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손을 뻗었다가 떨구었을 것이다 하루 중 해가 지는 시간이었고 그림자를 기다랗게 늘어뜨린 시간이었다 사람 그림자를 사람 살처럼 깊숙이 찌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흠칫 어깨가 작아지고 힐끔 뒤돌아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는 보일 듯 보일 듯한데 생각날 듯 생각날 듯하다가 생각나지 않는 단어처럼, 더러운 물속에 잠긴 발목처럼 가까이 따라왔을 것이다 난시(亂視)가 한 개의 달을 두 개의 달로 보이게 하는 것처럼 가깝게 그는 뒤에서 오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가만히 서 있으면 가로등 밑의 어둠처럼 어두워져 있을 것이다
- 시집 <에코의 초상> P120#필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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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오는 사람
김행숙
그는 손을 뻗었다가 떨구었을 것이다 하루 중 해가 지는 시간이었고 그림자를 기다랗게 늘어뜨린 시간이었다 사람 그림자를 사람 살처럼 깊숙이 찌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흠칫 어깨가 작아지고 힐끔 뒤돌아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는 보일 듯 보일 듯한데 생각날 듯 생각날 듯하다가 생각나지 않는 단어처럼, 더러운 물속에 잠긴 발목처럼 가까이 따라왔을 것이다 난시(亂視)가 한 개의 달을 두 개의 달로 보이게 하는 것처럼 가깝게 그는 뒤에서 오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가만히 서 있으면 가로등 밑의 어둠처럼 어두워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