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는 한갓지다. 경남 북서쪽 내륙에 자리 잡은 거창군, 그 군의 읍에서도 벽지인 곳이다. 몇날며칠이 흘러도 이른 아침 닭 우는 소리, 산새 소리 말고는 여타 사람의 인기척을 듣기 힘들다. 그런데 이 조용한 일상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평소 나의 루틴은 오전에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한두 줄 끼적거린다. 헌데 며칠 전부터 내가 머무는 2층 거실 밖 베란다 쪽에서 평소에는 듣지 못한 소리가 났다.
“후터터터덕 툭, 후터터터턱 툭”
책을 읽던 시선을 재빨리 돌려 거실 밖을 노려보니 이런, 작은 새 한 마리가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유리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닌가!
(워낙 동작이 빨라서 사진과 동영상으로 잡는데 엄청 애를 먹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 일이 연속 일어났다. 그리고 동일한 새였다. 그 녀석은 규칙적으로 <1단계>, 베란다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위에 날아와 앉았다가 <2단계>, 테이블을 도약대로 이용하여 다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라 1m의 수평거리와 1.5 m 높이에 있는 전면 유리문 상단에 날개를 펼친 채로 몸 전체를 3, 4번 부딪쳐서 파닥거리는 동작을 <3단계> 동일하게 3, 4번 반복하고는 이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나 반복한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
4월 중순부터 이런 일이 반복되자 걱정이 한 가지, 궁금한 일이 한 가지 생겼다. 내가 알기로도 새는 유리 같은 투명 물질을 잘 인식하지 못해 수많은 조류가 비행 중 충돌사 한다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었던 바, 이 녀석이 유리문에 부딪쳐 죽는 사고가 내 집에서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리고 이 녀석의 정체 내지는 종류가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일단, 같은 장소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걸로 보아 필연적인 비행 운동의 일원이 아니라 일종의 ‘유희’ 내지는 ‘놀이’라고 결론지었다. (버드Bird 루덴스Rudens? 동물도 필수적인 생존활동이 아닌 놀이 활동을 한다?)
나 같은 아날로그는 먼저 종이책을 찾는다. 1994년 현암사에서 펴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새 백 가지》가 책장 어딘가에 있던 기억이 났다. 찾아보니 ‘텃새’, ‘철새’, ‘나그네새와 길 잃은 새’로 잘 분류되어 있었다. 면밀히 살펴보았으나 흰색과 검은 색이 유려하게 섞인, 내가 본 그 새와 일치하는 녀석은 없었다. 출판 이후 30여 년이 지났으니 추가로 생긴 길 잃은 새려나?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겨우 길들인 디지털, 인터넷이다. 가장 유사한 새를 찾아 설명을 보았다.
“먼저 보여드릴 새는 Black-collared Starling, 우리말로는 '흰머리찌르레기' 라고 합니다. 몸 전체에 흑백의 무늬가 있으며, 부리는 검은색이고 눈 주위에 노란색 무늬가 있습니다.”
눈 주위의 노란색 무늬가 내가 만난 그 새도, 이 찌르레기에게도 없다. 다음.
“Amur White Wagtail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할미새 종류인데, 아무르 동부,
우수리 서부, 중국 북부와 동부, 한국, 대만, 일본 서남부에서 번식하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월동을 하는 철새입니다. 수컷의 머리는 흰색이고 뒷머리와 윗면은
검은색을 띠며 꼬리깃은 검은색이고, 배 부분은 흰색입니다. 서 있을 때 꼬리를 까딱까딱 흔드는 모습이 매우 귀여운 새입니다.”
몇몇을 더 비교검토를 해봤으나 일치하는 새를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아직도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은 동식물/곤충들이 수없이 많다고 했으니. 한 보름 그 지경을 지켜보았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놀이’든 아니든, 높고 빠른 비행을 위해 몸의 모든 뼈의 내부를 대롱처럼 비우고, 그래서 머리를 둘러싼 뼈도 달걀껍질 두께밖에 되지 않는 그 새의 목숨과 안위를 위해 방임은 안 된다는 결론. 그 새가 날아와 출입문 충돌 유희를 예비할 때마다 만에 하나의 사고를 걱정하여 급히 문을 열고 나가 그 새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인가 그 새의 방문이 뜸해졌다. 그리곤 뚝 끊어졌다. 못 본지 일주일? 안심이 되는 한편 그놈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얼핏 드는 생각. 이 녀석이, 저는 창공에 태어나고 나는 땅위에 태어났건만, 70살 넘은 이 노인의 절해고도에 사는 일상이 무료하고 심심할까봐 일부러 뜻밖의 방문으로 무연한 내 일상에 변화를 주어 나를 즐겁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어쨌거나 저나 나나 이 무한 광활한 시간과 공간 속에 태어나 덧없이 만나 스쳐가면서도 아무런 은원 없이 헤어진 무연자비(無緣慈悲)한 인연에 감사한다. 옳은 이름도 제대로 한 번 불러주지 못한 인연이긴 하건만......
---------------------------------------------------------------
<조류 충돌사에 관한 글 하나>
https://cafe.daum.net/cafe.differance/RPnx/306?svc=cafeapi
<조류 충돌사에 관한 글 둘>
https://asez.org/ko/wildbirdcollision/
<조류 충돌사 방지운동에 관한 글>
https://blog.naver.com/snpo2013/222596068582
==============================================================================
https://youtu.be/OD6ouJDRQ0s?si=ctkSTP6iCU9KK5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