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복음 16장 16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11-하나님 나라의 꿈을 갖고 살게 하소서
여러분들은 꿈이 있습니까?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자기가 이루고 싶은 꿈을 물오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찰, 군인, 선생님이 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초등학교 울타리를 넘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면서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고 직업의 종류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 세상을 보면서 나름대로 꿈을 키워가다가 막상 사회에 나갈 때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지극히 적은 소수의 사람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매우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꿈을 하향 조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도 소수의 사람은 자신이 꿈꿔왔던 것을 이루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직업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꿈꾼다고 해서 행복이 꿈처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꿈꾸고 목표했던 것을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눈에 보이는 것을 얻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의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관계적이라는 것입니다. 혼자 살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혼자 있던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를 주신 하나님보다 여자를 더 좋아했던 아담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할게 하는 나무 열매를 여자가 건네주자 두 말없이 받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여자의 말을 더 들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보다 여자를 더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을 아브라함에게도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음에서 구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가득채웠던 것은 이삭보다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삭을 되돌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야곱까지도 보게 하셨고 또한 야곱의 아들들까지도 볼 수 있도록 장수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관계성을 통해 많은 작은 행복들을 꿈꾸고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 속에는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주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야 행복해집니다.
많은 불신자들은 이 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얘수남을 믿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안믿어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반대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불행을 느끼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오늘날 세상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의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의 개념을 물질에 둡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돈이나 명예, 권세, 인기, 지식, 창의성, 직업 등을 얻고자 애를 쓰고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은 사람들을 보면 외적으로는 행복해 보일지라고 그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시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결과 많은 것들을 얻고도 점점 소소한 행복들이 자기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거기서 빠져 나오지도 못합니다. 스스로 버릴 능력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자에 대한 의문을 품고 예수님께 나왔던 부자 청년이 자기의 소유를 버릴 수 없었던 것같이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잃으면 자기의 존재 자체가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강제적인 일들이 발생하여 그것을 잃기 전까지는 스스로 놓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재난으로 거의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자기에게 남겨진 소소한 것들이 오히려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 소소한 것들의 대부분이 사람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지나치게 사랑한 사람들 역시 그 사람을 잃을 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면 행복을 잃습니다. 그러니까 행복은 이 세상의 어떤 물질로나 사람들로부터 주어지는 박수 갈채 속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 속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사람이나 물질 속에서 행복을 꿈꾸고 있는 분들이 오늘 예배의 자리에 있다면 그것을 다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아담 앞에 서 있었던 하와처럼 주님 앞에 벌거벗은 영혼의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의의 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그때서야 여러분들은 영원하고 진정한 복과 행복이 하나님께 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정직한 심령으로 서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서 끝내시지 않으십니다. 만일 구원받은 때에만 행복이 주어진다면 그 행복도 이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행복은 구원이 끝이 아니라 구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큰 기쁨과 함께 주어지며, 큰 평강으로 주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려본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인생 제일의 목표로 삼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꿈을 주셨습니다. 그 땅을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광야지대와 같은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비옥한 땅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인생도 그렇듯이 큰 기쁨과 작은 기쁨들, 큰 행복과 작은 행복, 그리고 큰 불행과 작은 불행들을 배치해 놓으셨습니다. 누구나 이런 일들을 다 겪습니다.
그래서 오늫 크게 웃던 사람이 내일은 큰 슬픔에 잠길 수도 있고 오늘 큰 슴픔에 잠겼던 사람들이 내일은 큰 기쁨을 주는 어떤 좋은 소식을 듣게 되거나 좋은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은 과거에 걸었던 결과를 오늘에 겪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외의 일들을 오늘이라는 날에 겪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기쁜 일만 오고 비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아픈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만날 때 그 맞이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어나는 일 배후에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같이 사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최고의 삶에 대한 마지막 답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들어가 있는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꿈꾸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 천국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6장 16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먼저 천국은 스스로 침노를 당하기 위해 문을 열어 놓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하나님의 향상으로 빗어낸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인간으로 인하여 행복해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음으로 임해 함께 살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인간이 함께 살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이 오면 인간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조금의 죄도 용납하실 수 없는 깨끗하고 완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에덴동산 밖으로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화염검을 두셨습니다.
화염검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불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그리고 그 인간들이 떼로 몰려든다 할지라도 그 불칼을 들고 있는 천사를 누르고 애덴 동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인지는 모르지만 에덴 동산은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숩니다. 이제는 아무도 에덴 동산이 어떤 곳인지를 알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유브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만이 에덴 동산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면서 아직도 유유히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에덴동산을 잃고 하나님을 잃은 인간은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가는지 역시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 속에서 천국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천국이 실제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과 같은 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둘째로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임을 알리시기 위해 복음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 모든 믿는 자들을 영원한 천국에 들여보내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의 후손들을 차례로 만나주시면서 천국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9-10절을 보면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를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과 함께 거하게 될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을 보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천국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배하러 가”는 집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셨지만 이제는 에던 동산과는 다른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문을 활짝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 문에는 화염검을 든 천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어가는 성문을 화염검을 든 천사들이 막아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활짝 열어놓으시고 이제는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해놓으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천국문을 활짝 열어놓으심으로 인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천국을 침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천국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는 사실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천국을 침략하는 자들은 다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모든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과 앞서 들어간 성도들과 뒤에 올 모든 그라스도인들이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레서 천국복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천국복음은 구원이며 영생을 죄인들에게 가져다 줍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던 죄인도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그의 모든 죄를 다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복음은 온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받은 여러분들은 천국복음이 온 세상 끝까지 전해지는 꿈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꿈은 성령님이 임한 사람들에게만 주십니다. 천국은 성령을 통해 천국을 받고 그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을 통해 전파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없이 하나님 나라 꿈을 꿉니다. 이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요엘서를 인용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7-18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하나님은 마지막 때가 되면 남녀노소 모두에게 거룩한 꿈을 꾸게 하십니다. 왜 거룩한 꿈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갖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들은 하나님 혼자 하시지만 어떤 일은 천사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뿐 아니라 이 지구상의 구원 역사를 위해서는 자신이 택하신 종들과 함께 이루어가십니다. 그런데 그 택하신 종들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러 오신 성령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증인으로 삼으시기 위해 성령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증인들은 내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과 외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증거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꿈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으로 오시게 되며 예수님은 친히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는 전쟁이 없으며, 슬픔과 괴로움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온 새상에 기쁨과 평화가 오개 됩니다. 이제까지 온 세계에 등장했던 황제나 왕들이나 대통령들이나 총리들이 하지 못했던 완전한 평화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소식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나라의 꿈을 가지고 전하라고 그에 따르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의 꿈은 마음의 간절한 소원을 일으킵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성공하고자 갖는 소원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행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위해서 하신 것은 바로 여러분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신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지 않습니다. 자기 개인의 성공과 야망을 위한 꿈을 갖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으며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고자 하신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어 하나님 나라 꿈을 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으며 또한 부활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로인해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그 꿈을 이루어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을 보여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그 꿈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45편 11-13절의 말씀대로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라고 하면서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고 듣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계의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높여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랍고 거룩한 꿈을 꾸며 그 일에 쓰임받는 복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