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997년 예수 믿은지 25년 만에 만난 로마서 5장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사이에 대칭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므로
아담 안에 있던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받아들였습니다.
지긋지긋한 나의 옛사람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으로
살게 한 계기가 되었으므로 지금도 바울과 로마서를 고맙게 여깁니다.
5장의 전반부(1-11절)는 구원의 시작부터 완성입니다.
이 속에 구원받은 결과의 모든 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 시작은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바로 의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구원의 관건입니다.
로마서 1장은 진리를 받는 자와 진리를 막는 자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상관 없이 복음을 받는 자와
복음을 막는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2장은 복음을 받아들이면 이면적 유대인이 되고
복음을 안 받고 자신이 스스로 행하려면 표면적 유대인이 됩니다.
3장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으로 하나 되는데 무슨 차별이 있느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그 피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의로워 지는 것 아니냐 하고 말씀합니다.
4장은 믿음이 무언가를 확실히 가르쳐 줍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다윗의 믿음의 예를 듭니다
그 믿음의 근거는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입니다.
5장은 전반부는 믿음의 완성에 대한 말씀이며 후반부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아담 안에 있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흡수합병 되었습니다.
6장은 세례(침례)로 인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7장은 율법아래 있던 옛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영으로 사는 것이
첫 머리에 나오고 그 다음엔 인간이란 다 갈등이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율법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않으면 왜 안 되는가를 설명합니다.
8장은 개인구원의 완성 곧 완전한 구원을 말합니다.
이렇게 로마서를 공부하다 보면 신앙의 체계가 서고
진리의 시스템이 정립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신앙관을 세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만든 말들(전도책자 등등)과 자기가 스스로 세운 신앙관을
깨뜨려야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고정관념이 매우 무섭습니다.
로마서가 주는 구원의 복이 있는 신앙관을 세우도록 하십시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롬5:1)
하나님과 처음 만나는 통로는 바로 믿음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므로 그 이름을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가 됩니다.
그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그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나 속성이나 능력과 영광을 다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결과가 의가 됩니다.
그 다음 순종이란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믿음으로 그 말씀에 얹혀서 따라가는 겁니다.
이를 믿어 순종이라고 말합니다(롬1:5)
그런데 율법을 순종한다는 유대인들은 말씀을 들을 때는
‘예 알았습니다’ 했지만 끝내 ‘아니오’ 하고
안 되더라는 부정적인 모델입니다.
마태복음 21장은 큰 아들, 작은 아들 이야기입니다.
큰 아들은 예 해놓고 안 되더라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니요 해놓고 되더라 입니다. 율법은 예 해놓고 안 되더라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으로 말씀을 받은 사람은 되어 가더라. 이런 이야깁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엇이든 합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 갑니다 하고 선언하는 겁니다.
로마서 5장12절의 후반부터는 대칭입니다.
로마서 전체가 대칭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
그리고 아담 안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 의, 또 아담 안에 있는 사망,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서로 대칭이 됩니다.
로마서5장20절에서 율법이 끼어듭니다. 율법은 정죄를 하고, 죄를 노출시킵니다,
그래서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넘친다고 역설적으로 말씀합니다.
그런데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넘친다는 말은
율법이 끼어든 목적인데, 그렇다고 죄에 담구었다 건졌다
하는 식으로 신앙생활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단지 율법이 끼어든 목적을 설명하는 겁니다.
우리가 잘했든 잘 못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의 값은 변동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값을 어떻게 드러내느냐는 싸움이며,
그 값을 값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잘못 된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우리가 가졌는데, 왜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로마서5장21절에 가면 죄가 사망 안에서 왕이 됩니다. 인간의 운명은
죽음으로 끝이 나고, 죽으면 불못으로 들어가 영원한 멸망으로 갑니다.
그리나 그리스도는 우리로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 곧 죽음과 사망에서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죄와 함께 인생행로의 어떤 출렁거림이나 숱한
감정 에너지의 방출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사망입니다. 그 뿌리 자체가 흑암입니다.
흑암 속에 있는 백성들이 빛을 보았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는 길은 바로 그리스도의 항상 살아계심의 구원입니다(롬5:10)
우리는 주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받고
그 다음 주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죄와 사망에서 해방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생명의 구원을
받는 사실을 이미 그리스도의 원맨쇼로 완성된 비디오로 보고 믿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