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총선 앞두고 북풍 몰이
북풍 공작에 1996·2012년 총선 결과 바뀌어
북풍의 실체는 진실 외면·무능한 지도자 응원
"야당, 위기관리 ·안보 전문가로 북풍 막아야"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내 기억으로 민주화 이후 북한 변수로 국회의원 총선이 확 뒤집혀진 사례는 두 번이다. 첫 번째는 1996년 4월 총선 때 여론에서 계속 앞서던 새정치국민회의가 신한국당에 크게 패했던 사건이다. 그해 4월 4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의 무력시위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의 청와대는 합동참모본부에 강경한 대응을 직접 지시하였다. 합참 실무자가 군복을 입고 직접 브리핑하도록 하고, 전군에 비상경계령과 대북 감시태세(워치콘)를 격상하도록 한 과잉대응은 청와대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의 지시에 일군의 정치 장교들이 부응해서 이루어진 작품이다. 워치콘이 격상될 만큼 비상 상황이라고 하지만 유엔사가 관할하는 공동경비구역에는 여전히 관광객이 들어갔다. 미국 측은 전혀 비상 상황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북한 없는 북풍으로 뒤집힌 1996년 총선
비상 상황이던 4월 5일에 국방부로 출근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은 비상 근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그날 장관 집무실에 실제로 한 일은 “사랑하는 린다에게”로 시작되는 연애편지 작성이었다. 훗날 이 편지는 로비스트 린다 김 사건을 통해 언론에도 공개된다. 그렇지만 국무총리가 전방에 가서 안보 상황을 점검하고 국방장관이 연일 대북 강경 성명을 발표하면서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었다. 긴장의 일주일이 지나면서 신한국당 지지율이 15% 상승한 여론 조사가 청와대로부터 합참으로 전달되자 지휘통제실의 합참 장교들이 만세를 불렀다. 김동진 합참의장과 김동신 작전부장은 합참 장교들에게 “수고 많았다”고 격려하면서 합참은 축제 분위기였다.
11일의 총선이 끝나자 이양호 국방장관은 합참 정보본부에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브리핑은 그만 하라”고 지시한다. 선거가 끝나고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에 대한 진상은 곧 밝혀졌다. 4월 초에 대대적으로 실시된 한국군의 야외 기동훈련인 호국훈련에 대해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하였는데, 이는 그 이전의 모든 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응과 다를 것이 없는 상투적 맥락과 수준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실은 총선 당시 합참의 북한정보과장인 김남국 대령이 모든 게 선거에 맞춰진 일련의 안보공작이라며 국회에서 양심선언을 하면서 대부분 사실로 밝혀진다. 이 사건을 조사한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국중호 행정관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엄중한 책임 규명을 건의한다.
말 한마디 잘못으로 참패한 2012년의 민주당
두 번째는 2012년의 제19대 총선이다. 이 당시 한나라당은 여론에 워낙 밀리고 있어서 거대 야당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불안했던 한나라당이 총선 직전에 서둘러 국회 선진화법을 통과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3월에 당시 민주당의 정동영 상임 고문이 갑작스럽게 강행되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착공 소식에 서둘러 제주도 현장으로 내려갔다. 이명박 정부가 그간 결정하지 못했던 해군기지 착공을 석연치 않게 서두른 것 자체도 이상했지만, 이에 민주당이 사려 깊은 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무작정 제주도로 내려간 데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 상임 고문이 경찰을 향해 “집권 후에 문책할 것”이라는 말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중·동 보수 언론이 이 말을 “정치보복 예고”라며 민주당을 공격했다.
3월 7일에 당시 통합진보당의 비례 후보였으며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씨의 ‘제주 해적기지’ 발언에 해군 예비역들이 직접 대응하면서 3월 말에 정권의 야당에 대한 안보 공세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허둥대다가 선거전에 밀리면서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던 이명박 정부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막상 총선이 끝나고 나서는 서울 중앙지검은 김지윤을 불기소 처분한다. 단지 주관적인 표현을 기소할 수도 없었던 터라 애초부터 무리였던 사법 사건이었다.
선거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는 노무현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이라며 민주당을 억지 주장을 하는 것처럼 몰아붙였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제주 해군기지 자체만 결정했지 강정마을을 부지로 결정한 사실이 없으며, 공사 착공도 요원한 상황이었다. 집권 기간 내내 기지의 조속한 착공을 요구하는 해군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던 이명박 정부가 선거가 다가오니까 태도를 확 바꿔 이를 총선의 주요 의제로 만들어 버린 결과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15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24.1.16.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북풍을 사전 기정사실화 하는 윤 정권의 속셈
위 두 번의 선거는 북한 변수로 선거 결과가 역전된 사례지만 정작 사건의 주체는 북한이 아니다. 북한을 이용하고 안보를 선거의 주요 의제로 부각시키려는 정략이 있었을 뿐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북한은 남한의 총선이 있을 때마다 각종 도발과 공세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과연 진실일까? 올해 윤석열 대통령과 신원식 국방장관은 “북한이 4월의 남한 총선에 개입할 것”임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해 왔다. 신 장관은 1월 초에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도발을 “제2의 천안함 사건” 또는 “지대공 미사일 발사” 등 매우 구체적으로 예상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윤 대통령은 1월 말에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주재하면서 “비이성적인 북한”에 의해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 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이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총선을 앞두고 큰 판을 벌일 것”이라는 작년 국정원의 국회 보고 이후에도 이제는 윤 대통령까지 북한 개입설에 가세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에 어떤 도발 징후가 있기에 정부는 이처럼 북한 개입을 기정사실화 할까? 북한에 예전과 다른 특이한 군사적 도발의 징후가 나타난 것은 없다. 단지 북한이 신형 핵 어뢰, 전략순항 미사일, 전술 지대지 탄도미사일 등을 동원한 위협과 병행하여 남한에 대해 “적대적 교전국가”, 남한 전역에 대한 “점령·평정·초토화”와 같은 매우 공격적인 언사가 있었다는 게 알려진 사실의 전부다. 그러나 이런 북한의 공세적 태도도 불시에 임의적으로 출현했다기보다 한미일의 연합훈련, 그리고 작년 9·19 군사합의 무력화 이후 접경지 일대에서 한국군의 포 사격훈련에 대한 북한식 대응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는 1996년의 총선 당시와 유사하게 실제로는 위기가 아니지만 위기로 여겨지도록 만들 수 있는 조건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전혀 북한을 위협하지 않았는데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라는 정부와 보수 언론의 주관적 해석도 곧 총선에서 닥쳐올 북풍의 전조처럼 느껴진다. 미국 항공모함이 세 척이나 온다는 3월 말의 한미연합훈련은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되고, 북한이 이에 대응을 하게 되는 순간, 이때가 바로 정권과 보수 언론이 절치부심하며 준비해 온 북풍 기획이 출현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합참 지휘통제실의 장교들이 이 순간에 뒤집힌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환호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1월 24일 F-35A 전투기가 배치된 충북 청주 공군 17전투비행단을 방문, 활주로 통제소(런웨이 컨트롤)에서 F-35A 전투기 출격 현장 작전지도를 하고 있다. 2024.1.24 [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진실 외면, 적개심, 무능한 지도자 응원이 북풍의 실체
3월 말부터 4월 초의 군사적 긴장보다 더 걱정스러운 문제는 이미 한국 사회가 탈진실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가올 북한에 대한 적대와 증오심으로 채워진 일련의 군중들은 진실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이 긴장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도 따지지 않는다. 북한을 강력히 응징하여 굴복을 강요하는 것만이 진실이 될 것이고, 여기에 부응하며 북진 통일을 선동하는 자는 영웅으로 부각된다. 최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국책 연구기관장들과 간담회에서 “자유 북진 통일”을 외치며 사실상 북한 정권에 대한 정벌을 외치는 모양새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전쟁 낭만주의적 사고가 드러난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 8월에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오랜 평화에 지친 시민들에게 승리의 영광을 선동하며 전쟁터로 청년들을 몰아 넣었다. 그 당시에 전쟁의 비참함과 이후에 닥칠 후과를 통찰하는 시력은 급격히 상실되며 적에 대한 증오와 승리의 영광에 시민들은 판단력을 잃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백년의 평화 속에서 전쟁 감수성은 마비된 감각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70년 동안의 평화에 어쩌면 지친 시민들이 차라리 북진과 통일을 외치는 영웅의 풍모를 갈망하고 있고, 정권이 이에 부응한다면 다가올 총선의 판도는 예상하기 어려운 혼란에 처할 것이다. 이런 위기의 시간은,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한 무능한 지도자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애국이 되는 황당한 상황에 빠트린다. 이것이 바로 북풍의 실체다.
그러면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야당, 특히 민주당은 위기관리와 안보에 정통한 전문가를 다수 준비해야 한다. 설령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이것이 비논리적이며 통제 불능의 상황이 아니라 충분히 관리할 수 있고, 평화와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전달할 책임이 야당에 있기 때문이다. 1996년과 2012년에 이를 준비하지 못해 국민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공포를 강요하는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시민권을 수호하려는 야권의 단호한 노력이 북풍을 막아내는 방패가 될 것이다.
(출처 : 북풍 공포에 실려 올 증오 바이러스, 백신을 준비해야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