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인철 씨가 설계한 춘천의 전원주택 -집, 호수로 가다
|
일상과 삶을 담는다는 공간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건축 자재인 노출 콘크리트만 사용해 네모반듯한 상자 형태로 설계한 김인철 교수의 최근작 ‘호수로 가는 집’. |
이름처럼 춘천 호숫가에 고요하게 자리한 집은 잔잔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많은 중·장년 세대들은 저마다 남다른 농촌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또는 농촌처럼 그리 밀도가 높지 않은 대처에서 자란 세대들이 노년에 이르면 꿈꾸는 것은 바로 전원주택이다. 비록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여유가 되면, 은퇴하면, 애들 다 떠나보내고 나면 그때는 전원생활의 꿈을 이루리라 다짐하곤 한다. 이규익·김을식 씨 부부 역시 “늘그막에는 땅에 발을 붙이고 손에 흙을 묻히고 살리라”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지난 2008년, 한 젊은이가 찾아와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집 지을 곳은 춘천호를 돌아 화천으로 가는 길에서 다시 한참을 들어가는 가일리라는 마을이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언덕 아래 호숫가에 부모님의 새 보금자리와 자신의 주말 주택을 겸한 30평 도 규모의 작은 집을 짓고 싶다는 계획이었다. 건축 사무소 아르키움의 김인철 소장은 이 젊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리도 멀고, 부지도 작아 과연 설계를 맡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무턱대고 거절할 수는 없어 건축에 관한 조언을 해줄 겸 찾은 춘천호 근처의 작은 마을. 배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부러 드라이브 코스인 춘천호와 화천을 지나는 길을 선택했다. 계곡을 넘어 굽이진 산자락을 돌아 나가자 눈앞에 믿지 못할 절경이 펼쳐졌다. 알프스의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이탈리아의 휴양지 코모 Como와 꼭 닮은 풍경이 눈 가득 들어오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서는 어느 자리에 어떤 집을 지을지 그림이 그려지더란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건축물에 관한 건축가의 소명과 도전 의식이 더해져 완성된 집은 지난 2009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즈음, 취재를 위해 찾은 가일리 마을. 내비게이션에 번지수를 찍으면 차로 40분이나 돌아 가야 하는 강 건너편에 도착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집주인의 당부가 있던 터라 가는 내내 전화를 붙잡고 물어물어 찾아가는 여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가파른 길을 따라 고갯마루를 오르락내리락, 산자락을 돌아 나가자 마침내 호수가 펼쳐졌다. 한 젊은이가 건축가 김인철 씨에게 의뢰한 부모님을 위한 전원주택, 바로 이규익·김을식 씨 부부의 ‘호수로 가는 집’이 그곳에 그림처럼, 풍경처럼 서 있었다.
(왼쪽) 본질에 충실한, 단순하고 극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건축가 김인철 씨.
비규칙적인 창의 모양은 공간을, 풍경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
아르키움(www.archium.co.kr)에서 설계와 시공을 맡은 ‘호수로 가는 집’의 1층 단면도.
(왼쪽) 노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여 좌식 공간으로 연출했다.
(오른쪽) 창문 하나하나가 각각 다른 풍경을 품고 있는 춘천 ‘호수로 가는 집’.
풍경의 건축, 자연의 건축
건축가 김인철 씨가 구현해낸 공간은 참으로 단순하다. 그의 대표작 ‘김옥길 기념관’과 ‘어반하이브’를 보노라면 단지 콘크리트만 이용해 이처럼 절제되고 극적인 공간을 만든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굽이진 능선, 숲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호수를 배경으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콘크리트 건축물을 보며 다시금 감탄사를 연발하니 그는 “자연 그대로에 점 하나만 찍었을 뿐”이라며 머쓱해한다. “건축가의 역할은 자연이 만든 그림을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호숫가의 습지를 매립한 땅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집터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물은 그곳에 들어설 건축물의 성격을 이미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 건축은 결코 자연을 거스를 수 없고, 뛰어넘을 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의 지론이다. 건축주 이규익 씨 역시 동감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완성된 ‘호수로 가는 집’은 외형적으로 보면 그저 단순한 네모 상자 모양이다. 별다른 기교 없이 무척이나 도회적인 콘크리트 건물은 그럼에도 주변 경관을 방해하지 않고 넘침 없이 잘 어우러진다. 상자 모양의 외벽 이곳저곳에 틈을 만들어 양쪽에서 길게 잡아당긴 듯한 형태가 특징. 때론 옆면이, 때론 천장이 뚫린 성근 상자 안쪽의 비어 있는 공간이 바로 내부에 외기와 자연 풍경을 담는 부분이다. 또한 각 층마다 ‘틈’의 역할을 하는 덱은 천장 없이 시공하면 연면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평수보다 시각적으로 집의 부피를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왼쪽)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호수와 하늘에 가까운 침실. 밤에는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내린다.
(오른쪽) 특급 리조트 부럽지 않은 욕실. 호젓하면서도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진다.
연면적은 40평 남짓. 그럼에도 공간이 비교적 넓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적재적소에 위치한 창문 덕분이다. 보통 집을 넓어 보이게 하거나 집 안에 자연 풍경을 들이기 위해 통창을 많이 이용하는데, 이 집은 모두 쪽창을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우리 한옥의 쪽문, 들창, 광창, 봉창 등에서 모티프를 딴 것. 통창은 어디에서 보아도 똑같은 경치를 보여주지만 이를 쪽창으로 분리하면 보는 각도에 따라 같은 풍경의 색다른 묘미를 즐길 수 있단다. 담장 옆 감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한옥의 작은 봉창을 통해 보면 더욱 고즈넉한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드넓은 춘천호와 첩첩산중의 능선은 거실에서는 파노라마 프레임으로, 복도에서는 와이드 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일반 아파트나 주택에서 볼 수 있는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창문으로 인한 천편일률적인 풍경에서 벗어나 색다른 맛을 더해준다. 게다가 외부에서 보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직육면체 형태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밖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저 대자연의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풍경을 집 안 차경으로 끌어들이면 누구나 저절로 탄성을 자아냅니다. 이것이 바로 건축의 힘입니다.” 각 공간마다, 또 걸음걸음마다 풍경이 바뀌는 시각의 흐름은 작은 집을 거대한 자연의 공간으로 만든다. 1층 거실과 주방 사이의 복도, 2층 침실과 게스트 룸 사이의 복도는 모두 통창으로 마감해 탁 트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집 안 어디에서나 호수와 더불어 드넓게 펼쳐진 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 따라서 위층 침실들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호수와 하늘에 가깝다.
(오른쪽) 방과 방 사이의 복도를 모두 통창으로 마감해 어디에서나 산과 호수를 바라볼 수 있다.
집터가 도로보다 조금 높아 담장 대신 돌을 쌓아 단을 만들었다.
은퇴 후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하는 이규익·김을식 씨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반영한 점 역시 눈에 띈다. 좌식 생활을 하는 부부를 위해 거실의 파노라마 창은 앉을 때의 눈높이에 맞춰 낮게 내고, 주방 쪽창은 부부가 식탁에 마주 앉을 때 한곳으로 시선을 모을 수 있도록 폭을 좁게 시공했다. 창문은 채광과 환기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인이라고 말하는 김인철 씨. 창문을 단순히 환기나 빛을 위한 도구로 집 안 위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창문에 비치는 삶의 모습이 어떻게 전해질지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것이다.
집은 일상과 삶을 담는다는 공간의 본질에 충실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김인철 씨. ‘호수로 가는 집’은 건축이 자연의 일부일 때 가장 빛난다는 명제를 실천한 또 하나의 과업이다. 그의 말처럼 건축물은 그저 하나의 점일 뿐, 자연의 일부분임을 새삼 느낄 때처럼 감동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싶다.
건축가 김인철 씨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의 대표이며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김옥길 기념관, 행당동 청사, 웅진출판사, 어반하이브 등이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비롯해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더욱 알찬 정보는 전원의향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