그분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첫 번째 종에게 빚진 두 번째 종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가정의 동료 종들은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3. 34~35 .감옥은 일시적이지만 지옥은 영원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감옥은 항상 법을 어긴 사람을 위한
일시적인 감금이었습니다. 저주받은 자는 지옥에서 해방되는 것은 없지만 일단 자신의 죄가 정화되면
우리가 지금 연옥이라고 부르는 하데스(그리스어로 죽은 자의 거처, 히브리어로 스올)에서 해방됩니다.
예수님은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루까 12: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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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복음이 말하는 개요
그러나 우리의 사랑의 부족은 예수님께서 마태오복음 25:3-46에서 가르치신 것처럼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위험에 빠뜨리는 지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21절에 있는 성 요한의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1요한 4,20~21)
D. 대화방향
1. 내가 너에게 베푼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 나오는 종의 모습과 견주어 자신의 용서에 대한 경험을 진실하게 나누어 보십시오.
E. 참고문헌
1. 보득솔-청년성서모임
2. 아가페성서공부-인터넷사이트-https://www.agapebiblestud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