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배 할아버지, 히말라야를 가다-덮어 써
‘attitude’
우리말로 풀어 ‘마음가짐’이라는 영어단어다.
누군가 그 단어를 100점짜리 인생의 조건이라고 가치부여를 했다.
알파벳 첫 글자인 a를 1점이라고 하고, b를 2점, c를 3점이라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점수를 주어서 마지막 알파벳인 z를 26점이라고 가정해놓고, 그 알파벳의 점수를 다 모았을 때 100점이 되는 것이 그 단어라고 풀어내면서, 인생은 마음가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언뜻 성공된 인생의 조건으로 보이는 ‘hard work’나 ‘knowledge’나 ‘love’나 ‘luck’나 ‘money’나 ‘beauty’나 ‘leadership’도 100점에는 못 미친다면서 비교설명을 보탰다.
오로지 ‘attitude’만이 100점짜리였다는 것이다.
선뜻 동의가 되는 가치부여였다.
내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 가치부여를 굳이 흠집 내는 사람들도 있겠다 싶었다.
역시 그랬다.
훗날 우리 맏이로부터 들은 이야기이지만, 영어사전을 온통 뒤져본 끝에, 시련을 뜻하는 ‘stress’도 100점이라고 들고 나오고, 골프 용구인 ‘putter’도 100점이라고 들고 나왔다고 했다.
나름의 이유 설명도 있었다는 것이다.
시련을 견뎌내지 않고는 성공의 길에 접어들 수 없다는 것이고, 퍼터가 정확해야 골프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논리라고 했다.
옳다싶은 논리이긴 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남이 기껏 해놓은 성공담에 비겁하게도 물 타기를 한 꼴로 보일 뿐이었다.
소위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해서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업적을 퇴색시키려고 했던 자들의 행태도 꼭 그랬다.
다음은 그 일화에 대한 Daum백과의 소개다.
콜럼버스를 헐뜯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게 되자 어떤 사람이 콜럼버스를 잡고 대들 듯 말하였다.
"자네 아니면 신대륙을 탐험할 사람이 없겠는가? 아무라도 배를 몰고 대서양 서쪽으로 서쪽으로만 가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될 텐데…."
이 말에 콜럼버스는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렇다면 달걀을, 뾰족한 곳이 밑으로 가게 탁자 위에다 세울 수 있겠소?"
"뭐라고, 탁자 위에다 달걀을 세우라고?"
"그까짓 걸 못해?"
큰소리치던 사람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제각기 애썼으나 아무도 달걀을 세울 수는 없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정색을 하고 일어섰다.
"그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소?"
콜럼버스는 달걀의 뾰족한 부분을 탁자 위에 툭 쳐서 약간 깨뜨린 다음 똑바로 세웠다.
"그렇게 세우는 거야 누가 못해!"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말했다.
"바로 그것이오. 누가 세운 뒤에는 아무라도 쉽게 세울 수 있지요.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탐험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누가 한 다음에는 아무라도 쉽게 하는 법이오. 그러기에 남이 하지 못한 일을 처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오."
인생사 세상사의 서글픈 한 단면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다.
감사함이 없고 칭찬함이 없다.
어쨌든 탓하기 일쑤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마음가짐이란 곧 마음씀씀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도 우호적 마음씀씀이이다.
무엇을 받을까 하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줄까 하는 이타적이 것이 그 핵심이다.
나도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이타적 마음씀씀이로 살아가려고 나름의 애를 쓰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늘 하는 말이 하나 있다.
곧 이 말이다.
‘덮어 써’
남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덮어 써줄 때, 그 사이에 끈끈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 검찰수사관 시절에도 다른 수사관이나 검사가 잘못한 일들에 대해, 내가 덮어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31년 9개월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무탈하게 감당해내고 그 끝에 국가공무원 3급인 검찰부이사관의 명예직급으로 퇴직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렇게 덮어 써준 덕분이 아닌가싶다.
아내도 나를 닮았다.
곧잘 덮어쓴다.
집안 손아래가 우리 집에 와서 한다는 말이 ‘벨 꼴려도 많이 먹어야지.’라고 비아냥거리는데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반박하지 않는 바람에 훗날 그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을 때에도 덮어 써야했고, 40년 지기 친구가 없는 자리에서 그 친구를 지목해서 험담을 한 적이 없는데도 아내를 시기한 또 다른 친구가 거짓으로 고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그 친구와 멀어질 때도 덮어 써야했고, 남편인 내가 주위와 두루 어울릴 목적에서 아내에게 골프를 치게 한 것일 뿐인데도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집안어른들이 손아래 혈육들과 한 패가 되어 아내를 따돌릴 때에도 덮어 써야했다.
하도 덮어쓰기만 해서, 때론 참 바보같이 산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바보 같은 아내가 좋다.
우리 맏이마저도 뭐가 됐든 하나 안 덮어쓰고 ‘아버지가 덮어쓰세요.’라면서 도리어 아비인 내게 요모조모 따져 대드는 판에, 때론 내 잘못까지도 푹 덮어 써주는 고마운 아내이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트레킹 여정이 이제는 11일째로 막바지였다.
작은 현수교 하나를 마지막으로 건넜다.
곧바로 큰 길로 이어졌다.
차들이 다니는 큰 길이었다.
비포장도로였으니 풀풀 먼지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먼지를 다 덮어쓰면서 그 길을 걸었다.
나야 대수롭지 않게 덮어쓰는 먼지였지만, 앞서 가는 아내와 김 여사가 먼지 덮어쓰고 있는 모습은 참 안쓰러웠다.
“잠깐만!”
그렇게 외쳐서 그 둘을 불러 세웠다.
그렇게 불러 세운 그 둘을 데리고 찾아든 곳이 있었다.
길가 생맥주 집이었다.
덮어쓴 그 먼지, 잠시 털고라도 가라는 내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