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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감람산에 앉아 계셨다. 해가 서산에 지면서, 하늘은 어두움으로 덮혀가고 있었다.
저 아래에 보이는 마을에서 혼인 행렬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중동 지방의 풍습에 따라서, 밤에 혼인 예식이 벌어진 것이다. 신랑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모습이 보였다. 예수께서는 아랫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인 행렬의 모습을 제자들과 함께 보시면서, 마태복음 25:1-13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서,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게 될 자들을 보여주셨다.
신부의 집 가까이에는 횐옷을 입은 젊은 처녀 열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불을 켠 등과 기름을 담은 작은 병을 가지고 있었다. 열처녀 모두 신랑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랑의 나타남은 지체되었다. 시간이 지체되고 밤이 깊어지자 기다리던 사람들은 피곤하여 잠이 들고 말았다. 밤중에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졸고 있던 자들은 황급히 깨어서 일어났다. 그들은 횃불을 환하게 비추면서 다가오고 있는 신랑의 혼인 행렬을 보았다. 열처녀는 급히 나가서 각각 등잔불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채울 것을 소홀히 하였다. 그들은 신랑이 그렇게 오래 지체하리라고 생각하지 ?았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다가 깊이 잠들고 말았다. 그들은 등잔을 가지고 있었지만, 등잔에 채울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에게 가서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누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슬기 있는 처녀들도 나누어 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미련한 처녀들에게 대답하기를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라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였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간 사이에, 행렬은 그들을 버려두고 가버렸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은 불이 켜진 등을 가지고 신랑의 행렬과 함께 잔치집에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문은 굳게 닫혀졌다. 미련한 처녀들이 피로연을 베푸는 집에 뒤늦게 쫓아 왔지만, 그들은 잔치 주인으로부터 거절을 당하였다. 잔치 주인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저들은 문밖 캄캄한 길가에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열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그리스도 교회의 경험을 설명하셨다. 신랑을 맞이하려고 기다리는 두 종류의 처녀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성경에서 그들을 “처녀’로 비유한 이유는, 그들이 순결한 처녀들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기름은 성령을 표상하는 것으로 성경에서 종종 사용었다.
비유 가운데 나오는 열처녀가 처음에는 모두 신랑을 맞기 위하여 기다렸다. 그들 모두는 등과 기름 담을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에는 그들 모두에게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리스도 재림 바로 직전에 있는 오늘날의 교인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지식 또한 소유하고 있으며, 세상의 끝이 가까왔다는 소식들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 동안, 그들은 생활과 마음에서 많은 시험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는 외침이 들릴 때, 많은 사람들은 준비되지 못한채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게 된다. 그들은 등잔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 그릇에 기름이 없다. 미련한 처녀들은 성령이 결핍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성령의 감화가 없는 성경 지식만으로는 사람의 심령이 변화되고 그 마음이 성화될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성경이 명하신 말씀과 약속에 정통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마음 속에 깊이 깨닫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죄를 버릴 수 없으며, 성품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리와 오류를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미련한 처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분을 기다린다고 공언하지만, 그리스도의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알고 있지만,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는 자들을 뜻한다. 그들은 십자가에 자신의 정욕과 명예욕과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못박지 않았으며, 거듭나지 못한 옛 성질대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되는 사람들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신앙에 만족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품성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줄도 모르며,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 줄도 모른다. 하나님께 드리는 그들의 봉사와 헌신은 형식적이고 순수하지 못하다. “내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이는 그 입으로만 사랑을 나타내고 마음은 이기적인 욕심을 좇음이라” 에스겔 33:31.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태가 마지막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이러한 사람들은 마지막 위기의 때에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안전과 평화를 말함으로써 자신과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자들이다. 그들은 진리와 시기를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중에 “신랑이 온다 맞으로 나오라”라는 소리를 들을 때, 다른 사람에게 가서 자신들의 부족을 채우려고 하지만,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영적인 부족을 채워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각 사람에게 값없이 나누어지고 있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라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요한계시록 22:17).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서 변화된 생애와 성품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이다.
열처녀는 이 세상 역사의 황혼의 시기에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을 믿는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고 등잔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준비되지 못할 것이다. 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왔을 때, 그들은 놀라고 당황한 상태로 피로연회장 밖에 서있게 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누가복음 13:26),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마태복음 7:22)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 나를 떠나가라”고 대답하실 것이다.
일찌기 인간의 귀에 들려진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비극의 운명을 선언하는 말씀이다. 우리의 양심 속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호소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가는 자들만이 마지막 때에 살아남게 될 것이다. 성령과의 사귐에 익숙치 않는 자들은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소경의 눈에 아름다운 모습이 의미가 없고, 귀머거리의 귀에 아름다운 음악이 소용없는 것처럼, 하늘은 세속으로 마비된 마음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일으킬 수 없다.
이제 슬기 있는 처녀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슬기로운 처녀들은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는 이들을 대표한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등불은 신랑의 혼인 잔치 길을 환하게 비추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흑암한 세상에 빛을 비쳐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읽는 자들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의 원천이 될 때에만 빛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성경 말씀의 원칙을 심어 주는데, 이를 통하여 타락한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품성이 형성되게 된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 가운데에 있는 영광의 빛으로 인하여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눈이 하늘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신랑이 온 때는 밤중 - 가장 캄캄한 때 - 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재림의 때도 가장 캄캄한 시대가 될 것이다. 세상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도 캄캄할 것이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진리를 발견하기 어려운 시련의 밤이 될 것이다. 각종 슬픔과 질고로 인하여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 되었다. 굶주리고 불쌍한 사람들의 고난과 불행을 위로하고 구제하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이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실천은 단순히 설교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주고, 집없는 자를 집에 들여야 한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봉사에 만족해서는 않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보다 더 높은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부르심은 그리스도의 영을 마음에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혼 속에 거하는 성령의 임재만이 모든 필요와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동정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쾌활한 얼굴과 희망을 주는 말과 친절한 악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반사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빛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없다. 끊임없이 빛을 비추게 만드는 것은 기름 즉 성령의 역할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름이 값없이 부어지게 되며, 그것은 곧 빛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랑의 빛은 선행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충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교는 죄를 사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소유하고 있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죄를 버리고, 성령의 호소를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만이 마지막 시대의 모든 위기와 시험 속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일서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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