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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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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수필.독후감.영화평 스크랩 15년 전으로 돌아가다
미루미루 추천 0 조회 159 12.04.29 11:29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며칠 전 깊은 밤, 

내 블로그에 홀연히 나타나

1997년의 담임 선생님이 맞느냐고 물어온 

아이들이 있었다.

맞으면 연락바란다고 전화번호를 남긴 아이,

자기들을 기억하느냐는 또다른 질문에

조용히, 그러나 설레임 가득한 마음으로 답변을 했다.

내가 어찌 그 예뻤던 너희들을 잊을 수 있었겠느냐?!

 

 늘 즐거웠던 은경, 얌전한 정훈,

뭐든지 척척 잘해내던 경지,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던 부실장 정남,

피아노를 잘 쳐서 아이들을 휘어잡던 은영,

카리스마 넘치는 회계 유진,

걸그룹 연습생처럼 춤을 잘 추던 하나,

패션모델의 캣워크로 걸어다니던 지혜,

다소곳한 윤정, 중간에 전학간 예쁜이 정윤,

실실 잘 웃던 동숙이와 순옥,

은숙이와 샛별,

나경이로 개명한 명희,

아이들 앞에 서서 뭔가를 부탁하며

- 야들아, 협조 좀 해 도~~ -라는 말을

자주 날리던 실장 주은, 

사촌지간으로 오해받던 향이와 성이,

명랑소녀 은진,

등등등.

 

  가고자 원한 학교가 아니었기에

갑갑한 마음으로 울면서 부임했던 곳,

험난한 길을 돌고돌아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하면

바닷가 언덕 위에 높다랗게 솟아 우리를 내려다보던 학교,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가꿔진 정원이 인상적인 그들의 모교에서.

얼떨결에 맡게 된 1학년 1반,

꿈많은 여고생들의 집합인 그 반엔

유달리 정많고 개성강한 스타일의 아이들이 많았다.

 

 처음에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이른바 따돌림받는 아이도 없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도 거의 없었다고 기억된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과 나는 

마음을 흠뻑 나누는 사이로 발전해 있었다.

 

 예선부터 결선까지 죽기살기로 임한 체육대회,

전국체전 식전 행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한 가장행렬을 준비하느라 미친 듯이 연습하던 그들,

은영이와 유진이가 허리케인 블루 분장을 한 채

허리를 뒤로 꺾어가며 기타를 연주하던 곡,

She's Gone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녀석들이다.

단체로 맞춘 반 모자를 내게 씌워주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사제지간 모두 운동장에 모여

당시 전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마카레나 춤과

꼬리를 물고무는 기차춤을 추며

체육대회 마무리를 한 기억도 진하게 남아있다.

 

  선후배끼리 어우러져 맹연습하던 에어로빅 경연대회,

숨겨온 끼와 들뜬 열정을 고스란히 발산하던 아이들. 

순간순간 화사한 꽃송이처럼 피어나던 아이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고 할까,

공감대가 잘 형성된 그해 1년간,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교사로 지낼 수 있었다.

 

 교직 생활 15년차에 이르러,

비로소 맞게 된 기적같은 경험을 나에게 안겨준 아이들,

양심선언이라도 할까 보다.

그 이전의  나는 이름 그대로, 일개 교사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나는 나,

그들은 학생, 나는 교사,

그런 인식으로 아이들을 대했더랬다.

그런데 별 기대없이 만나게 된,

그해 그 반 아이들로 인해

나는 조금 다른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들의 마음과, 그들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리면서

내 자식처럼 사랑하는 법을 익히게 된 셈이다.

 

 교사로서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랄까,

그런 내 마음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더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고

그들로 인해 나는

그 시절 내게 닥쳤던 힘겨운 일들과

가시밭길같은 통근길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이듬해,

나는 교과 담당으로서만 그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 우리 샘 - 이라고 외치며 달려와 안기던 그들,

다른 선생님들 보시기에 민망하다고 말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애정을 마음껏 표현하던 아이들,

그러던 중,  그 아이들이 3학년이 되던 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사정상 집 가까운 학교로 옮길 필요가 있었기에.

 

 햇살좋은 봄날, 이른 아침의 학교,

그 시절엔 다소 생소하기만 했던,  퀵 서비스 아저씨가

먼지를 일으키며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서는

내 이름을 찾았다.

그 아이들이 내게 보낸 잠옷 한 벌!!!

사회인도 아닌,  고 3 수험생들이

2년이나 지난 담임에게 그런 선물을 보내다니,

아껴 모은 용돈으로 보탰을 그 정성에 감동받고,

동료들의 부러움을 산 스승의 날이었다.

 

 그들의 수능 시험 날,

새벽에 일어난 나는,

미리 입수한 정보에 의거하여 차를 몰고 나갔다.

시험장 앞에서 그들을 만나면

블랙로즈(맞나?) 초컬릿과 요구르트를 건네며 격려하려고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시험장이 밀집한 동네라서,  

차가 늘어선 도로는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시간맞춰 출근해야 하는 나로서는, 애만 태우다가 차를 돌려야 했다.

 

 며칠 뒤에야 다른 동료의 손을 통해 초컬릿이 전해지자,  

아이들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 아, 우리 샘! -

2년이 지났어도,  

그들에게 나는  - 우리 샘 -이었던 것.

한없이 뿌듯한 마음으로,

그들의 앞날에 햇살이 깃들기를 빌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간호학과에 다닌다는 실장, 부실장과 연락이 닿았고

드물게나마 그들의 소식을 듣기는 하였다.

그랬었는데,

며칠 전, 그야말로 기이한 연결 고리로 인해

내 블로그를 찾게 된 아이들 몇 명과

마침내 오늘 구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는 향이가

모임 장소를 잡아놓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언양에서 오는 주은, 대구에서 오는 나경,

심지어 10개월 된 아기를 업고 평택에서 오는 정남.

오려다가 만삭의 몸이라서 못 오게 된 순옥.

 

  삽십 대 중반의 여린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오십 대에 이르러 나타나게 되는 나,

사소하고 은근한 걱정을 안은 채

인의동 - 샤브향 -으로 들어섰다.

 

 방문이 열리니 눈앞에 나타나는 모습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얌전한 나경이, 

시원시원한 성격의 향이, 

유쾌하고 씩씩한 정남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정남이의 옆에 누워있는 인형처럼 예쁜 아기,

아직 좋은 사람을 찾는 중이라는  나경,

멋진 신랑 덕분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하룻밤 재워 보낸다는 향이, 

잠시 후,

여덟살, 여섯살, 두 딸의 손을 잡고,

세살된 막내딸을 품에 안고서 바람처럼 나타난 주은.

정말 감개무량 그 자체였다.

냅킨으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풀린 실타래처럼 줄줄 이어져 나오는

소중한 추억들...

 

 그들이 마련한 한아름의 꽃다발과 

귀한 오설록 원윅차까지 받아드니

정말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들에게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 데다가

그들을 통해 배우게 된 것, 받은 것은 엄청나게 많아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인데.......

내 마음의 일부가 담긴 초컬릿 상자를 건네고,

찻집으로 가려다가  우리집으로 그들을 데려왔다.

 

 아껴둔 에티오피아 아리차 브라하누 커피를

여느 때보다 정성껏 내려 그들에게 내놓았다.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모여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리를 다쳐 입원해 있던 향이에게

열살 아이를 데리고 찾아가서 잡지를 내밀며 한 말을

향이는 아직껏 기억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아니었을 때인데, 너무 감동받았다면서.

 

 복도에서 뛰어다니다가 다른 선생님께 걸리면

절대로 1학년 1반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역설적인 주의를 줬더랬는데

진짜로 걸려서 교무실에서 무릎꿇고 벌받으면서도

우리샘의 명예를 지켜드린다며 소속반을 밝히지 않았다는

정남이의 증언,

아, 아이들은 별걸 다 기억하는구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그 학교를 택하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향이의 자부심이 멋지다.

대한민국에서 자기들만큼 자유롭고 다채로운 여고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라며,

신나는 표정을 지은 정남이와 주은,

그리고 오랫만에 모여앉은 엄마들의 이야기 보따리를

똘망똘망, 신기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아기들이 있어,

참으로 즐거운 시간, 꿈결같은 시간이었다.

 

 여고 시절의 추억 덕분에

연보랏빛 라일락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난

그들이 떠났다.

열여섯, 열일곱 소녀였던 그들은

어느덧 서른 한두살의 어른으로서

제각기 멋진 삶의 주인이 되어 있고,

이 사회 곳곳에서

나름대로 소중한 역할을 하며 잘 지내리라 여긴다.

 

 눈물맺힌 눈으로 꽃다발을 풀었다.

연보라, 진보라, 연분홍, 진분홍,주홍, 흰색...

꽃들의 어울림이 어찌나 예쁜지!

두 개의 꽃병에 나눠 꽂으며

넉넉해진 마음에,

잠시 행복한 숨고르기를 해 본다.

 

 (어제 저녁 대전역 부근에서 만나

  짧게나마 회포를 푼 15년 전의 동료,

  주현 선생님과도 오늘의 이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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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4.30 15:02

    첫댓글 멋진 정원사는 어떤 식물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사랑한다고 하더니 미루미루 님이 아름다운 훌륭한 정원사입니다.. 읽는 저도 뿌듯합니다.

  • 작성자 12.04.30 15:09

    그곳 아이들이 거칠다고 알려진 선입견이
    한낱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아이들이었어요.
    제겐 참 특별한 아이들이지요.

  • 작성자 12.05.01 07:25

    교직 13년차에 만난 아이들인데, 15년차로 잘못 적었네요. 쯧.

  • 12.05.17 22:35

    미루님의 긴 ~글 감동이었네요 ~~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정말 행복한 숨고르기가 부럽네요
    제자들한테 존경받는 스승이
    참 스승이지 않을까 싶네요

  • 12.05.21 21:07

    괜히 눈물나네요.^^

  • 15.03.16 07:35

    미루님~^^
    도시락 준비하기 위해 일어나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진한 감동이 밀려오네요~^^

    지금 이 아이들은 미루님과의 추억이 멋진 인생을 살아갈 자양분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 멋진 삶 맞을 준비 완료~♡

  • 작성자 15.03.16 07:41

    부지런한 솜씨님,
    그저께 경주 찍고,
    동해안 돌다가 이 아이들의 모교를
    찾았더니 폐교(남여공학으로
    합체, 이전)......

  • 15.03.16 08:06

    @미루미루 안타까운 일 이네요.
    대도시를 제외하곤 이런일이 자꾸 생겨나 큰일이에요 ㅠㅠ
    아이들은 또 얼마나 속상할까요?

  • 작성자 15.03.16 08:03

    @솜씨 마음이 짠~~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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