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불국사
불국사는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설명이 필요없는 사찰이라 생각됩니다.
사찰중에서 고선사와 더불어 이전과 달리 불교사상이 반영되어
주요 건물들이(대웅전, 극락전..) 배치되어 있답니다.
불국토를 만들려는 의지가 경주 곳곳에 배어있구요.
원래 앞마당에는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더라면
물안개가 자욱한 청운교, 백운교의 운치를 감상할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경덕왕 10) 김대성(金大城)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국가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원찰(願刹)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원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편 〈불국사고금창기 佛國寺古今創記〉에는 528년(법흥왕 15)에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迎帝夫人)이 화엄불국사(華嚴佛國寺)를 창건하고 574년(진흥왕 35)에 중창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신라 역사와 모순된 것이며 〈삼국유사〉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듯한 대목도 있어서 사료로서의 신빙성이 적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주요건물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놓아 불국사의 원형복원에 좋은 자료가 된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수를 거쳤으며 현존하는 주요건물들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에 복구된 것이다. 석탑을 포함한 석조물은 병화를 입지 않아 신라시대의 원형을 유지한 것들이 꽤 남아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0년의 대대적인 복원공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염원한 이상의 불국토(佛國土)를 3갈래로 구현한 것으로 〈법화경 法華經〉에 근거한 석가의 사바세계는 대웅전으로, 〈무량수경 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극락전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는 비로전으로 대표된다. 즉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石壇)에 의하여 단상(壇上)의 불국토와 단하(壇下)의 속계(俗界)로 양분된다. 크고 작은 돌을 빈틈없이 쌓아올려 만든 석단 위에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 칠보교(七寶橋)·연화교(蓮花橋)라는 2쌍의 다리를 놓았다.
청운교·백운교는 자하문(紫霞門)을 거쳐 석가모니의 사바세계인 대웅전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3층석탑과 다보탑(多寶塔)은 서로 마주 서 있는 쌍탑구조이며, 뒤편으로는 경론(經論)을 강술하는 무설전(無說殿)을 두고 대웅전 일곽을 동·서 행랑으로 에워싸고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안양문(安養門)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르게 되며 그 안에 금동아미타불좌상을 안치했다. 무설전 뒤에는 관음전이 있고, 그 서편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한 비로전이 있다. 이외에도 토함산 일대에는 몽성암(夢成庵)과 보덕굴(普德窟)을 비롯하여 불국사 부속암자들이 다수 있다. 칠보교 아래에는 2쌍의 당간지주와 석조(石槽)가 있고, 5기의 부도가 남아 있다.
<다보탑>
10원짜리 동전에 있는 탑이죠!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답니다.
다만,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석가탑에 비해 가치가 떨어 진답니다.
왜냐면 인도건축에서 흔히볼수 있는 양식들이거든요.
나중에 인도가시면 확인해 보세요.
불국사 대웅전 앞 동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국보 제20호. 높이 10.4m.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과는 매우 다른 이형(異型) 석탑이다. 〈법화경〉의 〈견보탑품 見寶塔品〉에 근거하여 건립된 것으로 다보여래(多寶如來)를 상징하는 탑이다.
〈견보탑품〉은 다보여래가 〈법화경〉의 진리를 설하는 석가여래를 찬양하자 석가여래가 자리 한쪽을 비워 나란히 앉게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불국사의 두 탑은 석가·다보 여래를 상징하며,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쌍탑의 하나이다.
이형 석탑이지만 탑의 기본적인 구조를 그대로 따라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이루어졌으며 정사각형의 기단은 사제(四諦)와 8정도(八正道)의 근본도리를 밝힌 것이고, 1층부터 보주까지는 10지(十地)의 등각(等覺)·묘각(妙覺)을 상징한 것으로 탑 자체가 불(佛)임을 나타낸 것이다.
하층기단의 4면에는 계단이 있고 양쪽에 난간의 석주로 보이는 유구가 서 있다. 상층기단에는 4개의 우주(隅柱)와 중앙에 탱주(撑柱)가 서 있으며, 우주 위에는 2단의 두공이 십자형으로 놓여 있고 그 위에 갑석(甲石)을 올려놓았다. 갑석 위에는 8각형의 신부(身部)가 3단 있는데 하단은 4각형의 난간 속에 별석을 돌렸고, 중단은 8각 난간 속에 죽절형(竹節形)의 기둥을 세웠고, 상단은 8각 앙련(仰蓮) 위에 꽃술형 기둥 8개가 8각의 신부를 돌려싸고 있다.
옥개석도 역시 8각이며 그 위에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로 이루어진 상륜부가 있다. 1925년 일본인들에 의해 해체·수리되었으나 이때 발견된 유물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탑 사방의 보계(寶階)가 마련된 갑석 위에 있던 4마리의 사자상은 현재 1마리만 남아 있다.
<석가탑>
조형미가 가장 아름다운 석탑이랍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목조양식을 모방해 축조되었고
감은사지 석탑은 돌의 웅장함을 잘 표현했다면
이 석가탑은 석탑의 절정미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답니다.
날렵하고 세련된 비례가 일품으로
그 시대의 문화수준을 가름할 수 있죠.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국보 제21호. 높이 10.4m. 석가탑(釋迦塔) 또는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한다. 이 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예이며,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데 각 부분의 체감비율이 적당하며 간결하다.
상·하 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각각 2개씩 새겨져 있고 다른 조각은 없다. 탑신을 받치는 갑석은 4매의 돌로 되어 있는데 아래에는 부연(附椽)이 있고, 윗면은 경사가 져 있으며 2단의 탑신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옥신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을 뿐이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5단이며 그 위에는 2단의 옥신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만 남아 있었는데 1973년 실상사백장암3층석탑의 상륜부를 모방해 결실된 부분을 보충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탑의 특이한 점은 탑 주위에 장방석을 돌려서 형성한 탑구(塔區)에 연꽃무늬를 조각한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가 있는 것과 탑의 기단부를 자연석이 받치고 있는 것 등은 유례가 드문, 주목할 만한 예이다. 해체수리 때 2층 옥신의 사리공에서 사리함과 여러 개의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첫댓글 가시거든 불국사 관리 소장님 한테 안부 전해 주이소~^ㅡㅡ^~
만나뵐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안부 전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ㅎㅎ
중학교떄 수학여행후론 첨인듯하네요 ㅎ1ㅎ1 *^-^*
중학교때 불국사로 수학 여행 갔으면 좋은 학교 댕겼구만~~[건물만]~~^^^***
안돼~ 꼭 갖고 와야 되겠는걸? ^^