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믿음은? (요4:46-54) 2020. 6. 21 주낮 은평
-오늘 말씀은 왕의 신하의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왕의 신하라면 왕을 보좌하는 사람이니 상당한 고위층이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당시에 서민들에 비하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가진 것도 많은 사람인데 그가 예수님 앞에 나아옵니다.
-한없이 부족한 모습으로, 간절하고 절박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이유는 아들이 거의 죽을 지경이 됐으니까요.
-우리가 늘 정리할 문제가 축복에 관한 문제입니다.
“축복이 뭐냐?”
-1차원의 축복은 기준이 무조건 잘되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형통하고 부자되고 성공하고, 승진하고, 이것이 1차원의 축복입니다. 그러면 잘 안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심판일까요? 아닙니다.
-2차원의 축복으로 올라가야지요. 영적인 축복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기준이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것”,
-그것이 축복이지요.
-그러니까 왕의 신하 입장에서보면 고난이 다가왔어요.
-그것 때문에, 그 고난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올 수 밖에 없어요. 그러면 그것이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차원에서는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특권이 있어요. 무슨 일이든지 그것 때문에 주님 앞에 가까이 와요.
-지난 국민일보 목요일 판에 아트센터 미술관 관장인 노소영 관장의 신앙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분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따님입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왕따를 당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아버지를 괴수 취급을 하는데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교회 나가보라고, 그 고통 때문에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그리고 의지하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완전히 페인이 되다시피 했는데, 옆집 친구가 교회가자고 해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회복이 됐어요.
-고통 때문에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지독한 불교신자였던 부모님도 하나님께 인도했어요.
-지금은“내 딸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어야지.”믿음을 갖게 됐어요.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그걸 잘 사용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것 때문에 주님께 가까이 갔다면, 그것은 축복.”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왕의 신하가 아들이 죽을 지경 되니까 예수님 앞에 온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성경이 왜 기록
-왕의 신하에게는, 권세도 있고 물질도 많고 그러니까 예수님께 오기에 잘못하면 걸려 넘어질만한 것이 있어요. 그걸 넘어서요.
-걸려 넘어질만 한 것이 있는데 걸려 넘어지지 않아요.
-이것이 이 사람의 믿음의 특징이고 배울 점입니다.
1-우선 소문을 들었어요. 가나 혼인잔치에서 주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 이 소문을 들었어요.
-그러면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어요.
-에이 말도 안돼, 왜요? 자기 지식과 경험과 능력에 의해서 판단해요.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물을 어떻게 포도주로? 그리고 걸려 넘어져요.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그래서 기웃 거리다가 포기하지요.
-그런데 이걸 넘어서요. 내 지식과 내 경험과 내 능력에 의하면 말도 안되는 데, 여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아요.
-나는 안되지만 예수님은 가능하셨다, 이게 믿어져요.
-여기서부터 믿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지요. 영이 열려요.
(예)헬라어 중에 스칸달론(σκανδαλον)이란 단어가 있어요.
-이 단어의 뜻이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다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누구든지 주를 믿는 작은 자 중에서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으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때 실족하다라는 단어가 스칸달론입니다. 걸려넘어지게 하는 돌입니다.
(예)예를 들면, 사울왕은 참 믿음이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을 쓰러 뜨리고 돌아오는 다윗을 향해 여인들이 노래하는 노래 소리를 들었어요.
#삼상18: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그만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이 평판이 스칸달론이 되고 말았어요. 여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어요. 평생 여기서 벗어나질 못했어요.
-많은 경우에 여기에 걸려 넘어저요.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판? 별 거 아닙니다. 시시합니다.
-누가 칭찬한다고 해서 너무 교만해지지도 말고, 누가 안 좋게 얘기한다고 해서 하던 일 그만 두거나, 속상해할 것도 없습니다. 스칸달론을 넘어서야지요.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감탄해서 나도 바다를 걷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걸어라 하셔서 걷다가, 계속해서 주님만을 바라봐야 하는데 파도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그리고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주님이 건져 주시지요.
#마14:30-31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무엇을 보느냐가 스칸달론이 될 수 있어요.
-파도를 보느냐? 주님을 바라보느냐? 영적인 싸움은 이 싸움
-요즘 새벽에 사도행전을 나누고 있습니다만, 바울 사도도 아덴에서 그만 스칸달론에 걸려 넘어졌어요. 철학 도시거든요. 아덴, 야, 나도 철학을 많이 공부했는데? 한 번 해 볼까? 복음을 전할 사람이 그만 자기 철학 지식을 의지했어요.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았어요. 인생이 이렇게 연약해요.
-내가 가진 것, 내가 잘하는 것, 그것이 스칸달론이 될 수 있어요. 그것 때문에 교만하고 그것을 의지하니까요.
-왕의 신하가 첫 번 째 스칸달론을 잘 넘어섰어요.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 이 소문을 듣고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넘어섰어요.
-내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진 것이지요.
-믿음은 내 생각과 내 판단과 내 경험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나는 못하지만, 내 판단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은 가능하시다,
2-왕의 신하가 두 번 째 만난 스칸달론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려 오셔서 고쳐 주세요 하면 함께 가셔서 안수도 해 주시고 그리고 고쳐 주시기를 원했는데, 꼼짝 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네 아들이 살아있다, 그냥 가라 하시는 겁니다.
-아니? 이게 가능할까? 예수님은 여기 계시는데 거기서 내 아들이 살아날까? 공간을 초월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는 두 번 째 스칸달론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어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알겠습니다하고 그냥 가요.
-이게 엄청난 믿음인 거지요. 그리고 확인!
(예)요즘 우리는 공간을 넘나드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미국에 간 자녀와 영상 통화를 해요. 서울에 있는 손주와 대화를 주고 받아요. 어디든지 핸드폰을 열면 누구와도 통화가 가능해요. 얼굴도 보고 내 얼굴도 보여 주고,
-저는 새벽에 기도할 때마다 이걸 상상하면서 기도합니다.
-방송국에서 전파를 날리면 중계소에서 중계를 해요. 그럼 여기서 화면을 봐요. 텔레비전을 봐요. 소리를 들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여기서 기도하지만 성령이 역사하시면 거기서 역사하시고 거기서 고치시고 거기서 싸매시고 거기서 깨닫게 하시고, 공간을 넘어서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놀랍게도 왕의 신하는 이걸 믿었어요.
-아니? 여기서 말씀만 하면 무슨 소용있나? 직접 가셔서 안수하시고 고쳐 주셔야지, 이 스칸달론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어요. 이게 왕의 신하의 위대한 믿음이었어요.
(예)아브라함이 소돔성에 사는 롯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롯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못하고 의인 50명이 있는 데도 소돔성을 심판하시겠습니까? 50명에서부터 시작하지요. 그렇데 의인 열 명이 소돔성에 없었어요.
#창18: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소돔성이 멸망당한 것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의인 열 명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그런데 소돔성을 멸하실 때,
#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아브라함은 여기서 기도했는 데 하나님은 소돔성에서 역사하셔서 롯을 구원하셨어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역사하셨어요. 그렇다면 우리도 그걸 믿고 기도해야지요.
-왕의 신하의 믿음은 예수님이 여기서 기도하셨도 가능하다,
-공간을 초월하실 수 있다, 이걸 믿은 겁니다.
-엄청난 믿음이지요. 주님의 마음에 쏙 드는 믿음이지요.
3-왕의 신하가 넘어선 것, 자존심입니다. 내가 누군데?
-이 스칸달론을 넘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어느 목사님이 굉장한 재벌에게 교회 나오시라고, 예수 믿으시라고 전도를 했더니 이러더랍니다.
“교회요? 그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나 가는 곳 아닙니까?”
-그리고 얼마 후에 병들이 고생하는 걸 보면서 안됐다,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나를 넘어서는 것, 내 자존심, 내 교만을 넘어서는 것이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직통하는 길인데요.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 자꾸만 걸려 넘어지는 것,
-스칸달론은 무엇일까요? 왜 자꾸 걸려 넘어질까요?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더 자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생각할때 저의 가장 큰 스칸달론이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기분이 나야 기도하고 기분이 나지 않으면?
-그래서 새벽마다 이 작업을 합니다.
“주여, 오늘도 제 기분과 느낌과 여건은 세 번 째 칸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첫 번 째 칸에는 말씀을, 두 번째 칸에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제가 날마다 새벽마다 이 영적인 작업을 하지요. 걸림돌에 걸려넘어지지 않으려고요.
-우리 앞에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스칸달론이 나타날 때마다 -왕의 신하의 믿음으로, 걸려 넘어지지 말고 넉넉히 넘어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