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의 질적 공리주의 / 벤담 양적 공리주의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 (功利主義, utilitarianism)
1> 공리주의 출현 배경과 기본 사상.
1) 영국 산업 혁명의 결과 : 물질적 풍요, 편의, 자유방임주의 (自由放任主義,, laissez-faire)에 따른 무절제한 자유 경쟁과 개인 이윤의 추구 현상이 나타남.
2) 윤리적 관심 :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의 조화 - 개인의 이기적 쾌락과 사회적 공익성의 조화
3) 자연주의적 인간관 : 고통은 회피, 쾌락은 추구하는 인간 - 인간과 자연 (동식물)은 다를 바 없다.
4) 쾌락주의적, 자연주의적, 목적론적 윤리설 (teleological ethics)
* 삶의 목적 : 쾌락이나 행복의 추구
* 선한 행위 : 쾌락과 행복의 공리성 (公利性, utility-쓸모 있는 것/유용성)
-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행복과 쾌락을 주는 것.
5) 목적론적 윤리설 (결과론적 윤리설) : 잘사는 것=쾌락=선=행복 (결과주의)
6) 공리주의의 행위 원칙 :‘최대 다수 (最大多數)의 최대 행복 (最大幸福)’
7) 대표적 공리주의자 : 벤담과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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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Mill, J. S., 1806-1873)의 질적 공리주의 (質的 功利主義)
1) 쾌락 : 삶의 궁극적 목표이자 최고선이지만 질적인 차이를 강조함
2) 정신적 쾌락 (질적으로 높고 고상한 쾌락)과 육체적 쾌락(저급한 쾌락)
3)“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인간이,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4) 행복의 근원 : 인격의 존엄을 바탕으로 한 쾌락 추구
5) 내적 양심 (良心) 강조 : 이타심 (利他心), 즉 동정 (同情, sympathy)과 인애 (仁愛, beneficence)라는 사회적 감정
6) 도덕의 본질 : 이타심 (동정과 인애)에 근거한 공익 (公益)과 정의 (正義)의 실현
벤담(Bentham,J)의 공리주의 (功利主義, utilitarianism)
벤담은 산업 혁명 이후의 물질적 풍요추구하고, 자유방임주의하에서 개인의 이윤추구 현상 대두되어 사회 문제가 되던 시기에 개인의 이익(쾌락)과 사회의 이익(쾌락)을 조화 시킬 필요성을 역설하는 공리주의를 주장하므로써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 경향을 선보인 공적을 남겼다.
개체주의적 사회관을 바탕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선한 행위이며 삶의 목적을 쾌락, 행복 추구 등으로 본 벤담의 공리주의는 양적 공리주의로 쾌락은 동질적이고 양만이 차이가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최대라는 것을 강조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는 법률과 같은 외적 제재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는데, 그의 주요저서인 《도덕과 입법의 제원리서설(諸原理序說, 1789)》에는 행복을 쾌락 및 고통이 없는 상태로 보고, 쾌락·고통의 종류, 계산 방법, 법으로 금지되어야 할 유해한 위반행위, 위반행위와 벌과의 평형 등이 고찰되었다.
벤담(Bentham,J)의 사상
ㄱ.양적 공리주의
: 쾌락은 한 가지 종류밖에 없기 때문에 질적인 차이는 없고, 양적인
차이만 있음→쾌락계산법(강도,지속성,확실성,근접성,생산성,순수성,
범위를 기준으로 계산)
ㄴ.제재론 :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위한 자연적,도덕적,정치적, 종교적 제
재의 필요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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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에 관하여
공리주의(功利主義)는 효용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공리주의는 사회 구성원의 행복의 총량을 계산한다. 행복의 측정과 비교를 위해 계량화가 필요하다. 계량화란 다름 아닌 금전 계산 – 경제 가치로 환산하면 어쩌구 하는 - 이다. 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하루 영업 손실액을 위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나 월드컵으로 인해 국가 브랜드 가치가 몇백 조원 어치는 올라갔다고 말하는 것은 공리주의의 산물이다. 비교는 처음에는 노골적으로 바뀌다가 나중에는 천박해진다. 박정희 덕에 이만큼 다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 아니냐고 하는 말도 그렇고, 게으름은 죄악이며 실업자나 미취업자는 사회의 쓰레기로 몰고 가는 것도 공리주의적 발상이다.
소수의 적은 이익은 다수의 많은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치는 역설적으로 다수의 적은 이익도 소수의 많은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있음을 내포한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면죄부를 준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자유 추구, 자유주의의 이념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일부 성원들이 해를 입어도 좋다는 것으로 변질된다. 이런 의미에서 공리주의는 민주주의 제도에 부합한다. 공리주의는 또한 자본주의의 혈맹이다. 더 많은 행복을 위해 더 많은 부의 총량이 요구되며 성장과 분배의 선후 논쟁은 그저 구호 속에서만 존재한다.
공리주의 속에도 사회주의적 이념이 있긴 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철저히 정반대였다. 공리주의는 불가피한 소규모의 희생을 감수하고 만든 큰 행복을 다수에게 골고루 나눠주지도 못했다. 소유는 점점 소수의 손에 집중된다. 더구나 공리주의는 효용과 결과만으로 인간의 선과 악을 구분해 버렸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더불어 인간 정신을 초토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내가 이만큼 살게 된 것에, 당신들이 뭐 보태준 것 있어?”
누가 이렇게 나오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답하기가 아주 불편하다. 우리는 아직도 공리주의의 유산에 둘러싸인 채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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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功利主義)에 대하여
행위의 기준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즉 사회의 최대다수 구성원의 최대한의 행복을 구하는 윤리 ·정치관으로서 주로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윤리로서, 정치학설에서 공중적 쾌락주의(universalistic)와 같은 뜻이다. 목적론적(目的論的) 윤리의 한 형태이지만, 이기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또 내면적 윤리에 대해서 사회적 ·외면적 도덕의 경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공리주의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리주의가 우리의 도덕적 직관과 어긋나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유용성의 관점은 약속을 어기는 행위를 장려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공리주의 윤리설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문에 답해야 했는데, 그것은 공리주의가 그러한 함축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직관 개념을 논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몇몇 공리주의자는 이 반론을 해결하기 위해 공리주의 이론을 수정했다.
수정된 공리주의가 ' 규칙 공리주의'이다. 이에 따르면 특정 경우에 특정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유용한 규칙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어긴 것인지로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규칙이 유용한지 아닌지는 일반적 실천의 결과로 평가한다. 밀은 때로 규칙 공리주의자로 해석되기도 했고, 벤담과 시지윅은 행위 공리주의자였다.
공리주의에 대한 또다른 반박은 고통을 막고 제거하는 일이 이미 행복한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킬 뿐인 어떤 대안적 행위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의 몇몇 공리주의자는 이 점을 고려하여 수정된 공리주의 이론을 내놓았는데, 이를 '소극적 공리주의'라고 한다.
한편, 공리주의적 사상은 벤담보다 훨씬 이전의 사상 속에도 있다. 인생의 가치에 관한 쾌락주의적 이론은 BC 5세기초 키레네 학파의 창시자 아리스티포스의 윤리학과 그후 약 100년 뒤에 나온 에피쿠로스와 그 추종자들의 금욕주의 윤리설 등에 나타나 있다. 한편 스토아학파와 그리스도교의 윤리설 속에는 이와 대립하는 윤리적 보편주의의 씨앗이 있다.
영국 철학사에서 공리주의적 철학을 가진 최초의 인물로 17세기 도덕철학자 리처드 컴벌런드 주교를 꼽는 역사가도 있다. 컴벌런드보다 한 세대 뒤에 영국의 프랜시스 허치슨은 '도덕감'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보다 분명한 형태로 공리주의적 견해를 주장했다.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낳는 행위가 최선"이라는 주장을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최선의 결과를 계산하기 위한 '도덕 산술'의 형식을 제시했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회의론자 데이비드 흄은 덕(德)의 기원을 공리의 관점에서 분석하기도 했다. 벤담은 18세기 여러 사상가의 저술에서 유용성의 원리를 발견해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흄 이외에도 산소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화학자이자 신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프랑스 감각철학의 권위자 클로드 아드리앵 엘베시우스, 이탈리아의 법 이론가 체사레 베카리아 등이 포함된다.
공리주의 사상의 또 다른 줄기는 신학적 윤리학의 형태로 나타났다. 성서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게이는 신의 의지를 덕의 기준으로 보고 신의 선(善)함에서 신은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기를 바란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공리주의가 나타나게 된 배경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빈부차와 무절제한 경쟁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기본사상은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인간관에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행동의 옳고 그름이 그 행동이 결과한 쾌락의 유무, 혹은 많고 적음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인간 삶의 목적이 쾌락이나 행복의 추구에 있다고 보았지만, 개개인 모두가 저마다 자신만의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므로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했다.
17∼18세기의 고전경험론(古典經驗論)과 신학자 ·고전경제학자, 19세기의 급진주의자에게서 이 주의를 찾아볼 수 있으나, 이를 단순명쾌하게 정식화한 사람은 J.벤담이며, J.S.밀 부자(父子)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또 밀 이후에도 진화론적 윤리학 및 H.시지윅, G.E.무어, 현대 영국 분석철학자의 규범의식(規範意識) 속에서도 그 경향이 보인다.
벤담과 밀은 행복과 쾌락을 동일시하였는데, 벤담은 쾌락의 계량가능성(計量可能性)을 주장하고 쾌락계산의 구상을 내건 ‘양적(量的) 쾌락주의자’였으나, 밀은 쾌락의 질적(質的) 차이를 인정하여 ‘질적 쾌락주의’의 입장을 취하였으며, 또 내면적인 동기 ·양심 ·자기도야(自己陶冶)의 중요성도 인정하여, 심정도덕(心情道德) ·완성설(完成說)에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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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단순 비교
1) 벤담의 사상
가. 양적 공리주의자 : 쾌락은 동질적이고 양만이 차이가 있다
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
다. 이를 위해서 외적 제재가 필요함을 강조 → 법률
2) 밀의 사상
가. 질적 공리주의자 : 쾌락에 질적 차이가 있음을 강조
나. 정신적 쾌락은 질적으로 고상, 육체적 쾌락은 질적으로 저급
다. 내적인 양심의 제재를 중시함 → 이타심, 동정, 인애
라.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문>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에서 현대사회는 누구의 공리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술하시오. (600자 이상, ± 1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