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낙관론 펴는 제프리 삭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 정부들은 그때까지 걸어보지 못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양적 완화'라는 정책이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또 내려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향으로 금융시장에 돈을 푸는 방법이었다. 미국이 비교적 초기에 도입한 후 이미 충분히 효과를 봤다는 판단하에 중단했고, 최근 유럽은 뒤늦게 양적 완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지면서 양적 완화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생겼다. 돈을 많이 풀었지만 경기가 생각만큼 좋아지지 않고 물가도 하락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가 선택한 양적 완화는 성공한 것일까.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또 내려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방향으로 금융시장에 돈을 푸는 방법이었다. 미국이 비교적 초기에 도입한 후 이미 충분히 효과를 봤다는 판단하에 중단했고, 최근 유럽은 뒤늦게 양적 완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지면서 양적 완화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생겼다. 돈을 많이 풀었지만 경기가 생각만큼 좋아지지 않고 물가도 하락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가 선택한 양적 완화는 성공한 것일까.
- 블룸버그뉴스
―세계경제의 회복 수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미국의 경우 훌륭하다고 할 순 없지만, 상당히 잘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제지표가 회복세를 보입니다. 올해 말에서 내년 정도면 금융 위기로 인한 피해는 복구할 것으로 봅니다. 이는 양적 완화 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이지요. 미국, 영국, 일본이 통화정책의 혜택을 봤고, 이제는 유럽의 차례입니다."
―양적 완화를 성공한 정책으로 보십니까?
"그럼요. 단기적으로 리세션(경기 침체)을 멈추게 했고, 금융 위기를 해결했습니다. 앞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것이죠. 유럽중앙은행(ECB)도 그동안 독일의 반대로 합의가 늦어졌는데, 조만간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왜 이제야 양적 완화를 했지?'하면서 후회할 겁니다.
―양적 완화에 대해서 경제학자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논란이 많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나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같은 비관론자들은 여전히 양적 완화가 실효성이 없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통화정책은 명목금리가 '제로 이하 영역'에 갇혀 있는 상황에선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주장하죠. 최근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으로 볼 때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도 같은 생각으로 보입니다.
비관론자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이들은 현재 물가 하락이 경제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유가 하락으로 일어나는 수요 감소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고, 이는 총수요 부족과 '스태그네이션(만성적인 경기 침체)'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직관적 논리는 2008년 이후 미국과 영국의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졌습니다. 크루그먼은 일본이 1990년대 시작된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으로 쓰러질 첫 번째 주요국이 될 것이라면서 이후 유럽연합(EU), 중국, 그리고 스위스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미국도 물가 하락 소용돌이에 거의 근접한 상태여서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비관론자들이 디플레이션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들이 양적 완화를 실시하는 국가의 경제 회복을 예측하는 데 실패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재정 적자 감축 속에서도 성장률 상승과 실업률 하락을 이끌어냈습니다. 아울러 저금리 속에서도 주가가 오르고 신용 경색이 완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비관론자의 재정정책은 단기 수요 늘릴 수 없어"
―비관론자가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얘기하는 이유가 뭔가요?
"비관론자들은 부동산 버블 같은 비이성적인 인간의 판단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아주 낮은 금리에서도 투자 수요는 낮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총수요 역시 부족합니다.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 대규모 재정 적자만이 모자란 수요를 메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기 수요 관리에서 재정정책이 좋지 않은 수단이라고 봅니다. 역설적이게도 1998년에 크루그먼이 지적했듯, 재정 정책으로 풀린 돈은 소비보다 저축으로 남게 되고, 이는 공공 부채 급증을 낳으며 장기적으로 재정 수지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유가 하락이 장기적인 수요 감소 등 경제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그렇지요. 다만 전 세계적으로 유가 하락의 수혜국과 피해국이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은 대표적인 수혜국입니다. 해외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유가가 내리면 기업은 생산 단가가 낮아져 채산성이 좋아지고, 가계는 소비 여력이 커집니다. 물론 원유를 파는 국가의 수출은 줄어들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수혜의 정도가 더 큽니다. 과거 데이터를 살펴봐도 유가 하락의 시기는 세계 경기가 좋아지는 시기와 맞물렸습니다."
―미국의 경제 회복을 논할 때 아직 고용지표는 부진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맞습니다. 양적 완화는 거시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의 답은 아닙니다. 기업이 사람을 뽑지 않는 건 단순히 경기가 나빠서는 아닙니다. 기계 등 기술의 발달이 기존의 인력을 대체하는 경제구조의 변화가 있는 거지요. 앞으로 이런 흐름은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지속한다 해도 기존의 일자리가 늘어나긴 어렵습니다."
"지정학적 위기로 경제성장 늦어질 수도"
―그렇다면 올해 세계 경제성장의 리스크 요인은 무엇인가요?
"국제정치, 지정학적 문제가 가장 위험합니다. 우크라이나 분쟁, 중동 혼란 등이 앞으로 세계경제가 계속 회복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협력해서 함께 성장해야 할 시기에, 경제제재 등으로 무역을 끊고 고립시키는 등의 시장 반대적인 행위들이 지속되면 큰 위기를 다시 겪을 수도 있습니다. 2015년은 현명한 외교와 올바른 통화정책이 세계경제 번영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은 현재 엔화 약세와 유가 하락이라는 악재와 호재를 동시에 겪고 있는데, 유가 하락의 수혜가 더 클 것으로 봅니다. 엔화 약세가 있긴 하지만, 삼성 같은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이제 환율에 따른 가격 경쟁력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한국은 이제 더는 신흥국이 아닙니다. 과거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한 미국처럼 강하게 통화정책의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점진적인 수준의 성장을 예상합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과 삭스 교수께서 오랜 기간 준비해온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올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향후 15년을 이끌 세계경제 발전 목표인데,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보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참여 가능성이 큽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성장은 사회적 책임과 환경 보전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단순히 도덕심에만 호소하지 않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환경에 대한 투자는 필수적입니다. 산업혁명 시대를 보면, 보육원의 소년, 소녀들이 공장 혹은 탄광에서 하루 20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관점에서도 이건 옳지 못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볼 때에도 역시 반시장적인 행동입니다. 산업혁명 때 청소년의 사망률은 매우 높았고 대부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추후 성숙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 역시 같은 논리입니다. 지금 당장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탄소배출권 등에 큰 비용을 들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더 큰 이익을 남긴다는 경제의 원리를 제대로 따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