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연중 제3주일, 하느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진짜 고향 낮에 성당에서 한 낯선 중년 부부가 나왔다. 지나다 들러 성체조배를 한 모양이었다. 짧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몇 해 전에 왔을 때랑 성당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고 좋아했다. 얼마 후 은퇴하면 자주 뵙겠다는 말을 흐리며 갔다. 이곳이 고향인가 보다. 고향은 변하지 않고 예전 그대로 있어야 좋은 건가 보다.
오늘 독서 느혜미야서 내용은 참 인상적이다. 수십 년 유배 생활을 마치고 기적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에게 사제이며 학자인 에즈라는 오전 내내 율법서를 읽어주었다. 지금이야 복사와 인쇄로 문서가 차고 넘치지만, 그때는 글로 적힌 문서는 귀하디귀한 물건이었다. 그들은 율법, 즉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울었다.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죄송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이었을 거다. 그들은 강대국에 끌려가 노예 생활하며 자신들이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아 그런 꼴이 됐음을 깨달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길 될 거라는 예언자들 말을 믿지 못했는데 자신의 노력 없이 실제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놀라고 감사하고 감동받고 그랬을 거다. 815해방 날이 그랬을까? 그런데 이스라엘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율법,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가슴을 치고 또 동시에 감시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유배 전에 회당에서 매번 듣던 율법 내용이 그때는 족쇄 같고 짐스럽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누군가 하늘나라는 고향과 같은 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 줘야 고향이다. 팔십 구십 노모에게 육십 칠십이라도 자녀는 여전히 도와주고 먹을 거 챙겨줘야 할 아이인 거처럼 말이다. 파파할머니 마음이 곧 고향이다. 교우들이 교회 안에서 친구 형님 아우 하며 지내게 된 것은 교회법에 규정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신앙이 그렇게 만들어준 거다. 때론 너무 가까워져서 다투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건 사람 모인 곳은 어디나 다 그렇다. 친형제자매도 매 마찬가지다. 지상교회는 천상교회 즉 하늘나라의 모형이다. 교회는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무장해제 된다. 믿은 그대로, 하느님 말씀이 한 자 한 획도 안 틀리고 그대로 이루어진 걸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상상했던 거보다 더 좋을 거다. 나는 내 믿음이 어긋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늘 믿음을 더해달라고 청한다.
다산 정약용 세례자 요한 형제가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필요 없다고. 친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친구가 필요 없게 된다는 뜻이고, 친구 같은 가족이면 충분하고 혼자 있을 수 있으면 그것도 좋다고 한다. 실제로 오랜 친구를 만나도 그게 그거도 맨날 같은 얘기 그리고 나중에는 여지없이 험담으로 이어진다. 가치관이 달라 멀어지고 성숙도에 따라서도 그렇게 된다. 루카 복음은 ‘테오필로스’라는 사람에게 글을 전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루카 1,3). 테오필로스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이야기를 복음, 영혼에 기쁜 소식으로 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소책자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또 읽었고, 어떤 이들은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희망을 이 작은 책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교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모임, 하느님의 백성이다. 교회 안에서 지루할 수 있는 전례에 참례하고, 따분한 강론을 듣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체를 받아 모시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사귀고, 교회에서 벌이는 작은 좋은 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나이 들어간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또는 떨어져 나가면서 고향이 하늘나라로 바뀌어 간다.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교회 생활이 나를 다른 길로 새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게 이끌어 준다. 그분은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 주일미사에 참례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올해는 희년이다. 잃었던 것을 되찾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고향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변하지만, 하늘나라는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다. 하늘나라가 진짜 고향, 내 영혼의 고향이다.
예수님, 주님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은 저와 함께해주십니다. 짐이나 감사자가 아니라 저를 도와주시고 제가 마음놓고 쉬는 곳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계신 곳에 늘 아드님이 계시니, 이 이름으로 어머니를 부르면 아드님을 만나게 되는 줄 압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