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전국의 유명한 산들은 단풍구경 나온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위드코로나로 그동안 억눌렸던 행락 심리가 분출하면서 전국 곳곳이 나이들객으로 붐빈다. 100년 전에도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명소를 찾아 추억을 남겼다. 그때 그 가을의 행락길을 한번 따라가 보자.
먼저 경성 시내의 모습이다. 1920년 9월 19자 동아일보의 '가을빛을 단장하는 단풍'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면 창경원(현재의 창덕궁)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번의 괴질 소동으로 인하여 8월 초순부터 문을 닫고 일반의 출입을 금지하였더니, 오늘 9월 19일은 일요일이요, 왕비 전하의 탄신되는 날에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중략) 동물원의 진기한 새와 이상한 짐승들도 더위에 피곤하였던 몸에 새 기운을 회복하여 가지에서 가지로 재주넘어 뛰어다니는 원숭이의 장난도 재미있고, 맑은 하늘에 울리는 두루미의 울음소리에도 추흥(秋興)이 엉긴다. 다만 괴질이 아주 침식(侵蝕)되기 전이므로 예방주사를 두 차례 맞은 증명서를 가진 사람에게만 입장을 허락한다."
1921년 10월 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오늘 일요일은 창의문(彰義門) 밖의 단풍 구경이 상책(上策)'이라는 기사다.
"청량사(淸凉寺)에 밥 사 먹는 것도 즐거운 행기(行氣; 기운을 차려 몸을 움직임)같고 동물원에 산보를 하기도 쓸쓸한 때이라. 오늘 일요일은 단풍 구경을 가는 것이 제일 좋은 놀이이니, 경성 근처의 단풍은 여러 곳이 볼만 하지마는 그 중에 우승(優勝; 첫째를 차지함)하기는 창의문 밖 일경(一景; 첫번째 경치)으로서 세검정 소림사(少林寺)로 돌아 나가는 처소라. 점심을 메고 단장(短杖)을 끌고 가벼운 장속(裝束; 차림새)으로 몇 사람 짝을 하여 창의문을 나아가 사면에 보이는 가을 경치를 마음대로 탐하며 세검정 근처로 돌아 서문 밖으로 전차를 타고 들어오는 것이 아마 오늘 일요일의 제 일등 소견(所見) 방법일까."
1920년 9월 30일자 매일신보는 '가을철 행락처는 어느 곳으로 가야 좋겠소'라는 기사를 통해 소요산(逍遙山)을 소개하고 있다. "가을철 멀리 운동 겸 산보 행락할 곳으론 경성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 일컫는 소요산이 있다. 남대문이나 청량리역에서 경원선 첫 차를 타면 동두천 정거장에서 내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한참 들어가면 하늘에 닿을 듯한 소요산의 웅장한 자태가 나타나 보이며, 그 밑에 자재암(自在庵)이 있어서 법당에 홀연히 앉아있는 관세음보살은 오고가는 사람을 반기는 듯하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수백 척의 폭포와 천연의 석굴이 있고 그 석굴 안에 이상스러운 약물이 있어서, 누구든지 그 물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부정한 사람은 참예(參詣; 신이나 부처에게 나아가 뵈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소요산 경색(景色)에 취한 몸이 담백한 반찬으로 절간의 점심을 치른 후, 다시금 회정(回程; 돌아오는 길)하기 시작하여 '소요산아 잘 있거라, 관세음보살 갑니다'라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 무르익어가는 좌우 산의 단풍을 한없이 구경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동두천으로 돌아와서, 남대문을 향하여 기차로 오다가 중간에 청량사에 가서 저녁밥 먹는 것도 하나의 흥취(興趣)겠더라."
가을철 행락을 가는 유람열차도 성황이었다. 1921년 10월 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단풍(丹楓)의 삼방(三防)에'란 제목의 기사다.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 삼방의 삼방폭포 가까이 임시정거장을 설치하고 가을의 풍광을 완상(玩賞)케 할 작정으로, 오늘 9일 공휴일을 이용하여 임시열차를 낸다는데 기차 안에서는 그림엽서까지 승객에게 준다하며 식당차까지 연결한다더라."
1921년 10월 17일자 매일신보는 밤줍기 대회, 즉 습률대회(拾栗大會)의 정경을 소개하고 있다. "3등 객차 6채를 단 임시열차는 남대문역을 진행하기 시작하는데, 어언간 용산역을 지나서 서빙고에 당도하고, 왕십리를 잠깐 정거하고 청량리역에 당도하여 창동역을 얼른 지나 목적지 되는 의정부역에 거의 당도할 때는 모든 수백의 회원은 열광적으로 '아! 저기가 의정부다. 이제는 다 왔다'는 말을 내어 놓으면서 각기 다투어 차에서 내려 습률회로 향하였다. 의정부역을 나서니 '환영 습률대회'라는 환영문을 지나 대회장으로 향하는데 실로 의정부에서는 처음 있는 대성황이었다. 넓은 밤동산에 4섬이나 되는 굵은 밤을 고루 뿌려놓은 곳에서 열심히 헤어져 밤 줍기를 시작하여 잘 줍는 사람은 한 말 가량도 주었고, 어떤 사람은 몇 개를 줍는 등 별별 희극이 다 많았다. 오후 1시가 됨에 대회장 앞뒤 동산에 보탐(寶探; 보물찾기)이 시작되었고 5시 10분이 됨에 임시열차는 의정부역을 떠나기 시작하자 회원들은 일제히 '의정부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내년 이맘 때 또 다시 만나자'하는 소리가 일제히 나며 무정한 기차는 어언간 의정부역을 떠나 가버리고 번화하던 의정부 일대는 삽시간에 쓸쓸한 광경을 이루었다. 회비는 1인당 75전이었다."
그래도 가을철 최고의 행락처는 뭐니 뭐니 해도 금강산이 아닐까 싶다. 1931년 9월 29일자 동아일보는 '가을 금강산 탐승(探勝)단체 격증'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가을의 금강산, 단풍의 만물상을 탐승하려는 금강산 탐승단은 9월 하순부터 그 수가 더욱 증가하여 9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경성 제1고등여학교, 양정고의 12반, 보성고보, 대구 신명여학교 등을 비롯하여 이미 11개 단체에 달한다 한다."
고등학생이 기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90년 전 이야기다. 금강산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학여행을 가던 대한민국 최고의 가을 행락처였다. '엄이족지 문이족언'(言以足志 文以足言; 말로써 뜻을 다 나타낼 수 있어야 하고, 글로써 말을 다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이라고 했다. 말로 써도, 글로 써도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리운 금강산이여!
송종훈 19세기 발전소 대표 / 디지털타임스
첫댓글 글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100년전
암울한 일제시대 에도 가을 단풍절에는 행락객들이 전국 유명 명산, 유명절에 구경하고
그중 가장 큰 유명 명산 가을철 단풍 구경은
천하제일 명산 금강산 열차 타고 가는 구경 이군요 대단하네요
나는 70 넘어도 아직도 금강산 구경을 못했는데
죽기전에 한번 볼수 있는 소원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림니다 후후껄껄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