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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 할렐루야 찬양대 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은 구월의 세 번째 주인 우리 3부 예배에 올라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평생에 주일을 거룩하게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월화, 수목, 금토 말이 다 중요한데 특별히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해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의 거룩한 날인 줄 믿습니다. 이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는 날입니다.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오 우리에게 복을 주시마 약속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주일 성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어떤 우리의 의무감으로 지키는 것보다는 정말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 또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올라올 때에 주일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는 줄을 믿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일생 속에 거룩한 주의를 잘 지키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까? 화평 평안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가장 많이 묻고 또 이야기하는 것이 안 평안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오늘도 우리 옆 사람에게 한번 인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네 평안하십시오.
자 근데 오늘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사실 평안하기가 굉장히 어렵고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세상은 늘 언제나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려면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 예. 또 머니만 있으면 안 된다. 권력도 있어야 된다. 권력만 있으면 안 된다. 명예도 있어야 된다 건강도 있어야 된다. 하지만 그것이 다 우리에게 주어졌다라고 할지라도 영원한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조건이 흔들리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다들 잘 사는 것 같고 행복해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의 갈등과 눈물과 상처, 아픔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에 줄 수 없는 가장 완벽한 평안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 화평을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말합니다. 구약으로 보면 샬롬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샬롬은 단순히 어떤 다툼이나 어떤 전쟁이 없는 그런 평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운전하고 완전히 회복된 회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깊이 연결된 참된 평안 그것이 바로 에이렌의 샬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할 때 전도할 때에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에 평안을 빌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빌리라고요?
평안을 빌어라 그 집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임하게 될 때 진정한 샬롬의 평안이 찾아오는 줄 믿습니다. 이 화평을 누릴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본문 2절의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절의 말씀 한번 시작
아멘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뭐 한다고요?
즐거워한다. 즐거워한다는 뜻은 그냥 기분 좋은 상태, 내가 무슨 일을 해서 참 기분 좋다 내가 맛있는 것을 먹어서 참 맛이 있어서 기분 좋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사람과의 어떤 이유나 조건에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이기에 그냥 주시는 것이기에 우리가 평안을 누리게 되고 어떤 조건과는 상관없이 그냥 주시는 평안 감사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할 평안입니다. 그래야 환란도 이기고 또 우리가 합력해서 선을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화평 평안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뭐가 있다고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죄, 하나님과의 원수 됨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6절의 말씀 6절의 말씀 시작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연기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아멘 자 우리가 아직 뭐 할 때에 뭐 할 때에 연약할 때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뭐 하셨도다 죽으셨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화평,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약점 대적은 바로 우리의 연약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연약함이라는 것은 우리 육체가 병들거나 우리의 마음이 연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연약함을 말하는 겁니다. 즉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바로 서 있어야 될 텐데 그런 힘조차 없는 영적인 무능력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아름 결심하고 또 결심하고 또 결심해도 잘 무너집니다. 내가 이번 주에는 기도 많이 해야지, 내가 이번 주에는 화내지 말아야지, 내가 용서하며 살아야지, 내가 사랑하며 살아야지 다짐을 잘하지만 지나고 나면 얼마나 우리의 삶이 허물어지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우리 아들 주안이가 제게 찾아와서는 아빠 이번 한 주간은 화를 내지 않기로 결심을 했어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빠 쉽게 안 되네 쉽게 안 되네 맞습니다. 우리가 결단하고 다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경건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굳건함을 지켜낼 힘이 우리에겐 도무지 잊지를 않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과 영국군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던 1914년 크리스마스에 성탄절에 영국군과 이 독일군 사이에 크리스마스 휴전 협정을 맺었습니다. 성탄절만큼은 서로 싸우지 않고 안기로 휴전을 하기로 합의를 했던 겁니다. 적으로 총을 겨누던 그들은 성탄절 단 하루 참호에서 나와서 함께 케르를 부르고 축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그들의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서로를 향해서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평화는 이토록 일시적이고 제한적이고 굉장히 연약합니다.
지금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서로 휴전하기로 합의를 해놓고는 언제 합의가 있었는지 무색할 정도로 또다시 무력 충돌이 일어난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의 생각과 방법으로 결코 화평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힘이 전혀 없다는 그 연약함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구원받을 힘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놀라운 사랑이다. 그 사랑의 힘이 우리를 강건케 합니다. 우리의 무능력을 탓하지 않으려 하시고 친히 우리 연약함을 짊어지심으로 화평의 길로 우리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를 가로막는 바로 죄인 됨이 있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죄인 됨 8절 말씀부터 한번 읽어봐요. 8절의 말씀 시작
나와 주신 예수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한 자기의 사랑을 받고 하시는
아멘 자 우리가 아직 못 했을 때 못 됐을 때 죄인 됐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뭐 하심으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뭐 하셨다고요?
확정하셨느라 우리의 대적, 우리의 부끄러움, 죄 죄인은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죄의 결과는 뭐죠?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과녁을 벗어나서 내 욕심과 내 이기심을 따라 살아왔던 죄인들입니다. 세상의 법정이라고 한다면 죄인에게는 반드시 형벌과 정죄가 주어집니다. 죄인은 그 어떤 것과도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죄인과는 그 어떤 평화 조약도 맺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여러분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자녀가 밖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돌아왔을 때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혼내기는 합니다만 그 자녀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죄의 대가를 부모가 대신 갚아주면서까지 자녀를 끌어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물며 그 부모의 사랑도 자녀를 품으시는데 우리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은 감히 청량조차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 앞에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입은 것이 우리가 의로울 때 우리가 선할 때가 아닙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좀 다른 사람보다 좀 착하지 내가 좀 의롭지, 내가 나름 좀 경건한 삶을 살지 그래서가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우리가 아직 뭐 됐을 때, 뭐 됐을 때,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여전히 냄새나고 이기적이고 죄 가운데 뒹굴고 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신 줄을 믿습니다.
도장을 찍듯이 꽝 찍었습니다. 이 도장은 결코 변질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귀하고 놀라운 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사함의 은혜, 속죄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고 봅니다. 만일 이 시간 하나님께서 저에게 야 오늘 권 목사 너 죄를 이 시간 다 밝혀 보겠다고 하시면서 이 큰 화면에다가 제가 어릴 때부터 지은 죄들을 쫙 이렇게 필름 지나가지 나열을 한다면 저는 얼른 씹자 여기서 설교고 뭐고 도망쳐야 될 겁니다. 여기 앉아 있을 수도 없고요. 쥐구멍이 있으면 파고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 주님은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설교를 담대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사죄의 은혜,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것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이 있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세상 가운데 담대하게 살게 되는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고 또 모든 권세를 쥐고 있다라고 할지라도 속죄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 그 자체야말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속죄의 은혜가 가장 큰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가장 큰 부끄러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10절의 말씀도 볼까요? 10절의 말씀 시작
모두가 숨었을 때 내가 너를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되었을 때, 아멘 자 곧 우리가
무엇 됐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무엇임으로 말미암아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뭐 하게 되었을, 즉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을 말미암아 무엇을 받을 것이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지 못하는 세 번째 대적 바로 원수가 되었다. 가장 치명적인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가 되어서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누군가 혹 빼앗은 원수가 되어 본 적이 있습니까?
직장에서 내 등에 혹 칼을 꽂는 동료가 있지 않습니까?
혹 아니면 내가 정말 믿었던 사람인데 그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상처가 있는 분들은 평생을 가도 잘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제자 훈련을 해보면 제자 훈련들 속에서도 굉장히 이런 고백이 나오거든요. 저 인간은 절대로 용서 못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서 못한다 그런 어떤 너무 속이 상해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어려움 당하다 보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서기라는 것은 다가선다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인간의 내면에 본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아십니까?
배신자와 같은 우리 늘 언제 그릇된 길로 가는 우리, 제멋대로 가는 우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원수로 원수를 친구로 자녀로 삼기 위해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은혜 덕분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원서가 아니라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줄 믿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과 화평 화목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의 노력도 수고도 단 1%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지분으로 따진다면 0.001%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이 있을 뿐인 줄 믿습니다. 그 긍휼하심의 사랑, 그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화평케 하게 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 보니까 이 화평을 누리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화평을 누리고 뭐 해라 즐거워해라. 혹은 여러분 우리의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할지라도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방법대로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세상과 타협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것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나는 부족하고 나는 연약하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 화평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인 줄을 믿습니다.
아멘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예수 고농 지하여 항산이 기리로 다시 한 번 나는 부족하여도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 예수 공로 의지하여 예수 고 넉 지하여 항산이 기리로 다시 한 번 나는 부족하여도 나는 부져 가 여도 영접하실터이니 예수 고넉 지하여 항상 이 기기로다.
할렐루야 우리에게는 예수 공로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멘 우리 인생에 참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눈물과 고통과 절망과 실패와 좌절이 우리 앞에 있지만 결코 우리 삶을 무너뜨리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화평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부족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죽으심으로, 주님이 죽으심으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셨고, 그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며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