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는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의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류승완의 세계를
정리해주는 영화이고, 나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류승완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로
충무로의 액션키드라 불리던 류승완의 마지막 액션 영화가 될지 모르는 작품입니다."
류승완이 그의 다섯번째 감독작 <짝패>를 통해 밝힌 자신의 영화관이다.
2000년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피도 눈물도 없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
<주먹이 운다>를 거치며 이번 <짝패>는 류승완의 작품세계의 한 시기를 마감하는 마침표가
될 듯하다. <짝패>는 대사와 느와르 영화의 특징인 액션의 과잉을 철저히 억제하여 허무와
황량, '쿨'함이 깃든 웨스턴 풍의 결말은 그의 전작들보다 새로운 류승완을 보여 주었다.
"어떻게 보면 <짝패>를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충돌이 장르와 장르간 충돌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의도했다면 의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예전엔 그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려 노력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충돌 자체가 내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번엔 피하지 않고 즐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류승완의 연출력이 성장했다는 반증을 그의 발언에서도 읽혀진다. 극중 충청도 가상도시 '온성'은
오로지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부조리한 공간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류승완의 충청도 사투리가 하드 보일드한 느와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세간의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뒤집는다.

"처음 데뷔작으로 생각했던 시나리오가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습니다.
제 고향이다보니 언어가 주는 이상한 느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죠. 충청도 사투리의
세계는 뭔가 명확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냉혹하죠."

액션영화는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인 관점을 배제할 수 없다. <짝패>역시 지방 소도시 '온성'이란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힘과 폭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정글에서 지역 주민들 모두가
공범자가 되어가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액션과 환상이 만났을 때 희극이 되지만, 반대로
액션이 현실과 만났을 땐 비극이 된다. 이 영화도 서울과 지방 소도시 간의 미묘한 관계나
충돌하는 세력뒤에 숨겨진 거대한 권력의 메타포가 감지된다. 하지만 <짝패>가 가장 빛나는
점은 느와르란 비극적 세계 이전에 존재하는 거친 에너지이다. 이 영화의 액션은 긴장과
유머(폭력세계의 전형인 전라도 사투리가 아닌 느린~ 충청도 사투리란 것 자체가 이미 감취진
가장 큰 유머이다.)를 적절히 활용한 흥겨운 리듬을 선물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때는 제 취향을 견디지 못해 불필요한 액션 장면을 중간에 툭 끼워 넣기도
했지만 <짝패>에선 장소와 스타일 등을 변주해 가는 재미와 함께 드라마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냉정한 선택을 했습니다. <짝패>의 라스트 신은 화려한 액션 안에 플롯을 구사할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공간 이동으로 변화를 주면서 체력의 한계를 악으로 버티는 솔직한 폭력의 정서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짝패>의 액션 시퀀스는 훌륭한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즉, 폭력의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석환을 클로즈업시킨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두마디 욕으로
영화를 완결하는 과감함을 보여주고 있다. 의례적이며, 관습적이지 않은 쿨한 결말이 마음에 든다.

이 영화의 백미는 한국 액션영화 대부분의 무술감독으로서 처음 주연으로 출연한 태수역의 정두홍도
석환역의 감독 자신인 류승완도 동환이나, 왕재도 아닌 실로 놀랍고도 반가운 카드인
필호역의 이범수라고 말하고 싶다. 패전투수역의 감사용이나 그를 알게 해준 <태양은 없다>를
넘어 더 많이 성장한 그를 지켜보는 것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필호는 억눌린 열등감을 자신의
능력치를 벗어나는 권력으로 채우려 한다. 비록 그 권력이란 것이 강한 힘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에 기생하는 권력일지라도 말이다. 그는 "강한 넘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넘이 강한 거드라"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필호는 자신의 약함을
알았다. 그러기에 비굴했고, 비열했으며, 비겁했다. 분노하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살인을 마다않는 그의 모습은 배역의 역할에 절정에 이른 그를 만나게 해준다.
짝패란 도박에서 서로 엇갈린 두개의 패를 말한다.
어쨌든 그들은 프롤로그의 왕재처럼 같은 비극을 맞는다.
어린 시절 5명의 친구사이의 우정의 맹세는 폭력의 도시앞에 증발해 버리고
그들은 모두 세상위에서는 별 볼일 없는 짝패였음을 뒤늦게 알아 차린다.
그러니 그들의 인생이 석환의 마지막 엔딩 대사처럼 '씨발' 그 자체일 수밖에...
後記 ; <짝패>의 평점은 별 4개.
한미 FTA의 쓰나미가 드디어 극장가에도 들이 닥쳤음을 확인했다.
8개관 중에서 <포세이돈> 등 외화가 6개관을 차자하고 관객들의 대부분도 외화에 몰려들고
있어 씁씁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원컨데, 한국영화는 누가 지킵니까?
첫댓글 피흘리는 액션영화를 꺼리는 편이면서도 류승완과 정두홍의 영화는 이끌려 보게 됩니다. 정두홍의 액션을 좋아하거든요. 헐리웃이나 중국, 홍콩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피맛이라고나....크크크...
학창시절의 추격신에서 나오던 나미의 "영원한 친구"라는 노래가 절묘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우정이 영원하지 않음으로 끝남에 미리 쓴웃음을 지어주는 듯... 석환의 두 마디 대사로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 노래가 다시 한 번 뇌리를 스치더군요.
2006년 칸느영화제에 대한민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짝패>가 초청받은 영화라고 오늘 단신이 올라와 있네요. 한국적 느와르의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