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도 잘 모르는 제주 보양술, 오합주를 찾아서
▲ 노란 오메기술과 빙떡
설 명절이다. 설날에 세배(歲拜)하고 나서 먹는 음식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이때 함께 나누는 술을 세주(歲酒)라고 부른다. 세주는 데우지 않고 차게 마시는데, 여기에는 봄을 맞이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세주로 도소주(屠蘇酒)가 있는데, <동의보감>에 그 제법이 나온다. 섣달 그믐날에 백출, 대황, 도라지, 천초, 계심, 호장근, 천오를 썰어 베주머니에 담아 우물물에 불렸다가, 새해 첫날에 청주에 담아 두어 번 끓여내서 마신다. 끓였으니 알코올 기운이 약해졌고, 약재가 들었으니 건강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도소주는 독특한 음주법이 있는데, 나이를 적게 먹은 어린아이가 먼저 마시고, 어른은 나이를 많이 먹은 벌로 나중에 마시는데, 동쪽을 향해서 한 잔씩 마신다고 한다. 도소주를 마셨다는 옛사람의 글은 전해오지만, 나는 아직 이를 대대로 즐겨왔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다.
다시 제주로 간다. 제주도의 제사상에 올랐던 대표적인 술로 차조밥을 엿기름에 삭힌 골감주(골은 엿기름을 뜻하는 제주 방언)와 좁쌀 청주인 오메기술이 있다. 특히 설날에는 메좁쌀로 오메기떡을 만들어 오메기술을 준비했다.
오메기술은 발효가 끝나면 위로 맑은 층인 '웃국'과 아래로 가라앉은 지게미층인 '아랫국'으로 분리된다. 맑은 웃국은 귀하게 여겨 제수 음식으로 올리고, 아랫국은 탁배기라 하여 세배 온 '?당'(친척을 뜻하는 제주 방언)에게 내주었다고 한다. 이때 함께 대접한 음식은 쌀이 들어가 곱다는 '곤떡'을 썰어서 끓인 떡국이었다. 하지만 이번 설날을 오메기술로 맞이하는 제주의 가정은 또 얼마나 될까? 오메기술도 도소주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제주의 술을 살펴보면, 제주다움이 보여 위안이 된다. 무엇보다도 제주 술들은 한자의 침윤을 받지 않은 표음문자로 구성돼 있다.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떡으로 빚는 오메기술, 소주를 내리는 도구 '고조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고소리술, 쉰밥으로 만든 쉰다리, 강된장처럼 물기 없이 빚는 강술, 바닷가에서 기어다니는 게로 빚은 깅이술 들이 제주의 세월 속에 남아 있다.
또한 제주 사람들은 술 빚는 것을 술 '다끄다'라고 표현한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술을 빚는다'를 "할망이 정지에서 술다깜서"라고 말한다.
제주에 견주면 육지의 술 이름은 한자 투성이다. 삼키기도 애석하다고 석탄주(惜呑酒), 누룩을 적다고 소곡주(少?酒), 법식대로 빚는다고 법주(法酒) 등 술을 즐겼던 선비들의 언어로 구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작해야 막걸리나 동동주가 우리말로 구성돼 있을 뿐이다.
꿋꿋이 살아남은 제주의 술
▲ 제주 성읍마을의 오메기술을 빚는, 술 다끄는 집
그렇다고 하여 제주의 술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래의 술에 침탈되긴 육지와 마찬가지다. 일찍이 1920년에 제주 한림읍 옹포리에 명월 소주라는 소주 제조장이 들어서고, 1928년에 제주읍에 연간 72㎘(400석)의 소주를 생산하는 제주주조주식회사가 생기고, 1938년에 착공돼 1944년부터 가동된 동척제주공장(제주시 건입동에 위치)에서는 고구마를 원료로 연료용 무수주정(無水酒精)을 생산하고 연이어 소주도 생산했다.
제주도가 몽골의 영향을 받아 소주가 유명해 고소리술도 있다고 하지만, 제주 술 문화는 일제 강점기에 생겨난 공장식 소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메기술이 제수 음식에서 밀려난 것도 이 여파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의 한림 옹포리에 있는 한라산소주는 제주시에 있던 한일 소주를 중심으로 귀일소주(하귀), 명월소주(한림), 왕자소주(서귀포), 남일소주(성산포), 천일소주(표선) 회사가 1970년에 제주소주합동제조주식회사로 통합되면서 생겨났고, 지금도 여전히 제주 술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다.
현재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은 애월읍의 제주샘주와 성읍마을 부근의 제주고소리술익는집에서 상품화되고 있다. 하지만 상품화된 오메기술은 좁쌀 가격이 비싸서 쌀이 더 많이 들어가거나, 투명할 정도로 맑게 여과돼 노란 기름이 돌았다는 전통 오메기술과는 차이가 있다.
쉰다리는 올레길을 돌다 보면 더러 눈에 띄지만 상품화되지는 않았다. 쉰다리의 다리가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뜻밖에 제주토박이를 만나 그 궁금증을 풀었다.
쉰다리는 여름 쉰 보리밥으로 빚는데, 누룩을 섞어 조물조물한 뒤 단지에 넣어두면 다음 날이면 보글보글 괴게 된다. 이를 달이듯이 끓여서 먹는데, 이때 달이는 이유는 두어 가지가 있다. 달이면 단맛이 더 강화되고, 알코올 기운이 날아가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쉰밥에 식중독균이 들어있을지 모르니 살균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쉰다리의 중요한 요소는 발효만이 아니라 달이는 과정이다, 즉 쉰다리는 '쉰밥을 달이다'가 축약된 말이다.
그런데 제주 술 중에서 이질적인 술 이름이 하나 있다. 한자로 구성된 오합주(五合酒)다. 다섯 가지 재료가 합해진 술이다. 애월에서 만난 중년 여성은 예전에 어머니가 기력이 약한 남동생에게만 빚어주었던 보양식이라고 했고, 농업기술센터에 일하는 분은 장가갈 때 장모님이 해줬던 술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합주를 기억하는 제주 사람이 드무니, 빚는 사람을 찾기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제주 동부농업기술센터에 술 이야기를 하러 간 자리에서, 오합주를 빚는 이를 만났다. 동부에 있는 기술센터인데, 초대받아 온 이는 서부에 사는 김태자씨였다. 동쪽에서 찾기 어려워, 서쪽에 계신 분을 모셔왔다고 했다. 제주에서 동쪽과 서쪽은, 육지의 동해안과 서해안만큼이나 멀다고 한다. 그날 주소를 받고, 연초에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로 김태자씨를 찾아갔다.
달걀노른자, 꿀, 생강, 참기름 들어가는 보양술
▲ 직접 만든 오합주를 소개하고 있는 김태자씨
김태자씨 집은 아담하면서도 단정했고, 울타리는 있는 둥 마는 둥 낮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이는 빙떡을 만들고 있었다. 메밀전에 무채를 얹어 빙빙 돌려서 만든다 해서 빙떡이다. 수수부꾸미를 닮았는데 떡의 호칭을 받아 잔칫상에도 오르는 제주 음식이다.
김태자씨는 1942년생으로 올해로 일흔여덟살이 됐다. 그는 제주 여성답게 자식에 의존하지 않고 손수 살림을 한다. 서귀포 향토음식연구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술을 빚는 날이 제일 행복합니다. 1964년에 시어머니가 담갔던 술을, 지금도 그 술맛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이상하게 씽하는 냄새와 함께 노란 기름이 둥둥 뜨는 모습에 반해서 50년 넘게 술을 빚고 있습니다.
오메기술을 닦아서 15일쯤 지나면 노랗게 기름이 뜹니다. 그 기름을 헤치고 떠내면 오메기 청주인데, 그것이 오합주의 주재료가 됩니다. 청주 3컵이면, 토종 계란 노른자 1컵, 토종꿀도 1컵, 생강도 채 쳐서 1컵 하고, 참기름은 많으면 느끼하니 한 컵보다는 조금 적게 해서 만듭니다. 여름에는 닷새, 겨울에는 열흘 정도 두었다가 먹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아픈 사람이 있거나, 기력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만들어두고 조금씩 시간 날 때마다 한 잔씩 먹였는데, 요즘 같아서는 정관장(한국인삼공사의 홍삼제품 브랜드) 이상"이라고 자랑했다. 오합주는 함부로 닭이나 돼지를 잡을 수 없던 시절에, 제주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준 귀한 단백질 보충원이자 보양식이었다.
그이는 안방 침대 옆에 이불로 감싸둔 오메기술 항아리를 보여주고, 한창 발효되고 있는 금빛 도는 오메기술을 떠서 맛보여줬다. 고소하고 기름기가 도는데 묵직하면서도 약간 신맛이 돌았다. 마당의 비닐하우스에는 노랗고 붉은 곰팡이가 앉은 두툼한 누룩이 있었다.
▲ 제주 시장 곡물 가게에서 파는 제주 누룩
그런데 나를 혼란에 빠뜨린 것은 그가 가족사진 속의 아들들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였다. 그이는 1963년 5월에 길 건너에서 살다가 이 집으로 시집을 왔다. 3대 독자인 신랑이 혼인한 지 일주일 만에 군대에 갔고, 군대 간 뒤에야 아이가 들어선 것을 알게 됐다.
신랑이 군대 갔을 때 낳은 큰아들이 지금은 신문사 논설위원이 되고, 작은아들은 살고 있는 동네의 시장까지 했다고 한다. 그가 그저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그래서 오합주를 여전히 지키면서 살아가는 촌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제주도는 자식을 혼인시키면 한 집안에서도 안거리, 밖거리하여 부엌을 따로 쓴다. 제주에서는 나이든 부모님도 노동력이 살아있는 그 순간까지 독립적으로 살림을 꾸려낸다. 땅은 척박하고 생활은 궁핍했던 시절에,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의지하는 것이 서로 짐이 되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문화다. 자식이 잘됐다고 하지만, 거기에 기대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제주 여성의 손안에 오합주가 들어 있었다.
김태자씨는 노랗게 뜬 오메기술을 술잔 가득 담아 내보이며 내게 다시 묻는다. "이 오메기술이 잘 돼야 오합주도 잘 됩니다. 노랗게 뜬 기름이 이쁘지요?"
예쁘다. 한 시절 제주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졌던 그 술이.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그 기발한 음식 문화가.
허시명 기자 / 오마이뉴스
첫댓글 멋진 곳이네요 가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